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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 . .(2009년 8월23일,성령강림절후열두째주일)

하늘기차 | 2009.08.23 15:21 | 조회 2148



산다는 것은...

2009년 8월23일(성령강림절후열두째주일) 요17:3

지난 번에 선한 사마리아인에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입니까?'에대한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 때 그 이야기의 핵심은 자비를 베푸는 것, 아니면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가 아니라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기억이 나십니까? 그러니까 나의 이웃이 아니라,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인지 물으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이야기의 핵심은 눅10: 28 말씀입니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에서처럼 사는 것에대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행하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느냐? 죽느냐? 라고 하는 것에대한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느끼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아니 지금도 살고 있는데, 또 살라고 하니 어쩌라는 말일까요? 지난 주에 교우들과 함께 용산개발참사로 죽음을 당한 유가족들을 조문하였습니다. 그 때 화두는 이 분들이 7개월이 지나도록 왜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가족분들이 말씀하고 있는 가장 분명한 이유는 사인이 규명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시신을 보면 차마 이야기 하지 못할 정도로 손상을 입었는데, 정부 쪽에서는 화상으로 인한 죽음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혀, 거의 화상의 상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폭력으로 무참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평택 쌍용자동차 건만 보아도 진압의 수위가 거의 테러에 대응하는 수준인 것을 T.V를 통해 볼 수 있었듯이 무차별한 잔혹함을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하박국1장에 보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바라보며 '폭력이다'하고 외쳐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이 시대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현장을 지키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산 아래로 내려오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인기가 올라가는 때여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찿아오곤 하던 때였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마8:21-22)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게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자 예수님은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 게 두어라."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장례를 치를 수 있나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죽은 사람은 누구이고 산 사람은 누구 일까요?

저는 지금껏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현장을 지키고 있는 분들이 바로 살아있는 사람들이라 하였습니다. 실제 시신은 순천향 병원에 있는데 유가족들도 접근을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사실 유가족들이 순천향 병원에 있어야 하지요, 그런데 이 분들이 시신이 있는 순천향 병원에 있지 않고 지금 이렇게 용산참사 현장의 분향소를 지키는 것은 그야말로 산자로서 시신은 죽은자들에게 맡기고 진실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매일 미사를 드리며 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신부님들도 바로 산자로 살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생명 가치에 바탕을 두는 삶을 의미합니다. 평화, 정의, 사랑, 나눔, 용서, 화해, 관용, 감사, 기쁨, 희망...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그물을 버려두고 오라든지, 장례는 죽은 사람에게 치르게 하라든지, 영생에대해 묻는 어느 부자 청년에게는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 가치는 결코 자기 혼자의 가치 일 수 없습니다. 생명 가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자유롭게 자기 모습 드러내며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을 뿜어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을 이원화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특히 종교가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 전생과 이생, 현세와 내세...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일되어 생명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이며,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이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는 단절된 개인적, 이기적 가치 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6월엔가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말씀을 전하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냐, 어디에 있느냐 라는 관련 없는 질문을 한다고 한 기억이 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렇게 질문하는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나요? 그렇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멸망, 그리고 롯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멸망한다는 것입니다.아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에 당혹함을 금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망하는 이유가 바리새인들 때문이라 했나요? 노아의 때, 롯의 때에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집 짓고, 나무를 심는 등등...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생명 가치에대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가치, 생명 가치에대해서는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동산과 주식과, 아이들 학원과 미용, 핸드폰, 자동차 그리고 수퍼마켓에대한 것에는 집착을 하면서 벌건 대낮에 폭력이 난무하고, 멀쩡한 생명이 살아 숨쉬는 자연,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강줄기를 파괴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그저 여전히 물질가치에만 관심을 기울이며 자신의 일에 만 연연해 한다면 예수님 말씀대로 파국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 나라에대해서는 무관심한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에 하고 하나님 나라에대해 관심도 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시대의 위기 속에서 여전히 답답해 하면서도 개인의 기득권과 욕심과 이기심에 연연해 있다면 이 나라는 파국을 맞이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4:17에서 '하나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바로 생명의 가치요, 구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산다는 것은 영원히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것이 양적인 의미로 넘어가천년, 만년 산다는 개념으로 넘어가면 곤란해 집니다. 그것은 이원론적이 될 것이며, 추상적이며, 또 종교적인 이해타산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며, 기득권이 헤엄치며 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17:3에서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 가치는 둘로 나뉠 수 없는 하나의 가치입니다. 그렇지만 먼저 지금 내가 호흡하며 숨 쉬며 살아가는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는 우선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태어나라'하니 율법사요, 스승이요, 공의회 위원인 니고데모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럼 어머니 뱃 속에 다시 들어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 것은 바람과 같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 하면서 땅에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듣지 않거든 어찌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며 일 갈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뉘어 질 수 없지만 우선 이 땅에서 생명의 일, 생명 가치,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일본의 교육가인 오세이 선생님 다큐에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오세이교장은 말기암 환자로 위암으로 위를 절제하였고, 늘 링겔주사를 맞아야하고 주말에는 꼼짝말고 쉬어야하는 3개월시한부 선고를 받아 길면 6개월정도 살 수 밖에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분이 암 말기에 교실에 들어가 링겔을 맞아가면서, 그러니까 그 링겔 병을 손수 들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생에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오세이 선생님은 스스로 죽어야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린 초등학생에게 드러내며, 그러나 두려워 하거나, 아니면 태연해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우리 인간에게는 반드시 올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을 동화 '오소리의 이별 선물'을 통해 자연 스럽게 가르칩니다. 오소리는 죽었지만 여우에게는 넥타이를 직접 매주면서 넥타이 매는 법을, 두더쥐에게는 가위질 하는 법을, 그리고 개구리에겐 스케이트 타는 법을 가르켜 주었습니다. 이들은 오소리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빵굽는 향기에서, 멋진 넥타이에서 오소리를 느낍니다.

