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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기쁨 3(2010년 2월7일, 주현절후여섯째주일)

하늘기차 | 2010.02.14 17:47 | 조회 2193


하늘의 기쁨 3

2010년 2월7일(주현절후여섯째주일) 습3:16-20

어느 목사님이 이스라엘 여행을 갔을 때인데. 예루살렘의 이 곳 저 곳을 둘러 보다가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여행비 전부가 들어있어 막막하고, 기가 막혔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자기와 접촉했던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소매치기를 당한 것 같지는 않고, 혹 타고 온 버스에서 지갑을 떨어뜨린 것 같기도 하여, 부랴 부랴 버스 터미널로 갔는데, 자신이 타고 온 버스는 이미 떠나서 1 시간 후에나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상식적으로는 그 지갑이 없어져도 벌써 없어졌겠지만 혹시라도 하는 생각에 그 버스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마침 그 곳 터미널의 운전 기사가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만일 지갑이 그 버스에 떨어졌다면 그 지갑을 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곳 사람들은 절대로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참 고마웠다고 합니다. 마침내 그 차가 돌아왔는데, 운전 기사에게 물어보니 그런 지갑 못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그 앉았던 자리로 가 보니 검은 것이 의자 아래에 떨어져 있어 달려가 보니 자기 지갑이 그 의자 아래에 그대로 있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지갑 찿았다!’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까 위로해 주던 운전기사가 달려와 더 좋아하면서 얼싸안고 다른 기사분들에게도 ‘이 사람 지갑 찿았다’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고 합니다. 아직 숙소에 돌아갈 시간이 한 두 시간 남아 서 구경하려고 다시 구 시가지로 들어가는데 발걸음도 가볍고, 만나는 사람 마다 반갑고 훨씬 더 마음이 즐거웠고 그 지갑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것을 찿으면 참 기쁩니다. 물건이 귀하고 소중할 때는 비닐 우산 하나도 어디에 두고 오면 다시 찿아 오라고 내 쫓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을 보면 우리 아이들도 그런데 뭘 하나 잊어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장갑, 우산, 메이커 옷도 그냥입니다. 그만큼 생활이 부해지고 물질이 풍요롭다는 것입니다. 없을 때에는 주스 병, 플라스틱 통 하나 하나가 귀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당시의 기득권자들이었던 사두개인들 제사장들, 서기관들은 안전과 부유함 속에서 율법과 규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며 자신의 기득권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삶의 위협을 받거나, 무엇을 잃어버리거나 어떤 아쉬움이나 어려움 없이 풍요롭게 살았기 때문에 잃었다 다시 찿는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아이들이 그런 것 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잃은 양, 은전 한 닢을 다시 찿은 이야기를 했으니 별로 마음에 와 닿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죄인 하나 찿는 것을 기뻐하신 다는 것을 그들에게 지혜롭게 말 해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기득권자들이 곱지 않은 시각으로 정죄하며 무시한 세리들과 창녀들, 죄인들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본 것입니다. 다시 찿아와 함께 기쁨의 감격을 나누어야 할 사람들로 본 것입니다.

다시 찿은 기쁨은 나에게 현재 있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예루살렘 여행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던 분도 다시 찿음으로 어떤 이득을 본것은 아닙니다. 1에서 1을 잃었으니 0이 되었다가 1을 찿았으니 그대로 1인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1이 참 소중하고 귀하다는것을 깨닫게해 줍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내 가족, 이웃, 교회, 건강, 공기, 물 . . .얼마나 감사한 것이 많은지, 잃어야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잃기 전에 있는 것 나누고 누리면 그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바로 전도서 기자가 전3장에서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람 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렇게 다시 찿는 회복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요즈음 참 어렵습니다. 직장을 잃고 그래서 좌절하여 삶의 의욕과 용기도 잃어버리고, 그리고는 자기 자신 조차도 잃어버리는 경우가 흔치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무언가 잃어버리고 방황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꼭 어디에서부터 잃어버렸는지 마치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그 잃어버린 곳으로 찿아가는 것 처럼 그 잃어버린 곳으로 가서 다시 찿으시기 바랍니다.

스포츠에는 역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짜릿함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야구가 9회말 2아웃에 역전의 안티를 칠 때의 감격, 후반 종려 휫슬 불기 직전에 터진 동점골과 연장에서 터지는 역전의 감격, 농구의 버저 비터 슛 같이 스포츠에는 역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짜릿함은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 또 영화에 반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씩스 센스라는 영화의 반전은 정말 기가 막혔죠.

그런데 이 기쁨에도 반전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할지 모르겠는데그것은 그동안 기쁨의 삶을 살자, 잃어버렸으면 다시 찿자고 하면서 기쁨에대해, 희년의 잔치에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성경은 한편 하나님의 기쁨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세례를 받을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소리가 들립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직전에도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는 중에 환상가운데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순간에 역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기뻐할까요? 오늘 말씀 습3:17을 보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
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
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할까요?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4대손입니다. 또 요시야왕 때에 활동했던 예언자입 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시야의 종교개혁, 아니 그 이전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우상숭배, 부정, 불의, 편법 등으로 말미암아 점점 퇴락해 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국제적으로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가 점차 쇠퇴하며 신흥강국 바벨론이 떠오르는 과도기에 이집트도 앗수르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남쪽 유다도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을 멈추게 되었고, 자연히 민간에는 매사 안일을 구가하는 천박한 낙관주의와 향락주의가 넘처나게 되었습니다.

