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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아빠다!(2010년7월11일, 성령강림절후일곱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07.11 14:41 | 조회 2089


자랑스런 아빠다!

2010년7월11일(성령강림절후일곱번째주일) 요7:37-38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철이 여름이 아닌가 십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물 부족국가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물이 부족하다는데, 그것은 물의 양이 절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물이 오염되어서 부족한 것입니다. 공장폐수, 축산분뇨, 골프장 등이 오염원이라고 하는데, 사실 가장 큰 오염의 주범은 생활 폐수입니다. 총 폐수 발생양의 60%가 생활폐수이고 그다음이 산업폐수이고, 그 다음이 축산 폐수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결국 우리 각자가 주요 오염원이라는 것이며, 그렇다면 이 오염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부터 생활이 그대로 오염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물에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 바탕이된 출애굽 사건도 물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물에서 건짐을 받았고, 이스라엘이 건짐을 받은 것도 홍해입니다. 광야에서 가장 힘이 들었던 것도 물이 없어서였습니다. 창세기에서 이삭은 우물을 잘 파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신약에서도 물에대한 이야기는 거듭됩니다. 물로 세례를 주고, 실로암 물가에서 눈먼 장님이 눈을 뜹니다.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그 곳에는 수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가 나타나 그 물을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이 병을 고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데스다 못에 는 항상 병자들이 몰려들어 좀 더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려고, 늘 사람들이 빼곡하였습니다. 그러나 전설일 뿐 그 얼마나 허황된 바램이었겠습니까? 아마도 참 생명의 물을 맛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헛된 물을 맹목적으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38년된 중풍병자가 누워있었습니다. 이 사람도 막연히 무작정 다른 사람들 처럼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립니다. 이 모습을 보니 이 베데스다 못의 물이 온통 이 시대에도 흘러넘치고 있음을 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이 베데스다의 못은 한 사람 만을 위한 물입니다. 다시 말하면 빠르고, 힘센 사람이 차지하는 물입니다. 오늘 이시대의 물과 같습니다. 생존 경쟁의 치열함 속에 오직 1등 만이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모두 제일 먼저 뛰어들어 가려고 목을 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주님이 찿아 오셨습니다. 참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서 그 곳에서 가장 상태가 열악한 중 환자를 돌아 보신 것입니다.

이렇게 베데스다 못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먼저 뛰어들려고 경쟁합니다. 욕심의 장소입니다. 그러니 다툼이 일상이었을 것이고, 그러니 소외당하고, 왕따 당하는 , , , 등 이것이 베데스다 못의 흐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물은 없을까요? 창세기에서 물과 가장 연관이 있는 믿음의 조상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물에 관한한 탁월했습니다. 그는 가는 곳 마다 우물을 팠고, 또 그 판 곳에서는 항상 물이 솟아 올랐습니다. 그런데 우물을 팔 때 마다 지역의 원주민과 싸웁니다. 그래서 그 우물이름이 창26:20에 보면 에섹이라, 즉 ‘다투었다’는 뜻이고, 21절에도 보면 ‘싯나’라고 하며 ‘대적함’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조상 이삭은 물로 인하여 다투었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럴 때 마다 자신이 판 우물을 양보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22절에 ‘르호봇’이라는 우물을 팠는데, 이 때에는 원주민들이 시비를 걸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또 브엘세바 라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는 그 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25절에 보면 이삭의 종들이 그 곳에서도 우물을 또 팠다고 합니다. 또 32절에서도 이삭의 종들이 우리가 판 우물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고 하면서 그 샘을 ‘맹세의 우물’이라고 명명합니다.

