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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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가지 말자(2009년12월13일, 대강절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12.13 14:17 | 조회 2001


비켜가지 말자

2009년12월13일(대강절세번째주일) 마1:18-25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는 인간의 잘못을 꼭 죄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실수라든가, 어리석음, 게으름, 부족함, 또는 고해다, 업 등, 이런 말을 사용해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느 분이 병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의사의 처방이 병명을 정확히 내리지 않고 이런 병인 것 같기도 하고 저런 병인 것 같기도 하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병명이 정확하지 않으니 치료도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또 만일 어느 약국의 약사가 어느 약을 조재면서 '먹거나 말거나 상관 없는 약'이라고 그 약을 소개한다면 어떨까요? 그러니까 요점은 사람들은 교회가 죄에대해 강조를 하는데, 왜 하필 '죄'라고 하여 우리들을 짓누르기도 하고, 회개하라고 하고, 선과 악을 나누고, 구별짓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유치하기까지도 하고 말입니다. 교회 신앙이 원래 그렇게 희화적입니다. 교회는 도사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성경은 말씀합니다. 거짓이다, 분쟁이다, 전쟁, 폭력, 시기, 질투, 미움, 비방, 등은 죄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이러한 일들 뒤에는 보고 들을 수 없는 만지고 느낄 수 없는 영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마치 공기가 무색 무취한 것과 같이, 그리고 바람이 보이지 않는 것 과 같이 말입니다.

지금은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 기간입니다. 캐롤, 산타, 그리고 연말연시와 맞 물려서 선물, 연인, 백화점 다양한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성탄 카드가 거의 없어졌지만 한 5년 전만 해도 백화점이나 책방에 빼 놓을 수 없는 코너가 바로 카드를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저도 성탄절에는 꼭 카드를 사서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핸드폰 문자가 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카드를 보내는 것이 우리는 성탄절에만 있지만 서구에서는 감사절과 부활절에도 항상 카드를 주고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젠가 미국에 있는 한 친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감사절 카드를 안 보내느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드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연 날리기 하거나, 마을에 눈이 내리는데 한복을 입은 여자가 항아리를 들고 걸어가거나, 루돌프와 산타 등, 또 새해와 맞 물려 있어서 태양이 떠오르거나, 십장생, 부채, 정승 그림에 그나마 잘 봐 주면 한 구퉁이에 조그맣게 우리 고기교회와 같은 교회가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성탄 캐롤도 이 기쁜 밤에 그 녀와 사랑을 나누는 내용이거나 눈 내리는 밤의 산타 할아버지 썰매 타는 즐거움, 우는 아이는 산타가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협박까지 다양한 성탄의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복음이라 할 수 없는, 아기 예수 탄생과는 무관한 내용의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은 그래도 성도들은 성탄의 의미를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떤가요?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들려주는 말 중에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혼녀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했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충격, 두려움 그리고 갈등에 쌓입니다. 왜냐하면 요셉과 마리아는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의 결혼 풍습으로는 약혼은 결혼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날자만 잡으면 바로 결혼이 이루어지는 그러한 상황이었는데, 이상한 소문이 마리아에게서부터 흘러나온 것입니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 착한 요셉은 이 사실을 소문내면 마리아는 돌 팔매로 죽임을 당할 것을 알아 조용히 파혼하려고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누가복음에는 요셉의 이야기가 실린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어린 쳐녀 마리아에대해 이야기합니다. 누가는 보다 서민적입니다. 마리아도 역시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찿아와
"보아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고 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또 응답을 합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보십시오,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 천사님의 말씀대로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역설이며, 딜레마이며, 스캔들이며, 갈등입니다. 복음은 어찌 보면 이렇게 찿아오는지 모릅니다. 나의 삶을 충격으로 몰아갑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오는 여러 가지 삶의 변화는 그야말로 충격이며, 스캔들입니다. 역설이며, 갈등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던 사람이 함께 어울리던 구릅에서 빠져나와 교회를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주일이면 산행을 간다거나, 골프를 치라가던 사람이 그 모임에 빠집니다. 그러면 대뜸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 아프냐는 것입니다. 또 수요일, 또 금요일 집회를 남자가 나온다고 해 보지요, 그동안 어울리던 술 친구들이 무어라 할까여? 통속적으로 술 보다 더 좋은 것이 무얼까요? 농담조로 '너 여자 생겼어' 하지 않겠습니까? 스캔들이며, 충격이며, 역설이며, 갈등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요셉은 이 위기를 잘 넘깁니다. 아마 서로 신뢰가 없었다면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요셉을 믿었고, 요셉도 역시 마리아를 믿어 주었습니다. 이 딜레머는 이렇게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어줌으로서 극복이 되었습니다. 물론 성탄은 기쁘고, 즐겁습니다. 축제입니다. 성경에서도 기쁨을 이야기 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함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과 평화가 어떤 기쁨이며, 어떤 평화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기쁨이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성탄절을 비켜갑니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산타 할아버지, 캐롤, 트리, 카드, 케익 등. . . 을 통해 속죄의 은혜의 기쁨이 비켜갑니다.

