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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 아래(2005년7월17일,성령강림절후아홉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5.07.18 17:19 | 조회 2712
무화과 나무 아래

2005년7월170일(성령강림절후아홉번째일) 요1:43-51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이 공관 복음에서는 바돌로매로 나옵니다.그런데 나다나엘은 베드로,안드레,그리고 빌립과 같은 동네에서 자랐습니다.예수님은 이미 나다나엘이 빌립과 함께 예수님을 찿아왔을 때 그를 이미 무화과나무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친숙한 나무입니다.그 열매를 먹을 수도 있고,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그늘막이 되기도 하고,또한 이스라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나다나엘은 바로 그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우리 동네 벌장투리에 큰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이 나무를 볼 때 마다 마음이 푸근하고 편해집니다.이 느티나무는 우리 동네의 소중한 자리입니다.낮잠도 자고,이야기도 나누고,잔치도 벌이고,장기도 한 판 두고,전에는 그네도 탔는데,나무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그네를 치워버렸습니다.이렇게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터입니다.아마 이스라엘에서도 무화과 나무가 이런 느티나무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그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이스라엘 사람들은 무화과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묵상을 했다고 합니다.나다나엘도 아마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 중이었을 것입니다.예수님은 그러한 나다나엘을 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무화과 나무 한 그루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녹음이 푸르러 가는 한 여름입니다.나무 그늘을 찿는 때이며, 쉬는 철입니다.이 때에 꼭 나무 그늘이 아닐 지라도 각자 자기의 삶의 자리에서 주님과 깊은 만남을 이룰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삭게오는 뽕나무에 올라 예수님을 만났습니다.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향하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베드로는 그물을 씻는 자리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비닐 하우스 안에서,밭이나 논 두렁에서,차 안에서,아니면 교회 마당이나,예배당 안에서,밤나무 아래에서 어느 일터에서든지 예수님과 조용하고도 차분한 만남이 있어야 합니다.나다나엘은 빌립이 오기 전에 이미 예수님과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본인은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벌써 알고 계십니다.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보고“저 사람이야 말로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그에게는 거짓이 없다”라고 칭찬했습니다.보기드문 칭찬입니다.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선한 성품을 키워나갔습니다.이 아름다운 모습을 예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짓이 많은 세상입니다.거짓이 팽배하며,폭력적이며,이기적인 욕망으로 넘쳐납니다.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고 하는데 나쁜 것,좋지않은 것이 좋은 것,그리고 선한 것을 몰아내고 주인 행세를 합니다.곰팽이가 필려면 습도,온도가 잘 맞아야 합니다.그와 마찬가지로 거짓,폭력이 팽배한 것은 그만큼 그 사회의 가치 기준이 이기적이며,개인적인 거짓된 물질적 욕망으로 가득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이렇게 물질만능의 시대,무한경쟁의 시대에 신실하게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예를들어 음료수 광고만해도 그렇습니다.꼭 먹어야 갈증이 플린다고 하지만,꼭 타고 다녀야 귀족이라고 하지만,이것은 전부 허위요,가짜입니다.왜냐하면 이 광고 뒤에는 그렇게 부추기는 거대한 자본이 있기 때문입니다.이 거대한 자본은 세계를 상대로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해냅니다.이 엄청난 양의 물건을 팔기위해서는 소비자 주머니를 열어야 합니다.그러니 참 기가 막히게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언젠가 루비똥 의류 회사에서 전쟁을 소제로 상품광고를 하여 물으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올 여름만해도 더울 것이다는 예측으로 여름 상품을 엄청 준비했다가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 거대 다국적 매이저 자본이 생명 공학과 합하여 우리의 식탁,나아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습니다.유전자 조작이 그것입니다.창조이래 수천만년 내려온 생명의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그 씨를 멸하는 일을 서슴치 않습니다.우리나라 황교수의 배아 복제의 이 엄청난 생명에대한 폭력도 다음 시대의 생명 공학 사업으로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대하여 돈벌이를 선점할 수 있다는 거짓 논리로 묵인하고 있습니다.어떤 끔찍한 재앙이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거짓된 물질만능의 시대 속에 우리는 무화과 나무 아래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거짓됨과,폭력과 헛된 것들을 벗어버리고,참된 것으로 덧 입읍시다.내가 그 경제적 불이익을 감당하며 무화과 나무 아래 거짓이 없는 모습으로 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러나 주님은 거짓이 없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시며,찿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창세 때에 세상 풍조 속에서 노아를 만나고 기뻐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교회를 보고,성도를 보고 기뻐하면 좋겠습니다.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탈무드에“무화과 나무 아래는 공부하기 좋은 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늘 성경을 보고 묵상하였을 것입니다.시편1편2절은‘오직 여호와를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묵상하는 자’라고 합니다.

