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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하지 말아야 . . .

하늘기차 | 2011.03.07 09:46 | 조회 2046


낙심하지 말아야 . . .(2011년 3월 6, 주현절후아홉번째주일)

2011년 3월 6(주현절후아홉번째주일) 눅18:1-8

마트에서 파는 초에는 금딱지가 하나 붙어있습니다. 소원성취라는 딱지입니다. 지금 있는 초 말고, 좀 더 가늘고, 긴 일반 초 말입니다. 교회는 그 ‘소원성취’라는 딱지를 띠고 촛불을 밝힙니다. 왜냐하면 믿음생활이란 기도 생활이라 할 수 있는데, 소원성취라는 표를 그대로 촛불에 붙인 체 예배를 드린다면 자칫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 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기도는 단지 소원성취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구하고 바래야 하며 신앙해야 하는 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촛불을 밝히는 것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듯이, 촛불을 밝힘으로 우리의 생명이요, 구원이신 주님께서 이 예배에 함께 하고 계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의 심령을 밝히고, 우리 모두를, 이 세상을 밝혀주십니다. 그래서 ‘소원성취’라는 딱지를 띠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아닌건 아니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우리 신앙과 기도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며, 기준이 됩니다. 주기도문이 기도의 내용을 가르치셨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 말씀은 제자들에게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도의 내용과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제자들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찿아와서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유대교의 여러 종파들이 나름대로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리세파, 에세네파, 쿰란공동체, 그리고 세례요한. . . 등 각 공동체, 종파 마다 그들만의 기도를 통해 나름대로의 정체성과 스스로의 연대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공동체 속에 예수님의 기도는 독자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 주기도문이 두 번 언급되고 있는데, 누가 복음이 마태 복음 보다 더 원초적입니다. 이 기도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이 기도와 맞추어 멀리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 나라 체험, 하나님 주권의 회복이 아니겠습니까?

민주주의 나라의 주권은 어디에서부터 오나요? 국민에게서부터 입니다. 왕정국가에서의 나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왕이지요? 모든 것이 왕의 것입니다. 언젠가 ‘효자동 이발사’라는 재미있는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대통령이 그 이발소를 애용했는데, 그 때 경호실장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각하는 국가다’ 웃을 수 밖에 없는, 웃을 수 만도 없는 말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정에서는 누가 왕인가요? 예전에는 아빠였는데, 요즈음은 ‘자식이 왕’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신앙인의 삶에서 누가 주권자인가요?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14:18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 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의 기도가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교회와 마을, 나라와 민족, 온 세계 속에 의와 평화, 기쁨 즉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고, 하나님의 주권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기도여야 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의, 평화, 기쁨은 단지 자신 만의 복, 소원성취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새벽에, 그리고, 철야에, 부흥회에서 이렇게 기도를 한다면 주께서 하나님 나라의 주권자이신 주님께서 ‘잘한다’고 하시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마6:8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에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기도문은 어떻게 기도를 하여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하나님에게 합한 기도인지를 말씀해 줍니다.

그런데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신앙하는 것이 소원성취가 아니라는 말이 개인을 위한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찌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개인없이 어찌 우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기쁨을 위해 구하라고 예수님이 간곡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개인이 스스로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기도가 하나님 뜻에 합한지 아닌지인 것입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한 주에 편지와 인쇄물이 참 많이 옵니다. 다양한 종류의 형형색색의 유인물들이 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보지도 않고, 아니 이면지 사용이 가능한 A4를 사용한 유인물은 골라내고 모두 쓰레기 통으로 들어갑니다. 우리의 신앙과 간구가 그러지 않을까 조심스럽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본인 생각하기에 기도를 응답 받았다는 것은 그냥 자기 힘과 관계와 지혜로 그 소원을 이룬 것이지 하나님은 전혀 모르는 기도의 내용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중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라는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입니다. 나의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나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라고 합니다. 나를 ‘우리’와 떼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기도할 때 우리, 즉 이웃, 나라, 민족, 더 나아가 세계와 자연, 환경, 가축 동물에 이르기 까지 우리를 위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한 과부가 어느 부정한 재판관에게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찿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과부는 구약에서처럼 신약시대에 있어서도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적대자란 원어로는 법적인 소송 상대를 뜻하는데, 과부는 힘없는 약자로서 무언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 같습니다. 부당하게 강제로 재산을 빼앗겼을 수도 있고, 어떤 무시와 멸시를 당해 재판관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해 달라고 재판관에게 고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재판관은 오늘 말씀에 하나님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이 재판은 100% 승부가 결정난 재판입니다. 3절에서는 과부가 재판관에게 ‘내 권리를 찿아주십시오’라고 하는데,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원한을 풀어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ekdikeson'이라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권리를 되 찿아 주어 의를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불의한 재판관에게 의를 세워달라고 고소를 했으니, 의와는 담을 쌓은 사람에게 말입니다.

