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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2010년11월21일, 성령강림절후스물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11.21 14:44 | 조회 2096


생명의 성령의 법

2010년11월21일(성령강림절후스물여섯번째주일) 롬8:1-10

지난 주일 말씀에서 죄 가운데서 죽는 다 하였는데, 그래서 마치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가나안 땅을 보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판단과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좋고 합당한 선택과 판단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생각에 미칩니다. 결정적인 일에 그릇된 판단을 하여 그 것으로 인하여 힘들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법과 기준을 정하여 선택하고 판단하며, 정죄하기 까지 하며 살아갑니다. 유대인들이 지금 그렇게 한 여인에대해 심판을 합니다. 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의 기준으로 한 여인을 정죄하려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에대해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리라’하시며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의 일에서 벗어나신 것입니다. 죄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법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수도 헤아릴 수 없는 평가와 판단을 통해 그 관계를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찌 그런 평가와 판단의 삶을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부모와 자녀 간에, 직장에서, 교회에서 상대방을 평가하며 살아갑니다. 저는 그래서 마음 편히 먹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게 판단하며 평가하는 것으로 마음 아프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주님이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기쁘게 살자는 것입니다. 전3:12,13입니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것이 무엇이랴!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
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그렇습니다. 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
로 살자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것에대한 감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창2:9에 보면 에덴 동산 한 가운데에 선악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선악과를 먹지말라 하였습니다. 그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였습니다. 저는 늘 이야기 합니다. 이 나무는 관계의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박물관 유리관 속에 놓여있는 유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 복판에, 언제 어디나 있는, 지금 이 곳에도 실존해 있는 나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 이웃, 부모와 자녀, 선생과 제자, 형제 간에, 남편과 아내, 기업의 고용주와 고용인. . . 무수히 많은 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데 그렇게 관계를 맺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고 더 나아가 관용과 배려. .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으로 관계를 바라보기 십상입니다. 편견으로, 더 나아가 나중에는 아예 선을 긋고 벽을 쌓기 십상입니다. 저 사람은 저래, 저럴 수 밖에 없어 하며 마음에 고정관념을 붙들어 메고 살아갑니다. 그게 바로 죽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좀 처럼 소통하며 나누지 못합니다. 죽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 아프리카의 내전, 이 번에 답사를 떠날 4대강의 경우도 죽었습니다. 관계가 죽어 소통하지 못하니 강이 죽습니다. 관계의 사이에 무엇이 있나요? 말이 있습니다. 소통을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에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말이 교묘하게 왜곡되어갑니다.

다음 토요일에 낙동강 답사를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전 11월6일 답사팀을 인도했던 김정욱 교수님의 강의 중에 공감을 해서 이야기 합니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중에 무엇보다 말이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국토가 오염된다는 것입니다. 이 교수님이 방송출연 교섭이 있었는데, 그 때보를 댐이라고 했다고 방송을 취소당했다면서 보의 말뜻이 ‘작은 저수지’인데, 그게 영어로는 다 댐(dam)이라는 것입니다. 비버가 지은 집도 댐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둑인데 그걸 댐이라고 했다고 방송에 못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운하를 영어로‘water way’라고 하면서 그걸 다시 번역하여 ‘물길’이라고 하여 ‘물길 잇기’라는 말로 교묘히 바꾸어 놓았는데, 원래 우리말에도 물길은 배가 다니는 길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국민들이 운하를 싫어하니까 그걸 ‘물길’이라고 번역해서 ‘물길 잇기’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강 바닥을 준설한다고 하는데, 준설이란 강바닥에 찌꺼기 쌓인 걸 걷어내는 걸 준설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현장에 가 보면 생땅을 파내고 심지어는 돌맹이를 깨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바닥을 완전히 다 파엎어가지고 밑에 있는 생물들 다 죽이고 있는데 그 것은 준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 살리기가 아니라 강 죽이기라는 것입니다.

