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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2005년7월31일,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5.08.05 10:05 | 조회 1971
여호와 하나님

2005년7월31일(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출6:2-8
오늘 읽은 말씀은 모세가 호렙산 타지 않는 가시 떨기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난 후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바로에게 갔다가 커다란 벽에 부딪혀 낙심하고,또 이스라엘 백성들한테도 더 큰 어려움을 주었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망을 들은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입니다.여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합니다.내가 바로 아브라함,이삭 야곱의 하나님인데,너희 조상들들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지만,여호와로는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하면서,내가 바로 여호와이며,이제 이집트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내며,그 고역 속에서 너희를 건지며,편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너희로 내 백성 삼고,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 의 바로는 이스라엘의 주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나는 너의 조상 아브라함,이삭,그리고 야곱의 하나님,너희 조상들에게 능력으로 함께 했던 바로 그 하나님인데,이제 너희와 함께 할터인데“너의 주인은 바로가 아니라 나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까마득히 잊어버렸던,그저,아버지나,할아버지로부터 간혹 들어보던 믿거나,말거나 한 이야기로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하여간 바로를 주인으로 섬기던 이스라엘에게‘내가 너의 주인이다.하나님이다.’할 때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능의 하나님,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영생하시는 하나님(창21:33),만군의 하나님(시80:7),거룩하신 하나님(창14:18),자비의 하나님,긍휼의 하나님으로 불리웠는데,히브리어로 엘 샤다이,엘 샴라,엘로힘 등으로 불리우는 신 이름은 그 당시 중동의 여러 신들과 별 차이없이 불리웠던 이름입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으로 찿아오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소위 전능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고 여호와 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오늘 출6장5절 말씀은“이제 나는 이집트 사람이 종으로 부리는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소리를 듣고,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고 하는데,바로“신음 소리를 듣고,내가 세운 언약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여호와로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조상에게 가나안 땅을 주리라는 약속이 없었다면,또 이스라엘의 비참함이 없었다면 하나님은 여호와로 이스라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그럭 저럭 잘 살고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려움이 찿아왔습니다.이집트의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이 점점 불어나자 국가 전복의 위험을 느껴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노동을 시켰습니다.그래도 이스라엘의 숫자가 늘어나자 바로는 유아살해를 명령하였는데,바로 그 와중에 모세가 태어난 것입니다.

출3:17 에 보면“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고 합니다.이 고통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요?이스라엘은 요셉 이 후 이집트에서 사는 동안 성경에 특별히 하나님을 거역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왜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일까요?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번성하는 것은 그냥 뜻 없는 번성이 아닙니다.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하늘의 별 같이,바닷가의 모래알 같이 많아지리라는 언약 말입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보내어 그 곳에서 400년간을 머물게 하십니다.이것은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하고 난 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400년을 이집트에서 살게 하셨을까요?무슨 뜻이 하나님에게 있을까요?고난입니다.아픔입니다.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영문 모를 아픔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400년의 포로생활,고통의 세월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실제 창15: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종이되어 400년동안 괴로움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해방의 과정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아픔은 인류의 아픔입니다.죄에 포로된,그래서 말세에 고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입니다.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출발을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오늘 말씀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듣고서 하나님께서 세운 언약이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거꾸로 말하면 이스라엘에 고난이 없다면 언약도 없다는 이야기입니다.그러면 왜 하필 언약이 꼭 고통과 연결되어야 할까요?

바로 우리의 죄,욕망,게으름,편리해 지려는 욕망,물질의 욕망,명예의 욕망으로 뒤 범벅이 되어,그 돌파구를 성적 쾌락,폭력,말초신경을 만족시키는 쾌락에서 찿는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 까지 나아가는 인류를 향해 준비해 놓으신 것은 고통입니다.아픔입니다.그러니 이스라엘의 아픔은 하나님의 아픔입니다.인류의 고통을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이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 약속을 생각하십니다.성경은 이러한 아픔을 아름답다고 합니다.벧2:20은“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면서 참으면,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라고 합니다.19절에서도“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으면 아름답”다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은 이렇게 아프고 힘들 때 어떻게 하나요?하나님을 찿겠지요?기가막힐 일을 당할 때,고칠 수 없는 질병으로 죽어갈 때,거의 기아직전의 상태에서 굶어 죽어가는 모습들,저는 T.V 화면이나 신문의 사진 영상에서 가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오열하는 모습을 적지않게 봅니다.이럴때 어떻게 할까요?당연히 하나님을 찿겠지요?그런데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찿는지요?

