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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랑으로 평화(2005년7월 3일,성령강림절후일곱째주일)

하늘기차 | 2005.07.04 09:21 | 조회 2251
예수 사랑으로 평화

2005년7월 3일(성령강림절후 일곱째주일) 갈6:14-16/눅10:1-6

예수님께서 한창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던 중에 제자들을 둘 씩,둘 씩 짝을 지어서 가시고자 하는 마을에 먼저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그 때 제자들을 보내시면서“추수할 것이 많다.”고 하셨습니다.이것은 영적 알곡이 무르 익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즉 생명추수를 뜻하는 것입니다.예수님은 한 생명 하나 하나를 종종 알곡으로 표현하곤 하셨습니다.추수할 생명 알곡이 무르익었다는 것은 또한 때가 이르렀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천국 창고에 생명 알곡을 거두어 들일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바로 어느 때냐 하면 딤후3:1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이 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합니다.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괴로워하며,아파하고,탄식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이 고통하고,괴로워하는 것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딤후3:2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돈을 사랑하며,마음에 자긍하며,교만하며,훼방하며...’라고 합니다.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이렇게 괴로워하며,고통스러워하며,탄식하는 이유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괴로워하고,고통스러워하는 본질은 타인이 나를 괴롭히고,타인이 나를 핍박하고,타인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서 온다는 것입니다.종종 상품 광고를 보면,자기만의 개성이라 하면서 단 1초라도 다른 사람과 똑 같을 수 없다 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광고를 본 기억이 납니다.이렇게 자기사랑을 조장하고,포장하고,그렇게 해야 참 행복한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어 하겠는데요,그게 아니라 자기 사랑이 딤후3:2 이하에서 보는 것처럼 이기적으로,욕망으로,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쪽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 말입니다.나뿐만 아니라 타자를 존귀하게 여기는 그러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는 사랑은 자기 사랑이 아닙니다.어떤 사랑인가요?먼저“네 마음을 다하고,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그리고 둘 째“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하셨습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은 이런 사랑입니다.바로 십자가에서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그런데 우리는‘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이 아니고 자기를 사랑합니다.

이 자기 사랑으로 인하여 번민하며,괴로워하고,고통하고,아파하며,탄식합니다.좀처럼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바로 이렇게 자기 사랑이 최고도에 달 한 때가 바로 마지막 때인 것입니다.추수할 때입니다.자기 사랑이 최고에 달하면 감사하지 않습니다.불경하며,또 경건한 척 하는데,그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무정합니다.원한을 풀지 않습니다.절제하지 못합니다.난폭합니다.정말 언어를 비롯하여 그 폭력의 수준은 장난이 아닙니다.배반합니다.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을 못하겠습니까?조급합니다.하나님 보다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고통합니다.이렇게 고통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은 제자들을 둘 씩 짝지어 보냈습니다.자기 사랑으로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까요?눅10:5에 보면“이 집에 평화가 있기를 빕니다!”라고 합니다.마지막 때에 자기 사랑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갈급한 것은 평화입니다.가정에 평화가 없습니다.교회에 평화가 없습니다.이웃간에도 평화가 없습니다.자기를 사랑하니 사람과 사람,사람과 자연,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없습니다.그러니 평화를 빌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교우여러분 아름다운 평화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때입니다.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말씀이 없어서 주린다고 하였습니다.이사야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 주지도 못하는데,그 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들어라,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
을 먹으며,기름진 것으로 너희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사55:2)

좋은 것,몸에 좋은 것,선한 것을 구하고,돈을 지불해야 하는데,그러지 못 합니다.나쁜 것 구하고,그것을 위해 수고하고 돈을 지불합니다.그러니 평안하지가 않습니다.예를들어 우리가 불량식품,즉 나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벌써 부글 부글 합니다.그러나 좋은 먹거리를 먹으면 정말 속이 편합니다.

무엇이 과연 우리에게 좋을까요?자기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자기애착,자기연민,자기 사랑에 빠져 평화없이 늘 혼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갈6:15,16에서“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라고 합니다.

