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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농사 (2005년5월22일,성령강림절후 첫째주일)

하늘기차 | 2005.05.25 16:59 | 조회 2166
하나님 나라 농사

2005년5월22일(성령강림절후첫째주일) 사44:6-8;마13:1-9

오늘 본문 사44:6-8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때에 선포된 말씀입니다.내용을 보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치“나 같은 하나님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구 해!”하는 것 같습니다.그러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두려워말라,놀라지말라 하며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고 합니다.그런데 이스라엘백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이 눈으로 보고,귀로 들은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보니 야웨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그 신전,신을 섬기는 광경,조각,그림,기둥으로 만들어 놓은 거대한 극히 아름다운 신의 모습과 바벨론 제국의 풍요로움은 이스라엘이 믿고 따르던 야웨 하나님을 극히 초라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야웨 하나님은 맛도,색도,모양도,느낌도 없어 도저히 느껴지지 않는데,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신전에 가보면 그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니 오늘 본문 말씀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무리 내가 바로 유일한 참 하나님이며,“결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이제 곧 바벨론은 망할 것이고,너희들은 자유하게 될 것이다”라고 할 때‘이스라엘 백성들이 꼼짝이나 했을까?’하는 것입니다.포로로 잡혀와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바벨론의 권력,군사,경제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신에 이르기 까지 그 어느 것에서도 열등감과 왜소함,그리고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교회 예배당 수리를 한 것이 1997년 초 겨울인 것으로 생각이 나는데,왜 기억하냐하면 그 공사가 끝나고 바로 IMF가 터졌기 때문입니다.모든 물가가 올라서 IMF가 오기 전에 공사를 잘 했다고 좋아하던 생각이 납니다.IMF란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라고하는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것은 인간의 삶의 틀이 욕망을 극대화 시키는 방향으로 치달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니까 세계가 단일경제체제로 통합이 되면서 세계 경제가 거대한 국제무역기구나,금융기구에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럴때에 그 거대 금융,무역 기구들의 사고 팔고,주고,받는 움직임에따라 나라도 들썩,들썩하고 결국 죄없는 서민들만 견디기 어렵게 된다는 것입니다.이미 농산물 전면 개방은 기정사실이 되었습니다.쌀,포도,사과,축산 어느 것도 마음편히 농사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대형 할인점이 각 동네 마다 하나씩,아니 메이커 별로 여러개가 들어와 동네 경제를 장악해 버렸습니다.예전에는 동네에 구멍가게에서 왠만한 것들은 구입할 수 잇었는데,거의 사라져 갑니다.전자제품 수리점,세탁소,쌀가계 등등 오손도손,알콩달콩 동네 안에서 나름대로 점포의 사장으로 자기소리 내며,다양한 삶을 꾸려나갔는데,이제 그분들이 대형 할인매점의 점원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양계도 자기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큰 양계업체에 속하여 그 회사의 병아리를 키워 납품하는 단순 납품업자로 전락해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 무력감,자괴감,허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많은 보고 듣고,체험한 것들이 이스라엘을 무력감과 허탈감에 빠지게 했듯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우리를 자괴감에 빠지게 합니다.무엇인가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어 낙심하거나,좌절하게 됩니다.무엇인가 변화와 발전을 이루려고 하지만 아무런 결실이 없습니다.점점 스스로 왜소해져 갑니다.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때에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그리고 가라지의 비유는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그런데 이 비유를 좀 자세히 볼 것 같으면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농사를 짓다간 그나마 남은 것도 다 잃어버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씨를 뿌리러 나간 자가 씨를 뿌리는데,길 가에도 뿌리고,돌짝 밭에도 뿌리고,가시 덤불에도 뿌립니다.어느 농사꾼이 이런 비효율적인 농사를 짓겠습니까?그런데 예수님은 밭에대해 고려하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씨를 뿌립니다.또한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렸는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 뿌리고 갔다는 비유도 그렇습니다.보통 농사는 중간에 피도 뽑고,김을 메야 할텐데 가라지를 그대로 놓아두라고 합니다.가라지가 더 많아질 수도 있는데,주님 농사법은 가라지를 그대로 무성하게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실제 상황은 이렇습니다.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한지 어느 정도 세월이 흘렀습니다.제자들도 많이 생기고,추종자들도 많아졌습니다.인기도 점점 올라갔습니다.그러나 진정 복음에대해서는 어느 하나 좋은 결과를 얻지를 못했습니다.오늘 마태복음 의 11장에보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지만 유대 지방이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12장에 보면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막3:21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친척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를 붙잡으러 오기 까지 합니다.또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조금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비판과 오해,싸움,무관심...무언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하는데,아무런 결과가 없어 안타깝습니다.바로 그런 때에 예수님께서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해 주셧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진정 식사할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일하셨습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으셨습니다.그래도 에수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끊임없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오늘 비유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농사꾼은 아니셨던 것 같습니다.최근 유기농이다,오리 농법,태평농법이다 하면서 여러 가지 농사법이 선을 보이고 있는데,어느 농사꾼이든지 농사의 첫 번째 비결은 땅의 지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우선 밭을 갈아업고,걸음을 듬뿍 줍니다.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욕심이 있다면 그것은 기름진 땅에대한 욕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밭에대한 욕심이 없습니다.그렇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밭을 갈아 엎지 않은지 벌써 400년이 더 되었습니다.보통 농사꾼 같으면 먼저 밭부터 갈아 엎을 터인데,예수님은 그냥 씨를 뿌립니다.그러니 이 농사가 잘 될 턱이 없습니다.온갖 잡초와 덤불로 덮여있는,작물을 심은지 400년이 지난 묶은 마음밭에 예수님은 씨를 뿌립니다.교우여러분 이런 농사군 보았습니까?바로 우리 좋으신 예수님이십니다.

