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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2010년6월13일, 성령강림절후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06.13 15:00 | 조회 2526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들

2010년6월13일(성령강림절후세번째주일) 눅8:26-39

얼마 전 도올 김용옥님이 봉은사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천안함 사건에대한 국방부 기자회견 이야기를 하면서 진위를 떠나서 그 사건이 만약 보도된 대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침몰이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정황이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도 여전희 납득이 되지가 않습니다. 최근 소식을 통해 들었지만 바로 그 때 서해에서는 한미합동연합훈령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미국 이지스함 2척과 한국 이지스함 세종대왕함, 최신예 전투함인 최영함, 윤영하함 등 2함대 배속 함정이 모여 합동 훈련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그 날 대잠수함 훈련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최 첨단의 배들이 사고 지점 근처에 깔려있는데(AP통신의 사진으로 본 것 만해도 9대의 군함이 항진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당시 조선일보는 합참의 발표라 하면서 연합훈련이 없었다고 거짓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수함 훈련을 하고 있는데 북한의 잠수함이 들어와 어뢰를 발사하고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는 것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별을 단 장군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단상에 나열하여 마치 개선 장군처럼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도올의 이야기로 참 구역질 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차라리 계급장을 떼고 나서든지, 일본 사무라이라고 한다면 활복 자살을 했을 것이라고 거침 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대 선거의 핵심논란이 되었던 4대강만 해도 국민이 대운하를 반대하자 말을 바꾸어 치수를 목적으로 4대강을 개발한다고 정, 청, 당, 보수 언론을 동원해 총력을 다해 거짓말을 합니다. 부끄러운줄을 모릅니다. 선거 이후에도 여전히 강퍅한 어거지 논리로 4대강을 계속 추진한다고 합니다. 4 대강도 그렇고, 천안함 사건도 그렇고 모두 죽음의 사회, 죽음의 문화를 상징하는 사건들입니다. 천안함을 빌미로 전쟁론 까지 끄집어 내어 어떻게 해서든지 북풍을 불게 하려했던 것을 보며, 그동안 간신히 터 놓은 남북화해의 물꼬를 다 막아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마치 온갖 생물에게 생명을 주며 흐르는 강물을 막아 죽음의 강으로 만드는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벌거벗은 채 오랫동안 그 무덤 가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는 오랜 로마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었기 때문에 모든 이스라엘의 생활이 어렵고 척박하여, 특히 하층 계급의 사람들은 하루 하루 살기가 벅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아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가 암발생율이 세계에서 1위라는 것입니다. 강남에는 방학기간이 되면 외국에 조기 유학간 아이들, 또 강남의 청소년들이 정신치료 상담을 받으려고 정신병원에 몰려드는데, 상담시간을 예약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병원의 병동 같은 사회가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피부 관리, 몸매 관리, 성형 수술 하며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정도를 보면 이 사회가 제 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길 거리를 가다 보면 얼굴에 조로 가면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을 봅니다. 코 구멍과 눈 구멍만 낸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사회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졸업식날 옷을 다 찢어 속옷이 드러날 정도의 연출을 하는 것도 그렇고, 결혼식의 경우도 이벤트 회사를 통해 연예인 같은 결혼식을 연출하는 것을 보면 이 사회가 마치 무덤 같은 사회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데, 예수님을 보고나서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을 때 베드로가 송구스러워 씻지않으려 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상관이 없다”하셨습니다. 교우여러분! 주님과 상관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상관이 없으면 우리는 죽음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어렵다,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거꾸로 이야기하면 은혜의 때인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오는 인위적인, 아니면 눈에 보이는 외적인 값싼 위로가 아니라 주님이 상관하는 위로와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님과 만났을 때, 귀신이 예수님에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에 이미 예수님께서 이 귀신더러 나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귀신을 나가라 할 때 무어라고 하냐하면 ‘악한 귀신’이라고 합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더러운 귀신’이라고 합니다. 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아이를 고쳐달라고 할 때에도 그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도 더러운 귀신이 들렸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자 복음을 통해 더러운 귀신이 쫓겨났다고 합니다. 마10:1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할 때 그 첫 번째 사명이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그리고 초대 교회 때에도 귀신들림은 그 당시 사회적 병리현상이라 하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는 말은 그 당시의 사회의 더러움과 악함을 말해줍니다. 부정하고, 부패하고, 폭력과 성적 타락과 우상 숭배 등의 더럽고 악한 시대적 풍조가 만연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 역시 더 하면 더 하지 이러한 더러움, 악함이 그 당시에 못지 않습니다. 일제 36년의 강점기, 남북의 내전, 그리고 군사 쿠데타, 군사 독재, 그리고 경제 개발에서 오는 물질 만능의 가치로 인한 천박한 부동산 투기 자본주의, 그리고 오직 교육에만 목을 메는 폐쇄적인 사회 에 몰입되어 있으니 사람들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더러운데도, 자신이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전혀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벌거벗어도 벌거벗은 줄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최근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전 검사 출신이며 삼성의 간부였던 김용철씨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 현 재벌들, 특히 삼성이 얼마나 부정 부패의 출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드러난 비자금만 10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편법, 탈법, 부정한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 비자금으로 대한민국의 정부, 언론, 사법, 입법부의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뇌물을 주고 받으면서도 벌거벗었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그 씨스템에 끼지 않으면 못나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간주된다는 있을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주님께서 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주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거라사의 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자기의 이름이 ‘군대’라고 합니다. 왜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이름을 물었을까요? 그것은 귀신이 영적 존재요,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 귀신이 어떤 인격을 갖고 있는가 하면 더럽고, 악한, 폭력적인 인격입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이 귀신에대해 살인자요, 거짓말쟁이라 합니다. 주님은 이 사람으로부터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어 이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사탄 마귀를 쫓아내실 때 주문을 외우거나, 또 악귀를 쫓아낸다고 화젖가락을 등에 대거나, 살풀이를 하지 않습니다. 무당이 귀신을 쫓아낼 때 보면, 무당이 귀신에게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나가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하며 귀신에게 선처를 부탁합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보면 그러니까 귀신이 맘에들지 않으면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문을 외우고, 부적을 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명령하십니다. 말씀의 권위로, 인격적인 권위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지난 번 연합체육대회 때 성령에대해 말씀드릴 때 성령은 힘, 능력 이전에 먼저 인품, 거룩한 성품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도우시며 깨우치시며, 가르치시는 존귀한 분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와 만나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와 만나려고 할 때에도 그 동기가 불순하거나 더럽거나 천박하지 않으십니다. 거칠거나 폭력적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의 열매들을 보면 사랑, 온유, 절제, 인내, 평화 등 사람의 그 됨됨이를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선하고도, 아름다운, 존귀한 인격의 권위로 사탄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나오너라”

