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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와 소제를 드리자!(2011년 2월 6, 주현절후다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2.06 14:24 | 조회 2873


번제와 소제를 드리자!

2011년 2월 6(주현절후다섯번째주일) 출29:38-42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은 예배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앙공동체요, 예배 공동체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그리고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도착하였을 때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아가 40일 홍수가 끝나고 처음으로 땅을 밟았을 때에도 먼저 예배를 드립니다. 이삭이 우물을 팠을 때에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제일 먼저 드린 것도 예배입니다. 왕권시대의 말기에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켰을 때 회복하고자 한 것도 절기 예배요,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에게 신앙의 처음은 예배입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예배에 무감해 질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멀어지는 것과 예배를 등한시 하는 것이 같이 맞물려 있는 것을 봅니다.

예배에대한 자세, 정신, 그 내용을 우리는 구약, 특히 레위기서를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레1장은 제일 기본이 되는 번제에대해 말씀합니다. 글자 그대로 불살라 드리는 제사인데, 모든 제사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레위기1에서 거듭 언급되는 말씀은 “그 향기로 나 주를 기쁘게 하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내가 즐겁고, 내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또는 사람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면 자기 연민과 공허함에 빠질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우리의 예배는 날 마다 새로울 것입니다.

기도의 지혜, 성령의 요청의 한 모습을 말씀드릴께요. 여러분이 삶을 살며, 감당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혔을 때, 여러분은 물론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그 때 한 호흡 멈추고 주께 드릴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기뻐하실까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아가 가나안을 향할 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호해 주었듯이,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체가 그 구름기둥, 불기둥이 멈추면, 멈추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부리나케 천막을 거두고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행군해 나아갔듯이, 우리가 주님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주 앞에 머리 숙일 때 제일로 중요한 것은 이 일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실까?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하고 하나님 앞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미쁘게 여기어 우리의 마음에 감동으로 찿아 와 주실 것입니다. 바로 그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 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바탕입니다.

