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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기쁨 1(2010년 1월31일, 주현절후네째주일)

하늘기차 | 2010.01.31 14:59 | 조회 2002


하늘의 기쁨

2010년 1월31일(주현절후네째주일) 눅15:3-10

어떤 분은 오늘 말씀이 신약 성경의 말씀 중에 가장 사랑이 넘치는 복음이요,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눅15 장의 3가지 비유의 말씀 속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대한 뼈 속 깊은 경고의 메시지도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율법에 의하여 죄인으로 규정된 사람들인 세리, 창녀, 열심당원들, 불치의 병자들과 가까이 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율법을 도저희 지킬 수 없었던 사람들로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땅의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과 이 땅의 사람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들'땅의 사람들'을 율법을 어기는 죄인들이었기에 자신들의 거룩함과 구별됨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뿐만아니라 음식도 한자리에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보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에대하여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런데 1절 말씀에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에게 가까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모든 이라는 말은 숫자적으로 많다 보다는, 누구든지 구애받지 않고 부담 없이 찿아 온다는 뜻이며, 그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친한 벗이 되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불만을 갖는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어느 사람이 양 100 마리를 키우는데, 그 중에 1를 잃어버리면 99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찿을 때 까지 찿아 다니지 않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찿으면, 기뻐하며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벗과 이웃 사람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찿았습니다."하고 말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하늘의 기쁨을 잃은 양을 찿는 목자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양을 개인이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합해서 공동으로 키웁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보통 2,3의 목자가 그 마을의 양을 키운다고 합니다. 양들이 풀을 뜯을 때 다른 마을의 양들과 같이 섞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좁은 평야지대와 절벽과 사막으로 되어 있어서 목초지가 그리 풍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울타리 없이 양을 방목하여 키웁니다. 그러다 보니까 양들이 좋은 꼴을 먹고자 멀리 가기도 하는데, 그래서 간혹 홀로 외톨이가 되어 늑대나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기도 합니다. 저녁이 되어 돌아 올 때 양들은 목자의 소리를 따라 우리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99마리는 따라 들어왔는데 한 마리가 보이질 안습니다. 목자는 99 마리는 동료에게 맡기고 1 마리를 찿아 나섭니다. 온 골짜기, 들판, 가파른 절벽, 물가를 누비고 찿습니다. 간신히 울음 소리를 듣고 찿아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그 때 걱정하며 기다리던 모든 목자들, 친구와 이웃을 불러서 함께 음식을 나누며 기뻐합니다.

그러면서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한다고 하면서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쁨에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여자가 은전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려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부지런히 뒤져 찿으면 벗과 이웃을 불러 함께 즐거워 하지 않겠는가 하면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보통 사람들의 집은 창이 작아 낮에 어둡다고 합니다. 그저 가로, 세로 한 40Cm정도의 창이니 집 안이 어둑 어둑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옛날 아파트가 없을 때 집의 지붕도 낮고, 문도 작게 난 방에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그 집의 바닥은 딱딱한 흙 바닥을 갈대나 길다란 골풀 종류로 덮어 놓은 정도인데, 그래서 뭐 작은 것 하나라도 떨어지면 어둔운 방에서 그 잃은 것을 찿기란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아서 찿을 수는 없고 비 같은 것으로 이렇게 쓸다 보면 만져지는 감촉이나, 땡그랑 하는 소리를 듣고 찿는다고 합니다. 그 은전 하나가 남자의 하루 인건비라고 하니 당시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값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전을 찿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겠습니까.

우리는 인생에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맛 보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다시 찿는 것에대한 기쁨을 말 해 주고 있습니다. 이 다시 찿는 기쁨에대해 오늘 말씀은 무엇이라 풀어 쓰고 있는가 하면 7절, 그리고 10절 말씀에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의 기쁨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율법궤를 다시 찿아 왔을 때 였습니다. 삼상7:2을 보면
"궤가 기럇여아림에 머문 날로부터 약 스무 해 동안, 오랜 세월이 지났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의 온 족속은 주를 사모하였다."라고 합니다. 원수 나라에 빼앗겼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찿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리고 율법궤가 돌아온 이래 20년 동안 온 족속이 주님을 사모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면 조금 이상합니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겨 라. 그러면 주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이다"라고 합니다. 여전히 블레셋의 위협아래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로 하여금 여전히 블레셋 백성에게 침략을 당하며 사느냐 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 라는 질문을 해 보니, 온 백성이 주를 사모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서 사무엘은 '여러분이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오려거든'이라고 운을 뗍니다. 그러니까 주님 사랑은 있는데 온전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열심이 부족하다 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 열심을 내야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가 아닙니다. 이 온전치 못한 것은 우상 때문입니다. 주님께 열심을 내고, 교회에 신실하게 봉사를 하고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여전히 소위 블레셋에게 공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이스라엘이 하잘 것 없는 블레셋에게 전전긍긍하며 힘들어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오늘 3절 말씀을 보니 온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돌아 오려거든 이방의 신들과 아스다롯 여신상들을 없애버리고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합니다.

