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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나아오자 Ⅱ( 2010년9월19일, 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09.19 13:53 | 조회 2061


빛으로 나아오자 Ⅱ

2010년9월19일(성령강림절후열일곱번째주일) 요3:16-21

지난 주에 빛으로 나아오라 했습니다. 요3:19 말씀에
“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
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도들이라 했습니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좀 적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어두움과 빛이 함께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은 종이 한 장 차이, 동전의 앞과 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이에 어두움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빛은 없습니다. 아니 있는데 어두움이 빛을 덮습니다. 등불을 등경 위에 올려 놓아야 하는데, 우리를 빛이라 하셨는데, 등불이 등경 밑에 그냥 놓여져 있게 됩니다.

지난 목요일에 산소에 벌초를 하러 다녀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벌초 다 하셨나요. 우리 한국인들의 가족 사랑의 정서이지요. 부리나케 경기도 광주 에 다녀 왔습니다. 고향이 가까워서 참 좋습니다. 근데 고향이 고향이 아닙니다. 우선 가까운 가족들은 이제 전부 서울에 올라와 살고 계시고 우리 고향에는 골프장과 스키장이 들어서서 아버님 산소 바로 아래 거리에는 이제 스키대여 전문점이 죽 들어 차 있습니다. 이제 고향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산소 자리가 있는 문중 산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근데 산소가 장난이 아닙니다. 아버님 산소는 잔디가 잘 자라 풀들이 자리 잡지를 못하는데, 할아버지 산소는 관리를 소홀히 해 주다보니 온통 풀입니다. 한 시간 반 정도 뿌리를 제거하며 산소주변을 벌초했습니다. 봄에 한 번 왔을 때에는 이렇지 않았거든요, 지난 초 여름 장마지기 전에 한 번 더 왔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친 것입니다. 들풀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도 그냥 놓아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허황되고 거짓된, 그리고 이기적이고, 편하려고 하는 속물적인 마음으로 덮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들을 뽑아내려면 참 힘이 듭니다. 산소에 있는 풀이야 눈에 보이는대로 뽑아내면 되지만 마음 밭에 퍼진 잡 풀은 그 뿌리가 어디인지도 모릅니다.

일일이 다 헤아려 뽑아내려면, 그 때부터 이제 도를 닦아야 하는 것이지요. 지난 주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이제 물로 태어나야 하는가, 성령으로 태어나야 하는 가라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로 노력으로 그 좋지 않은 것들을 뽑아내려다 보면 마치 가제가 자기 촉 수를 다 빼내는 허물벗기를 죽기를 다 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잡풀, 이미 오래 전,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의 심성에 새겨진 마음의 씨앗, 뿌리들을 어떻게 뽑아내야 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종교심리적으로 이것을 쓴 뿌리라고 합니다. 히12:5에도 보면 이 쓴 뿌리에대해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
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 엡3:17-
19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
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
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
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보면 벼와 함께 피가 이 곳 저 곳에서 올라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뽑아줍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피를 뽑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냥 놓아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옆에 벼도 함께 뽑힐까 싶어서라고 합니다. 내용적 의미는 좀 틀리지만, 영적인 지혜 중에 한 가지는 피농사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벼 농사 지라는 것입니다. 피는 그냥 냅 두라는 것이지요. 벼를 잘 키우라는 것입니다.

