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하나님 나라 농사 2 (2005년5월29일성령강림절후둘째주일)

하늘기차 | 2005.05.31 12:10 | 조회 1947
하나님 나라 농사 2

2005년5월29일(성령강림절후둘째주일) 민11:31-35;마13:3-9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힘 앞에 스스로 자괴감을 느끼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오늘 신자유주의라는 세계경제체제를 주도하는 국제 금융,무역 기구의 움직임에 따라 국가경제가 좌지우지되는 상황 속에서 무력해지는 우리 소시민의 삶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APT 한 평에 1,000만원 아니 1,500만에서 2,000만원 까지 가는 시대에 우리들의 모습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절망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또한 공교육이 무너진 이 상황에서 모두가 사교육에 목을 매는 이 현실은 우리를 정말 힘들게 합니다.또한 북한 핵을 필두로,일본 군국주의의 재 발현,중국의 영향력 확산,미국의 패권주의 등이 동북아정세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습니다.절망이요 희망이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는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립니다.

예수님의 복음전파가 꽤 활발하게 이루어질 즈음 제자들도 늘어나고,예수를 따르는 사람도 점점 불어났지만,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과의 갈등,복음에대한 제자들의 몰이해,그리고 말씀보다는 떡을 바라보는 일반 백성들의 이기심 앞에서 예수님의 복음전파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세상의 삶의 밭에 주저함 없이 하나님나라의 씨앗을 뿌리십니다.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농사는 가라지 뽑는 농사가 아닙니다.땅의 지력을 키우는 농사가 아닙니다.하나님나라 씨앗 농사입니다.

이렇게 씨앗을 뿌리니 어떻게 되었습니까?100,60,30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얼마나 감동적인 지 모릅니다.그러나 이 비유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 합니다.들어도 듣지 못 하고,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 합니다.이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 마음이 무뎌져 그 귀한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농사가 30,60,100배의 결실을 얻었다고 합니다.그런데 이 비유가 통상 교회성장,부흥의 비유로 해석되는데,그것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은 교세확장,교인 숫자 늘리기를 위한 또 하나의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도구로 전락한 해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이 30,60,100은 단지 양적인 뜻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하나님나라의 선을 숫자로서 절대적으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그렇다면 그 선한 뜻은 무엇일까요?

자연의 식물이 때가 되어 결실을 할 때 보면 30,60,100의 결실을 하는 것을 봅니다.그러니까 이러한 결실은 자연의 질서에 있어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자연의 질서,생명의 온전한 질서입니다.그런데 인간이 이 30,60,100을 풍요로,확장으로,숫자 개념으로만 본다면 이 것은 인간의 한 없는 욕망의 다른 표현일 수 밖에 없습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보아도 알지 못하고,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자리에 늘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로 나갔을 때 일용할 양식으로 만나를 허락하셨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느 순간 만나에 싫증을 느껴 고기를 달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메추라기를 보내주십니다.민11:31이하에 볼 것 같은면 메추라기를 동풍을 불게 하셔서 이스라엘 진영에 하룻 길 되는 지면 위 90Cm 높이로 날게 하셨습니다.그러자 이스라엘은 기쁜 마음으로 메추라기를 거두어 들입니다.성경에 보니 적게 거두어 들인 자가 십 호멜이었다고 합니다.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1 호멜이 200 L 니까 한 가마가 좀 넘는데,10 호멜이면 12 가마가 됩니다.그러니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가장 적게 거두어 들인 자가 12가마 정도 였으니,그 잡은 메추라기를 진영에 말리기 위해 널어났다고 합니다.,민11:33에 보면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셨다고 합니다.먹지도 못 할 메추라기를 끝 없는 욕심을 가지고 거두었는데,적게 거둔 사람이 12가마 씩이라니,그당시 냉동 창고도 없는데 모두 버릴 수 밖에 없었을 텐데,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큰 재앙을 내리셨다고 합니다.많은 이스라엘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은 그 곳 지명을“기브롯 핫다아”,즉“탐욕의 무덤”이라 했습니다.

