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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2010년 3월14일, 사순절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03.14 13:48 | 조회 208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2010년 3월14일(사순절네번째주일) 마16:13-20
제 차에 자외선 안경이 이 하나 있습니다. 햇볕이 너무 강할 때, 아니면 밤에 운전할 때 역 방향에서 오는 자동차의 전조등의 빛이 너무 강할 때 이 안경을 쓰면 눈의 피로가 덜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전부 노랗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안경을 처음 쓸 때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에서 오는 차량들이 전부 노란 불을 키고 오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났나 했지요, 그런데 가로등이 있는 길로 나갔는데 그 가로등 불 빛도 모두 노란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내가 노란색 안경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한 대상을 바라볼 때 어떻게 보는가는 참 중요합니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수를 바라 볼 때에도 우리가 어떻게 보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하심을 보고 들었지만 예수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느 바리새인 집에 초대되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그 곳에 찿아왔는데, 성경에는 죄인이라 하였습니다. 아마도 창녀가 아닌가 생각을 해 보는데,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 발에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붓고 그 머리털로 발을 씻기어드렸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발끈합니다. 이 여자가 죄인인데, 네가 만일 선지자였다면 이 일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바리새인의 가치나 기준은 율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예수가 죄인과 접촉하는 것을 보고 율법을 어긴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인 후 제자들은 얼마 동안은 이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타고 갈릴리 건너편으로 건너갈 때 였는데,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니까, 5병2어의 기적의 여운이 체 가시지 않은 제자들은 먹을것에대한 이야기를 하는 줄 알고,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모든 것을 율법으로만 판단하는 것 그리고 얽매이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누룩을 밀가루 반죽에 넣으면 순식간에 퍼져나가듯이 그들의 생각과 정신을 조심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시며, 죄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기는 예수님만을 보고 율법을 넘어, 선과 악을 넘어 사랑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시는 구세주를 못 봅니다.

5병2어의 기적은 사람들을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여운도, 파장도 길어 제자들과 모든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었을 뿐만아니라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 까지 보였습니다. 하여간 당분간 가는 곳 마다 5병2어, 5병2어 했습니다. 그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았는데, 사람들을 피하여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갔을 때에도 그 곳 까지 예수님을 쫓아 올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하였습니다. 너희가 나를 찿아 온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배부른 까닭이라는 것입니다. 표적을 본다는 것은 놀라운 기적 사건이 일어날 때, 그 기적에 광분을 할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쫓아 왔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한 마디에 뜨끔했을 것입니다.

요6:26에서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대뜸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엇을 해야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니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하였지만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인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법, 늘 해오던 것, 좋아 하는 것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찬찬히 보라는 것입니다.

한 번은 바리새인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찿아와 묻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무어라 대답하셨습니까? ‘너 가진 것 다 팔아 나누어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요? 이 부자 청년이 사람의 노력으로, 힘으로 무엇을 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일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 한다면 ‘네가 갖고 있는 것 전부 다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다 내어 놓아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발상 자체가 잘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믿고 따르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행함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것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하는 것만이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적과 함께 율법 콤플렉스에 모두 걸려있어, 하나님 이야기만 나오면 율법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요즈음은 무엇을 하려고 하나요? 그렇습니다. 제자훈련, 특별새벽기도, 명성교회의 특별새벽기도는 올림픽경기장의 체조경기장과 올림픽 홀에서 한다고 합니다. 대단합니다. 요즈음 좀 뜸해진 경배와 찬양, 거기서 진화된 힐송, 셀 모임, 알파코스, 아버지 학교, 심리치유, 성경 통독, 요즈음은 영성. . .

간혹 친분이 있는 다른 교회 성도와 만날 때 곤혹스러운 것은 무슨 프로그램, 무슨 교재를 사용하느냐, 즉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훈련부터 시작해서. . . 그것 하나도 안하고 있다고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무슨 교회가 그러냐는 듯이 곁눈질로 째려봅니다. 이단 아니야 하는 눈초리로 가엽고 불쌍해 합니다. 교우 여러분이 보시기에 제가 그렇게 없어보이고, 불쌍해 보입니까? 몇 일 전 머네의 교회의 건물에 붙여논 커다란 현수막을 보고 아연 실색을 하였습니다. 지금 사순절 기간이어서 그나마 교회가 근신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나라 가정과 이웃, 자기 자신을 돌아 보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 보아야 할 때인데 예수 부활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이제 십자가도 띠어내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네가 메시야이거든 어디 한 번 내려와 보라는 말을 하였는데 아예 이제는 십자가라는 말도 없습니다. 교회의 표어가 성공, 신화, 성장, 기복, , 그나마 좀 복음에 접근한 말이 있다면 치유라고나 할까요?

