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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하여 주십시오!(2009년 8월 9일, 성령강림절후열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8.09 15:24 | 조회 1864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2009년 8월 9일(성령강림절후열번째주일) 합3:2;17-19

개인적으로 최근 지금의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삶에대한 느낌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첫 째는 무력감과 분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좋고도 선한 아름다운 삶의 가치들은 다 없어지고 오직 한 가지 물질 가치에 목 메는 사회 속에서의 삶에서 올 수 밖에 없는 무력감과 자괴감입니다. 둘 째는 그에따르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개인화하고, 이기적이되어갑니다. 오직 나 혼자만이라는 그러한 자괴감이 생깁니다. 이러한 세속적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요?

지난 수요일 동안 하박국서를 읽었는데, 당시에도 이스라엘 나라는 불법과 편법, 부정과 부당함이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께 분노를 터트립니다. '폭력이다!'하고 외쳐도 아마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횡행하는 불의를 그대로 놓아두시는 거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다름이아니라 죄 많은 타락한 우상숭배의 나라인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하박국은 이내 못 마땅해 합니다. 그래서 다시 어찌 하필 바벨론인지? 이스라엘의 의로운 자들도 고기가 그물에 걸리듯이 모두 함께 멸망을 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은 결국 이렇게 영원히 망하고 마는 것인지? 에대해 질문하며 자기는 망대에 올라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조목 조목 응답하시는 내용이 하박국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은 그 말씀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는 3:2에서
"주님, 내가 주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의 일을 우
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
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여기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하시기를 바라는데, 그리고는 17-19에서 그 멋진 신앙을 고백합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
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구 치닫게 하신다"

지난 목요일 한겨레 신문에서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 김규항씨가 "혹시 오늘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직업이 많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는데, 통계 자료를 보니 대한민국 사람들이 10,000개의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직업 중에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직업은 20개 밖에 안된다는 것이고, 지금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모든 부모들이 그 20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을 다구치고 있고, 모든 교육의 틀이 그렇게 짜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20개의 직업이 무엇일까요? 전문직업인, 고급 공무원, 대기업의 직원, 언론인, 예술인? 교수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는 9급 공무원도 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등등, 그런데 문제는 그 20개의 직업에 모두가 ALL in 하고 있지만, 오직 극 소수만이 그 20개의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렇다면 수 많 수 백만의 아이들이 들러리로 중고 6년 과정을, 그 황금빛 같은 시절을 주변부에서 서성이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20개의 국한된 직업을 얻기 위해 자기 적성과 상관 없이 사교육에, 밤샘공부에, 조기교육에 목을 멥니다. 이유는 한 가지 기득권을 얻어 경제적인 부를 누리며 편하게 산다는 것 한 가지 아니겠습니까? 오직 경제가치 만이 유일한 행복가치라는 전제만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행복해 질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적 현실 속에 사람들은 나름대로 각기 대안을 찿아 살아갈 것입니다. 제도개혁 안에서 묵묵히, 아니면 우리 이웃과 같은 꿈 어린이 학교, 대안학교들... 아니면 우리 윤채 아빠가 수고하고 있는 디딤돌 학교 같은, 아니면 홈 스쿨... 아니면 그냥 부모와 함께 계획을 세워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속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물질 가치, 실용 가치, 무한 경쟁 속에서 결국 소용 가치가 있는 사람들 만이 물질 가치의 공허한 만족감을 추구하며 불나비 같이 스러져 가거나, 많은 사람들이 박탈감과 소외감과 좌절 속에 무력감과 분노와 적개심으로 가슴 쓸어 안을 것입니다.

