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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는 포도나무(2005년6월26일,성령강림절후여섯째주일)

하늘기차 | 2005.06.27 16:17 | 조회 2455
열매 맺는 포도나무

2005년6월26일(성령강림절후여섯째주일) 시17:6-15/요15:1-8

오늘 읽은 요한복음 15장 말씀은 잘 알고 있는 포도나무 비유 말씀입니다.하나님은 농부이고,주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나무는 무궁화입니다.영원무궁하라는 뜻입니다.피고,지고 또 피고,그런데 좀 징그럽고,끔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언제까지 피고 지고,피고 지고 할 것인가?하는 것입니다.피고 지면 되었지,또 피고 지라니 이것 참 욕심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못 다한게 있어서 그 것 이룰 때까지 피고 지고 하겠다는 것인지?내기 게임하다가 지면 한 번 더 하자고 하잖아요,언제까지 하냐하면 이길 때 까지....

하여간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는 바로 포도나무입니다.성경의 곳곳에 포도나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런데 포도나무는 그 줄기를 보면 볼품이 없습니다.포도나무는 건축자재나 가구목재로는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포도나무는 열매를 얻기위해 심습니다.교회 옆에 포도나무가 심겨져 있는데,잘 가꾸지를 못해서 열매가 시원치 않습니다.매 년 포도나무를 볼 때 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포도나무가 어떻게 열매를 맺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것이 4,5절에 나와있습니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 안에 머물러 있겠다.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너희도 내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나는 포도나무요,너희는 가지이다.사람이 내 안에 머물러 있고,내가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있으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우리가 예수님 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이것은 무슨 말이냐하면,최근에 컴퓨터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무수히 많은 동호회 사이트가 있는데,예를 들어 힙합 동호회다 하면 어느 한 장소에서 함께 춤을 연구하고,같이 춤을 추면서 그 힙합을 즐기는 것입니다.힙합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뜻이 하나로 뭉치고,뜻 아래 뫃이는 것입니다.뜻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비군 노래 중에‘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쉽게 말해 나라 지키자는 뜻 안에 뭉쳤다는 것입니다.오늘 말씀도 바로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뜻,예수님의 말씀에 따른 다는 것입니다.오늘 말씀 10절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그렇습니다.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을 말합니다.7절 말씀에도 보면“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나의 말이 네 안에 머물러 있으면...”합니다.그러니까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뜻입니다.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곽이 다 불타고,훼파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그 후 바벨론의 아닥사스다왕이 느헤미야의 안색이 좋지않은 이유를 묻자,모국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예루살렘 재건을 허락받게 됩니다.그 때 느헤미야는 느2:8에서“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잘 보살펴 주셔서 왕이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합니다.또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함께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할 때에도“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움직여 예루살렘에서 일하게 하셨다”고 합니다.또한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나에게 다짐하였고,힘을 내어,기꺼이 그 보람있는 일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그러니까 말하고 싶은 요지는 감동입니다.우리가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듯이‘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이 지켜 행하는 것이 의무나 책임이 아니라 마음의 감동과 기쁨에서부터 온 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예배 설교시 조심스러운 것 중에 하나가‘착한 일 많이 합시다.‘하는 것입니다.‘부모님 말씀 잘 듯고,학교에서 공부 잘하고,친구들하고 싸우지 말고’합니다.그런데 이것은 복음이 아닙니다.윤리입니다.복음은 축제이며 기쁨입니다.의무가 아닙니다.신앙은 좋은 일 많이하는 것,고행,금식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결실하는 것이 아닙니다.오늘 말씀 11절에서도“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합니다.축제입니다.환희입니다. 그러면 성서가 우리에게 말씀하는 열매 맺기는 무엇인가요?사과나무아래 누워 사과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아닙니다.오늘 요한복음 말씀은 내 수고,공과를 통해 얻는 열매가 아닌,신비로운 열매 맺기에대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그것은 예수님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우리는 앵두,복숭아,보리수,포도가 열매를 맺을 때 애쓰지 않고 가지에 잘 붙어 있으므로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 7절 중에“...머물러 있으면 너희가 무엇을 구하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합니다.아!기도에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기도입니다.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필요하고,좋은 열매가 맺히고,생겨난다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성령의 열매,사도요한이 요한1서에서 말씀 하는 사랑의 열매,히브리서를 통해 보는 믿음의 열매들입니다.

산상수훈 가운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그 때 예수님께서 구하라,찿으라,두드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그러면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교우 여러분 우리에게 좋은 것이 무엇일까요?여기서 나의 개인적이고,이기적인 욕구가 나의 좋은 것이될 수 없는 것입니다.기도가 나의 욕구를 체우는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것이 좋은 것 되려면,무엇이 좋은 것일까요?예수님께서 공생애의 전한점이 되는 시점에 헤르몬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그 때 제자 3을 데리고 함께 기도하러 올라 가셨는데,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예수님이 변화되셨습니다.눅9:29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예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데,그 얼굴 모습이 변하고,그 옷이 눈부시게 희어지고 빛이 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좋은 일,좋은 것,좋은열매,사랑의 열매,평화의 열매,기쁨,감사,소망의 이 값으로 살 수 없는 ,이 귀한 은혜는 변화의 열매입니다.기도하는 중에 우리가 이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아까 주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시면서 구하고,찿고,두드리라고 했을때 그러면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이 때 그좋은 것을 누가복음 11장13절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그렇습니다.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열매는 우리의 공과,적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은혜의 열매인데,이 은혜가 말씀 안에 머물며,기도로 구하는 중에,성령이오셔서 우리를 감동시키시며,그래도 안될 때에는 우리의 외적인 것을 다 떨구어 내시기 위해 이모 저모로 우리를 연단시키시고,그래서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하시고,그래서 그 좋은 것을 얻기 위한 변화의 은혜를 주셔서 마땅히 좋은 것의 가치를 귀하게 여길 줄 알게하시고,그래서 그 귀한 은헤를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기쁨으로 감당하며 누리고,나누게 하십니다.

