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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약속)의 땅(2009년 9월13일, 성령강림절후열다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9.13 15:46 | 조회 1716


축복(약속)의 땅

2009년 9월13일(성령강림절후열다섯번째주일) 신11:8-17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친구와 약속을 하거나, 사업상의 계약을 하거나,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관계와 만남 속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약속, 만남, 관계의 바탕에는 서로 간의 신뢰가 있는 것입니다. 내일 해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도 늘 반복되는 과학의 질서이기도 하지만 오늘 해가 떳다고 해서 내일 해가 뜬다는 보장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가 내일 다시 뜰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삶의 바탕에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 관계는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믿는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관계요, 만남이요,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관계, 약속, 만남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성서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신앙은 우선은 부르심인 것입니다. 부르시지 않으면 믿음이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르심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릴적 기억인데 학원이라는 것이 없었을 때, 물론 과외라는 것이 있었지만 아직 상업화 되지 않았던 때, 아이들의 일상은 거의 노는 것이었습니다. 한 여름인데 보통 낮이 길어 저녁 8,9시 까지 동네 골목을 늦게 까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다니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놀다가 어머님이 부르십니다. "홍택아! 밥먹어라!"합니다. 세상없이 뛰 놀다가도 그 한마디에 물론 집으로 가기 싫었지만 정신이 퍼뜩하여 아이들과 '안녕, 내일 또 놀자!'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생각이 납니다. 어머니가 부르시면 그렇게 정신없이 빠져있던 놀이에서 돌아서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신앙은 마치 이렇게 부르는 부름에 돌아서는 것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은 마치 포도원 농부가 수확을 앞두고 일꾼을 부르러 이른 새벽부터 오전 9시 그리고는 오후에도 계속 일꾼을 부르러 나갔는데, 일이 끝날 즈음인 5시에도 일꾼을 부르러 장터에 나아가서 일꾼을 부릅니다. 이렇게 여러 시간에 걸쳐 일군을 불렀는데, 성서가 말하는 부르심은 바로 파장 1시간을 놓고 부름을 받아서 '예!' 하고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르는데, 꾸물데고, 머믓머믓 거린다면 포도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 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몇 시에 부름받은 성도인가요? 새벽 일찍입니까? 아니면 보통 오전 9시에 부름을 받았습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부름은 바로 일이 다 끝 날 즈음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니까 이 부르심은 종말론적이지요. 교회의 신앙은 그 근본에 종말론적인 신앙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끝자락에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가치가 없어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나를 떠 받치고 있던 생활의 근거가 무 가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는 가치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말씀의 가치입니다. 세상의 모든 삶의 결과물들과 과정들과 인과들. . .은 모두 없어지지만 말씀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 말씀에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도록 하기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살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초대를 받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하여 노아로 이어지는데, 그래도 역시 이렇게 종말론적인 부르심의 초대를 받고 말씀 앞에 나아간 대표적인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라는 지역에서 부르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하였을 때에 창12:4에 보면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길을 떠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 일상의 언어로 이야기 하면 신뢰인 것입니다. '말씀에대한 신뢰', 믿음입니다. 계약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관계, 만남, 계약에는 신뢰가 따라야 한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계약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떠나라! 내가 네게 줄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땅일까요? 신명기서는 오늘 그 땅을 '약속하신 땅'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떠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부르심의 종
말론적인 신앙을 고백하려면 떠나야 합니다. 모든 가치에 메이지 않고 떠날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가치의 삶으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고는 아무런 약속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르심의 신앙에는 떠나서 나아갈 순례의 길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모든 학연, 지연, 혈연등의 모든 연고를 뒤로하고 약속의 땅을 바라며 떠났습니다. 성경에 보면 떠나자 마자 중동 지역에 큰 기근이 옵니다. 도저희 그 곳에서 살 수 없어 이집트로 향합 니다. 떠나지 말았어야 하는데 떠납니다. 결국 이집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돌아와서는 롯과의 갈등, 커다란 전쟁. . .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격으며 약속의 땅에서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러나 아직 상속자에대한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의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하기도 하고, 아내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낳은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으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약속이 아니라 하십니다. 말씀이 아니라 하십니다.

