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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자(2010년8월 8일, 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0.08.08 15:14 | 조회 2244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자
2010년8월 8일(성령강림절후열한번째주일) 엡6:10-20
군대에는 보충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곳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머무는 곳인데 민간인과 군인의 중간상태여서 이곳에서 이발도 하고, 기본적인 군인 복장을 지급하고, 그리고 집단생활에대한 적응을 하며 기다리는 곳입니다.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중간 상태의 집단수용소입니다. 여기서 참 재미있는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도 이와 유사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성도에대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 합니다. 그런데 신앙에 익숙해 있지 않으면 세상의 삶, 가치를 여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을 군의 무장으로 잘 비유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 뿐만이 아니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군사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아니 사도 바울 시대는 오히려 더 군사문화와 밀접해 군사적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었던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간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군인이 전쟁터에 나갈 때의 개인의 무장을 신앙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마디를 보면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라고 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하라는 것입니다. 건강하고, 활기넘치게 산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군인의 첫 번째 덕목은 강건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집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 원주민인 미디안 족속에게 모욕과 수치를 당하며 살아갑니다. 삿6:2에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 족속 때문에 산에 있는 동굴과 요새에 도피처를 마련해 그 곳에서 생활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봄이 되어 파종할 때가 되면 쳐들어 와 모든 식물을 망쳐놓고, 가축을 남기지 않고 모두 포획해 갔는데 마치 메뚜기 때 같았다고 합니다. 삿6:6에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 때문에 전혀 기를 펴지 못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첫 마디가 주님의 능력으로 굳세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이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스라엘이 주님께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울부짖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들의 삶은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쳐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 이라는 청년을 부르실 때입니다. 6:11에 보면 가을이 되어 가을 걷이를 하게 되었는데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 처럼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즙을 짜내는 웅덩이 속에 들어가 보이지 않게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타작하는 모습만 보이면 미디안 족속이 득달같이 달려와 그 수확물을 모두 탈취해 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드온은 겁 많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겁 많은 기드온을 불러 이스라엘을 미디안 족속에게서 구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겁이 많은 기드온은 거듭 하나님께 증거를 보여달라 합니다. 그래서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놓고 하루가 지나면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마당에는 내리지 않게 하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타작마당에 가서 양털을 두 손으로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 쏟아졌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드온은 하나님께 이 번에는 양털에는 이슬이 안 내리고 마당에만 이슬이 내리도록 해 달라고 하고 그 다음 날 가 보니 마당은 이슬로 축축히 젖어있고 양털은 뽀송뽀송한 그대로였습니다. 이렇게 겁이 많은 기드온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함께하였고 그래서 미디안과 싸워 승리합니다. 기드온은 강하여졌습니다. 강건해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드온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강건하여졌고, 이사야, 예레미야, 예수님의 제자들, 등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게 강건하여졌습니다. 엡3:16에서 사도 바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해주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영적 싸움을 위해서 우리는 강건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것입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전신 갑주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우선 적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적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적을 알면 게릴라전을 치를찌, 공중전, 전면전, 아니면 진을 두텁게 하고 기다릴지를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12절에 보니 적은 ‘통치자들, 권세자들, 어두운 세계의지도자들, 하늘에 있는 악한 영’이라 합니다. 다시말해 영적 싸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혈육의 용기나 인간적인 지혜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적의 수장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여름 납양 특집의 구미호나 처녀 귀신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탄의 정체를 죽음의 권세, 처음부터 거짓말 장이요, 살인하는 자라고 그 인격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허와 무질서와 어두움의 힘입니다. 죄의 권세입니다. 이러한 적들과 싸워 이길 인간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죽음을 이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싸움을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요16:33에서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또한 요일5:5는 그 말씀을 받아 “세상을 이긴 승리는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먼저 진리의 허리띠를 띱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옷은 통으로 되어있습니다. 허리 띠를 조르지 않으면 불편하며 거추장스러워 부자유합니다. 그러나 허리띠를 띠면 힘이 납니다. 씨름, 레슬림, 권투 선수들이 허리 띠를 크고 든든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허리에 힘을 줄때 그 힘을 바쳐주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허리 띠라 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헬라인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헬레니즘의 합리적 논리로 생명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유대교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습니다. 윤리나 철학도 종교도 이 사실,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몸이 다시 사는 진리를 받아들입니다. 그 진리의 힘이 우리의 신앙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둘 째 정의의 가슴막이라 하였습니다. 가슴막이는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의 가슴을 보호합니다. 심장과 허파입니다. 이 부분은 인간의 뇌와 함께 치명적인 곳입니다. 이 부분이 노출되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영적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용사들의 마음, 가슴을 지킬 수 있는 가슴막이는 의의 가슴막이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하다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 왜 저래?’, ‘교회가 왜 저모양이야?’ 하는 비난이 날라옵니다. 이러한 비난에대해 크리스찬들이 크리스찬 답게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나 갈 수 있는 길은 온전한 행함입니다. 행함의 열매, 의로운 믿음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말을 잘하면 사람들은 예수쟁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행위가 없습니다. 양심에 어긋남이 없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딤1:19에 보면 어떤 사람들이 선한 양심을 버림으로 믿음 생활이 파선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양심에 따르는 행위는 무엇 보다 중요합니다. 거짓된 돈, 바람직 하지 못한 직위, , ,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는 일, 모함, 험담과 같은 행위는 사탄의 칼이 그 믿음의 용사의 가슴을 찔러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안되는 일을 되게 하려고 급행 요금을 준다거나, 불법 로비를 행한다거나 하는 것은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특히 관공서의 인허가, 또는 정당한 세금을 피한다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삶의 사사로운 것들이 우리의 신앙을 조금씩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닌 저의의 흉배를 가슴에 차고 가슴을 펴고 세상의 화살과 칼을 막아내야 합니다.