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있을 때 어느 집사님께서 하시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아주 패기있는 젊은 분이셨는데,왜 교인들은 항상 하나님께 달라구만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 부끄럽지도 않나,자존심도 없나’하고 종종 이야기 하던 기억이 납니다.그런데 그것은 정말 그분 말대로 왜그런지 모르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것은 정말 그분이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하나님은 구하는 것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며,변화시키십니다.변화야 말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소중한 것,귀한 것입니다.오늘 읽은 시편17편 말씀은 다윗의 시인데,그 내용을 보면 모두 달라는 것입니다.구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들어 주십시오’,‘귀를 기울여 주십시오’,‘판단하여 주십시오’,‘살펴 보아 주십시오’,‘응답하여 주십시오’,건져주십시오‘,’말을 들어주십시오‘,’지켜주시고,숨겨주시고,나의 생명을 구하여 주십시오...‘주께서 몸소 구하여 주십시요’합니다.기도의 핵심입니다.그러나 천박하지 않습니다.

이 다윗의 기도야 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생명의 간구입니다.17장 15절에 보면 “나는 떳떳하게 주님의 얼굴을 뵙겠습니다.
깨어나서 주님의 모습 비올 때에
주님과 함게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고 기도합니다.
다윗의 기도의 마무리를 보면 언제나 이렇게 부활의 영광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항상 봅니다.예수님도 보면 그렇게 기도하십니다.우리의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신 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생명의 위협,삶의 곤궁함,절망,어두움,모든 것을 잃어버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게 기도하는데 결국 15절에서 보았듯이 “부활의 영광”의 자리에 까지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변화입니다.우리들의 삶이 얽히고 섥혀버려 도저희 풀 수 없는 절망감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며,궁극에 부활의 자리로 나아가게 합니다.에수님의 변화산의 모습이 바로 그 은혜 그 열매입니다.이것은 공과가 아니라 은헤입니다.이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평화,소망 그 어느 것도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땀흘려 노력해서 얻는 것도 아닙니다.명상,고행을 통해서도 아닙니다.인간관계가 원만하다고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생활 이 곳,저 곳에 사랑과 평화,기쁨과 감사 그리고 화해와 소망의 잔치 상이 준비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아니 재료들은 다 준비되어 있습니다.이것은 주께서 여시는 하늘의 축제요,잔치이기 때문입니다.마치 에수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 때처럼 말입니다.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었습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우리 안에 있는 것이 변한 것입니다.변하지 않아 썩을 수 밖에 없는 우리 것이 변화하였습니다.

어느 크리스챤 작가가 있었는데 심한 우울증에 걸려 삶의 의욕을 상실하여 글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삶의 소망도 접고 자살을 시도하려고 하다가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로 있던 친구에게 상담을 요청했다고 합니다.그 때 친구가 네가 어렸을 때 제일하고 싶었고,좋았던 일이 무었이냐고 물어서 해변가에 가서 파도소리를 듣고,조개를 줍는 것이라고 했더니,바로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4가지의 처방을 주었다고 합니다.정해진 시간마다 처방전을 펼쳐보고 시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9시 처방대로 해변을 거닐며,파도 소리,갈매기 소리도 듣고,조개도 줍고 했습니다.
정오 처방을 보니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라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해 보니,정말 인생은 꼭 절망적이고,힘겨운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오후3시 처방을 보니 자신의 인생의 동기와 의미를 검토해 보라는 것이엇습니다.그래서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나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가?”돌아보니 박수 갈채와 명예,그에따르는 사교와 적당한 부,그리고 남에게 인정받는 즐거움이 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입니다.‘나는 크리스찬이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고,헛된 내 이름을 위해서 발버둥쳤구나’그 순간 자신의 추함을 보게 되었고,복바쳐 오르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오후 6시에 4번째 처방을 보았는데,자기의 삶이 순수함에서 벗어났던 것,소위 크리스찬으로서 하나님 앞에 부끄러웠던 일을 해변가에 전부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솟구치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그 모든 것을 전부 기록해 보았는데,잠시 후에 밀물이 몰려오면서 그 사람이 해변가에 써내려간 모든 자신의 것들을 다 지워버렸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감동이 있습니다.영화나,공연을 보고 감동합니다.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감동,어느 한 개인의 성공신화,자연을 극복하고,미개지를 개척하는 쾌거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그렇다면 교회에는 무슨 감동이 있을까요?

십자가의 죄사함의 은헤의 감동,부활의 기쁨의 감동이 있습니다.사죄와 구원의 감격이요,영광으로의 초대인 것입니다.교우여러분 아무쪼록 삶의 척박함 속에서 이 주님 안에 머무는 아름다운 변화의 축제,기쁨을 만끽하며 나누는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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