에덴 동산에서도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찿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살짝 비켜갑니다. 뱀이 여자에게 묻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고 비틀어서 묻습니다.모든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거든요. 여기에 하와가 넘어갑니다.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벌써 만지고 싶은 욕심이 들어가 하지도 않은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스스로 만들어 냅니다. 아담과 하와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는 결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 반대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동산의 열매를 보는 순간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제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시작 직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아갔는데, 거기서 사탄을 만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광야, 성도들에게 있어서 광야는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맹수와 적들의 위협이 있지만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또한 사탄의 역사도 함께 임합니다. 마4:6에서 사탄은 두 번째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성전 꼭데기로 데리고 가서는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시91:11,12의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서 우리의 가는 길을 주님께서 함께하셔서 돌 부리 하나도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잘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성전 꼭데기로 데리고 가 이 말씀을 교묘히 비틉니다. 살짝 비켜갑니다.

지금도 세상은 성탄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지만 그 본질적인 구속의 기쁨을 비켜갑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에는 인류의 죄의 구속이라는 영적 의미,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자 숨어있던 죄가 드러나 정체를 밝힙니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살해합니다. 이것은 모세 때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감추어 있던 폭력이 드러나 버렸습니다. 이 영아살해 사건은 세상에는 이런 폭력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 권력에의한 폭력으로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죽어가는지 모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영아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평화에대한 이야기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사탄은 아예 그 싹을 없애려고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사탄은 그 이후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를 넘어뜨리려고 끝 까지 예수를 따라갑니다. 베드로를 통해 십자가를 지면 안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하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로 5천명이 배불리 먹었을 때에도, 사람들을 통해 사탄은 예수를 세상 왕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세상 권력은 그 자리 자체가 폭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사탄은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 왕'이니 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왕의 자리는 폭력의 자리입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폭력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탄은 예수님을 끝까지 홰방하고, 시험하고, 유혹하였습니다. 사탄은 자기 나라의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나라의 왕인 예수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최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시상에대해 말들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시상식 연설에서 '정의로운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하면서 전세계인들이 T.V를 통해 바라보는 앞에서 새빨간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 거짓말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뫃였습니다. 멋있게 차려입은 점잖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주는 평화가 어떠한지를 분명이 보았습니다.

이렇게 사탄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가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시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자기 나라의 영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방해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잘 모릅니다. 오늘 말씀처럼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것입니다. 죄에대해 별 관심이나 인식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전쟁과 마약, 알코홀, 도박, AIDS, 변종 바이러스. . . 자연, 환경의 파괴와 오염 . . . 이렇게 무너져 가고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 떠난 인류의 모습이라는 것, 인류의 죄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를 알았습니다. 바로 아기 예수와 한 해에 태어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대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유대인들에게 나아가 예수에대해 증거할 때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옳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 우리를 죄의 수렁에서 건질 자는 주님이십니다.

힘있는 메시야, 왕으로서의 메시야, 화려한 왕의 자리는 볼 줄 알았지만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모습을 사람들은 보지 못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능력, 권능의 주님은 이야기하지만 이적과 기사를 베푸시는 주님에대해서는 말하지만 지금 춥고 배고프며, 고통스러운 자리에 그들과 함께 하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보지 못합니다. 인류가 죄로 고통하며 신음하고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이야말로 이 번 성탄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2,000년 전 아기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은 은유이기도 하며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연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 마굿간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은 아마 일반 마굿간도 찿아 볼래야 찿아 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가장 소외되고 힘들어 하는 곳이 오늘 이 시대의 마굿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지난 8일에 용산 4구역에서는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라는 책을 낸 문인들이 그 참사현장에 찿아가 출판한 책을 유가족에게 헌정하는 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마치 동방박사 3사람이 3가지 예물을 가지고 찿아온 모양세입니다. 아마 오늘 동시대의 가장 빛이 필요한 마굿간은 용산4번지 아니겠습니까? 이 참담한 버림받은 용산4번지가 바로 우리의 마굿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눅1:29에 보면 마리아는 천사의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궁굼히 여겼다고 합니다. 마1:19,20에 보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강절 3번째 주일입니다. 그래서 아무쪼록아기 예수 탄생이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인류에게 무엇인지를 깊이 묵상해 보는 성탄의 기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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