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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2011년9월11일, 성령강림절후열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9.11 16:03 | 조회 2052


염려하지 말라

2011년9월11일(성령강림절후열세번째주일) 마6:25-34

늘 그래왔지만 참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장바구니 살림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올 추석 명절에 물가가 너무 올라 장을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최근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의 합의도출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다 주었습니다. 그래도 비정규직 문제, 일용직 노동자들, 강정 마을, 등록금 문제, FTA비준 등 해결되고, 풀어야 할 문제들은 여전합니다. 특히 저는 우리나라의 핵 발전소 문제는 참으로 심각하다고 봅니다. 하여간 신문과 T.V 등 정보 매체는 항상 사건, 사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염려가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염려라는 것을 늘 머리에 이고, 허리에 지고 다니게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살전5:16-18의 말씀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어휴 어떻게 항상, 쉬지말고, 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할지 모르겠지만, 늘 염려 근심을 지고 다니는 우리의 속성을 아시고, 아마도 우리의 죄된 모습인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라는 것 같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신문 펼쳐놓고 늘 근심 하시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요일5:4에서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다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가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의 근심과 걱정, 염려의 구조 속에서 기적 같은 소망, 감사, 사랑의 씨앗을 싹 틔워 자라, 열매를 맺으라고 세상에 속하여살던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니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빌3:14-16은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
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합니다. 계속되는 근심의 구조 속에서, 인류 역사상 한 번도 이 구조가 바뀌지 않았는데, 이 구조 속에 하나님 이스라엘을 택하였고, 아브라함을 택하였고, 다윗을 불러 믿음, 소망, 사람의 삶을 살게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짐이 무겁다고 하지 말기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5:3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낳아주신 분을 사
랑하는 사람은 다 그분이 낳으신 이도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 계
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
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11:28-30에서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
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의 짐을 지는 것으로 힘들어한다면, 그 근심 염려는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7:10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입니다. 근심, 걱정은 죽음입니다. 어두움이고, 죄의 온상입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신앙의 열심을 뒤로하고 근심으로 하루를 보내시겠습니까? 아니면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로 나가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걱정하지말라!’하십니다. 무려 7번 씩이나 그러셨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염려하며 걱정할까요? 오늘말씀 30절에 보면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종종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시는 것을 봅니다. 한 번은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탔는데 풍랑이 일었습니다. 마침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는데, 제자들은 어찌할 줄을 몰라 쩔쩔매다가 주님을 깨웁니다.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하며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 책망하셨습니다. 역시 제자들이 배에 타고 있을 때 인데,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이 탄 배에 다가갔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다! 했는데, 예수님이신 줄 알고,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나아가다가 그만 몰아 치는 파도에 무서워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그 때에도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5천명이 배불리 먹은 후 제자들이 여전히 그 기적에 취해있을 때, 예수님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자 제자들이 ‘우리가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면서’ 쑤근쑤근데자 예수님께서 또 한 마디 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자들아! ’ 할 때 보면, 제자들이 무서워하고, 의심하고 이해하지 못할 때입니다. 무서워하고 의심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무서워합니다. 의심하지 말아야 하는데 의심합니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그럴까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섭지 않은데 무서워합니다. 의심할 것이 없는데 의심합니다. 무서워하는 것, 의심하는 것에대한 본질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보면 무서워하지도, 의심하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히11:1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믿음은 바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을 보아야 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할까요?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말의 헬라어는 ‘하말티아’인데, 그 뜻은 ‘과녁에서 벗어나 있다’입니다. ‘왜곡되어 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등을 돌리고, 숨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니, 사람도, 자연과 세상도 온전히 보지 못하고 욕심과 이기적인 눈으로만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섭리, 창조 질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 질서를 망각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벗어나 있어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좋은 줄을 모릅니다.

