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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 종말의 현상을 보며( 2011년 1월31, 주현절후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1.31 15:15 | 조회 2435


묵시적 종말의 현상을 보며

2011년 1월31(주현절후세번째주일) 창6:17-22

지난 번 설교 때 지금의 시대가 마치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종말의 때와 비슷한 징후의 시대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세상을 정화시키며 회복시키기 위해 재앙을 내리시는데, 그 대표적인 재앙이 전쟁, 그리고 천재지변, 그리고 질병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세가지 모두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곁에 절박하게 다가와 있는 것을 봅니다. 계시록의 배경을 보면 전 지구적이며, 우주적입니다. 재앙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나는데 지금이 딱 그렇습니다. 아마도 세계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바뀌면서부터 급속히 하나의 지구,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재앙의 모습이 보인다구 이리 뛰고, 저리 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마지막 때에 대해 메시지를 보낼 때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고, 이전 처럼 기도하라며 일상의 삶을 열심히 살라는 말씀을 빼 놓치 않는 것을 봅니다. 우리도 그러한 모습으로 지금을 바라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는 연합제직수련회를 통해 지금 이 땅에 겉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는 구제역과 기독교의 신앙이라는 주제로 양재성 목사님께 귀한 말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교회 홈피에 동영상을 올려 놓았으니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꼭 보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도 역시 이 번에 우리 모두에게 충격을 준 구제역과 관련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은 마침 때 맞추어 우리 교단 총회의 군농어촌선교부에서 낸 자료집을 간추려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나마 우리 교단에서 늦은 감은 있어도 적시에 나름대로의 고민의 흔적을 이렇게 자료로 내 놓았고, 이 자료가 우리 통합교단에 속한 전국의 교회로 보내졌습니다.

횡성의 한경호 목사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착하면서 모압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이스라엘이 자기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저버린 일에대해 민25:2,3 말씀
“모압 사람의 딸들이 자기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하였고, 이스라
엘 백성은 거기에 가서 먹고, 그 신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
과 결합하였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다.”을 인용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가나안 땅에 도착하였는데,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모압 사람들의 삶을 보니 얼마나 풍요롭고 윤택한지 모릅니다. 그들의 농사법, 그들의 신, 그들의 생활 풍속 그 모두가 광야에서는 누릴 수도 볼 수도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색다른 삶의 모습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모압 사람들과 결혼을 하고 그들의 삶에 젖어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져버리고 모압의 신인 바알에게 무릎을 꿇는 지경에 이르릅니다. 바알은 풍요와 수확과 땅의 신이요, 농사를 위해 꼭 필요한 비를 내리는 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금방 모압에 동화되어 자신들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하기 위해 온갖 기적과 이적을 베풀었던, 홍해를 가르고,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40년 동안이나 보내주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바알부올에게 가담한 지도자들을 처형하게 합니다. 그 때에 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24,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락과 풍요, 편리함, 그리고 쾌락이었습니다. 이런 유혹에 빠지면 영적으로 타락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육신적인 유혹은 우상숭배로 이어지고 영적인 부패와 타락으로 빠지게 된다는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라는 대규모 가축 질병으로 몸살을 앓고있습니다. 그 원인은 잘 알고 있듯이 우선은 공장식 기업형 축산입니다. 좁은공간에 밀집 사육하면서 빨리 살찌우고, 알 많이 낳고,젖 많이 나도록 기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생제, 성장촉진제, 호르몬제등 각 종 첨가제를 일상적으로 주니 가축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병에 취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축은지금 생명체가 아니라 하나의 물건이요 상품입니다.

축산의 규모가 이렇게 커지게 된 이유는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는 빠른 속도로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에 완전히 편입되었습니다. 1등 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제 중심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규모를 크게 키우고 빨라져야 합니다. 힘을 키워야 합니다. 1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것은 1934년도라고 합니다. 그 이후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지난 2000년에 파주에서 처음 발생하였습니다. 농산물 수입개방이 본격화된 1980년대 중반부터 IMF사태가 일어나기 까지의 시기와 궤를 같이합니다. IMF이후 세계경제체제에 편입되면서 이는 더욱 심화 되었습니다. 농민들은 이런 경제 여건의 변화에서 살아 남으려고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구제역의 두 번째 원인은 물질 수준의 향상으로 국민들의 식생활 습관이 달라졌습니다. 육식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육류소비가 지나친데, 우리나라에서 도축되는 가축의 수가 연간 10억 마리라고 합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먹어대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인병이 급증합니다.