세례를 받았는지,안 받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집사인지,장로인지,교사인지,목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교우여러분,무엇이 중요하다구요?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자기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을 위해 변화되고 창조되는 자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빌어주라고 합니다.그러면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평화가 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벗어나야 하는데,그러니까 벗어버려야 하는데,벗어버리지를 못 합니다.어제 우물가에 무언가 있드라구요,무심코 지나가다가 자세히 보니 껍데기에요,허물 말입니다.뱀이 허물을 벗어버렷어요.제법 길드라구요.뱀은 껍질을 벗지 않으면 살기 어렵습니다.니다.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자기 애착을,자기 연민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괴롭고,고통스러우며,아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서 보여준 십자가 사랑뿐입니다.그외의 사랑은 전부 거짓입니다.이제 자기 사랑에서 십자가 사랑으로 새롭게 변화되고 창조되어야 합니다.그래야 평화입니다.한 젊은 부자 바리새인이 예수님께 찿아왔으나 그는 자기애착에 걸려 근심한며 다시 자기 원래의 길로 갔습니다.그러나 삭케오 같은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 그동안 자신을 지탱해주고,자기를 유지시키던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참 안식,참 평화를 얻었습니다.
루이 에블리라는 사람의 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봉양하는 것일까?그것은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니다.신들에게 음식을 바친 것은 우상숭배자들이었다.기독교의 하나님은 식탁에서 우리에게 봉사하셨고,풍족하게 음식을 베풀어 주신다.그래서 이윽고 우리들도,우리 차례가 되어 우리도 이웃에게 음식을 베풀 수가 있게 된다.”

그렇습니다.우리는 무언가 하나님께 봉양하려 합니다.사실은 자기 사랑에서 오는 자기만족입니다.하나님은 우상이 아닙니다.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이시며,사랑이십니다.사람은 자꾸 자기 방식으로 모든 것을 바라봅니다.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사도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고백했듯이 우리 안에 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그 죄가 자꾸 자기 사랑에 집착하게 합니다.그래서 끝없는 욕망으로 나아가게 합니다.이 자기 집착이 사람을 고통스럽 게하고,아프게 합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발견하고 나서 매우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인류에게 이롭게 하려고 만들었는데,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노벨이 만든 다이나마이트 때문에 인류가 얼마나 많은 고통에 힘들어 하는지 모릅니다.최근 황우석 박사가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생명존중의 기본윤리가 없습니다.U.N을 포함해서 여러나라들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는데,유독 우리나라만 이러한 법률이 없습니다.

첨단과학이라는 것이 발명이 늦으면 무용지물이 됩니다.그동안의 공이 허사가 됩니다.그러니 과학자들이 그 명예를 얻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듭니다.여기에 윤리가 자리할 여지가 희박합니다.최근에 들어보니 사람의 세포의 핵을 떼어내어 여자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거기에 세포에서 떼어낸 핵을 주입시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데,‘난자에서 핵을 떼어내는 것은 살인이다’라는 여론에 밀려 이제는 소나,돼지 같은 가축의 난자에 체세포의 핵을 주입하여 이종배아복제를 하려고 합니다.소의 난자 안에 인간의 핵을 넣어 복제한 배아는 100% 인간이 아니라 소의 유전자가 0.3%의 섞인 인간입니다. 종과 종의 경계가 불명확해지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는 2003년도에 이미 소의 난자에 인간의 핵을 집어넣어 이종배아복제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노벨이 다이나마이트를 만들어 낸 이후 지금까지 이로인해 물론 인류를 위해 공헌한 바도 크지만,이로인한 고통과 아픔,참혹함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하물며 전혀 생명존중의 윤리가 없는 사람들에의해 이러한 복제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면,과연 이로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감당할지 의문입니다.거의 재앙의 수준이 아닐까 조심스럽습니다.인간의 끝없는 자기 사랑,자기 집착이 우리 모두를 고통과 탄식,괴로움으로 몰아갑니다.

눅10:4에보면 평화의 복음을 전하러 갈 때 어떻게 가라고 합니까?전대도,자루도,신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그럼 무엇을 가지고 갈까요?17절 말씀에 보니“주님의 이름”이라고 합니다.평화의 일은 무엇을 가진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오히려 평화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오히려 갖고있는 것을 버려야 찿아지지 않나 싶습니다.그런데 우리는 자꾸 무엇을 가지려 하고,누리려 합니다.결국 이러한 것들이 자기 사랑,자기애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요?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다가‘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문 곁에을 지나갈 때 였습니다.거기에 늘 앉아있던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을 하였습니다.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우리를 보시오”했습니다.그러자 이 앉으뱅이 거지가 혹 무엇을 얻을까 해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그 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하고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벌떡 일어나서 걸었습니다.걷기도 하며,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교우여러분 베드로 사도가 그렇게 말했습니다.“내게 은과 금이 없다”고 합니다.그런데 한 가지 있습니다.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오늘 이시대가 은과 금은 있는데 예수는 실종된 것 같습니다.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데 예수 이름으로 족합니다.예수의 이름은 가지거나,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는 자기 사랑으로인한 고통과 아픔으로 평화없이 살아가는 시대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 같이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합니다.교우여러분 이제는 자기 사랑이 아니라,십자가에서 보여준 하나님 사랑과 십자가 사랑을 받고 나누는 여러분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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