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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지나 가신다(09년11월15일, 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09.11.15 13:26 | 조회 1892


예수가 지나 가신다

2009년11월15일(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일) 눅18:35-43

지난 주에 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길을 떠나서 살 수 있겠습니까? 길에서 나서 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길에 상처 받는 일만 있겠습니까? 오히려 길에서 상처를 치료 받을 수 있는 의사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지요. 또한 강도도 만날 수 있지만 스승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길은 공평한 것입니다. 그러니 길에대해 시비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길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쇄사슬을 끊는 차력을 하는 광대 잠파노는 늘 젤소미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힘든 인생의 무게를 젤소미나에게 부과합니다. 그러나 백치인 젤소미나는 삶의 각박함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나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마을, 풍경을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삶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갑니다. 그녀의 그 순결한 마음, 때 묻지 않은 마음이 그의 길을 그렇게 아름답게 가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젤소미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은 트럼펫을 연주하는 광대 일 마토입니다. 일 마토는 잠파노가 젤소미나를 너무 학대하는 것을 보다 못해 도망치게 하는데 결국은 다시 붙들려 오고, 그래서 일 마토와 싸우다가 경찰에 체포됩니다. 중간에 수도원에 가게된 때에 잠파노는 젤소미나에게 은으로 만든 예수상을 훔치라 하지만 젤소미나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화가난 잠파노는 또 폭력을 휘두릅니다. 잠파노에게 젤소미나는 그저 노예요, 가축같이 일이나 부려먹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우연히 일 마토를 만나자 잠파노는 경찰에 붙잡혔던 지난 일이 떠올라뜻하지 않게 그를 죽여버립니다. 유일하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일 마토가 죽자 젤소미나는 충격에 빠집니다. 정신적으로 이상해 지기도 합니다. 그러자 잠파노는 쓸모없게 된 젤소미나를 길에 놓아두고 슬며시 떠납니다. 그 후 얼마가 지나서 바닷가에서 젤소니마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잠파노는 그제야 통곡을 합니다. 그제서애 젤소미나가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사람은 이렇게 없을 때 알게 되는 것인가요?

대사중에 젤소미나가 "난 쓸모가 없어요. 어느 누구에게나 도움을 못 주는 불필요한 존재에요."하자, 일마토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거기에 있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래요."라고 한다. 그러자 젤소미나 는 "그걸 어떻게 알죠?"한다. 그러자 일마토가 "사실 나도 잘 몰라요. 사실은, 그건 하나님 밖에 모르죠. 이 돌멩이는 분명히 이 곳에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있는 거죠. 젤소니나도요. . ."라고 한다 참 아름다운 대사입니다. 길에서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길을 가십니다. 그런데 이 길은 다시 오지 못 할 길입니다. 세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길입니다. 그러니 이 전의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3 번이나 자신이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제사장들과 장로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체포당하고 조롱과 모욕,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그리고 죽게 될 것이며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3 번이나 자신의 고난당할 것을 이야기 하지만 그 말을 못 알아듣습니다. 못 알아들은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못 알아 들은 것으로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이야기는 두 가지의 주제로 이어집니다. 하나는 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거의 다 왔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예루살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동북 쪽으로 한 29Km정도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그래서 여리고는 견고한 성곽으로 되어있는데, 이 곳은 주로 예루살렘의 종교, 경제, 정치의 기득권자들이 살고 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치면 강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19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고 계시지만 그리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게 막 지나가는데 삭개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찿은 것입니다. 여리고에 다 왔을 때 마침 길에서 구걸하던 눈먼 거지가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가 궁굼하여 무슨 일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그러자 앞에 가던 사람들이 소리치는 사람을 꾸짖어 조용히 하라고 합니다. 왜 꾸짖었을까요?

제자들은 지금 기분 좋게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갈릴리 후진 곳에서 예수님과 동거동락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의 모든 고생과 멸시, 천대를 다 보상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여리고성만 지나면 바로 예루살렘이 빠르면 하루 길일 수도 있는 위치였습니다. 어서 빨리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동안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일을 속히 이루시어 새 하늘 새 땅에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지가, 그것도 눈먼 거지가 갈 길 바쁜 예수님의 뒷 덜미를 붙잡은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아마 예수가 누구인지 가르쳐 준 사람은 후회 막심 했을 것입니다. 바쁜 우리 선생님의 갈 길을 방해하다니. 그래서 그 사람은 이 거지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걸인은 그러한 주변의 핀잔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하고 더 크게 외쳤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려면 이렇게 모든 것들을 덜쳐버릴 때가 있습니다. 마치 철판에 슨 녹을 떨어버리듯이 지체함이 없이 떨어 버려야 합니다.