셋째로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품종을 개량하여 종 다양성이 크게 감소했습니다. 품종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감자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수 천종에 달하는데 지금 농민이 재배하는 품종은 100종이 채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다양성이 감소하니 질병 앞에 취약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이 다양하면 한 가지 질병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돈을 좀 더 벌어보려는 상업적인 목적이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안락하고, 풍요롭고, 편리하게 먹고 살려고 하는 모두의 욕망이 깔려있습니다. 우리의 물질 생활은 크게 향상 되었지만 그러다 보니 물질숭배 현상이 만연합니다. 이 번 구제역발생도 그렇게 물질이 생명 보다 우선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물질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모압 여자들과 결혼하여 바알 신을 숭배하면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 보려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편리와 풍요를 구가하며 물질숭배에 빠져서 생명을 물질로 여기면서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요? 이 번 구제역은 하나님의 진노의 암시, 전조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우리 동네, 우리 교회 친구인 이상권 선생님의 동화 중에 성인식이라는 청소년 소설이 있습니다. 그 책 내용에 방학 동안에 시우가 고향집에 내려오자 어머니는 아들 몸보신 시켜준다고 한식구나 마찬가지인 개 칠손이를 잡겠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것도 시우에게 직접 잡으라는 것입니다.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힌 시우는 ‘못 먹는 술을 먹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물을 흘리고’ 내면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댑니다. 그러나 어느새 시우는 개 칠손이 앞에 칼을 들고 섭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시우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저 개를 죽인다고 아파하지 말고, 내 몸속으로 작은 목숨 하나 끌어들인다고 생각해라.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고 저 개 잡아서 네 목숨으로 만들고 가라. 그것이 사는 것이다.” 시우는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잔인하고 뼈아픈 성인식을 치릅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먹걸이에대한 소중함 말입니다. 우리 입을 통해 들어가는 모든 먹거리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가 밥이다’하신 말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기겁을 하며 기괴하게 여겼는지 모르지만 이미 예수님은 우주 만물의 진리를 꽤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워낭소리라는 소와 주인과의 다큐 영화 속에서도 보면 주인과 소는 하나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안동인터넷뉴스에 구제역으로 키우던 소를 살처분 해야하는 상황에 맞닥드린 안동의 한 농부의 이야기가 눈물겹습니다.
“이 소죽을 끓여 먹이고 나면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텐데”
그동안 소에게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밭에 떨어진 감 이파리를 먹으려고 할 때 그냥 둘 것을... 겨우내 먹이려고 장만한 꼴도 아끼지 말고 더 먹일 것을...”모든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는 동안 소죽은 끓기 시작했고, 그것을 소에게 먹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맛있게 먹는 소의 모습을 아버지는 차마 볼 수가 없어 소의 목을 끌어안고 속으로 참아왔던 울음을 밖으로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곁에서 소를 쓰다듬으며 함께 보던 어머니도, 누님도, 여동생도 모두 함께 엉엉 울었다. 여동생은 휴대폰 카메라로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마지막 가는 소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그 사이 형님은 경산에서 새벽에 출발해 제설작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빙판길을 안동시내에서 일곱 고개를 넘어 위험을 무릅쓰고 차를 몰아 고향집으로 가고 있었다.
“형님! 소가 나가는 모습을 아예 보지 못하도록 부모님을 어디 다른 곳에 모셔다 놓고 소를 데리고 가세요.” “부모님들이 그렇게 하겠나?”
형님이 고향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동시청 살처분 처리반도 도착했다. 매몰처리지로 말한 오미골은 어제 내린 눈으로 길이 미끄러워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른 곳으로 정해야 한다고 형님이 전화가 왔다. 되도록이면 부모님이 볼 수 없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박골에 가서 묻고 오겠다”고 형님이 말했다.
가능하면 소를 차에 태우지 말고 형님이 직접 몰고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형님은 “관계자가 그렇게 해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소가 집을 떠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부모님은 방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가며 애써 밖으로 나오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슬픔을 삼켰다.
그렇게 우리 가족이 아끼고 사랑했던 소는 어느 여름날 소 먹이러 가는 것처럼 형님이 몰고 나가, 부모님의 슬픔을 뒤로 한 채 박골로 향했다.
형님이 소를 몰고 박골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용인에 있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병도 걸리지 않았는데 소를 꼭 묻어야 합니까?”
“우리소가 걸리지 않아도 예방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묻어야 한다.”
“시료를 채취해서 검사라도 해보고 걸렸으면 묻어야 하지 않나요?”
“국가시책인데 우리라고 예외일 수는 없잖아”
“소보다 사람이 먼저 가겠어요.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어떻게 되면...”
평소에도 약간 억지를 부리는 동생이었지만 내가 공직에 몸담고 있으니 어떻게 해보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누군들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생각 같아서는 달려가 생떼라도 써보고 싶었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형님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우리 가족이었던 소는 소리 없이 생을 마감했다. 소를 묻고 온 형님은 리어카를 개조한 아버지의 자가용을 보기가 싫다며 망치로 부숴버렸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소죽을 끓이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잠시 뒤 아버지는 소를 몰러간다며 동구 밖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마구에 둘러친 노란테이프를 보시곤 한참을 멍하게 서 계셨다. 소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아 챈 아버지는 힘없이 돌아서며 가슴속으로 전해오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음보를 터트리셨다.