밭에다가 신경을 쓰고,환경과 여건이 좋아지기만을 바랐다면 예수님은 아마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지 못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햇빛과 비와 바람을 불게하시는 분,하나님을 바라며 씨앗을 심습니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환경,조건,상황만 판단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신세 한탄하며,원망하고,시비하고,시기,질투,거기에 욕심까지 내면,결국은 꿈과소망,을 상실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또한 살다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실패,부족함,약점이 눈에 들어옵니다.더군다나 남이 잘 되는 것,나에게 없는 것을 자꾸 보게됩니다.그런 것들은 어떻게 좀 싹 처리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이 가라지를 전부 뽑아버릴까요?”심약한 우리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가라지에 별 관심쓰지 않으십니다.그대로 두라는 것입니다.피농사 짓지말고,벼농사 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로 나아가 40년 광야생활 중에 이집트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두 광야에 묻힌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바로 광야에대한 걱정때문이었습니다.식량,물,맹수,질병,그리고 적들에대한 염려가 결국은 가나안의 꿈을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일반 농사법과 다른 농사를 지었습니다.온통 돌작밭이요,가시덤불이요,전혀 씨가 먹히지 않는 아스팔트길이요,또한 예수님이 심지않은 가라지가 쑥쑥 자라납니다.아마도 온통 전체가 다 가라지밭 이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주님은 아침 일찍 씨앗바구니를 옆에 차고 밭으로 나아가 씨를 뿌립니다.예수님의 농사 방법입니다.일반 농사군의 농사가 아닙니다.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나라의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바벨론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힘 앞에 초라할 수 밖에 없는 소시민들입니다.특별히 무엇 하나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이 없습니다.그런데 그 거대한 제국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그 거대함,화려함에 눈길 하나 돌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바로 다니엘과 3 친구들입니다.다니엘은 바벨론에서 자기들에게 베푸는 호의를 거절합니다.왜냐하면 그런 호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합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율법이 금하는 음식 그리고 술 등을 먹지않겠다고 담당자에게 요청을 합니다.10일 동안 채소만 먹는 자신들과 바벨론이 베푸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어느 쪽이 더 건강한지 판단하여 보라고 합니다.단1:15절에 보니“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얼굴이 왕의진미를 먹는 소년들 보다 더 윤택하고 더욱 아름답다”고 합니다.