아! 주님께서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셨습니다. 아니 처음 외칠 때 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 이미 지나가기 전 앞에서부터 주님은 이 걸인 거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이 거지의 마음이 한여름 목이 말라 시냇물 찿는 사슴 같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신앙을 좀 더 끌어 올리시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불쌍함으로 주님과 만나야 합니다. 다른 매개물이 아니라 오직 불쌍히 여김이 주님과 우리 사이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함께 하는 제자들은 어떤지요? 그들에게는 영광과 부와 명예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찮은 거지의 소리는 없어도 무관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용산참사가 일어남지 300여일이 되었습니다. 최근 까지도 용산의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로서는 그 문제의 핵심이 따로 있습니다. 희년토지정의실천운동의 고영근님은 용산 참사 문제는 바로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라고 합니다. 재개발 조합장 장로와 세입자 철거민 집사가 같이 다녔던 교회에서 하나님의 희년법에 대해 가르치고 토지 불로소득의 추구가 성경이 금하는 죄악이라고 설교했다면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토지 사유제 아래에서 토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것이 이웃의 평등한 토지권을 침해하고 이웃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며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신 27:17) 죄악이라는 것을 교회에서 가르쳤다면 조합장 장로와 세입자 집사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용산 참사 문제의 근저에는 토지 사유제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토지 불로소득이라는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토지 사유제와 토지 불로소득의 문제는 지난 용산 참사 문제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인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의 근저에도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 정부가 들어선 직 후에 터진 남대문 방화 사건도 역시 토지 사유제 아래에서 개발에 따른 토지 불로소득을 둘러싼 문제인 것입니다.

사실상 용산 참사 문제는 토지 사유제에 따른 지주의 소유권에 상가 세입자의 생활권(점유권 혹은 영업권으로 볼 수도 있다)이 정면으로 부딪힌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주택 건설로 인해 발생하는 철거민들에 대해서는 주거권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인정되어 왔지만, 상가 등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생활권과 권리금 문제는 아직 수면으로 부상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토지 사유제는 지주의 소유권만을 절대시하고 세입자의 주거권이나 생활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성경적인 제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시려는 하나님의 희년법의 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토지 사유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너무 배불러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교회를 다니는 재개발 조합장인 원로장로와 상가 세입자인 집사가 재개발을 둘러싸고 서로 부딪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세입자인 집사님은 이 번 공권력의 폭력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장로님은 새로 세워질 복합 건물에 입주를 꿈꾸며 조합장일을 열심히 했을 것입니다.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한 번도 교회 이름으로 위로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돌아가신 이상림 집사님은 연세가 71이신데 늘 새벽 마다 기도하며 신앙으로 살으신 분입니다. 자녀 셋을 용산의 가계 터에서 장사하며 키우신 분이었습니다. 집사님은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려 교회 부목사님께 예배를 드려 달라 요청을 했지만 개발 조합장인 이춘우 원로 장로가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말에 부목사가 예배를 드리러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터진 후에도 "너무 예민한 사안이라 참사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만 하였답니다. 교회가 이 문제에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장님 거지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주기 바라십니까?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세가지 소원에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세 가지 소원을 검색하니까 세가지 소원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 있더라구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가 어느 요정이 한 부부에게 나타나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이 부부는 무엇을 구할까 하고 노심초사 했다고 하빈다. 그런데 하필 옆집에서 맛 있는 소세지 굽는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마침 시장했던 아내가 소시지가 먹구싶다 하니까 소세지가 턱 나타났습니다. 화가난 남편이 에이 코에나 붙어라 합니다. ... 이렇게 해서 세 가지 소원을 다 써버립니다. 이 세가지 소원을 보면 결국 행운이나 요행이나 횡재 같은 것을 너무 바라지 말라는 교훈이 아닐까요? 인간의 욕심이란 정말 끝이 없어 단지 세 가지 소원만 가지고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백범 선생님은 세가지 소원을 말하라 하니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했다 합니다. 우리 같은 소시민은 평생 돈 걱정 안하게, 평생 건강하게 해 달라는 것일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장님 거지는 어떤 소원을 주님께 아뢰었나요?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전에도 여러번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소문이 온 이스라엘로 펴져나갔습니다. 어떤 때는 말씀으로, 어떤 때는 눈에 손을 대고, 그리고 진흙을 발라 침을 뱉기도 하면서 눈먼 소경을 고쳐주셨습니다. 원래 팔레스타인 지역은 햇볕이 뜨겁고 건조하여 먼지와 티끌이 많아 여러 가지 눈병을 유발시켰고, 이것이 악화되어 앞을 못 보게 되는 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소경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의 죄와 부모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린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소경은 그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멸시당하는 불행한 삶, 소외된 삶을 살았습니다. 누가 이 아픔과 고통에서 풀어줄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이 눈먼 거지의 아픔과 고통, 소외, 평생의 눈물과 회한과 불편함으로 생을 마감할 소위 죄인이 예수님을 통해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적의 사건은 언제 일어났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고난에대한 이야기를 세 번이나 말씀하신 직후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무슨 뜻인지 모른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시해 버린 것인지? 정말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는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눈먼 거지가 눈을 뜬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코 앞에 두고 극적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9회 투아웃에 홈런 한 방이 터진 것입니다. 역전입니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데, 이 장님은 눈을 떳습니다. 그래서 눅 43절은
". .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를 따라갔다"고합니다. 이 사람이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눈을 뜨지 않고는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함께 가도 그것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았어도 그 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의 가장 큰 소원 중에 하나이어야 할 것 눈을 떠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지나가시기 전에, 역으로 말하면 우리 인생의 40년이 지나기 전에 주님의 뜻 헤아릴 수 있는 성숙한 성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눈먼 거지가 그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눈도 뜨고 예수님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인생 길에서 이제 그만 자기 연민에 갇히지 말고, 그만 눈을 떠 주님을 만나 뵙기 바랍니다. 눈을 뜨기 전에는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불쌍히여김을 받고 눈을 떠 주님과 함께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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