교우여러분! 우리 청소년 여러분! 지금 현재 여러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기쁘고 즐거울만 하면 바로 그 문제가 불쑥 불쑥 솟아 올라 다시 나를 좌절케 하고, 낙심케 하고, 무언가 새롭게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하나 하나 해 나가야 할텐데, 여전히 제자리 걸음하며, 오히려 퇴보하는 그래서 우울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남이 보면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블레셋이 하찮은 것 같은데, 20년 동안 하나님을 사모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이스라엘이 번번히 블레셋에게 당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우상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엇이 우상인가요? 여러분의 삶 속에, 아니면 마음 속에 매우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그것 없이는 삶의 의미가 없어지고, 한 쪽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것은 없는지 말입니다. 오늘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돌아오려거든 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적당히가 아니라 온전하게 돌아오려면 없애버리라는 것입니다. 없애버리고 오직 주님께만 마음을 두고,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블레셋에게서 건져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모습과 마지막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한다는 것이지요, 회개 없이는 하나님 나라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첫 번째로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이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자유를, 눈먼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 갈릴리 나사렛 동네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선포한 첫 번째 말씀은 사61:1,2에 있는 희년(喜年)에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희라는 말은 기쁠 희자입니다. 기쁜 해, 기쁜 년도라는 것입니다. 종종 신문이나 T.V에 보면 올해는 물의 해, 또는 관광의 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을 보는데, 성경은 기쁜 해에대해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왜 기쁠까요? 이 희년에대한 영어는 Jubilee인데, 히브리어 yobel<요벨>을 음역한 것입니다. 이 요벨은 그 뜻이 '수양의 뿔'입니다. 빵빠레를 우릴 때 사용되는데, 바로 기쁘고 즐거운 나라의 경사, 축제 때 그 시작을 알리고, 전쟁의 승리를 알리는 악기입니다. 그야말로 희년은 기쁨의 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첫 선포한 말씀이 기쁨입니다.

저는 이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기쁨이 있는가 말입니다. 여러분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빼앗긴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이 이끄는 블레셋과 싸우기 위해 먼저 사울 왕 앞에 나아가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보기에 다윗이 너무 어려 보여 다윗을 염려하자, 다윗은 자기가 목자였을 때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 가면 쫓아가서 양을 그 맹수의 입에서 건져냈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쁨을 빼앗아 와야 합니다. 사무엘도 블레셋 진영으로 가서 율법궤를 다시 돌려 받지 않습니까? 기쁨은 성도들의 또 다른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잃은 양을 찿는 것도 목자이지만, 물려 가는 양을 그 맹수의 입에서 다시 빼앗아 오는 것도 목자입니다. 온 힘과 생명을 다하여 양을 지키는 것이 목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죄에 붙들려 죽을 수 밖에 없는 나를 찿아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을 드린 참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왜 기쁨을 잃어버렸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우수개 소리로 남편 때문이다. 직장에서 짤릴까봐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녀들 진학 때문에, 나의 나쁜 습관 , , , 그러다가 어떤 분이 아니야 나 때문이야 라고 합니다. 그래 결국 나 때문이지 합니다. 그러나 교우여러분 나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상하고, 갇히고, 포로된 사람들에게 치료와 자유, 석방을 선포합니다. 그래서 기쁨입니다. 성서는 행복이 아니라 기쁨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희년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더욱 더절실합니다. 나를 기쁘게 못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레위기서를 보면 희년을 법으로 선포합니다. 그 귀한 말씀이 법으로 선포되었데 이스라엘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희년의법이 레25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희년은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50년마다 돌아옵니다. 이 해가 되면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서 나누어 준 자기 가족의 땅으로 돌아가고, 땅은 쉬게 합니다. 빚을 모두 탕감해주며, 노예들도 모두 자유인으로 풀어줍니다. 한마디로 회복이며, 다시 돌아가는것입니다. 그 날을 시작할 때 이스라엘은 뿔 나팔을 불어 이 날을 기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셔서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것은 기쁨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읽은 사62:1,2의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 지금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모두에게도 이 선언은 계속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이미 이 기쁨은 주님께서 선언하신대로 우리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기쁨을 누리십시오. 잃어버렸으면 다시 찿으십시오. 빼앗겼으면 다시 찿아오십시오. 언제 어디서 기쁨을 잃어버렸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집안에 오리 한 마리 잃어버리면 온 동네를 돌며 찿아나서는데, 마음 잃어버리면 찿을 줄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아니 잃어버린 줄도 모르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사랑, 관용, 용서, 평안, 나눔, , , 특히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기필코 찿아 윤택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살전5:16-18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말씀하는데, 이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살아있는 생명의 모습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의 완결을 빌4:4-7에서 봅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새가 날개짓을 하면 하늘로 날아 오르듯이 성도가 하늘이 베푸신 기쁨으로 날아 오르기 위해서는 기도의 날개와 감사의 날개짓을 힘껏 하면 기쁨이 높이 솟아 오를 것입니다. 사40:31은 바로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전도서3:11-14는 그 기쁨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사f람 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이제 나는 알았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언제나 한결같다. 거기에다가는 보탤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니 사람은 그를 두려워할 수 밖에 없다.”

아무쪼록 기쁨을 맛 보며, 나누는 삶을 살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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