단1:5에 보면“다니엘이 뜻을 정하였다”고 합니다.바벨론의 호의가 하나님의 뜻에 합하지 않으므로 그 호의를 거절했다는 것입니다.다니엘은 생명을 걸고 뜻을 정했습니다.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얼마든지 산해진미에 좋은 옷,저택,학문,적당한 명예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다니엘은 제국의 힘,세속적 풍요에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판교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1,000만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그리고 주산복합은 1,500~2,000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다른 것 다 떠나서 저는 집값 하나만 보더라도 목사가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이 나라에 희망이 없습니다.이 건 사람 살라는 것이 아니라,죽으라는 것입니다.평생 집만 바라고 살다가 가라는 것입니다.오늘 이 나라의 삶의 구조입니다.

그러나 교우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밭에 나가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농사를 지으라는 것입니다.자본의 힘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지금의 이 사회,문화,교육,종교 등의 현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생명의 나라,자유의 나라,평등,평화,기쁨의,감사와 감격의 씨앗을 뿌리라고 농사를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목요일에 있었던 처음자리 생태학교 도우미 특강에서 박경장님은 우리에게 참 좋은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북중미 인디안의 생명문화에대한 강의였습니다.놀랍게도 인디안들은 멸종 전 까지 온 우주,자연과 함께 생명을 나누는 공동체 문화를 그대로 갖고 있었습니다.특히 그들은 땅을 사유화 할 수가 없었습니다.땅은 부족의 소유이고,필요에 따라 땅을 빌려서 사용하고,다시 돌려드립니다.또한 마을에 축제가 있는 날이면 그동안 자신이 생산한 것 중의 잉여물을 부족 앞에 내어 놓으면,그 해에 농사가 부족한 사람이 그 잉여물을 필요한 만큼 가져 갖다고 합니다.내어 놓은 사람도,받아가는 사람도 어느 누구 부끄러워하거나,쑥스러워하지 않고,자연스럽게 가진 것을 나누었다고 합니다.한 번은 인디언 아이가 그 지역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달리기를 하는데,늘 일등하던 어린이가 갑자기 중간에 끼어서 결승선을 통과하더랍니다.이유를 물었더니,자기 혼자 일등을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공동체의 생명문화에 익숙한 아이의 대답입니다.공동체가 혼자 앞서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그렇게 배워온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문화,삶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 농사가 아니겠습니까?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입니다.부부인 존과 마사는 하버드의 대학원 생들입니다.학위를 얻기위해 처절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를 헤쳐나오기 위해 하루 하루를 숨막히게 살아가던 이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습니다.현재 있는 딸 아이를 키우기에도 지금의 학사일정은 너무나 힘드는데,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입니다.더군다나 이 아이는 다운중후군의 아이로 판명을 받았습니다.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남편 존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다리를 다친 말은 천천히 죽어갈 수 밖에 없어,말은 달리기 위해서 살거든,달리는게
말의 삶이야.만일 아기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태어난다면,아기의
고통을 연장시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그러자 마사는
“사람이 하는 것은 뭐지?말은 달리기 위해 사는데,사람은 뭘 하려고 사는 거야?”
하고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짧고 덧없는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립된 자신을 벗어나
손을 뻗쳐 서로에게서,그리고 서로를 위해서,힘과 위안과 온기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인간이 하는 일이다!이것을 위해 우리는 사는 것이다!”

다운증후군의 징후가 있는 ‘아담’이라는 아이를 잉태하면서 부부는 새로운 삶의 비밀을 알아갑니다.‘아담’은 두 사람에게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을 느끼게 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진정한 인간의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이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나라의 농사가 아니겠습니까?이러한 참 삶의 나라에로 초대받은 교우 여러분 이 귀한 생명의 삶을 풍요롭게 나누는 삶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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