교우여러분! 생존 경쟁의 터, 광야와 같은 인생의 여정에서 꼭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아갔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물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첫 번째로 시험에 든 것이 물 때문이었습니다. 샘 물을 파야합니다. 그러나 베데스다 못 같은 물을 또 팔 수는 없습니다. 싸움과 분쟁과 이기심의 우물은 이제 메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생명의 물을 길어올려야 합니다.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목 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이 말한 바와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이것은 성령의 물, 성령의 흐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초막절 절기 행사중 가장 정점의 시간인 제8일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으로 향하던 광야생활을 기념하여 초막절 절기를 지키는데, 제사장은 매일 황금 물통을 들고 실로암 못가에 가서 물을 길어 제단 서쪽에 부었고, 백성들은 이에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흔들며 환호하면서 사12:3의 말씀인
“너희가 구원의 우물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어라”라는 싯구를 반복하여 소리쳐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레위인으로 구성된 찬양대가 시113-118의 할렐루야 찬양의 시를 노래하였는데, 이렇게 비를 주시며, 물에 대하여, 특히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모두 죽어갈 때에 바위에서 샘을 내어 갈증을 해소시킨 은혜를 감사하는 의식이 행해졌던 것입니다. 바로 이 의식이 진행되는 중에 예수님께서 물을 붓는 제단을 배경으로 말씀을 외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 내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 안에 흘러넘치는 물의 근원을 찿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늘 갈급하고 목말라 할 것입니다. 물을 대지 못한 논이 쩍쩍 갈라지듯이 영적 샘의 근원에 우리 마음의 샘의 물고가 트이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도 역시 갈라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갈라진 마음 밭에서 나오는 언행이 바로 사람들을 찌르고 아프게 합니다. 마치 물 없는 사막의 선인장의 잎이 가시가 되어 찌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기워진 나무는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잎사귀가 늘 푸르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깊이 뿌리를 내려 지하수에 닿아야 합니다.

땅 표면에 흐르는 물을 건수라고 합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이 금방 마르고, 물도 그리 깨끗지 못합니다. 간혹 사람들이 삶에 어려움을 당하면 이 것 저 것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점도 치고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도는 그렇게 앞이 꽉 막히는 것 같은 어려움이 다가올 때, 그동안 내가 먹고 마시던 건수, 손 만 벌리면 이러, 저러 해결을 해 주던 건수가 말라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그 건수에 미련을 갖지 말고, 마음의 깊은 샘을 파야하는 것입니다.바로 영적 깊은 샘을 파야하는 것입니다. 내적이다, 내면적이다 할 때 성경은 이것을 내 마음, 내 의지, 내 생각이라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내적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 가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깊은 샘을 파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건수에 뿌리를 내린 나무는 곧 시들어버립니다. 그래서 땅 속 깊은 지하수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이 물줄기, 이영생의 물줄기는 하나입니다. 곧 십자가에 달리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부터 흘러나오는 물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영적 샘을 상징하는 극치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어 허리에 창이 찔리어 물과 함께 쏟으신 물입니다. 허리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물입니다.

계시록 22장은 그 비죤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보좌,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그 강이 흘러나와 도시 한 가운데를 흘러 가는데, 그 강 양 쪽에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는 생명 나무가 있어 달 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뭇잎들은 민족들을 치료합니다. 교우여러분 내 안의 마음의 샘이 바로 이 강줄기에 닿아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생명수를 공급 받아야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욕심어린 자기 중심의 삶은 그것은 생명의 삶이 아니라 죽은 삶인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김영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지난 용산 항소심 법정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사실 용산주민이 아닙니다. 자기 동네 역시 철거지역이라 용산의 철거민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우러 갔다가 그대로 망루에 남은 것입니다. 자기 동네 일도 아닌데 용산 식구들이 딱해서 남았다가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되었다. 이 선택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의 처가 노모와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와서 하소연하였습니다. 왜 애들 아빠를 사지에 불렀느냐고. 그 자리에 있던 철거민 연대모임 간사와 용산대책위 대표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 역시 예전에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하다가 감옥에서 몇 년씩 살고 나왔던 분들입니다. 이 글을 쓴 김형태 변호사 역시 중형을 선고받게 만든 책임에 가만히 입 닫고 있을 수밖에 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아들은 아버지가 감옥에 있다는 걸 이제는 다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법정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이에게 김 변호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네 아빠는 정말 훌륭한 아빠다.” 라고 해 주었다고 합니다.