4절에 보니 ‘한동안’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 재판관에게 이 과부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사람입니다. 돈이 되지 않습니다. 의로움과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또한 이 과부가 고소한 사람이 꽤 지위가 높은 사람이어서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 가난한 과부가 몇 번 말해보고 포기했다면, 재판은 그 것으로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4절 중반에 ‘얼마 뒤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과부가 재판관의 무시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찿아 온 모양입니다. 5절에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 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로 재판관에게 찿아와 계속 요구했는가 하면, 못견딜 정도 였다고 합니다. 못 견디게 했다는 말은 그저 고분 고분 공손하게 말하고 눈물로 감정에 호소하며, 재판관에게 선처를 구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 못견디게 라는 말은 ‘눈 밑을 때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눈이 시퍼렇게 멍들게 한다’, ‘얼굴을 흉하게 만드는 것’,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과부가 자꾸 찿아와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면 재판관의 직무유기, 부정함, 무능함이 점점 더 알려질 것입니다. 결국 재판관이 망신살이 뻗치어, 자기 자리가 위태로울 지경 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결국 재판관이 과부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1장에서도 기도에대해 가르치면서 밤에 찿아와 친구에게 먹을 거리를 주기 위해 옆집 친구에게 빵을 구할 때에도 친구의 우정이나, 어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게 졸라대어서 필요한 만큼의 빵을 구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 18장 앞의 17장의 말씀을 볼 필요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대해 말씀하면서 마지막 때에 사람들의 악한 모습에대해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노아의 시대, 롯의 시대를 보면 범죄에 길들여져 있고, 부끄러움을 모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전 세계적으로 아프리카의 내전, 또 지진과 자연재해,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서해의 세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1만의 미군, 20만의 한국정규군, 미핵항공모함, 최신에 전투기. . .)구제역, 사대강, 서민들을 힘들게 하는 전세난 . . .등 많은 힘들고 어렵다 못해 참담하고도, 자괴감을 불러 일으키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한 번은 집에서 9시 뉴스를 보는데, 재영이가 왜 이렇게 사건이 많아 합니다. 그래서 뉴스는 원래 그런 나쁜 일들을 보도할 수 밖에 없어 그래야 뉴스거리가 되니까 했습니다.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 교우여러분! 교회는, 성도들은 어떠해야 할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낙심이 될 때 기도드린느 것입니다. 수고하다가 더 이상 힘이 빠질 때, 누구의 도움도 요구할 길이 없이 막혔을 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두가 싫어질 때,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사랑이 식어질 때, 장애물이 생겨 한 걸음을 띨 수 없을 때 그 때 바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낙심되고 절망할 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찿아다니지 말고 기도하라시는 말씀입니다.

과부는 정말 힘 없고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사람이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벼랑 끝에서, 이 재판에서 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최선을 다해 자기 할 것을 끝까지 하는 그 가여린 모습이 얼마나 귀한지요?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도와줄 것이라는 의존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귀합니다. 말씀드렸지만 시대가 악합니다. 세상의 풍조, 세상의 악함이 사람들에게서, 가정과 나라, 이웃들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귀함을 빼앗아가는 시대입니다. 참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정말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주권이 세워지기 어려운 때입니다. 낙심이 될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러분들, 그래서 참 평화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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