얼마전에 이상권님이 '우리동네 올챙이 연못' 이라는 제목의 동화를 쓰셨습니다. 이야기에 깡폭이라는 아이가 나오는데 길거리의 깡통을 발길질 하는 아이입니다. 무언가 내면에 분노가 있는 것이지요. 아이의 부모가 이혼하여 아빠가 새 장가를 들었는데, 그 새 엄마가 자기 여동생을 구타하고, 아빠는 자기들을 인정하지 않는 그런 아이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상대방의 호의나, 관심을 쉽게 깡통을 내지르듯이 뱉어버리는 아이입니다. 지금 이 사회의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거칠어졌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거친 폭력에 노출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폭력에 익숙해 지고, 그래서 이 깡폭 아이처럼 피해입은 자로서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거칩니다. 사회적 박탈과 소외와 무기력에 분노하고 적개심에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올챙이이야기 속에 나오는 소 시민들이 위로받고, 회복되는 것은 어떤 큰 힘이 아니라 미나리 꽝에서 물이 없어 죽어가는 올챙이 새끼들입니다. 그 올챙이들을 살리기위해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이 그 아래에 새 웅덩이를 파고, 그래서 그렇게 소리 소리지르며 미나리를 뭉겔까봐 미나리 꽝에 아이들이 접근하는 것 조차 막던 미나리깡 주인 할머니도 함께 도와 또 다른 멋진 미나리 꽝을 만들어 그 속에 올챙이들을 옮기며 서로에게 신뢰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참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놀랍게도, 아니 당연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분노와 박탈감과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연약함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함입니다. 가난함입니다. 그게 뭐야 늘 하던 이야기 잔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모습을 찿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연약한 올챙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롬5:6-8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때를 맞추어서, 경건하지 못
한 사람을 위하여 이미 죽으셨습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감히 죽을 사
람은 드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
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연약한 사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분노와 박탈감과 무기력함 때문에 외로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없애고 무시하려고 계속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고, 새로운 활동이나 일에 몰입합니다. 사람은 외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하고, 그래서 무엇인가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해 보기도 해야하는데, 문제는 그 외로움, 고립감 자체를 느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보아도 이 전에는 교회가 밤이 되면 칠흙 같이 어두웠습니다. 어두움의 두려움, 그리고 어두움 속에 홀로 남게된 혼자있는 것에대한 두려움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도시는 사람들에게서 외로움, 고립감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어디를 가도 24시간 대낮같이 밝은 곳에서 어떤 외로움 고립감을 느끼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더욱이 핸드폰이나, 인터넷, 노래방, 게임방, 비디오 방, 유선 T.V체널, 24시간 운영되는 마켓, 음식점 등은 사람들을 멈추지 않게 합니다. 그 외로움을 모르게합니다. 요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학원, 학교 그 사이 사이에 핸드폰, 그리고 인터넷, 그리고 T.V 연예 프로그램, 거기에 더하여 스포츠, 레저 이 것이 아이들의 삶의 전부입니다. T.V를 없앤 가정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 볼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근원적인 외로움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는 근원적인 소외에서부터, 다름 사람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박탈과 분노의 소외됨, 또 자기 자신의 정체성,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즉 가정, 직장, 교회, 친구들 속에서도 이 소외감은 언제나 따라다니기 마련인 것입니다. 사람들을 이 자연스러운 소외, 고립을 회피하거나 벗어나려고 새로운 자극, 새로운 활동을 쫓기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내면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서 그 소외, 외로움을 달래보려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까요? 그렇습니다. 홀로 설 줄 알아야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자리, 어느 관계 속에서도 깊든지, 얕든지 소외감과 외로움, 고립감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깊어져 심각해지기도 하는데, 그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고독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을 공격한 폭력이 무엇인지, 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는지, 왜 지금 자기가 외로운지를 돌아보며 그 외적인 것들의 공격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그러니까 외로워서 이리저리 그 외로움을 체우기 위해 나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홀로되어 자기를 지키는 거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방어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방어를 위해서는 고독, 독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홀로서기는 다름 사람과의 단절이나 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의 표피적인 친분에서 보다 더 내면적인 관계에로 이어질 수 있는 다리역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깊은 사랑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것을 피정이라고도 합니다. 앞으로 한 5년 후에는 고기교회에서 피정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소음과 허구적인 것들에서 물러서서 차단시키고 자기 내면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자기 내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생명의 힘, 평화, 무엇보다 감사, 사랑의 은혜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7:37,38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명절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 일어서서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
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
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 안의 영적 샘을 퍼 올려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의 별명은 우물을 파는 사람입니다. 계속 우물을 파는데 주변의 부족 사람들에게 우물을거듭 빼앗기고 그리고 막혀버립니다. 그래서 판 우물의 이름을 보면 에섹(다툼), 싯나(반대), 르호봇(넒은 곳)입니다. 그런데 창26:32에 보면
"그 날, 이삭의 종들이 와서, 그들이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 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파면 꼭 주변의 적들이 와서 우물을 빼앗거나, 메꾸어어 버렸는데, 이 번에는 그동안 이삭을 방해했던 사람들이 우물을 팠다는 것입니다. 평화. 진정한 평화가 온 것입니다. 함께 같이 우물을 파야 완전 평화입니다. 자기 혼자 파는 우물은 의미가 없음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도 그렇습니다. 어찌하다 모처럼 내 영적 샘을 파면, 원수들이 와서 바로 메꾸거나 빼앗아가 버립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성도들이 생명의 우물을 팔 때 메꾸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참 평화, 기쁨, 사랑, 감사, 감격의 영적 샘이 터지지 못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의 여정 속에 영적 샘이 터지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원수들이 방해를 하고, 빼앗고 합니다. 그럴수록 포기하지말고 꾸준히 독거하여 소외와 외로움에서 하나님 안에서 홀로 서기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래야 나도 살고, 함께하는 사람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샘이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바쁘다는 것입니다. 분노하고, 무력감 속에 외로이 소외될 뿐만아니라, 하루 하루를 바쁘게 보냅니다. 자기를 돌아 볼 시간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바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쁜 와중에도, 아니 바쁘면 바쁠 수록 우리는 홀로 따로 떨어져 나아가 멈출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도 얼마나 바쁘셨는지 모릅니다. 식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셨다고 합니다. 주님에게 맡겨진 하나님 나라의 일은 보통 사람이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의 뜻, 일을 잘 감당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그 외적인 번잡함에서 자기를 따로 떨어뜨려 홀로 계셨습니다. 눅 6:32에도 보면 '밤이 맞도록'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으로 예수님 될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과 홀로 마주하여 스스로를 지켜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홀로서기는 더더욱이나 필요한 때입니다.

하박국 예언자는 폭력의 시대를 살면서 하나님과 독대하여 문답을 합니다. 높은 망대에 올라 하나님의 답을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하박국이 폭력과 부정, 불의 편법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던 것은, 아니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슴이 산 등성이를 타고 오르듯 생명력있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8절에서 처럼
"나는 주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의 힘이시다."라는 주님 안에서 홀로서는 신앙고백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이 이 시대를 새롭게 하리라는 희망으로 하루 하루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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