교회 논에 모를 심고 자라는 것을 보면, 처음에 모가 어릴 때는 잡풀들이 더 빨리 자랍니다. 그래서 잡풀들이 아직 어릴 때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놓치면 속수 무책입니다. 그런데 벼가 어느정도 힘을 받아 튼실해지면 다른 잡풀들이 감히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그러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대로 추수 때 까지 특별히 손 보지 않아도 저 스스로 잘 자랍니다. 영적으로, 신앙적으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신앙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어느 시기가 될까요? 아직 윤리적 가치기준이 생성이 되지 않았을 때의 신앙적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소위 쓴 뿌리라는 것이 결국은 가치기준을 타고 뿌리를 내리거든요. 너 잘했다. 못 했다. 이 것 밖에 못해 라든지. 이런 일들은 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가난이나 질병이나, 배우지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열등감, 콤플렉스들을 타고 쓴 뿌리 어두움의 일들이 자리를 잡는 것이지요. 그런데 아직 가치 기준이 성립되지 않은,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 같아야 들어갈 수 있다는 그 말씀처럼 아이들은 기존 윤리나, 선악, 그리고 상대적인 가치에 아직 어린이 특유의 성품 때문에 물들지 않기 때문에 그 때에 영적인 신앙의 가르침은 아이들을 깊은 신앙의 자리에 머물게 한다는 것입니다. 쓴뿌리가 좀 처럼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에대한 신앙적 가르침은 정말로 소중하고 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벼가 일단 자라기 시작을 하면 다른 잡풀이 넘 보지 못하는 것 처럼 우리 마음, 심령에도 말씀과 기도의 자리, 하나님과 함께하며 동행하는 자리가 잡혀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단히 이 일을 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아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내려 보내 주셨습니다. 신8:3은 이에대해
“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당신들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날 마다 아침 해뜨기 전에, 이슬처럼 내리는 만나를 채취하며 이스라엘은 날 마다 하나님 은혜를 맛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의 양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 양식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날 마다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쓴 뿌리 요한복음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늘 하나님과 교감합니다. 호흡하랍니다. 성령의 히브리어 알파벳의 발음이 ‘루아흐’입니다. 이 말의 뜻은 <바람>, <호흡>, <숨>입니다. 호흡을 멈추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내적 교감이 없으면 우리는 영적으로 죽을 수 밖에 없고, 그 때부터 이제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 밭에 온 갖 잡풀들이 자라납니다. 이 마음밭에 자라난 잡풀들이 어떤 풀인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할아버지 산소에 풀들이 천지인데 그 풀이름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보면 수십 종류가 아니라 몇 종류가 그렇게 극성을 부리더라구요. 몇 가지 풀들이 산소자리를 온통 뒤 덮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것으로 덮이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입니다. 나의 약점, 부족함, 연약함을 따라 잡풀들이 뿌리를 내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알 길 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너무나 그 마음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십니다.

고전2:10-12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이런 일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을 살피시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경륜까지도 살피십니다. 사람 속에 있는 그 사람의 영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이 아니
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오신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
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성령이 아십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우리 속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그 마음의 갈래, 뿌리를 어찌 인간의 지혜로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들을 우리로 깨달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입니다. 마음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관계, 역사, 사회, 이웃, , , 그 모든 것들을 성령은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의 은혜를 풍성히 입어야 합니다.

언젠가 ‘폭풍속으로’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FBI로 등장을 하고 패트릭 스웨이지가 강도 털이범인으로 등장을 하는데, 우연히 키아누 리브스가 강도인 패트릭 스웨이지와 파도타기 때문에 가까워집니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최근의 은행강도 털이범이라는 것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체포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도망간 강도를 어디서 체포할 것이냐로 골몰할 때, 키아누 리브스가 체포 장소를 정확히 알아냅니다. 왜냐하면 범인은 세계의 해안을 찿아다니며 파도 타기를 즐기는 메니아인데, 마침 폭풍우가 호주 해안으로 불어닥치는데, 바로 그 몰아치는 거대한 폭풍 속에서 파도타기를 즐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키아누 리브스가 그 파도타기 하는 현장에 이미 가서 대기하는 것 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다음 장면은 잘 생각이 안납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은혜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 거센 폭풍이 몰아칩니다. 감당키 어려운 폭풍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속에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설핀의 매니아들이 가장 거센 폭풍을 찿아다니듯이 오히려 삶의 거친 풍랑이 불 때 그 풍랑에 빠지지 말고 그 풍랑을 타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8에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라고합니다.

아브라함이 진정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후계자가 없는 족장으로서의 위기의식 속에서 였습니다. 모세가 인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가 가로 막았습니다. 뒤에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애굽의 군사들이 추격해 옵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할 때에 모세는 이 출애굽의 여정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14:13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
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새 동풍을 불러일으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을 건널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 때 성경의 기록을 보면 애굽의 군대 쪽에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구름기둥이 막아서 어둡게 하였고, 이스라엘 진영은 환하게 밝혀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환하고 밝게 하는 것이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기는 어두운 자리이고, 저기는 밝은 자리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두움과 밝음이 뒤 섞여있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 참 신앙과 거짓 신앙, 정의와 불의가 뒤 섞여잇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끝 날 때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하겠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의 성령의 불이 희미하고, 여전히 어두운 자리에 걸쳐 있더라도 주께서 내 모습 그대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은혜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 것이지요. 이 빛으로, 이 은혜로 기꺼이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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