또 4대강 사업을 영어로 ‘river restoration’, 하천복원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걸 유엔에다가도 등재를 해놓고 대통령이 유엔에 가서 연설할 때도 ‘우리는 4대강을 하천 복원하고 있습니다, river를 restoration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연설했다는 것입니다. 하천복원이 뭔가하면 인공적으로 만들어놨던 하천을 자연 모습으로 돌려주는 것을 하천복원이라고 그러는데, 지금은 자연하천을 다 파내놓고는 또 가보면 알겠지만 옆에는 돌을 쌓고, 수퍼제방을 쌓고, 체육시설 만들고, 강바닥 다 긁어내고 있는데, 이것은 자연복원이 아니라, 자연파괴이지요. 말을 거꾸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과 정부의 신뢰의 관계가 깨진 것인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게 된 것은 뱀의 유혹 때문이었는데,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나무를 먹지 말라’가 아니라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만을 먹지 말라’했습니다. 또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는데 ‘만지지도 말라’는 말은 없습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 처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못 먹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어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 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사탄이 말을 교묘하게 틀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고, 그 유혹에 그만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4대강 사업하며 말을 교묘하게 바꾸는 모습이 에덴 동산의 뱀과 똑같습니다. 이렇게 말의 신뢰, 말이 오염되면 사람들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연도 고통스러워 합니다.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왜곡합니다. 요8:21절에 보면
“나는 가고, 너희는 나를 찾다가 너희의 죄 가운데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고 합니다. 내가 가는 곳에 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기에 올 수가 없다는 것일까요? 아버지의 뜻, 말씀을 따르지 않으니 아버지가 계시는 곳에 갈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국 말씀 아닌 삶을 살며 죽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함께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고 벽을 쌓습니다. 죽음입니다. 율법은, 법은 그러한 판단과 평가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서 먹고 두려워 떨며 숨어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찿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는데, 복음이고 은혜이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그렇게 빛으로 찿아오신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 유대인들이 한 여자를 법으로 정죄하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죄하려는 모습은 단지 바리새인들만이 아니라 사실 우리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평가하고 판단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합니다.도사연하고 싶지만, 모든 것을 둥글둥글하게 처리하고 싶지만 우리는 쉽게 날을 세우고, 선을 긋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을 입고 있는 우리의 연약한, 솔직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 3절에서 육신으로 말미암아 미약해져서 해결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절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좋은 선택, 좋은 일을 하고자 해도 우리를 이 땅에 꼭 붙들어 메는 죄된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를 정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정죄한 것이 아니라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리고 왔을 때 허리를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쓰셨는데, 예수님은 그 때 여인의 죄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을 데리고 온 죄를 본 것입니다. 주께서 죄의 현장에서 죄를 멈추게 하신 것입니다. 판단, 즉 정죄를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1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판단과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바로 예수 안에서입니다. 주님 안에서 만이 참 평화와 안식, 그리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주님이 베푸신 은혜입니다. 왜 우리가 죄와 법의 판단을 받지 않을까요? 2절 말씀은 1절을 한 번 더 풀어줍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
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법 입니다. 율법이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래서 결국 ‘죄 가운데서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성령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키십니다. 9절 말씀에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성령의 법은 어떤 법일까요? 그렇습니다. 소통의 법입니다. 평가하고 판단하며 선을 긋고 벽을 쌓아 결국 모두가 죽음의 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성령님이 인도하시며 깨우치시며 역사하여 소통하게 하십니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길을 트십니다. 고전2:9-12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바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한 것들, 사람의 마음에 떠오
르지 않은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련해 주셨다" 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
은 모든 것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
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소통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오고 가며, 죄로인하여 막힌 것을 성령께서 뚫고 화해시키십니다. 오순절 다락방의 방언의 역사가 바로 그런 소통, 하나됨을 보여준 역사입니다. 그래서 고전2:15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판단과 평가로 힘들어 하였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십니다.

집 안에 웬 낯 선 사람이 들어와서 ‘내가 주인이다’하고 안방에 주저 앉아 있으면 어떨까요? 아마 큰 싸움이 날 것입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내 마음 속에 죄가 찿아와서는 내가 주인이다 하면 여러분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큰 싸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7:17에서 죄에대하여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라 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찿아온 가짜 주인은 경찰을 부르든지 해서 내 쫓을 수 있지만 내 안에 들어온 죄는 어떻게 내 쫓을 수 있을까요? 한 바탕 싸워볼까요? 싸우면 싸우다 인생 끝 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광야로 나아간 이스라엘의 모습과 똑 같습니다.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22에서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라고 하며 누가 나를 건져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합니다. 누가 나를 이 죄의 법, 율법에서 건질 수 있을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말씀 1절 말씀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8장에서 성령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일 들 속에 늘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6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 합니다.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소통하고자 탄식으로 기도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4년전 유시찬 신부님을 모시고 영성집회를 연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마지막날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캐톨릭을 포함해서 많이 풍요로워 졌다는 것입니다. 신학, 사회 봉사, 에배, 건축. . . 모든 분야에서 사회 각 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많은 일을 하며 바쁘게 돌아가지만 정녕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침묵 기도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침묵하며 하나님의 뜻, 말씀을 기다리고, 받아서 따라 행하는 기도 생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기도하며 소통할 때 진정한 소통, 평화, 자유가 우리 안에 넘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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