셋째는 복음의 신발을 신는 것입니다. 신발은 이동하려고 하는 사람, 움직이려고 준비하는 사람의 표입니다. 등산 갈 때, 특히 겨울 산에 갈 때 등산화 관리를 잘 해야 겨울 산행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눈이 녹아 신발에 스며들지 않도록 왁스칠을 하고, 신발 안쪽에 비닐을 덧 대었던 기억이 납니다. 복음의 신발은 살아 움직이는 성도들의 징표입니다. 군대가 행군을 하려면 우선 신이 중요합니다. 훈련화를 신고서는 행군을 오래하지 못합니다. 발이 견뎌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죽으로된 군화를 신고 신발끈을 동여 매면 왠만한 행군은 거뜬히 치러냅니다. 오늘 말씀에 평화의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입니다. 평화의 발 걸음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위해 움직입니다. 사방으로 다닙니다. 골짜기, 시냇가, 사막, 눈 길 험산 준령 그 어디에도 나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이 지속적으로 힘차게 한 걸음 씩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바로 평화의 신발, 평화의 발걸음 때문입니다. 편협하고, 이기적인 복음의 발걸음이 아닙니다. 평화의 발걸음입니다. 눅10:5,6에 보면 그 발걸음에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의 힘이 물러나고 참 평화의 기쁨이 드러나는 발걸음이야 말로 신앙의 순례길을 가볍고 기쁘게 해 줄 것입니다. 교회가 새로운 얼굴, 평화의 사건으로 넘쳐나야 활기차고, 기쁨이 넘치는것입니다.

넷 째는 믿음의 방패입니다. 전쟁터에 방패없이 나가면 몸이 적의 공격에 노출되어 어느 취약부분이 타격을 입을지 모릅니다. 권투 할 때 어떤 선수는 상대 방을 얕잡아 보고 커버 없이 경기하다가 계속 잽을 허용하면 10회 쯤 가서 몸이 흐느적 거리고, 다리가 풀려 K.O패를 당하기도 하는 것을 심심치않게 봅니다. 신앙 없이 영적 싸움 하려고 하는 사람은 완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없이 사탄의 세력과 싸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대한 전적 신뢰를 의미합니다. 믿음을 앞세워야 합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사울에게 쫓겨 적인 블레셋 지역에 머무를 때에도, 아들 앞살롬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도망갈 때에, 밧세바을 범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에, 자식들간에 왕권찬탈을 위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끊이지 않을 때에도, 그가 영적 싸움에서 너머지지 않은 것은 믿음의 방패 때문이었습니다. 이 방패는 세상의 어떤 권세도 뚫을 수 없는 그런 방패였습니다. 바로 믿음, 즉 하나님에대한 전폭적인 신뢰였습니다.

다섯 번째로 무장해야할 것은 투구입니다. 바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합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머리 뒷 부분을 보호해 줍니다. 세상에서 살며 지난 과거에 잘 못된 것,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개하고 죄 용서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머리에 쒸워야 합니다. 인간의 합리성과 이성, 논리를 따지다 보면 인간의 지혜를 따르다 보면 구원의 은혜를 잊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지혜를 구원의 투구로 은혜의 투구로 잘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 말씀의 검을 허리에 차야 합니다. 그 동안은 방어적이었다면 이제 사탄의 세력을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면 검이 필요한데 바로 말씀의 검입니다. 히4:12,13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
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
을 가려 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
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 ”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을 3번이나 말씀을 통해 물리치십니다. 갈렙이 80이 넘었지만 여전히 청장년과 같은 강건함으로 기업을 이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말씀, 언약에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 이야말로 우리들의 마음 중심까지 파고 들어온 나쁜 정보, 지식을 몰아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 볼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편지 뒷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마지막으로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군에 있을 때 비상이 걸리고 군장을 검열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잘 챙겼는데도 간혹 한 두 가지를 빼먹어 기압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완전 무장을 한 성도는 이제 싸움터로 나가는데 완전무장을 하고 부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여하는데, 싸움에는 전투가 있고 전략, 전술이 있습니다. 작전 상 후퇴하고 있는데 자기 지역에서 잘 싸운다고 앞으로 전진 해 나가면 그 부대는 고립되어 적에게 포위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단위 부대는 상급 지휘부대와 항상 무전기를 열어놓고 교신을 하여 수시로 작전 상황을 체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잘 싸워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성도들도 영적 싸움을 싸울 때에 항상 하나님과 소통을 해야합니다. 언제 앞으로 나갈지, 물러설지, 이것이 합당한 것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지를 늘 하나님과 교신해야합니다.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며 전투에 임한다면 우리 성도는 오직 물질가치 하나 밖에 드러나지 않은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나눔과 소망, 기쁨과 감사, 평화와 사랑의 백전백승, 생명력있는 역동적인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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