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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능력(2009년 9월20일,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9.20 17:08 | 조회 2071


다윗의 능력

2009년 9월20일(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삼상17:41-49

추수 때가 되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나타납니다. 참새떼가 득달같이 달려듭니다. 추수 때에 그 결실을 얻으려고 몰려듭니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를 추수 때와 비교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결실기에는 훼방꾼들이 있어서 추수를 방해하며, 그 귀한 열매를 뺏으려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니 그 알곡 뿐만아니라 영적인 일에 열심인 자에게도 공격을 하여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스스로 자기 신앙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사탄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을 넘어뜨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영적 싸움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늘 주변의 나라들에 의해서 어려움을 당하곤 하였습니다. 아말렉 족속, 암몬, 모압, , , 더욱이 모세와 사돈지간인 미디안 족속도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이웃 나라가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힘이 약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리 크지않은 족속입니다. 이집트와 앗수르, 바벨론과 같은 거대한 제국 사이에 끼어있는 작은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늘 괴롭혔던 나라는 블레셋이었습니다. 엘리 제사장 때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 율법궤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을 포함한 이웃 나라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근본이유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대한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얼마전 병원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의외로 요즈음 세간에 떠도는 소위 신종풀르에대한 예방이나 예를 들어 손을 씻는 세정제 같은 어떤 조치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병원의 의사도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면역체계가 튼튼한 사람에게는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감염이 되어도 힘을 못쓰고 스러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 신앙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치 못하니 이웃 나라들에게 계속 침략을 당하는여 계속 깨지고, 무너지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 할 때 마다 이웃 나라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고, 여러분을 낙심케 하며,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 때문인가요?우리가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때, 우리는 그 상황에 앞서 먼저 하나님을 찿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의 삶의 지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블레셋 족속이 군대를 모아 싸우고자 하여 이스라엘 코 앞에 진을 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악한 힘이 하나님 백성 넘어뜨리려고 작정을 하고 뫃이면 넘어지지 않을 장사가 없습니다. 이 때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소원하면 넘어지고 맙니다.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힘센 장수가 있는데, 이 장수가 블레셋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에게 와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며 싸움을 걸었습니다. 성경은 블레셋의 신상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았습니다. 키가 6규빗하고도 한 뼘이라고 합니다. 한 규빗이 45cm이니까 2m90cm은 족히 넘습니다. 또 입고 있는 갑옷이 5,000세겔이라고 하니 1세겔에 11.4g이니까 57kg이나 나갑니다. 그가 사용한 창 날의 무게만 600세겔이니까 6.8kg입니다.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블레셋이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멸시하였음에도 사울과 이스라엘은 놀라며 크게 두려워 했다고 합니다. 사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택함받을 때의 처음 모습은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이 아니습니다. 사울이 처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때의 모습을 보면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외모는 일반 사람 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 성경은 스스로 작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을 찿을 때 나귀 장식물 뒤에 숨었다고 합니다. 삼상9:21에 보면 사울을 '가장 작은 베냐민 가족 가운데 가장 보잘 곳 없'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겸손하였지만 암몬 사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자 사울은 밭을 갈다 말고, 그 밭을 갈던 소 2 마리를 각을 떠서 모든 이스라엘에게 돌리면서 암몬을 물리치자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울에대해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의 당당함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데 그 때의 그 모습, 그 용기는 없어지고 블레셋 앞에 놀라고, 두려워 고개가 꺽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사람을 두려워 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하나님 두려워 해야지 사람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의 신앙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이렇게 무너진 것은 사울이 처음 왕이되어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왔을 때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서 싸우자고 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깨고 자기가 직접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고 싸우려 했던 것입니다. 사울이 먼저 제사를 드린 이유를 사무엘에게 설명을 합니다. 적군은 점점 다가오고, 이스라엘의 용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점점 흩어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레셋이 먼저 우리를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오기 전에 먼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진멸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사울은 아말렉의 왕을 죽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양떼와 소떼 중에 가장 기름진 것을 따로 골라 놓았습니다. 후에 사무엘이 와서 그 양과 소떼는 무엇이냐고 묻자 장수들이 죽이지 않고 데리고 왔으며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입장에서는 승리를 이끈 장수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주지 않는다면 어떤 원성을 살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다음의 전쟁에서 이 장수들을 이끌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에게 속하여있다는 그 진리를 사울이 사람의 소리에 망각을 해 버린 것입니다. 사울은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적장이 나타났으니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골리앗만 보였고, 그러니 두려워 떨 수 박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앙으로 블레셋의 골리앗에게 전전긍긍하는 이스라엘을 살린 것은 바로 다윗의 신앙이었습니다.