언젠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웃어야 할지,말아야 할지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영국인가 어느 나라의 교회에서 어느 목사님인지 평신도인지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예배인지,집회인지 하여간 그 시간에 사회자가 대뜸 한국식 기도를 하자구 하더랍니다.그러니까 그 자리에 있던 회중들이 모두 주여!주여!주여!3창을 하면서 기도하더랍니다.그래서 꽤 씁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소위 주여 3창은 하나님께 특별한 능력을 달라거나 문제를 특별히 해결해 달라는 기도로 통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7절 앞부분의 말씀을 보면“그래서 너희를 나의 백성으로 삼고,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고 합니다.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출29:45,46절 말씀에 보면“내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머물면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그리고 그들은,바로 내가,그들 가운데 머물려고,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낸 그들의 주 하나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나는 그들의 주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이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주 하나님,즉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은,다시 말해 능력의 하나님,영원한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은,우선적으로 엄밀히 이스라엘 주변의 다른 여러 신들과 차별하는 이름이요,또한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는 하나님,즉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바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맞습니다.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이동의 중심이 어디었습니까?이스라엘의 진이 멈출 때는 하나님의 성막,즉 율법궤가 있는 천막이 모든 지파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가,이동하기 시작하면 이스라엘의 맨 앞에 서는 성막아닙니까?성막의 의미가 무엇입니까?이스라엘은 성막을 보며 무엇을 느꼈습니까?하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험난한 광야 길을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실제 이스라엘의 광야 길의 삶은 어떠했나요?지낼 만 했나요?즐거웠나요?바위에서 샘도 터지고,배고프면 만나와 메추라기도 허락하시고,밤에 추울 때는 불기둥,낮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는 구름 기둥으로 막아주시고,어때요 좋은가요?좋아요?좋긴 뭐가 좋아요?안좋지요!그런데 바위에서 샘이 터지고,불 기둥,구름 기둥,만나와 메추라기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표징이었습니다.이 것이 좋은 것이지요.그런데 이스라엘은 이것이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꼭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기필코 끄집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매다는 한이 있더라도,아니 그 외에 죄된 인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십자가의 길 밖에 없으니 기필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함께 아퍼하고,슬퍼하고,힘들어 하시겠다는 것입니다.광야 40년을 이스라엘과 함께 가겠다는 것입니다.이 은혜를 모르고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마음이 획 돌아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능력의 신,재력의 신,출산의 신,바알의 힘을 믿기로 하지 않았습니까?그래서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겠다고 하여,모세가 간곡히 함께하기를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모세는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를 불을 보듯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가지않겠다고 한 것입니다.출33:16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게시므로 저 자신과 주님의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백성과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 얼마나 멋진 질문입니까?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질문 한마디에 그냥 K.O당했습니다.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나요?출33:17절에 보면“네가 요청한 이 모든 것을 다 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하나님이십니까?능력의 하나님이십니까?문제를 척척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십니까?

지난 주 저녁 예배 때 시편 75편 1절에서 우리는“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대해 보았습니다.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바로 기도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 모세가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마지막 유언을 하면서 신4:7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주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 분이십니다.이와 같은 하나님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합니다.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구요?우리가 기도할 때 마다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베풀어서 우리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지금 이 아픔,이 고통,이 슬픔,이 무력감 속에 찿아오셔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온 인류가 만들어낸 온 갖 쓰레기 속에 함께 파묻혀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의 시간 까지,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때 까지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며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위대한 것은 바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모든 기득권을 버리고,내 것이다라고 부를 성 십은 모든 것을 버리고,생명까지도 내어놓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어 버림받으셨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위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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