유대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즉 유대인들이 당신을 믿을 수 있게 기적을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자존심이 무척 상한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님 찿아온 것이 빵 때문이라 하였으니 숨은 마음 그대로 드러난 것이지요. 그러자 이에 응대를 합니다. 그들의 방패막이요, 의지하는 모세를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 조상들에게 광야에서 만나를 주었는데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빵을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라고 하면서 그냥 빵 이라 하지 않으시고 ‘참 빵’이라 합니다. 그렇습니다. 먹어 없어질 빵만 머리 속에 가득합니다. 성공, 신화, 축복, 종교적 만족 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빵이 아니라 참 빵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참 빵을 준다고 하니, 그 빵을 언제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결정타를 날립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요6:37에 보면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포인트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보고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하면 믿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믿고 아버지가 기뻐하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행하라는 것입니다. 경배와 찬양, 거기서 진화된 힐송, 셀 모임, 알파코스, 아버지 학교, 심리치유, 성경 통독, 요즈음은 영성이 아니라 주님의 길이 무엇인지 그 길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내 살과 피를 마시라’고 합니다. 그래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어리둥절해 하고 당황해 합니다. 요6:41절에 보면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61절에는 제자들도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처음 보았을 때에도 성경은 수군거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보지 못하면 수군거립니다. 이 말은 주님과 하나되라는 뜻이지요. ‘내 살과 피를 마시라’는 말에 사람들은 낭패를 당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요8:25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묻습니다. 또 53에 보면 사람들은 더 애가 타서 “당신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오”하고 묻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는 누구일까요?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율법의 올무에 걸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은 그들의 권력, 부, 명예를 가져다 주는 유일의 창구였습니다. 율법 위에 어느 것도 있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성역이어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고, 수정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늘의 보안법과 같습니다. 군사독재 때에는 정말 무소 부재의 법이었는데 이것이 아직도 통일과 민주, 이 사회의 개혁과 역사 발전을 가로 막습니다. 예수님이 그 절대 성역의 율법을 건드리신 것입니다. 오늘도 이 보안법을 아무도 건드리려 하지 않는데,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내가 결코 이것은 놓을 수가 없어,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어! 이 것 잃어버리면, 이 것 놓치면 그나마 내 자존심, 삶의 의미는 다 잃어버리는 거야 하는 나의 법, 누가 건드리려고 하기만 해도 발끈하는 나의 율법 주님 앞에 내려 놓지 않는다면, 나의 색 안경을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대화를 나눌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 . .너에게 물을 달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았더라면, 도리어 네가 그에게 청하였을 것이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라고 하니까, 이 여인이 두레박도 없고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 어떻게 나에게 생명의 생수를 줄 수 있습니까 라고 하면서
“선생님이 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한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는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었고, 그와 그 자녀들과 그 가축까지, 다 이 우물의 물을 마셨습니다”라고 합니다. 지금 이 여인은 자기에게 물을 주는 생명과 직결된 야곱의 우물 덕으로 지금 까지 살아왔는데, 그 우물 보다 더 귀한 물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냐고 대답합니다.

이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야곱의 우물입니다. 그러나 이 야곱의 우물을 버리지 않고는 예수님이 친히 주시는 영원한 생명의 생수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여인과 대화하기 전에 먹을 것을 얻으러 갔던 제자들이 다시 돌아왔는데, 요4:28에 보면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와 보십시요! 그 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찿아 왔고, 그리고 예수님이 그 동네에 들어가 이틀을 묶으며 함께 먹고 마셨다고 합니다.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온 마을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교우여러분 예수는 누구인가요? 누가 예수를 알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야곱의 우물, 그리고 그 우물을 퍼 마시는 두레박, 그리고 물을 나르는 물동이를 가지고서는 예수가 구주인 것을 알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 뜻, 옛 관습, 인간 관계, 내 좋아하는 것, 나의 사업. . . 그 모든 나와 연관된 것을 가지고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그러니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어떻게 그나마 자기를 위로해 주고 자기의 생명을 이어주는 그렇게 집착하던 우물에서 떨어질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대한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예수님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을 준다고 하니까 이 여자가 곧 바로 주님의 말을 받았습니다. 그 물을 달라는 것입니다. 어지간히 갈급했던 모양입니다. 3:15절에 보면 구태여 눈치 보며 물을 길으러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대화가 육적인 먹는 물에서 영적인 생명의 물로 넘어가는 그야말로 숨막히는 순간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무어라 말씀하나요?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를 알고, 믿고 따르고 행하는 구원의 기쁨, 은혜 아래 들어가려고 한다면, 우선 자기 자신에 솔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자신의 껍데기, 다른 사람이 바라보고, 다른 사람이 그러하다고 인정하는 나, 넌 왜 항상 그 모양이야 라든지, 너는 참 똑똑하고, 얌전하고, 공부도 잘하고, 얼짱이야 라든지. . . 자신의 직업, 사회적 위치. . . 그러한 것 다 떨구고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적 샘물을 마시기 쉽지 않습니다. 이 여인이 지금 그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영생의 문지방에 올라 안으로 들어갈지, 다시 돌아 나갈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10년 전인가요, 제가 예수회 소속의 캐톨릭 기도처인 수원 ‘말씀의 집’에 피정을 들어갔을 때입니다. 그 때 피정을 지도하시는 신부님께서 나의 삶의 여정, 특히 어떻게 신학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삶, 목회에대한 근황을 솔직하게 A4에 기록해서 제출하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목사가 신부에게 인생 경력을 적어 오라 하는데, 나보다 어려보이는 것 같고 해서 별로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마음으로 신부님께서 시키는 대로 그대로 나의 히스토리를 잘 적어 제출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 10박11일 피정을 통해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지금도 그 때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따라 지금의 목회의 길을 흔들림 없이 꾸준히 가고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여간 이 여인이 자기 자신의 삶을 솔직히 주님께 고백을 합니다. 남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있기는 있었는데, 다섯이 있었고, 지금 함께 있는 사람도 내 남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와 대화하는 끝 마무리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올 것인데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삶을 솔직하게 드러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그렇게 집착하던 야곱의 우물과 이 여인의 사이를 끊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우물에다 물동이를 버려 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 고백하였는데 이미 베드로는 예수를 쫓을 때 모친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 그리고 고기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예수를 쫓았습니다. 그가 그 후 이제야 이 고백을 한 것은 때 늦은 감은 있지만 당연한 귀결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교우여러분! 여러분의 갈증을 일시적으로 해소시키는 우물은 무엇인가요? 또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려 운반해 가는 물동이는 무엇인가요? 이제 더 이상 야곱의 우물에 천착하지 말고 물동이 그 우물에 놓아 두고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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