스바냐는 그 형편을 3:2∼4에서
“주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의 충고도 듣지 않고, 주를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도 않는구나. 그 안에 있는 대신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이다. 재판관들은 이튿날
아침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는 저녁 이리 떼다. 예언자들은 거만하며 믿을 수 없는
자들이고, 제사장들은 성소나 더럽히며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다를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 3:12에 보면
“그러나 내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이
다. 이스라엘에 살아 남은 자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
할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한 시대의 천박함 속에 흔들리지않고 살아가는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겨놓겠다고 하십니다. 그동안 기쁨의 삶을 살자고 했는데 역으로 하나님은 무엇으로 기뻐할까 라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김규항 씨의 글을 보면 늘 이 시대에 대한 고민을 가슴에 담고, 또 어떤 대안적인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솔직한 모습이 있어서 좋습니다. 그는 30년전 대학생들이 군사 독재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대학에서 20여년 동안 군사 파시즘에 속아 살았다는 걸 한순간에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소위 현 교육의 상황 속에서 자녀를 어떻게 이 사회를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지도자로 키울 수 있는 가 라고 고민을 합니다. 결론은 회의적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속아온 사람은 진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추스르지만, 속임의 구조가 내면화된 사람은 좀처럼 정신을 추스르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서는 한 아이가 일류 대학에 들어간다면 그 아이는 이미 20년의 세월 동안 자본의 가치관을 뼛속 깊이 새기며 자라온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치원, 소위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과정 그리고 중고 과정에서 일류 과외, 일류 학원등 고액 과외와 해외 연수 등. . .그리고 특목고나, 외고나, 자율고를 통해 자본의 맛을 본 아이들이 인류 대학에 들어가 어떤 모습으로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는 너무나 뻔하다는 것입니다. 2, 30여년 전의 대학과 지금의 대학은 그 과정, 내용에 있어서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내와 함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를 보며 ‘대학은 갈 수도,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합의했다고 합니다. 그 합의로 그의 집에서는 이른바 교육문제로 인한 갈등이나 고통은 사라졌다고 하면서 지금 한국에서 말하는 교육문제란 단지 대입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통은 당연히 대학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교육은 없고 입시만 있는데 대학에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뜻으로 저는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런 합의에 참여한 가장 큰 이유는 그게 아이들이 정상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 최소한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대입문제를 교육문제의 전부로 치환하여 좌우도 위아래도 없이 벌이는 이 ‘아동잔혹극’이 아이의 정신 영역에 남길 수많은 상흔을 생각해보라. 만일 이 잔혹극이 이명박이나 조중동 지지자들이나 하는 짓이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경악하고 분노했을까. 나는 그 잔혹극 속으로 아이를 밀어넣을 수 없다.”이러한 생존경쟁의 정글에 아이를 집어넣는 일은 소위 기득권자들 뿐만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일에 올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최근 T.V뉴스를 통해 부산, 제주도에서 행해지는 졸업 뒷풀이의 광경을 본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혀를 찹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겨울에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졸업을 하였다고 교복을 다 찟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여학생들도 겉옷이 다 벗겨져 알 몸이 드러날 정도로, 아래는 팬티만 보일 정도로 교복을 다 찟고는 그들만의 놀이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저도 얼굴이 찌푸려 지는데, 그러나 한 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오죽하면 아이들이 저럼 놀이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아이들의 몸부림, 외침, 선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과정 3년 동안 학교 울타리에서 당한 폭력에대한 항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참 가슴아픈 우리의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여간 김규항씨는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그런 합의에 참여한 또다른 이유는 나 역시 한 아비로서 아이가 세상에 유익한 엘리트로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대학 안 나온 엘리트도 있냐고? 무엇이 엘리트인가? 왜 우리의 엘리트 기준은 이명박이나 악취 나는 지배계급의 엘리트 기준과 다르지 않은가? 학벌이나 직업 따위 자신을 둘러싼 껍질과 실제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 엘리트인가? 그런 껍질이 주는 기득권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만날 이명박 욕만 하는 것으로 손쉽게 정의로워지는 사람들이 진보적 엘리트인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끝으로
“학벌이나 직업이 유별나지 않아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특별한 사람, 아무리 곤란한 일도 마법처럼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의 사람, 이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훤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의 사람, 제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 우리의 엘리트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김규항씨는 글 마지막에 ‘바로 그런 사람이다’라고 합니다. 저는 이 스바냐의 말씀 속에 그리고 이사야 6장의 그루터기 남은 자 사상이 말하는 사람이 바로 김규항 씨가 말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뻐하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에 반전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돌아오는, 다시 찿는, 회복의 기쁨도 있지만 하나님의 기쁨 말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 17절 말씀의 사람 말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신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너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너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너를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이다.” 라고 하는 그 기쁨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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