판사의 준엄한 선고를 듣는 내내 빌라도 법정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재판한다는 건가. 판결은 1, 2심 재판 과정에서 수없이 드러난 무죄의 증거들을 애써 외면했고, 토끼몰이식의 터무니없는 과잉진압으로 평범한 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경찰 지휘부의 책임에도 눈감았습니다. 가진 이들만 더 배불리는 부당한 재개발제도에 대해서도 모르쇠였습니다.

이러한 판결을 내리는재판부와 감사에대해 김 변호사는이렇게 이야기를합니다. “어려서부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고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 그 힘들다는 법대에 들어가고 20대 초중반에 소년 등과하여 판검사, 변호사가 된 이들. 50대 중반이 된 그들은 대개 그저 저와 제 처자식 잘 먹고 잘사는 게 전부다. 어떤 이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진실 앞에 눈을 질끈 감기도 한다. 반면에 배운 것, 가진 것 없어도 이웃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함께하다가 피고인 자리에 서고 감옥에 가는 ‘별 볼 일 없는’ 이들도 더러 있다. ”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그는 마하트마 간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교도였으나 기독교 성서의 산상수훈을 높이 받들었다. 세상은 부자와 권세 있는 자를 훌륭하다 일컬으나 산상수훈에서는 가난한 이, 온유한 이, 마음이 깨끗한 이가 복이 있다 한다. 사람들은 약육강식의 험한 세상에서 위로받고 복 받으려 종교를 찾는다. 그러니 가난한 이가 복이 있고 정의 때문에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한 몸 ‘구원’을 최대 목표로 삼는다. 그 구원은 선한 행실이나 노력에서 오는 게 아니고 오로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간디는 이 지점에서 도저히 기독교를 받아들일 수 없노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스승이 걸으신 길,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마다지 않는 그 길을 따라가야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내 죄가 사해진다는 식으로 당신의 가르침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했다. 그는 <신의 자녀들>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비록 종파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지만 예수 고난의 모습은 나의 모든 행동을 지배하는 영원한 비폭력 신앙의 한 기둥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가 영원한 사랑의 법칙에 의해 우리 삶이 통제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면 예수는 헛되이 살았고 헛되이 죽은 것입니다.”

동서고금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자기중심적 삶에서 벗어나라’는 거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곧 ‘사랑과 자비’다. 세상에는 구원이나 해탈에 관한 갖가지 교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사랑과 자비’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이나 해탈도 자기중심적 욕망이다.

저는 이 변호사의 논조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디를 인용해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에대해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때에 그 믿음의 행위를 따라 심판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생명책을 보면 첫 번 째 부활 때 하늘 영광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두 번 째 부활 때에 그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시할 것은 첫째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행위를 따르는 것과 둘째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을 따라 구원 받는 일이 둘로 나뉘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만 남는다면, 그것은 마치 38년된 환자를 포함에서 그 베데스다 못가에 모여든 사람처럼 이기적인, 허황된 구원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김형태 변호사의 말 처럼 또 하나의 개인적인 욕망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신앙이 이렇게 베데스다 못가에 둘러앉아 자기 구원의 이기심에 붙들려 이웃 사랑, 제자도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막12:28-34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어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에게 찿아와 묻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 때 에수님은 첫 째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고 하시면서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나를 사랑하라는 말이 없음을 봅니다. 최근 교회를 통해서 보면 심리치료다, 또 에니어 그램이다 하면서 자기 분석에 열중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 보다는 하나님과 이웃에대한 사랑으로 교회와 성도가 그 신앙의 지평을 넓혀야 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형태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피고인 김영수, 그는 별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구원이나 해탈의 도를 닦은 일도 없지만 이웃이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나앉으려 할 때 옆에서 함께해주었다. 그 결과 시퍼런 죄수복 입고 4년을 감옥에서 썩어야 하지만 그래서 그는 “자랑스런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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