골리앗의 기세에 눌려 이스라엘이 전전 긍긍할 때에 다윗은 골리앗에대해 '저 할례 도 받지 않은 블레셋 녀석이 무엇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는 군인들을 이렇게 모욕하는 것입니까?"라고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에대해 전혀 게의치 않습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사울에게 이야기 합니다.
"누구든지 저 자 때문에 사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이집트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년을 헤멘 것도 결국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바다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따라 걷다가 물 속에 빠진 것도 예수님을 보다가 넘실데는 풍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울이 다윗을 만납니다. 그 때에 사울이 다윗에게 자신이 사용하던 군 장비를 사용하라고 하는데, 몸에 맞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다면서 거절을 합니다. 왜냐하면 한 번도 무장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에 다윗은 시냇가에서 물맷돌 5개를 집어듭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늘 상용하던 양을 칠 때 가지고 다니던 주머니에 집어 넣고 무릿매를 손에 들고 전장터로 향합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대면할 때 너 같이 어린 소년이 어떻게 저 두려운 골리앗과 대적 할 수 있느냐고 할 때에 다윗은 "임금님의 종인 저는 아버지의 양 떼를 지켜 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양 떼에 달려들어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저는 곧 바로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죽이고, 그 입에서 양을 꺼내어 살려 내곤 하였습니다. 그 짐승이 저에게 달려들면 그 턱수염을 붙잡고 때려죽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으니 저 할례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꼴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자를 어찌 그대로 두겠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더 합니다.
"사자의 발톱이나 곰의 발톱에서 저를 살려주신 주님께서, 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틀림없이 저를 살려 주실 것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이 그제서야 다윗에게 전장에 나갈 것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 앞에서 이야기하는 다윗의 고백이 인상적입니다. 사자와 곰과 싸워 이겼지만 다윗은 사울 앞에서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내가 양을 칠 때 사자와 곰에게서 저를 살려주신 것 처럼 자기를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용기에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 조건, 되어지는 흐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겸손입니다. 자기낮춤입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 아래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여리고성은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또 예루살렘의 종교, 정치, 경제의 기득권자들과 지도자들의 커다란 저택들이 있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시는데 아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여리고성을 지나 성밖으로 빠져나가기 직전 예수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여리고성 앞의 눈먼 거지였고, 성 안에 살고있던 세리장 삭게오였습니다. 눈먼 거지는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것이 궁굼하여 물어 보았습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이 눈먼 거지는 온 힘을 다 하여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구하소서!" 이 사람은 예수가 이제 지나가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꼭 만나 보아야 하겠다는 간절함으로 크게 소리쳐 부르짖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예수님은 돌아서서 그 눈먼 거지를 만나주었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삭게오도 여리고성에서 세리의 장 역활을 하였다면 나름대로 행세께나 했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를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에 빌붙어 세금을 걷어 착복하여 부를 획득한 사람이었고, 더구나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으니 그의 부나 기득권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여리고를 거의 다 지나갈 무렵 부리나케 예수님 지나갈 길목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갈급해 하였습니다.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찿듯이 예수님을 찿앗고, 그리고 만났습니다.

신앙에 20년, 30년 연륜이 생기다 보면, 신앙의 틀, 즉 기도회, 예배, 친교, 전도 등 그 신앙의 틀만 있지 갈급함은 없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껍데기만 남는 것입니다. 갈급하지 않아도 그의 세상적인 지위나, 가진 재력이 자신으로 하여금 부족함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가난하고, 약하며, 부족하여 스스로를 낮추며 서로 나누며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스스로를 가장 낮추었으며, 나눌 때에 자기 생명까지 내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야 생명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동시대를 살며 이렇게 자신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심으로 하나님을 찿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죄인 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며, 스스로 거짓되며 온전치 못함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별로 기도할 것도 없고, 간절함도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디에서부터 하나님과 멀어졌는지를 찿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을 보면 언제나 늘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늘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고, 주께 아뢰고, 그리고 간구하며 그의 일생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의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평소에 해 오던데로 그렇게 골리앗에게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냇가에서 물맷돌 5개를 집어들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대적하여 그렇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삼상17:45-47입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 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또 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께 달린 것이다. 주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 다윗은 그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고 그 길로 늘 하던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조약돌 5개를 집어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바로에게 나아갈 때에 지팡이 하나만 들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팡이나, 그냥 물맷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신앙이 있고, 섬세함과 정교한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골리앗이 앞으로 나아오자 멈칫하거나 지체함이 없이 48절에 보면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갔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전적인 하나님 신뢰의 모습입니다.

사울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의 모습을 보면 자기 생각이라 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레셋이 공격할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를 하나도 남기지 말라 했을 때에도 왜 그럼 진멸하지 않았느냐는 사무엘의 물음에 삼상 15:25절에 보면 군인들이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부하장수가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것도 자기부하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이미 사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다윗은 물맷돌 5개를 들었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세상 사람들 방식대로 살아가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살아야지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이렇게 위기가 다가올 때 나름대로 물맷돌 5개가 있는지요. 나의 삶, 가정, 신앙, 교회, 나라와 민족, , , 등을 무너뜨리는 세력이 나에게 닥쳐올 때 스스로 그 적을 물리치기 위해 물맷돌 5개가 준비되어 있는가 말입니다. 그러니까 늘 일상적인 신앙의 삶 속에서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복음을 전하며,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을 향한 기쁨의 자원하는 헌신과 그리고 작아서 남이 보기에 보잘 것 없는 하찮은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라 한다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 규례, 약속을 지키는 그 신실함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 속에 있는지 한 번 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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