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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외에는 ...(2009년 8월30일, 성령강림절후열세째주일)

하늘기차 | 2009.08.31 14:11 | 조회 1938


기도 외에는 ...

2009년 8월30일(성령강림절후열세째주일) 마7:7-11

운동선수들은 경기가 쉴 때 그냥 쉬는 것이 아닙니다. 휴식 기간에 보면 다음 시즌을 위해 몸을 만들고, 체력을 키우고, 전술, 전략, 그리고 상대팀에대한 분석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진행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 시즌, 특히 동절기를 얼마나 알차게 지내는가에 따라 다음 시즌의 성적이 좌우된다고 합니다. 권투 선수들이 링위에 올라서면, 링 아나운서의 멘트가 시작이 되는데, 이 때 코치와 세컨들이 선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몸을 주물러 근육을 풀어주고, 또 선수 스스로는 링 위를 겅중겅중 뛰며 주먹을 뻗어 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시할 것은 이미 그 때부터 시합은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선수들 간에 눈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시합의 승패가 여기서 갈린다고 합니다. 눈과 눈이 마주치면 "응, 너 연습 얼마나 했어, 약점이 어디지! 니 주요 펀치가 무엇이지" 하면서 눈 싸움을 하다 보면, 한 쪽에서 안되겠구나 하면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해서, 공이 울리기 전에 이미 승패가 결정나기도 한다구 합니다. 그래서 이미 싸움은 시작 공이 울리기 전에 결판이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젠가 그런 말 장난 같은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 광야에서의 금식 기도는 공생애 사역의 준비인가? 아니면 시작인가? '라고, 시작인지, 준비인지에대해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작과 준비는 무슨차이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파하려고 할 때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인도되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입고 기도를 하는데 누가 나타납니까? 사탄 마귀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 놓고 하나님 나라, 뜻, 이름을 위해 결단을 할 때에, 사탄 마귀가 방해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깁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공생애가 시작 되기 전에 싸움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예수님은 사탄에게 결정타를 메겼습니다. 기선을 제압한 것입니다. 이 후 사탄은 거듭 예수님에게 나타나 예수님을 귀찮게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어 돌아가실 때 까지 찿아와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예수님 앞에서 더 이상 맥을 못춥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러 들어가셨을 때에도 보면 귀신이 먼저 예수를 알아보고 난리를 칩니다. 자기의 마지막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싸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풀에 꺽여 넘어집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사람들 보다 먼저 압니다. "나사렛 사람 예수여!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압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거룩한 분이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귀신을 꾸짖으시니, 그 말씀 한 마디에 귀신은 쫓겨갑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깊은 기도를 통해 사탄의 권세를 제압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시작은 이미 기도부터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일상 생활, 일용한 양식을 위한 일, 그 모든 것에 있어서 시작은 기도입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풀 코스를 반복하여 뛰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중간에서 탈락하거나 기록이 형편 없거나 하듯이 기도 없는 시작은 중도 하차 하거나 겉은 번듯한데, 내용없는 껍데기 일 수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마치 불조심을 거듭 거듭 강조해도 괜찮듯이 기도하라고 거듭강조해도 나쁠게 없습니다. 기도 없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셨을 때 였습니다. 제자들이 벙어리, 귀먹어리 들린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여 사람들에게 낭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아이와 부모를 불쌍히 여기시며, 귀신을 꾸짖어 그 아이에게서 쫓아내었습니다. 후에 제자들이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내쫓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내쫓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기도가 얼마나 절박하며, 절대적이며, 적극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방법, 지혜, 수단 이 전의 기도의 절대적인 것에대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최근 교회 홈피에 이상한 음란 계시물이 계속 올라온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부정보기관에 신고도 해 보았지만, 주소를 추적할 수 없어 제제를 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 애 먹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 경기노회에 컴퓨터를 잘 아는 목사님에게 그 이야기를 해서 간신히 그 음란성 게시물을 차단할 수가 있었습니다. 컴퓨터도 이렇게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면 차단을 위한 방어벽을 설치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도 역시 스스로 방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부에서 내 마음 속에 침입해 들어오는 거짓된, 어두움의 힘을 막고 퇴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하고 듣는 아주 적은 것에도 사탄은 우리 가운데 찿아와 참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고, 참 소리를 말하지 못하게 하여 소통을 단절시키고, 순환과 나눔, 생명의 삶을 방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주기도문이 산위에서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누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요청으로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눅11장에서 제자들이 언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가 하면 예수님이 어떤 곳에서 기도를 마친 직후였습니다. 막 기도를 마치는데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 요청을 합니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합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그 동기는 아마도 예수님이 기도하는 모습에서 "아 나도 예수님 같이 기도해야지!"하는 기도에대한 간절한 열망과 갈증이 그들의 마음 속에서 솟아 오른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들 중에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면 기도하지 않고는 못 견디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였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새벽 해 뜨기 전에, 아직 어두울 때, 밤이 새도록 등 기도 생활에 젖어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공생애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변화산에서, 12제자를 뽑을 때에도, 바닷가에서 5병2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할 때에도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도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면서 그의 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하는 모습이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부활 승천 이후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우리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지켜 볼 수 있엇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서 기도의 거룩함, 기도의 영광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의 내용 속에는 그 처음과 그 끝의 결말 까지도 다 들어있습니다. 요 17장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의 기도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복음서 중에 예수님의 기도가 가장 길게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데도, 고통과 아픔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룬다는 그 영광을 넘치도록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들어가겠지만 그 처음과 그 끝의 내용이 그러니까 그 열매, 그 영광도 함께 포함되어 빛나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의 기도가 우리들에게도 힘차게 드러나야 합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 풀숲에서 일어서시는 주님의 모습의 광휘, 얼굴의 평온,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는력의 충만한 주님의 모습은 제자들로하여금 "주님!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열망을 불러 일으켰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겉으로 보이는 공생애를 받쳐주는 기초였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세우는 기초입니다. 마치 나무가 지상부 위로 뻗어있는 만큼 지하에 그 뿌리가 뻗어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건강하게 뻗어 줄기, 가지, 잎사귀와 꽃, 열매가 맺히기 위해서는 그 만큼 우리의 인생의 나무 밑으로 겉으로 보이지 안는 기도의 뿌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기도로 시작하지 않은 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시작일 수가 없습니다.