오세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오소리는 죽었지만 함께했던 다른 동물들과 연결되어 친구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냐구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한 어린이가 연결된 것이 아니라 추억이라고 이야기 하니까, 그래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하면서 그러면 옆의 친구와 오소리와 그 친구들에대해 이야기 해 보라 합니다. 이렇게 오소리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생명에대한해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마음속에 살아있는 삶, 끝이 없는 삶, 영원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의 인생이 가족과 친구들 속에 영원히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오세이 선생은 매일 자신이 약해지는것을 느끼면서 아이들에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약해져가는 자신의 몸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몰려오는 공포감까지 그대로 자연스럽게 . 사실 이런 노력들이 두려움이면에 있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위한 노력이며, 진실한 자신의 모습임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학이 시작되었는데, 아이들에게 방학이 끝나고 내년 1월 달 개학 때 다시 보자고 하였는데, 끝내 오세이 선생은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는 이 틀 후에 세상을 달리합니다. 그는 그의 삶 속에서 영원하 삶을 살았습니다. 영생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살아있는 동안 생명을 귀하게 여기며 글자그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삶의 영향이 함께했던 사람들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먹고 마시는 일에 붙들려 산 사람들은 늘 그렇게 육신의 일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생명 가치에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 나누고 베푸느 삶을 산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산 것입니다.

산다는 것이 무언인가요? 평생을 물질가치에 연연하며 살다가, 예수 믿고 죽어 십자가, 부활, 천당에 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성서는 그런 구원에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과 염소를 마지막 날에 분명히 가른다고 하였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뿐만아니라, 지난번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그 정에도 김수환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신 같은 날에 김찬국 전 연세대 교수님께서도 같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국장 장례에 묻혔지만 한국 교회, 신학에 한 획을 그으신 분이십니다.

하여간 고 김대중 대통령에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분의 삶은 바로 생명 가치,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위해 평생을 살으신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분은 살아있지만 모는 것과 벽을 쌓고, 단절하고 소통을 끊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죽어서도 북의 특사를 불러들여 끊어진 대화를 다시 잇게하는 분의 죽음도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이 죽음이 아니고, 산 것이 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분의 어록 중에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분의 말 중에

"저는 지난 40년간을 저 나름대로의 꿈을 이루고자 살았습니다.
제 꿈은 자유가 들꽃같이 만발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통일의 희망이 무지개처럼 솟아오르는
그런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또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 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등의 말들이 떠오릅니다.

이제 하늘이 높은 가을입니다. 교회당 옆 밤나무가 이제 본격적으로 밤을 떨어뜨리기 시작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것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의 살아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김철수 판화가의 그림에서 그가 땅콩 농사를 짓는데, 땅콩이 잘 익으면 땅에 떨어지는데, 덜 익은 것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인 것이지요, 그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사니까요, 그렇게 자연은 어느 순간 무르익으면 자기를 턱 하고 내 놓습니다. 그래야 소통하고, 순환하며, 나눕니다. 그것이 생명가치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마도 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한 내어놓는 삶을 살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사형을 선고받는 재판정에 두 번이나 섰고, 현해탄에서 죽음 직전 까지 갔던 그런 분이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사도 바울은 고후5:17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 니다. 보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오고 가는 세대 속에 물질가치가 아닌 생명가치, 즉 순환, 소통, 나눔을 통해 참 평화, 참 사랑, 참 기쁨을 맛 보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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