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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내 보이시다(2010년 1월24일, 주현절후세째주일)

하늘기차 | 2010.01.24 15:35 | 조회 2173


나타내 보이시다

2010년 1월24일(주현절후세째주일) 행10:34-43

어제 3 번째 청소년 신앙 수련회를 마쳤습니다. 어제 말씀은 비죤을 가지라는 말씀을 아이들에게 들려 주셨는데, 비죤과 꿈의 차이를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꿈은 우리들이 원하고 희망하는 것을 우리의 힘으로 추구하는 것이라 합니다. 명예, 돈, 권력, 아니면 좋은 대학, 사업의 성공, 멋진 배후자와의 결혼, , , 그러나 비죤은 '열어서 보여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땀흘려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대로, 열리는 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이 평화입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땀흘리며, 근심, 걱정, 불안 염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자적으로는 비죤이나, 꿈이나 사실은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비죤과 세상이 말하느 비죤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열어서 보여주는 꿈쟁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요셉이 그렇고, 야곱, 아브라함 등, 이들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그러한 꿈쟁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석영 목사님께서는 그 날 자기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이야기 하면서 자기가 중 3 때 예수를 믿었는데, 참 그 이유가 엉뚱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겨란 후라이를 도시락에 넣어주셨는데, 그 겨란 후라이를 반 친구가 몰래 꺼내 먹었다는 것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친구 멱살을 잡으려 하는데, 그 계란을 몇 배로 더 주겠으니 교회에 나와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갔더니 그 날이 부활 주일이어서 교란을 실 컷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제 다음에는 교회에 나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기 앞에 전말 이쁜 여학생이 앉아 있는데, 얼마나 이쁜지 다음 주에도 그 여학생을 보러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렇게 중고등 학교 시절에 신앙 생활을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정말 이유가 웃기지만 그것이 신비한 하나님의 비죤 안에서 이루어 진 일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신앙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앙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 보여 주신대로 따라 나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은 계시의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면저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 행10:40에 보면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41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모든 백성에게 나타내 보이시지않고, 글자 그대로 본문 말씀에 따르면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에게 나타내 보이셨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편협하고, 독선적이기 까지 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학 입학 정시 모집이 지금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줄 압니다. 최근에는대학들이 많이 생겨 좋은 학생들을 받아들이려고, 대학끼리 경쟁입니다. 미달이 되는 대학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신문 광고에 어떤 대학에서 “우리 대학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오십시오”라고 광고를 낸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소위 일류 대학도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류 대학에 들어가려면 자격이, 즉 성적이 필요합니다. 성적이 안되면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문이 닫혀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의 소리가 들려올 때, 그 소리는 모든 사람에게 다 전파되지만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나타내 보이는 것을 볼 수가 있을까요? 가끔 아이드들이 T.V의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거나 인터넷으로 게임을 할 때 보면 옆에서 아무리 큰 소리를 치고, 건드려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예들아! 밥먹어라 해도 듣지를 못합니다. 게임에 푹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소리를 쳐도, 몇 번 외쳐야 힐끗 쳐다 보고는 다시 게임에 빠집니다.

우리가 소위 일류대학 일류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 대학의문이 닫혀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가 보아도 대학의 문은 항상 활짝 열려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들어가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늘이 열리어 나타내 보이시지만 못 보고 못 듣는 사람이 있지만 보고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하늘의 소리를 듣고, 하늘이 열린 것을 볼 수 있을까요?

구약 성경에 보면 아람 군대가 예언자 엘리사를 잡으려고 그가 거쳐하고 있는 도단성을 포위합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엘리사의 몸 종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다급하게 뛰어 들어옵니다. “큰 일이 났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지요?” 라고 합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한 다음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래서 주께서 시종 게하시의 눈을 열어줍니다. 게하시가 보니 성 주위 언덕에 온통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에워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 무수한 불 말과 불 수레에 비하면 아람의 군대는 어린 아이의 장난감 같았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불 말과 불 수레로 이루어진 하늘의 군대를 보는데, 게하시는 보지를 못합니다.

왜 볼 수 없을까요? 왕하6:17에 보면 엘리사가 그 종 게하시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게하시의 눈이 열렸다고 합니다. 눈이 열렸다고 하는데, 그 눈은 육신의 눈일까요? 그렇습니다. 마음의 눈, 그러니까 마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게하시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시종의 눈을 열어 볼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마음의 눈, 마음의 문이 열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하나님을 향하여, 그 나라와, 그 뜻을 향하여, 이웃을 향하여, 성도들을 향하여, 아니 자기 자신을 향하여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 닫힌 마음이 기도를 통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고 하늘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야. 그리고 내가 기뻐하는 자이고.”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님의 마음의 문이 하나님의 뜻과 합하여 하나가 되니 문이 열리어 통하는 것입니다. 근데 언제 이렇게 하늘과 합하게 되었는가 하면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에게 나아가자 요한이 송구스러워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것이 옳습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화로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의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대화 속에 예수님의 자기 낮춤이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 가장 낮은 마굿간의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이라고 합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내 생각, 나의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스스로를 낮추어 하나님의 뜻에 합하고자 할 때 하늘의 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2번째 청소년 신앙 수련회가 저희 교회에서 열렸습니다. 특강 시간에 저희 교회 조주현님께서 우화의 지혜라는 특강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거북이와 토끼에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대화를 하였습니다. 우선적으로 이 이야기는 말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토끼하고 거북이가 달리기 시합을 하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에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매듭이 지어집니다. 말도 안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왜? 왜 그럴까? 하며 의구심을 가지면서 이야기는 풀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부활 해, 아까 이야기한 불 말과 불 수레, 하와는 아담의 갈비 뼈로 만들어졌어, 홍수로 모든 인류가 멸망했데, 100살 먹은 노인네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가 있어, 어떻게 전쟁에서 성을 점령했는데 가축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라구 해, 무슨 하나님이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면 더 이상 끝인데, 왜 그럴까?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이 됩니다. 실타래를 풀듯이 살살, 조심 조심 풀어갑니다.