언젠가 무탄트라는 책을 통해 호주 원주민의 원초적 삶에대한 이야기를 읽은적이 있는데, 거기서 먹거리를 위해 야생 동물을 잡아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때 그 원주민은 짐승을 자기에게 오게끔 하고, 그 짐승도 자기가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고, 그래서 기꺼이 그 사람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는데, 이 원주민은 그 짐승을 잡기 전에 먼저 그 짐승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미안함을 이야기하면서 통관의식을 거치는 것을 보고, 신비롭고, 생명의존귀함의 가치를 느끼기도 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골의 촌부들이 아니 얼마 까지만 해도 이태훈 집사님 집 우리에서 키우던 소 두 마리가 생각이 납니다. 정말 식구 같이 살겹게, 그리고 가축이 죽을 때가 되어 그냥 또 다른 생명으로 밥이 되어 이어지는 생명의 고리가 우리 나라에서는 초가집 처럼 그렇게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숭고함과 아름다움과 생명의 순환은 끝이 났습니다. 자본과 욕망에 이 생명의 일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이제 죽음, 재앙 외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사람 뿐 아니라 동물들도 모두 끌어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피조물은 동물이면 동물, 식물이면 식물 모두 인간과 함께 각기 그 나름의 생명의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각 피조물의 생명을 우리 인간에게 잘 보호하고 돌 보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피조물을 착취하고, 파괴하였습니다. 공장식 기업형 축산 뿐 아니라, 우리는 중동에서 그 엄청난 원유 자원을 마치 그것이 인간의 것인 양 마치 곰의 웅담을 빨대로 빨아 먹듯이 그렇게 빼어먹습니다.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천연의 밀림도 조금씩 조금씩 점령해가고 있습니다.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경악할 일이 양재성 목사님말대로 지구가 태아난 이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갖춘 신생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인대, 이 신생대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이때에 과연 이 지구를 다시 살릴 것인가, 아미면 지구와함게 사라질 것인가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방향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였던 농부 전희식 님의 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약에 말이다. 시애틀 북미원주민 추장이 그랬던 것처럼, 구제역으로 살육당하는 소·돼지를 대표해서 1970년대를 살았던 늙은 소 한 마리가 연설을 한다면 오늘의 구제역 사태를 두고 뭐라 한탄할까?