한글 개역에는 “자기를 위하여”10호멜 이상씩 잡은 메추라기를 사면에 펴 두었다고 합니다.그렇습니다.자기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합니다.자기를 위해서는 하나님도 만들어 냅니다.바로 우상입니다.출20:23에보면 우상 신에 대하여 표현 할 때“너희를 위한”이라 합니다.내 마음에 꼭 맞는 하나님을 원합니다.기도하면 바로 응답하고,만나고 싶으면 바로 나타나시고,어려운 일을 척척 해결해 주는 무한한 힘의 신입니다.이렇게 이스라엘이 스스로 무덤을 판 욕망이,이 시대 속에서도 신 자유주의라는 무한 경쟁의 세계 경제 체제 속에서 겉잡을 수 없는 메카니즘으로,구조로서 자리 매김합니다.전세계가 그 틀을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경제는 물론 문화,사회,교육,예술..그리고 교회에 까지 인간의 모든 삶의 양식 속에 이 욕망의 구조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혹시 이러한 삶의 구조 속에서 스스로 자포자기 하며,염려하며,두려워하며 겁내고 있지는 않은지요?이러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나라의 농사를 지으라 말씀하십니다.롬14:17은“하나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라고 합니다.또 에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특히“겨자씨와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겨자씨는 볼펜으로 살짝 찍을 정도로 자그마합니다.그런데 그 겨자씨가 싹이 나고,뿌리를 내리면 커서 큰 그늘과 쉼터를 만들어 새들이 와서 깃들고,또 나그네들이 그 그늘 밑에서 쉬어 갈 수 있을 정도입니다.그런데 그 큰 겨자 나무의 시작은 극히 작은데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작은 것 인정받지 못하는 것,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참 기쁨,참 사랑,참 의로움,참 평화,참 생명을 보고 배려하며,귀하게 여기며,소망하며 이를 위해 애쓰고 수고하며 기다리는 것,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농사요,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아니고 무었이겠습니까?

한 번은 예수님이 한 유대 부자 청년과 대화하는 중에“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제자들이“어이쿠!”하면서 와!저렇게 완벽하게 율법을 지키는 훌륭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 할 때,예수님께서는“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시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그런데 눅17장 말씀에 보니까 제자들이 또“아이쿠!”합니다.작은 사람하나 실족케 하면,다시말해 다른 사람을 죄 짓게하면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 맷돌을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또 누가 너희에게 죄의 용서를 구하면 일곱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 주라고 합니다.이 말씀에 제자들이 또“아이쿠!”한 것입니다.즉 제자들이 예수님께‘믿음을 더 좀 달라’고 합니다.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이 뽕나무 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엿을 것이라”합니다.또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내려 오셨을 때에 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주셨을 때,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왜 우리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햇습니까?그러자 예수님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거듭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으면 합니다.제자들은 예수님께 질문할 때 스스로 믿음이 있는 줄로 생각합니다.‘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내가 이만큼 애쓰며 예수님 따라다니는 것도 그래도 요만한 믿음이 있어서인데’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믿음을 더 달라고 합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믿음이 잇는 줄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하십니다.그래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 안의 희망을 보고 애쓰며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 믿음농사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눅17장7 이하에 보면 종이 밭에 나갔다 돌아와서 주인과 함께 한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리낙히 주인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여 주인이 식사를 마칠 때 까지 수종을 듭니다.그리고 주인은 종에게 그 후에 먹고 마시라고 합니다.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해서 주인이 종에게 수고했다고 칭찬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오히려 주인이 명령한 것을 다 행한 후에“우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야 말로 하나님 나라 농사군의 씨앗 농사의 마음이요,겨자씨 믿음의 농사법인 것입니다.제자들은 스스로 그래도 조금의 신앙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그래서 제자들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스스로 노력했고,그러나 자기의 힘 만으로는 7번씩 7번 용서하기가 벅찰 뿐 아니라,연자 맷돌을 지고 물속에 빠지라는 말에 걱정을 합니다.앞에서도‘부자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이야기’나‘7번씩 7번 용서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나라의 일입니다.7번씩 7번 용서하는 것도 이것은 무한히 용서하라는 것인데,다시 말해서 무한한 사랑을 뜻하는 것인데(왜냐하면 우리의 욕망과 죄가 무한하니 어찌 무한한 사랑으로 감싸지 않을 수 있겟습니까?)이러한 말씀을 어찌 우리의 능력과 지혜나,노력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이러한 구원,이러한 용서는 하나님께서 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홍해를 만났을 때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두려워하지 마십시오,당신들은 가만히 서서,주님게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한 것과 같습니다.그러니까 하나님나라의 농사는 하나님에대한 전폭적인 신뢰에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그것을 믿는 것입니다.그러니 나는 무익한 종일 수 밖에 없습니다.은혜입니다.