조주현님과 이이들 이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조주현님은 그렇게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토끼가 왜 거북이에게 말도 안되는 경주를 하자고 했을까 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까? 그래요 토끼가 외로웠던 것입니다. 아마 토끼 동네에서 이 토끼는 무슨 이유였든 간에 왕 따를 당하는 토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모임에서 밀려나 홀로 외롭게 지내다가 거북이를 본 것입니다. 경주를 하자고 하는 것은, 이건 구원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토끼는 경주가 목적이 아니라, 함께 하고 싶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근데 거북이가 토끼 이야기를 들어준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정말 따뜻하드라구요?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통한 것이지요. 어떻게 통할 수 있었을까요? 마음,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에서 였지요. 아마 토끼가 그 동네에서 잘 나갔다면 거북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마음이 아프고 힘드니까 거북이가 그저 자기의 제안을 받아 줄 만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줄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그 토끼의 제안을 바쁘고 할 일 많지만 받아준 것입니다. 그런데 토끼는 역시 촐랑데는 것 같습니다. 금방 자기가 앞서 가더니 곧 잠이 들어버렸지요. 그래서 거북이가 결승테이프를 끊었구요. 소통이며,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과 통하여 하늘 문, 마음 문이 열리고 그러니 하늘의 음성이 들려 온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입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면 불러도 대답이없습니다. 그것은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낚시에 빠지고, 술에 빠지고, 이기적인 욕심이나, 자기 연민에 빠져있다면 마땅히 들어야 할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음성은 어느 특정한, 신령한 기도원이나, 산에서 오래 도를 닦은 사람에게, 오래 신앙 생활을 한사람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우 여러분! 하늘은 신령한, 영험한 사람에게 좍~ 하고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노름을 해서 남편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그 답이 걸작입니다. 본래는 그 남편이 억만장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낙동강·영산강이 수만년 내려온 억만금짜리인데 여기다 손을 대면 백만금짜리밖에 안 된다고. 온실가스 때문에 지구가 더워지고 사막이 늘어나고… 그저 사람들이 벌이는 일이란 게 생각하면 모두 답답한 것들뿐이라고, 그런데 세이건이라는 생물학자의 말을 들어보면 좀 위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태양광선의 변형일 뿐”이란느 것입니다. 식물이며 짐승, 사람의 몸은 물론 말과 생각, 음악, 이 모든 게 따지고 보면 태양에너지가 변한 것이라, 지구를 뒤덮는 자동차며 매연이나 온갖 쓰레기도 결국은 태양광선의 변형이니 본래 자연과 인공을 구분하여 걱정하는 게 넓은 틀에서 보면 부질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역>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하늘은 세상 만물을 사랑할 뿐 성인들처럼 걱정을 하지 않는다.”(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어리석은 이들은 강을 파헤치고 자원을 마구잡이로 써대고, 성인들은 이것을 보고 걱정을 하지만 하늘은 그저 만물을 사랑할 뿐이라고. 그래도 몸을 가지고 하늘을 이고 이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은 성인들처럼 이것저것 걱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은 세상 모든 만물을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은혜, 사랑과 긍휼, 자비를 사람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이 세상이 생기기 전에 우리를 택하여 구원받았다고 할 때 무슨 하나님이 이 사람은 구원 받고, 저 사람은 멸망하고 그런 편파적인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할 지 모르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입니다. 세상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구원 하시지만, 그래서 우리를 부르시지만 부름에 따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농사철이 되면 하늘에서 비가 와야 농사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오랜 가믐 끝에 비가 옵니다. 하나님은 비를 내리실 때 요놈은 나쁜 놈이니 찔금 주자, 아이구 이 놈은 착한 놈이니 이만큼 내리자고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악인이나 선한 사람 모두에게 비를 골고루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 은혜를 입는가 말입니다. 바로 비가 올 때, 물꼬를 트고 논 둑을 잘 두두려서 내리는 비가 세어 나가지 않도록 삽자루 들고 논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논에 하늘의 비를 받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늘이 한 없이 베푸시는 은혜에 내 마음을 합하고, 내 뜻을 합할 때 그 소리는 들리기 마련입니다. 오히려 이제는 하늘이 열려야 우리가 보고 소리가 있어야 듣는 것이 아니라, 마16:19에서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나이다.”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베드로를 칭찬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메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느 특별한 영험이 아니라, 바로 베드로의 신앙, 하나님이 나의 주인, 나의 구세주임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하늘의 소리는 들리고, 하늘의 신비는 풀리는 것입니다. 오늘 주현절 세번째 주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정원에, 삶의 정원에 이 신비로운 주님의 따사로운 빛이 환하게 비추이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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