수 많은 정보가 홍수같이 쏟아지는 때입니다.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무었이 삶에있어 중요한지,어떤 것이 먼저해야 할 일인지,어떤 것이 마땅히 해야할 좋은 일인지,이럴 때에 우리는 성서를 보아야 합니다.영어로 성서를 Canon이라고 합니다.“자”,기준이라는 뜻입니다.세상의 혼탁한 흐름에 때 묻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게 하는 길은 말씀 밖에 없습니다.중세 종교의 암흙기를 깨치고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성서로 돌아가자!”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말씀으로 깨끗해질 것을 권면합니다.깨끗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모든 열매 맺는 식물들은 가지를 쳐서 솎아주어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저속한,속물적인,그리고 거짓되고,폭력적인 세속의 풍조에 익숙해져버린 영혼을 깨끗게 하는 길은 말씀입니다.그래서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말씀을 읽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어느 분이 귀한 책 3백권을 기증했습니다.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이어서 책 한 권,한 권 아이들과 부모들과 함께 읽은 손 때가 묻은 책들입니다.그 중에 홍명보의 전기가 있는데,워낙 축구를 좋아해서 보니까,중학교 축구부 시절에 코치님이 늘 입에 기본기,기본기 했다고 합니다.아주 단순하죠,초등학생들이 배우는 뽈 차기,왼 발,오른 발,길 게 짧게,어떤 때는 자기를 불러서 1시간 이상을 그렇게 했는데 정말 지겨웠다고 합니다.그런데 시간이 흐를 수록,국제 대회와 같은 큰 대회에 나가면 나갈 수록 기본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겠드라고 합니다.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저는 늘 성도들에게 말씀,말씀합니다.어휴 또 말씀이네,그러실지 모르겠습니다.그러나 말씀입니다.그것이 우리 영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복있는 사람은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합니다.그러면서 6절에 보면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한다.”고 합니다.무화과 나무 아래 이쓴 나다나엘을 주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아무리 바쁘고,그리고 아무리 오늘 시대의 풍조가 교회와 성서를 업신여기더라도 우리는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그 말씀의 감동대로 살아가야 합니다.그래야 나의 영이 깨끗하여 인정을 받습니다.

과연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나다나엘의 시대는 그 사회의 혼탁함이 극에 달한 시대였습니다.서민들의 생활고는 이루 말 할 수 없던 시대입니다.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억압,종교적으로는 성전,제사,율법의 벽에 막혀 어둡고,암울한 시대였습니다.이 때에 남은 유일한 신앙이 있다면 메시야 대망의 신앙이었습니다.메시야가 오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다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실 같은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왔을 때에도“네가 누구냐?메시야냐?”하고 물으면서“네가 메시야도 아니요,선지자도 아니요,엘리야도 아니면서 왜 세례를 주느냐?”할 때,“메시야도 아니면서”라고 합니다.또한 요한의 제자였다가 요한의 권유에따라 예수의 제자가 된 안드레는 형 시몬에게 가서 예수에대해 말할 때“메시야를 만났다”고 합니다.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예수에대해 말 할 때에도“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또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습니다.”라고 합니다.수가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여자도 마을에 가서“와 보라!그리스도가 아니냐?!”합니다.그 시대의 유일한 신앙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신앙이었습니다.

나다나엘도 아마 메시야를 기다리며 무화과 나무 아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빌립의 이야기를 듣고는“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하면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그러나 나다나엘은 결국 그가 간절히 바랐던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얼마나 귀한 신앙이요,얼마나 값진 신앙의 결실입니까!‘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이 있습니다.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모여 연극을 전개하는데 기다림이 끝이 없습니다.한바탕 웃다가 허무,공허 속에 고도의 정체가 무엇인지,그리고 고도는 끝내 오지 않고 막을 내립니다.

그런데 나다나엘도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있다가 허무하게 스러져 버렸을 것입니다.그러나 나다나엘은 자기의 갈급함을 아시고,자기를 참 이스라엘이라 인정하신 주님을 보고“선생님,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합니다.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의 이 신앙을 받으시고“이 보다 더 큰 일을 볼 것이며,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합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하늘에 문이 있는 것도 아니고,이 것은 마음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다는 것입니다.마음이 하나님과 일치하는 체험,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은 평화가 예수님에게 찿아왔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예수님이 세례받는 모습을 보며 내 사랑하는 자요,내 기뻐하는 자라 하였습니다.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거짓과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이 무화과 나무의 만남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허하겠습니까?세속의 흐름에 스스로 진실되게 서는 것,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어야하지 않겠습니까?이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가는 거짓된 욕망의 흐름 속에서 무화과 나무 아래의 묵상,메시야 희망이야 말로 우리 모두를 살리는 귀한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이 값진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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