오늘 본문 앞에는 예수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는데, 바다를 향하여 말씀하실 때 보면 마치 바다가 살아있는 것 처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인격이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이 인격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모든 피조물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오늘 말씀을 보니 주님께서는 이미 이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했다고 합니다. 변화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이 귀신들린 한 아이 앞에서 쩔쩔매고 있을 때, 그 아이를 데려 오라 하시고는 “벙어리와 귀머거리 되게 하는 귀신아! 내가 너에게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인품으로 권위로 말씀하시는데,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 할 때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대해 믿음의 행위, 사랑의 수고,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영적 권위, 거룩한 인격이 사탄의 힘을 압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이름을 물으니 ‘군대’라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대가 이스라엘에 주둔하고 있었고, 로마는 이 군대를 통해 이스라엘을 통제하였습니다. 우리 나라도 일제 강점기 이래로 남과 북이 대치되어 있는 상황 속에 여전히 군사 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대치 상황은 이 번 천안함 사건에서도 보았듯이 언제든지 권력을 위해 이용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도 이런 군사 문화는 여전히 사회의 저변을 흐르며 불쑥 불쑥 튀어 나와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이 군사 문화는 학교는 물론이요, 교회 속에도 깊 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전도 특공대, 기도 특공대 랄지, 어느 현수막에서 보았는데, “너도나도 기도용사 새벽 마다 총 진군합시다”라는 구호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줄 세우고, 체육시간에 여전히 제식 훈련을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면 된다’, ‘나를 따르라’등, ‘안되면 되게 하라’등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이런 군사적 분위기가 신자유주의의 천박한 자본주의 가치와 교묘하게 결합하여 그야말로 저급한 일등주의 문화를 끊임없이 재 생산합니다.

그런데 그 거라사 지방은 바로 로마 부대의 병참 기지가 있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원래 유대인들은 돼지 고기를 먹지 않지만 아마도 로마 군인들을 위해 유대인들 중에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로마군인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들이 돼지에게 들어가 돼지들이 강에 빠져 몰살한 사건은 이스라엘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의 군대가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신 질환에 빠뜨릴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고, 백성들 모두가 그러한 폭력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 보다도 잘 알 고 있었던 예수님의 표징이었습니다.

그 사건 직후에 놀란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찿아옵니다. 그리고 거라사 지방을 떠나라고 합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혹 그러한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겼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한 귀신들린 아이가 다시 제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돼지가 몰살 당함으로 오는 경제적 손실이 더 안타까운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이 경제만 바라 보고 이명박 정권을 탄생 시킨 이후, 촛불집회에서 시작하여 도시 개발, 언론 탄압, 공교육파탄, 남북관계 파행에 4대강 까지 우리 사회를 폭력과 죽음이 만연한 사회로 몰아갑니다.

이러한 사회의 패역함, 패쇄적이고, 부정한, 부패한, 생명을 죽이는 분위기 속에 예수님이 인격적인 권위로 귀신을 쫓아 냈듯이 우리도 성령의 인격적 감흥과 감화 역사하심을 통해 이 사회 속에서 건강하게, 온전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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