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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선언(2009년 6월21일, 성령강림후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06.21 15:30 | 조회 1921


하나님 나라 선언

2009년 6월21일(성령강림후세번째주일) 단2:37-45;눅17:20-21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의 포로생활 속에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다니엘서 속에는 신약을 통해 이야기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에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대한 비죤은 엉뚱하게 바벨론 왕에게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해석은 커녕, 그 꿈의 내용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왕이 답답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궁중의 점성가들에게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명령하였습니다. 궁중의 지혜자들은 너무나 황당한 명령에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러자 점성가들은 그러한 일은 일찍이 어느 왕 때에도 없었던 일이라고 하였지만 왕은 오히려 성을 내며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 불똥이 이스라엘에서 끌려 온 청년들에게도 튀었습니다. 다니엘에게도 그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단2:14에 보면 다니엘은 왕의 경호대장 아리옥에게 차분하게 지혜롭게 이야기를 합니다. 임금님이 왜 그리 가혹합니까? 그러자 아리옥이 상황을 전부 설명해 줍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임금을 찿아가 꿈을 해몽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거처로 돌아와 친구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자고 합니다. 바로 그 날 다니엘은 환상 가운데에서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과 해몽을 알게됩니다. 큰 신상에대한 꿈을 꾸는데, 다니엘은 이 것은 세상에 존재할 나라들을 보여주는 것이고, 바로 그 금으로 된 머리의 첫 번째 나라가 바로 바벨론인데, 앞으로 이 바벨론 보다 더 강력한 나라들, 더 큰 나라들이 이 후에 세워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니엘은 이러한 나라들이 지나가면 하늘의 하나님이 친히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사람들에의해 세워지지만 이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며, 세상의 나라는 다음에 오는 나라에게 망하는 흥망성쇄가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나라에 의해서도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흥했다가 점점 약해져 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져 온 세상 가득히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단7장에서는 다니엘이 4 마리의 신화적인 짐승에대한 꿈을 꾸는데, 모두 포악하고 잔인한 짐승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들이 다 사라지고 나서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합니다. 세상을 통치하던 왕들이 포악하고 강력한 왕들이었다면, 지금 나타나는 왕은 인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 같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보면 세상 나라의 왕, 특히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의 왕을 보면 꼭 짐승 같습니다. 그 포악함과 그 거짓과 그 무례함이 하늘 두려운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지도자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거친 왕의 통치가 지나고 인자와 같은 이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인자와 같다고 했겠습니다. 그 분이 오셔서 이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메세지는 이사야서를 통해서도 역시 통일 된 메시야 상으로 나타나는데, 이사야는 이 인자에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종, 마치 연한 순과 같은 분이라고 합니다. 신약은 이 분 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신약은 이 분이 다스리는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대화 내용을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22절에도 보면 ‘단 하루라도 보고 싶을 때가 오겠으나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37절에서도 제자글은 바로 예수님에게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라고 묻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늘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올 것인가에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에대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 뿐만아니라 예수님도 이스라엘을 향하여 선포한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했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대한 선포에 공감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니 세례 요한 스스로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박했다고 하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의심스러워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께 물어 볼 지경이었으니 일반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의 모습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야 대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우리 나라도 그렇고, 새 하늘, 새 땅, 새 시대에대해 이야기 할 때 보면 개벽, 개국 정토...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얼마 전부터 김지하씨 역시 묵시적 종말에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주적 개벽에대한 이야기를 단군의 신화를 끌어들여 이야기 하고, 최근에는 우주의 정신이라 해서 생명의 태동 등,,, 해서 율려에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여간 무엇인가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무언가 신선하고, 새롭고, 충격적인 변화를 원합니다.