그러면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기다림입니까?그렇지 않습니다.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바로에게 나아가기 까지 광야에서 40년을 기다립니다.그 인고의 세월은 얼마나 곤고했겠습니까?호화로운 궁중생활에 익숙한 사람이 한 순간에 벼랑의 나락으로 떨어졌는데,왠만하면 자포지자기 하며 술과 더불어,자신을 망치는 세월을 보내지 않았겠습니까만은 모세는 40년을 자신을 흐트러 뜨림이 없이 기다렸습니다.결국 때가 되어 야웨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여러 가지 경우의 일들이 생깁니다.가믐,홍수,병충해 등등,,그러한 과정을 인내하며 최선을 다 할 때 ,그 추수할 때가 되면 30,60,100의 결실을 얻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오늘 절망적인 삶의 때에 하나님나라의 농사군으로 불림을 받았으니 겨자씨 믿음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희망,평화,사랑,기쁨의 농사를 한 껏 짓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38/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27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782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142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727 2005.09.02 16:30
235 [일반] 성령의 교회( 2009년10월18일, 성령강림절후스무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35 2009.10.18 17:52
234 [일반] 오직 한 사람(2009년10월11일, 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0 2009.10.12 11:35
233 [일반] 가장 좋은 것(2009년10월 4일, 성령강림절후열여덟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56 2009.10.04 13:09
232 [일반] 말씀을 먹으라(2009년 9월27일, 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05 2009.09.27 15:05
231 [일반] 다윗의 능력(2009년 9월20일,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0 2009.09.20 17:08
230 [일반] 이 가을에 . . . 기도 첨부파일 하늘기차 1801 2009.09.14 15:52
229 [일반] 축복(약속)의 땅(2009년 9월13일, 성령강림절후열다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712 2009.09.13 15:46
228 [일반] 세상 근심을 넘어서(2009년 9월 6일, 성령강림절후열네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72 2009.09.06 15:27
227 [일반] 기도 외에는 ...(2009년 8월30일, 성령강림절후열세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35 2009.08.31 14:11
226 [일반] 산다는 것은 . . .(2009년 8월23일,성령강림절후열두째주일) 첨부파일 [3] 하늘기차 2145 2009.08.23 15:21
225 [일반] 사람아, 일어서라!(2009년 8월16일, 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112 2009.08.18 12:20
224 [일반]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2009년 8월 9일, 성령강림절후열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57 2009.08.09 15:24
223 [일반] 즐거운 섬김( 2009년 8월 2일, 성령강림절후아홉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887 2009.08.02 14:55
222 하나님 앞에서(2009년7월26일, 성령강림절후여덟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44 2009.07.27 10:25
221 [일반] 구속의 기쁨(2009년 7월19일, 성령강림절후일곱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86 2009.07.20 14:42
220 [일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발걸음(2009년 7월12일, 성령강림절후여섯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8 2009.07.12 16:20
219 [일반] 예수님의 마음(2009년 6월28일, 성령강림후네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02 2009.06.29 15:15
218 [일반] 하나님 나라 선언(2009년 6월21일, 성령강림후세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17 2009.06.21 15:30
217 [일반] 하나님 앞서 가시는 생명의 삶 Ⅴ(2009년 6월14일, 성령강림후두번째 첨부파일 하늘기차 2225 2009.06.14 15:53
216 [일반] 하나님 앞서 가시는 생명의 삶 Ⅳ(2009년 6월 7일, 성령강림후첫번째 첨부파일 [1] 하늘기차 2142 2009.06.07 1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