역대하19:6에서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나라의 개혁을 일으킬 때 그 때, 지금도 그렇지만 역시 개혁은 사법권에서부터 불어 와야 하지 않는가 싶은데, 그 때 여호사밧 왕의 개혁의 첫 발걸음은 재판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은 재판관들에게 변혁을 촉구하면서
“그대들이 하는 재판은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재판할 때에
그대들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하였습니다. 또 사도행전
에서 보면 제자들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화다가 체포되어 대제사장 앞에 섰을 때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
를 판단해 보십시오”합니다. 사도 바울도 고후5:9에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올 한 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번제는 제사의 기본이었는데, 그 의미는 바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는데,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 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눅15장에서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동전 한 잎, 되찿은 막내 아들의 비유를 들면서 기쁨에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제물을 불살라 드리면서 하나님께 소원했던 죄를 고백하는 것,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바로 번제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구약 말씀에 보면 제물을 드릴 때 아무 짐승이나 다 드리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면 양, 소, 염소, 비둘기를 드리는데, 양은 순종, 소는 신실과 힘, 염소는 ‘대신 사용한다’는 의미가 있고, 비둘기는 평화입니다. 이 동물들의 상징성을 보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할 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가축을 제단에 가지고 와서 그 가축을 가지고 온 사람이 그 가축의 머리에 손을 언고 안수하여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그 가축이 그 사람의 죄를 갖고 대신 죽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대신 죄를 짊어짐으로서 죄사함의 평화, 하나님과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번제는 자원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원하여 십자가 앞에 자기 생명을 내어 놓았듯이 그래서 우리가 죄 사함의 은총을 입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기꺼이 자원해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물은 살아있으면 안됩니다. 꼭 죽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죄 때문에 제물이 대신 죽어 피를 뿌립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와 같습니다. 그리고는 완전히 불사릅니다. 다른 제사는 끝나고 드린 고기를 나누는데, 번제는 모두 기름기를 포함해 내장 등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불살라 드립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시간, 나의 노력, 물질, 생명 까지도 다 드린다는,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았으니 하나님께 드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드릴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각을 뜨고, 가축의 목을 비틀어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자기 죽음을 드립니다. 사지가 짤립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드러낼 것이 없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렇게 잘리운 제물은 이제 성소의 번제단에서 불태워지는데,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 타는 모습을 통해 죄의 심판에대한 두려움과 또 한편으로 그렇게 심판 받아야 할 나의 죄가 깨끗이 씻기웠다는 감사와 기쁨, 찬양과 영광을 돌리며 제사를 마무리 합니다. 이 제사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어 죽음으로 제물없이 예수 이름으로 거저, 값 없이 드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제사는 소제입니다. 이 제사는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니 죽이거나, 피를 흘리지 않습니다. 번제는 죽음을 대속하기 위해 생명 있는 것을 대신 드리는 제사라고 한다면 소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려야할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번제 없이는 소제도 없는데, 역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소제는 추수한 곡식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데, 그 때 아주 곱게 빻아 고운 가루를 내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 곱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온유입니다. 말씀 앞에 온유입니다. 자기의 것이 마치 가루가 곱게 빻아지듯이 나의 것이라고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전부 빻아지는 것입니다. 곱게 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릴 때 말입니다. 민수기 12:3은 모세를 지상에서 가장 온유하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조금만 힘들면 자기에게 불평 불만을 쏟아 붓고 하나님께 원망 시비하여 모두 멸망 당할 때에 그들을 사랑하여 자기를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할 정도로 생명을 내 걸고 하나님께 기도한 온유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조카 롯과 땅의 경게로 시비할 때 기꺼이 자신의 몫을 내어준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요13:1의 말씀처럼 제자들을 끝 까지 사랑하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가는 사랑이라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끝은 생명과 닿아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운 가루를 헌신하여 드릴 때 기름으로 잘 반죽을 합니다. 그냥 반죽하면 뻑뻑합니다. 그러나 기름을 부으면 부드럽습니다. 자기 힘으로 하면 힘이들고 뻑뻑하고 삐그덕 거립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구석구석 기름을 바르면 부드럽습니다. 교회 래 공방에 기계대패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태순집사님께 기계가 뻑뻑하다고 하니 집사님 사업장의 기름을 조금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기름을 기계 베어링 벨트에 치니 참 부드럽게 돌아갑니다. 우리 가정에 교회에 우리 모두의 고운 가루에 이렇게 기름이 필요합니다. 기름을 치면 서로서로 소통이 잘 됩니다. 또 유향을 바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의 집에 이르렀을 때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랬더니 온 방이 향으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곱게 빻아 성령으로 드려지는 헌신에 향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풍요롭고, 맛과 향과 색이 있습니다. 건조하지 않습니다. 그 헌신의 아름다움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꽃의 향이 벌과 나비를 부르듯이 그렇게 곱게 빻아 향을 친 소제가 멀리 멀리 퍼져나갑니다. 알게 모르게 이전에 맛 보지 못하는 향을 피웁니다. 하나님도 기뻐하는 헌신 말입니다. 그 옥합을 깨뜨린 그 헌신입니다. 빌4:18의 말씀입니다.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
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
시는 제물입니다”

그런데 넣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누룩과 꿀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을 더럽고, 죄스러운것, 나쁜 것을 전염시키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그 누룩을 하나님 나라가 퍼져 나가는 의미로 사용하였는데, 그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아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5병2어의 기적 이후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누룩은 죄, 부패, 나쁜 전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곱게 빻은 고운 헌신의 가루에 누룩을 넣어 부풀릴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달콤한 유혹을 의미하는 세상적인 즐거움, 쾌락, 세속의 것,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운 가루에 섞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소제물에는 소금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은 음식물에 넣으면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소제의 제물에 소금을 치도록 한 것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언약은 영원히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민18:19에서 소금언약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들어 올려 나 주에게 바친 거룩한 제물은, 내가 너와 너에게 딸린 아들
딸들에게 영원한 분깃으로 모두 준다. 이것은 너와 너의 자손을 위하여 주 앞에서 대대
로 지켜야 하는 소금언약이다”이 언약이 세월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면서 그 맛을 잃은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번제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 민2:2에 보면 그 중에 가루 한 줌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합니다. 그 한줌을 드리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번제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 내 생명을 내 주고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이 구약의 제사를 신학교에서 그대로 재현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 가축을 죽일 때 차마 가축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난 주 성인식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민수가 집에서 가족같이 키운 개 칠손이를 잡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 어찌 우리가 교만하며, 자기 연민에 사로잡힐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살기 위해 그렇게 누굱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죽음을 대신 살아야 하는데, 특히 성도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내 삶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어찌 곱게 빻아 향과 기름과 소금을 넣고 잘 반죽하여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 가 라는 것입니다.

제사를 통해 우리는 생명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기 연민에 머물러 있을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기꺼이 구속의 은혜를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가장 고귀한 제사가 무엇일까요?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었일까요?

롬12:1은 말씀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
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몸이라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엡2:14에서 예수님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에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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