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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2011년 1월16, 주현절후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1.16 13:55 | 조회 2922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2011년 1월16(주현절후두번째주일) 요13:1-8

오늘 말씀의 앞 장 11, 12장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고 난 후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동안 예수에 대해 요의 주시하고 있던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공식적으로 죽이기로 결정을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국회요, 검찰이 정식 구속 영장을 청구한 것 과 같습니다. 또 12:10에서는 대제사장들이 다시 산 나사로로도 역시 죽이기로 합의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대제사장 구룹들이 주로 사두개파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부활이다, 천사다 하는 영적인 것을 믿지 않았는데,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으니 그들이 믿고 있는 교리에 치명적 오류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그러나 세상 왕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 말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입성하였지만, 사람들은 제자들을 포함해서 모두 예수를 세상의 왕으로, 그러니까 자기 욕심으로 예수를 바라보지, 진정 평화의 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정황 속에서 마지막 식사의 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갑자기 뜬금없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 뜬금없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눅22:24에서 누가 더 상좌에 앉을 것인지 다툼이 일어났다고 하는 말씀을 보면, 또 마20:20이하에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자신의 두 아들에대해 요즈음으로 치면 청탁을 하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제자들 사이에는 묘한 권력 쟁탈을 위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분위기가 마지막으로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묘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닦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곧 세상을 떠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어, 즉 죽음을 앞에 놓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 13장은 사랑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1절은 예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말합니다. 끝 까지 사랑한다고 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의 뒷 부분에서도 사도 요한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을 받지 않는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사랑에대해 말씀하는데, 역설적으로 배반의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발씻는 일은 원래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는 스승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승의 발을 씻는 것이 일반입니다. 그러나 이 날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질이 이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이렇게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소외되고, 병들고, 감옥에 갖힌자, 고통받는자를 위해 헌신하는 것? 그렇지요, 그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그야말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겉 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습니다. 6절 말씀을 보니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 베드로가 한 마디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자, 베드로가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본질이라는 것이 낮아져 예수님 처럼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실 때 받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그 사랑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받는 것입니다. 그 발씻음의 은혜를 체험한 사도 요한 요일4:10에서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
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섬기거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섬기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에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에대한 우리의 순종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사랑을 베푸시는데 베드로가 그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스스로 무엇인가 예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교만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우려할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나님일 한다고 하는데 자기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합니다. 예수님을 핀잔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느낌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고난에 대해 제자들에게 조심스럽게 처음으로 말씀을 꺼내셨을 때에 베드로가 했던 말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마16:22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
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고합니다. 그 때도 발 씻을 때와 마찬가지로 베드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꾸중하려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안다고 그랬는데, 유대교적 전통으로는 이 일에대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바로 14 장에서 예수님은 진리를 깨우치시는 보혜사 성령에대해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진리는 성령의 깨우치심으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베드로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게 될 것입니다. 감사요 은혜입니다.

그리고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씻기지 아니하면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상관이 없다고 하는 말의 의미가 깊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대부분 ‘have no part with me’로 번역이 되었는데, 헬라어 원어 성경에는 meros라고 ‘상속’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내가 너의 발을 씻지 않으면 너와 나눌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4장에서 거듭 제자들에게 아버지께 먼저 가서 준비한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14:3에서 보면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을 것이고, 그리고 17:24에서는 창세 전의 영광을 함께 볼 수 있게 기도하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이 ‘상관이 있다’, 또는 ‘없다’는 것은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여 각 지파 별로 가나안 땅을 상속받는 장면이 민수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레위지파는 상속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민18:20에서 레위지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레위지파인 아론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그들의 땅에서는 아무런 유산도 없다. 그들과 더불어 함께 나눌 몫이 너에게는 없
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네가 받은 몫, 네가 차지할 유산은 바로 나다.”라고 입니다. 바로 이 레위 지파가 받을 상속이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 꼭 받아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11지파와 달리 레위 지파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신 것입니다. 부동산이 아니라 영원하신 생명을 상속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 씻기는 행위 속에는 이렇게 내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베푸시는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이 세상에 되어지는 어떤 것 보다 귀하고, 크며, 헤아릴 수 없는, 내가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죽어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의 가늠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앞에 두고, 뒤에서 이집트의 군대가 추격해 올 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한 말씀입니다. 출14:13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 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것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발을 씻지 말라고 합니다. 절대로 씻기시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한 베드로가 13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 유명한 쿼바디스 도미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에게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목숨 바치는 것은 주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는 그 은혜를, 그러니까 먼저 그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아니 주님이 내 발을 씻기시려 하실 때 감사로 내 발을 마치 엄마에게 처럼 선뜻 내 놓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의 일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에게 넘쳐야 합니다. 달란트가 큰 사람은 큰 일을 할 것이고, 달란트가 작은 사람은 작은 일을 할 것입니다. 크고 작은 것이 사람들에게는 평가의 기준이 될 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 공과와 업적은 정말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인데,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얼마나 풍성히 받고 있는 가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이것이 전부인가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런 것을 보고 짝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에대한 사랑을 고백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8:35 이하에서 예수님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
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
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
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
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
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
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디 까지 일까요? 끝 까지라고 했는데, 그 끝이 어디일까요? 요3:16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사랑의 끝은 생명을 살리는 것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전부 가짜입니다. 그러니 그 생명 살리기는 말씀과 이어져 있습니다. 말씀과 사랑과 생명은 하나입니다. 요14:21에서 예수님은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포도나무 바유에서도 15:10에 보면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말씀, 계명을 따르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우리를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 따라, 그 말씀에 순종하니 생명을 살립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고 이 사랑에 우리는 깊 숙히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발을 씻기지 아니하면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이 나의 삶에 어느 정도까지 상관해야 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내 삶의 어느 자리 까지 간섭해야하는 것일까요? 예를들어 아이가 고3이 되었습니다. 좋은 학원을 선택해야 하는데, 이 학원을 다닐까? 저 학원을 다닐까?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응답을 기다리는 관계 까지 일까요? 사업을 하기 위해 가게 자리를 얻어야 하는데 어느 자리가 좋을까? 하고 하나님께 묻는 관계 까지인가요? 사실 그렇게 주님이 내 삶에 간섭하면 부담스럽고, 피곤하지요?

그런데 주님이 상관한다는 것은 그런 식이 아닙니다. 그런 발상도 결국 자기 개인을 중심으로한 발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상관이 있다,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특히 요한복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항상 이야기 한 것 중의 하나는 아버지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일심동체이면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말이 참견하거나, 잔소리로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부간의 사랑이 서로가 서로에게 둘이 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그리고 친구 사이, 형제 사이에도 서로 간섭하거나, 참견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아니 제자들, 그리고 부름 받은 백성과의 관계는 이렇게 서로 하나된 관계인 것입니다. 요15 장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그렇게 하나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와 상관하시며, 말씀해 주며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말씀 17절에서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봉사, 헌신이 그렇게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말로 축복인 것입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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