구약의 전통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의롭고, 경건한자들 이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경건한 자는 성전 제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당연히 바리새인들, 제사장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고 바라며 활동하는 엣세네, 쿨란 공동체, 또는 옛 다윗의 영화를, 정통성을 꿈꾸는 열심당 같은 공동체가 바로 당시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씨뿌리는 자, 누룩, 겨자씨, 밭에 감추인 보물, 혼인잔치, 달란트 비유, 열처녀 비유, 지혜로운 종, 무화과 나무 비유, 포도원 품꾼의 비유, 어린 아이들, 밀과 가라지,,,등 이스라엘이 생각했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지금 예수님 앞에서, “그래, 그 하나님의 나라가 뭔지 이야기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네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대체 언제 쯤 온다는 것이냐, 말도 안되는 이야기, 뜬구름 잡는 이야기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한 번 이야기 해 봐라! 그래, 우리가 나라 잃고 지금 수 백년을 기다려 왔어도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다고, 그래 그럼 그 나라가 어디 쯤 와 있는지 속시원히 한 번 발해보렴!”하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셨고, 또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 신앙은 성전, 율법, 제사였습니다. 이 종교적인 구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대해 이야기 하면서 산, 들, 바다, 노동, 농사, 가정,,, 삶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이야기 하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희 안에 있다’라는 말씀도 ‘내 안에’ 라고 하여 우리 마음 속에 라구도 볼 수 있고, 너희라고 하였으니 너희들 속에 라고도 할 수 있고, 또는 너희 라고하는 그 때의 사람들 속에 예수님이 계셔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예수님으로부터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그리고 그 모든 해석이 틀린 것 만도 아니지만, 그러나 그 다음에 계속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멸망과 파국에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에대한 말씀이 파국, 멸망과 연결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또 제자들이 37절에서 물어 본 것처럼 ‘어디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매우 급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흐르는 시대적 분위기는 곧 그 나라가 다가올 것이라는 급박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엣세네파 사람들은 사막으로 가서 묵시와 환상 가운데 하늘의 영감을 구했고, 또 열심당원들은 하나님께서 오셔서 이제 곧 로마를 물리칠 때가 왔으니 잘 준비하여 다윗의 왕권을 회복하자는 기대감으로 가득찼고, 세례자 요한 역시도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실지 세례 요한의 세례는 온 이스라엘을 뒤 흔드는, 헤롯이 겁을 낼 정도의 하나님 나라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변화가 올 때가 되었다라는 기대감과 희망 속에 사람들은 들떠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와의 관계도 그렇게 부드럽지 못하여, 로마가 이스라엘을 칠 것이랄지, 아니면 우리가 단결하여 로마와 싸워 로마를 물리치고 자유와 평화를 쟁취할 것이랄지 하는 시대적 긴장감과 긴박감이 고조되던 때였습니다. 그러니 언제, 어디서는 이스라엘의 일상이었습니다. 제자들을 포함한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파국, 멸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황들을 보면서 오늘 지금 주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시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좀 확 바꾸어질 수 없을까, 남북의 힘겨루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교육, 언론 등 사회 전체가 무언가 좀 시원하게 바뀌어지고, 새로워지고, 정의가 승리하는 소망을 바라며 서로 서로에게 안타까움을 이야기합니다. 아마 사람들은 오늘 말씀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나? 언제나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남과 북이 통일이되고, 참 평화와 자유를 맛 볼 수 있을까? 지금 같은 입시지옥에서 벗어나서, 부동산 투기도 사라지고, 가진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나라가 언제 올까? 하고 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노아의 때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눅17:26-30의 말씀입니다.
“노아 시대에 일이 벌어진 것과 같이, 인자의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 가고 하였는데, 마침내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롯 시대에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나무를 심고 집을 짓고 하였는데, 롯이 소돔에서 떠나던 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내려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그러할 것이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올지, 어디에 올지에 대해 궁굼해 하는 사람들에게 멸망과 파국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시대를 답답해 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여전히 판교가 어떻느니 하면서 부동산에 매달리고, 자녀들을 어떻게 하든지 일류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좀 더 나은 학원이 어디에 있고, 좋은 신랑, 신부감 고르기에 만 혈안이 되어있다면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너희 안에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이루어 질 것이다’라고 한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만들어 지는 나라가 아니라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어떤 지도자, 어떤 제도를 통해서도 건설할 수 있는 그러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언제, 어디서를 묻습니다. 아마 무척 답답하고, 갈증이 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만들어 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선물이며 받아들여야 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지난 주 주일 저녁 성경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마가복음2:23-3:6의 안식일 논쟁에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의 율법의 가장 첨예하고, 민감한, 그러니까 가장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오는 법은 안식일법이었습니다. 안식일법의 규례와 조항으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죄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그러한 규례와 조항으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경제적, 사회적 특권을 누리는 때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밭 사이를 걸어가다가 밀 이삭을 따서 먹었습니다. 또한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가 그 곳에서 중풍병환자의 병을 고쳐주셨는데, 그러한 것들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안식일 규례 조항에 저촉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대해 ‘법이요!’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놀라운 선언을 합니다. 막2:27,28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하셨습니다. 당시의 율법 종교의 분위기에서 이러한 선언은 참으로 놀랍기도 하고, 그러나 그동안 안식일 법에 저촉되어 숨통을 조였던 모든 사람을 자유케 하는 해방의 선언이었습니다. 최근 대학교수에게서 시작된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 선언들이 그 나마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적지않게 위로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겸허히 받아들여 그 나라를 온 세상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이 기(氣)에대하여, 아니면, 어떤 기운에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우주의 기운이랄지, 피라미드의 정 꼭지점의 기운이랄지,,,어떤 사람은 사람에게서 좋은 기운이 나오는 사람이 있고, 나쁜 기운이 나오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실제 좋은 기운이 나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나쁜 기운이 나는 사람은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하면서 나쁜 기운이 나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왠 개똥같은 차별화입니까? 사람들이 허하니까 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그러나 교우여러분 그렇게 사이비적인 것들에는 적지 않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부동산과 주식과, 아이들 학원과 미용에대한 것에는 집착을 하면서 왜 하나님 나라에대해서는 무관심한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 어디에 하고 하나님 나라에대해 관심도 없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언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시대의 위기 속에서 여전히 답답해 하면서도 개인의 기득권과 욕심과 이기심에 연연해 있다면 이 나라는 파국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각 계에서 시국 선언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 아니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꿈꾸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갈릴리 호수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날이 어두워 지고 사람들이 자리를 떠날 줄 모를 때에, 계속 함께 하였으므로 식사도 제대로 못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워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난감해 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만한 돈도 없고, 또 있다 하더라도 살만한 가계도 없는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한 제자가 예수님에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옵니다. 이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보잘것 없어 보이는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를 가지고 축사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곳에 모인 장정들 5천명이 배불리 먹고 부스러기가 12 광주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찿아옵니다. 예수님은 이미 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를 통해 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도 없고,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하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충청북도에 있는 저희 교회와 지향하는 바가 같은 쌍샘 교회라는 작은 교회를 다녀 왔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당 앞 십자가 양 옆으로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라는 글귀가 붙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것은 선언입니다. 쌍샘교회는 그렇게 이 시대 속에서 선언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안식일 선언을 한 것 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 이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도 이미 벌써 와 있고 세상 나라 속에서 확장되어 가고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그러니 너무 먹고 마시는 것에 천착하지 말고, 한 걸은 뒤로 물러서서, 좀 그러한 면에 부족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다소 좀 뒤 떨어진다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며,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 아래 머물러 있으면서 이미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맛 보며, 나누며, 고백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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