전에 우리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살았습니다. 논에서 쟁기를 끌었고 무거운 등짐을 장터로 옮겼습니다. 진실된 노동으로 한 통의 여물을 받았고, 짚 몇 단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아 고단한 하루를 넘겼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제사상이나 명절상에 귀한 음식으로 오르긴 했지만, 한 번도 식탐의 재료가 되어 사시사철 고깃집에 걸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달포 사이에 100만 마리나 죽임을 당해 언 땅에 파묻혔습니다. 매일매일 소주에 곁들여 우리를 뜯어 먹던 이들이 포클레인 삽날로 우리를 짓뭉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앙을 왜 죄 없는 소·돼지에게 뒤집어씌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좁은 쇠창살 속에 가두어놓고 평생을 사료만 먹이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90% 이상을 외국에서 사온 사료를 먹이면서 눈앞에 펼쳐진 7월의 무성한 풀밭에는 제초제를 뿌려대고 우리는 단 한 입도 풀을 뜯지 못하게 한 게 누구입니까. 짝짓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는 강제 인공수정으로 새끼만 빼내 가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구제역이 왜 번지는지 정녕 모르고 하는 짓들입니까. 대량살육과 생매장으로 과연 구제역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나 하는지요? 예방 백신만 확보하면 이런 사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 넣듯이 지금의 배합사료는 쇠고기 만드는 공장에 넣는 공업용 원료입니다. 우리는 원래 되새김 동물입니다. 위가 네 개인 우리는 되새김질을 해야 정상적인 순환작용, 소화작용을 합니다. 유전자조작(GMO) 옥수수를 갈아 만든 이따위 배합사료는 단백질 덩어리와 다름없습니다. 1:1로 균형을 이뤄야 할 오메가6 지방산이 오메가3보다 무려 66배나 많은 옥수수는 되새김질은커녕 목구멍을 넘기면서 흡수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몸은 망가지고 살만 찝니다. 막사 구석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항생제들은 우리 몸뚱이를 지탱하는 의족이자 의수입니다. 우리는 늘 약물중독 상태입니다.
소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리면 반경 얼마 안에는 전부 몰살당해야 하는 이 비참을 누가 조성했습니까. 자식같이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살처분당했다고 통곡하는 축산농가에 할 말이 있습니다. 정녕 자식을 이렇게 키우는지 묻고 싶습니다. 영양제와 항생제로 자식을 키우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축사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 컨베이어벨트 쇠갈고리에 걸려 빙글빙글 돌면서 바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그들은 알 겁니다. 목숨이 다 끊기지 않은 채로 머리가 잘리고 사지가 조각납니다. 이런데도 자식처럼 키운다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 거북합니다. 인간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못해 원혼이라도 살아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좁은 이 땅에 소만 340만 마리나 됩니다. 갓난애부터 노인병원 와상환자까지 다 쳐서 14명당 한 마리입니다.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됩니다. 세 끼 밥 먹고 살자고 이런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끝 모를 탐욕과 식욕을 부추긴다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진정 파묻어야 할 것은 공장식 축산이며 돈벌이 목적의 산업축산입니다. 시급히 생매장해야 할 것은 과도한 육식문화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에 보탬이 되고 싶지 건강을 망치는 원흉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정 한 식구처럼 살고 싶은 것은 우리들입니다. ‘축산물’이 아니라 ‘가축’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왕상8:37-39에 솔로몬 왕이 성전을 봉헌할 때 드린 기도 내용 중에
“이 땅에서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 떼
나 누리 떼가 곡식을 갉아먹거나, 적들이 이 땅으로 쳐들어와서 성읍들 가운데 어느 하
나를 에워싸거나, 온갖 재앙이 내리거나, 온갖 전염병이 번질 때에, 주님의 백성 이스라
엘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주님의 백성 전체가, 재앙이 닥쳤다는 것을 마음에
깨닫고, 이 성전을 바라보며 두 팔을 펴고 간절히 기도하거든,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계
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판단하셔서, 그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각 사람
의 마음을 아시니,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십시오. 주님만이 모든 사
람의 마음을 아십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교회가, 성도가 그동안의 욕망을 떨쳐버리고 말씀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기존의 삶을 바라보는 차원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으로 세상을 바라 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교회가 바로 그러한 삶의 자세를 찿아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도 나름대로의 구체적인 삶에대한 방향전환을 고민 해 보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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