하나님과 신뢰를 바탕으로 맺은 약속이 깨지기 일보직전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찿아오셔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다시 한 번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습니다. 그렇게 언약을 갱신하는 내용이 창15:6에 무어라고 나오냐 하면 "아브라함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그런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합니다. 의로여기셨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이 말이 영어로 Justice가 아니라 Rightousness입니다. 그러니까 정의로운 의가 아니라 옳다는 의입니다. '의로 여기셨다'는 말을 다른 영어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고백이 만족스러워 받아들이셨다고 되어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깊은 속 뜻이 있습니다. 비록 좀 부족하고, 아직 덜 익었어도, 그리고 실수가 많더라도 그 믿음, 그 고백을 보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시1:6에도 보면 '의인의 길은 주께서 인정'하신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의라는 말이 바로 아버지의 뜻을 의미하는데,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을 따라 가는 길을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의로 여기셨다'는 이 말씀이 인류 구원의 말씀이 되었습니다. 롬1;17에 보면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 하나님이 옳다고 하는 것,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인정했던 그 의로움이 복음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칼로 베듯이 잘라내는 의로움이 아니라 - 바리새인의 의는 차별하고, 분리합니다. 이쪽은 거룩하고, 저 쪽은 죄입니다.- 품고, 인정하며, 감싸며, 불쌍히 여기는 긍휼함, 즉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복음이 무엇인가요? 복된 소식, 글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우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실 때, 무엇을 보고 인정할까요? 로마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았던 그 은혜를 지금 아무런 공로없이 우리가 받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모든 의가 완전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다 드러난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믿음으로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복음은 능력입니다. 교우여러분 복음은 이론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문학이 아닙니다. 어떤 인생이나 가치가 아닙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죄와 죽음, 허무와 혼돈과 어두움의 힘을 물리치는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바로 그 복음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값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옳다고 해도, 과학이, 역사가 옳다고 해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주님이 인정하시므로 구원 받은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삭케오, 18년 혈루증 앓던 여인,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죄인 그 모두가 아무런 공로없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오래 잘 살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 땅은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약속하여 얻은 땅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땅 말고 이집트 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과 이집트 땅의 다른 점을 오늘 말씀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땅에서는 농사를 지을 때에 발로 물을 댔지만,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가 많아서, 하늘에서 내린 빗물로 밭에 물을 댄다는 것입니다. 두 땅의 차이가 이집트는 열심히 노력을 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가나안 땅은 하늘의 물로 농사를 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이집트와 가나안을 잇는 순례의 땅입니다.

이집트 땅은 노예로서 수치롭고 굴욕을 당하던 어두움의 땅입니다. 고통스러운 하나님의 손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땅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며, 이른 비와 늦은 비로 은혜에 은혜를 더하는 약속의 땅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땅이 있습니다.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시련과 혼돈, 불안 그러나 자유가 있는 순례의 땅이요, 믿음의 연단의 땅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반드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의 인도를 받아야 하며,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바위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의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준 말씀은 물론 눈에 보이는 땅에대한 이야기입니다만은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읽노라면, 금방 믿음의 과정을 연상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느 땅에 살고 계십니까? 우상으로 가득찬 세속의 가치에 둘러쌓여 눈에 보이는 가치에 연연하며 일희 일비하는 삶을 살고계십니까? 아니면 아브라함과 같이 자신이 뿌리내린 그 세속 가치를 떨치고 돌아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른비와 늦은비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는 가나안 땅에 와 있습니까?

믿음이란 약속에대한 믿음입니다. 이 약속에대한 믿음으로 불리움을 받은 우리는 이제 이집트 땅이 상징하는 세속가치, 물질가치의 삶에서 가나안 땅이 상징하는 약속과 축복의 삶, 즉 젖과 꿀이 흐르는 윤택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약속 가치의 삶으로 나아가려면 반듯이 광야의 땅으로 상징되는 순례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스라엘이 지나간 40년 광야의 길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은 물질가치의 부동산의 땅이 아니라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듯이 온유한자가 땅을 차지하리라 한 것과 같이 그 이름, 그 나라, 그 뜻의 영역, 그 뜻의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옛 삶의 가치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광야길로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어제 저는 인터넷을 통해 잘 모르는 박준성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은 서민들, 즉 노동자와 농민들을 대상으로 25년 동안 역사를 가르쳐 오신 분인데 03년에 발병하여 05년에 회복하는 투병의 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그는 투병 과정을 '그동안 좋아하던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끊고 천천히 기억 속에 묻어 두었다가 과거를 뒤적여 그리워하면서 차츰차츰 새로운 것들과 익숙해지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끊을 수 없고 끊어서도 안 되는 더 많은 것들과 새로운 것들을 인사시켜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발병하는 순간 이 분은 종말론적인 삶의 가치를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이후는 은혜로 사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삶을 어떻게 사느냐 할 때 이 분은 지난 것과 새로운 것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나안 여정도 그렇습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 가정에, 직장에 이웃과의 삶에 젖과 꿀이 흐르는 윤택함, 그러한 축복된 삶이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십니다. 마치 파장 1시간 전에 포도원 일꾼을 부르듯이 주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주저하지 말고 이 은혜의 부름에 '예' 하고 옛 가치의 관행에서 돌아서서 새로운 약속의 삶으로 나아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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