또한 기도는 마치 씨앗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씨앗 안에 싹, 가지, 잎, 꽃, 열매가 다 들어있듯이 우리의 기도에도 그 처음과 열매, 그러니까 영광이 그대로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성도들이 기도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신약의 야고보서도 예수님의 친동생이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야고보에게 별명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의 별명은 '낙타무릎'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도 하나님께 무릎꿇고 기도하여 무릎이 낙타무릎처럼 퉁그러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릎을 꿇었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변화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변화산에 올라 기도하실 때에 변화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얼이 빠질 정도로 변화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변화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기도하면 그 기도의 내용과 관련된 어느 곳에서든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변화의 싹이 트기 시작합니다.

콜롬비아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약입니다. 특히 콜롬비아의 칼리라는 도시는 전 세계 마약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약 판매상들은 거대한 부를 소유하여 당시의 정치, 경제, 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훌리어 라는 목사님이 새로 교회의 담임을 맡기위해 부임을 하였습니다. 훌리어 목사님은 그 도시의 마약의 범람을 안타까워하며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95년 처음으로 철야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도한지 48시간이 지나자 우선적으로 늘 일어나던 살인 사건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일 후에는 정부에서 마약을 단속하기 시작하고, 마약거래하는 조직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6만의 기독교인들이 커다란 체육관에 모여 마약퇴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사실을 안 마약조직에서 그 집회를 방해하려고 훌리어 목사님을 살해합니다. 그러자 칼리 시의 모든 목사들이 연합으로 기도하게 되었고, 36개월 동안 기도하여 결국 마약조직은 와해되었고, 더 이상 마약이 거래되지 않는 깨끗한 도시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변화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평화입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가 나에게 찿아오기 시작합니다. 아직 상황이 바뀌지 않고, 장벽이 그대로 있고, 조건이 여전히 열악할 지라도 먼저 참 평화가 찿아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를 통해 눈에 보이는 일들을 해결하고 응답 받을 수 있지만 무엇 보다 소중한 것은 내 존재 근원에서부터 오는 평화, 기쁨, 감사, 변화의 일들을 맛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 귀한 은혜를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새벽 기도 때에 성경을 두 장을 읽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시편과 에스겔서를 읽는데, 시편은 여러 가지 내용의 시를 담고 있습니다. 찬양, 감사, 지혜, 대관식, 제사, 탄원 . . . 그런데 시편의 저자를 보통 다윗으로 인정을 하는데, 다윗은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우선은 목자였고, 전쟁의 영웅, 장수였고, 지혜자였고, 시인이며, 음악가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윗에대해 이야기 할 때 빼먹지 말아야 할 것은 다윗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서에 기록된 다윗의 인생 여정을 보면 기도의 여정이엇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뉘고 남 쪽 유다에 르호보암 다음, 아비야 다음으로 6번째로 아사가 왕이됩니다. 아사는 할아버지 르호보암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며 우상과 산당을 부수는 종교개혁을 일으킨 왕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아사왕이 그렇게 끝까지 그 신앙을 유지했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역사로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사가 그렇게 하나미의 뜻에 맞게 나라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잘 다스리는 중에 이디오피아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옵니다. 이 때 아사왕이 먼저 취한 행동은 바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아사왕은 대하14:11에서
“주님, 주께서 돕고자 하실 때에는, 숫자가 많고 적음이나 힘이 세고 약함을 문제삼지 않
으십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고, 주의 이름으로 이 무리를 물리치러 왔으니, 주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주님,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이 주님을 이
기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이렇게 아사왕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디오피아를 크게 물리쳤고,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36년 동안 전쟁이 없는 평화를 주십니다.

그런데 36년이 지나면서 북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고 누구도 유다의 아사 오아에게 왕래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자 아사 왕은 시리아의 왕 벤하닷과 동맹을 맺고 시리아에게 구원을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 댓가로 금과 은을 보냅니다. 36년 전 100만 대군이 쳐들어 왔을 때에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는데, 36년이 지나며 너무 평안했던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대하16:7-10을 보면
"그 무렵 하나니 선견자가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시리아 왕 을
의지하시고, 주 임금님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으므로,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는 임
금님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에티오피아 군과 리비아 군이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
니까? 병거도 군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았습니까?임금님께서 주를 의지하시니까,
주께서 그들을 임금님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습니까? 주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
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이번 일에, 임금님께서
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다.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아사는
선견자의 이 말에 화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를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그 만큼 화가 밀
어 올랐던 것이다. 그 때에 아사는 백성들 가운데서도 얼마를 학대하였다."
기도를 잃어버린 아사왕의 모습입니다. 외부의 적에게는 절절 매면서, 정작 돌보고 감싸야 할 백성들을 학대합니다. 그의 마지막은 결국 병으로 생애를 마감합니다. 성도들에게 기도는 삶의 바탕입니다. 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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