요즈음 수퍼 스타 K열풍이 대단합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에 우리 아이들하고 함께 그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경쟁이 치열합니다. 미국인도 이 경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중에 크리스라는 청년이 나오는데, 이 번주 미션은 출연자들이 구룹이되어 중창을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이 크리스가 속해있는 팀에는 아무도 가지 안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2 사람이 모두 한국어에 익숙치않아 하루 밤 꼬박 곡을 편곡하여 화음을 맞추어 발표를 해야하는데,의사 소통이 되지 못할까봐 아무도 나서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한 남자 아이가 그 팀에 용기를 내어 들어가서 4명이 한 팀이 되었는데, 언어는 다소 안통하더라도 그들이 즉흥적으로 뿜어내는 화음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Queen 의‘Somebody to love’를 불렀는데, 예전에 퀸이 런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것을 들었을 때의 그 웅장함은 대단했거든요. 그런데 과연 이 4사람이 어떻게 이 곡을 하루 밤 만에 편곡하여 소화해 낼 수 있을 까 했는데 우려였습니다. 그 4사람의 각자의 개성으로 빚어진 화음은 퀸에 조금도 뒤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심사결과를 보니 출연자들 중에 한 팀 전체가 다 합격한 팀은 이 팀 밖에 없드라구요.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오디션 직전 최종 연습을 해야하는데, 갑자기 크리스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전화를 해도 않받고, 이 곳,저 곳을 다 찿아도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한 참 만에 주차장 한 구퉁이에 등 돌리고 앉아있는 크리스를 팀원이 발견하였습니다. 등을 두드리며, ‘여기서 뭐 해’했더니, 자신 없다는 것입니다. 떨어질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팀 멤버가 바로 처음에 자진해서 이 팀에 들어 온 청년인데, 크리스를 데리고 오디션장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크리스는 여전히 불안해 하며,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때 그 팀의 팀장인 크리스티나가 대원들의 손을 붙잡고 둥그렇게 둘러서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잡혔습니다. 기도 내용이 잠간 들렸는데 잘 기억이나질 않습니다. 기도 후에 크리스의 표정은 하늘을 가리키며 하나님께 무언가 눈 빛으로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디션 무대에 섰고 어느 팀에서도 없는 팀 전원의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팀의 크리스가 그렇게 자신없어하는 모습에 의아해 했습니다. 불안해 하는 모습, 염려 걱정하는 모습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냉정한 의미에서 실력이, 또 운이 안되면 거기까지구나 하면 되는 것이고 실력이 되면 합격할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렇게 해도 마음은 그렇지가 않나 봅니다. 두렵고, 떨립니다. 어쨌든 그 마음을 잡아준 것이 팀과 함께 둘러서서 잠깐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아닌가 십습니다. 평정심을 다시 찿은 것이지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것이지요.

그 오디션 심사가 크리스에게 너무 크게 다가온 것입니다. 우리식구들이 평가하기에 크리스의 실력이 최소한 아무리 못해도 마지막 12명이 겨루는 오디션에 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두려워하는 모습에 안타까웠습니다. 바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 마음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바로 우리의 약하고 지혜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33절에서 보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하십니다. 저는 크리스가 속해 있는 팀이 오디션 무대에 서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먼저 하는 일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바로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좋다고 한 것을 좋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신앙이 아닌가 십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크리스가 속해 있는 팀은 오디션에서 벌어질 여러 가지 상황과 경쟁자들, 심사위원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성경은 먼저 하나님을 바라 보라 하십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으로 인하여 두려워 떨 때에 골리앗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삼상17:45-46입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
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
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 믿음대로 아니 보는대로 되었습다. 다윗은 골리앗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볼 때에 그 땅의 군인들,성곽들 만을 본 것이 아니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다른 10명은 그 땅에 있는 것들 만 보았습니다. 함께 출애굽하였고, 함께 하나님의기적을 체험하였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보며 5,000명이 먹고 12 광주리를 남길 수 있는 풍요를 볼 수 있는 눈을 주님은 갖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를 내 놓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꿈쟁이 요셉은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형들을 만났을 때,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하나님이 먼저 나를 보내셨다고”,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을 합니다. 실제 요셉이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지만 처음에 요셉을 애굽으로 보낸 것은 하나님ㄴ이 아니라 형들이 요셉에 질투가 일어나 아랍 상인에게 동생을 팔아 넘긴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이 아니라 등장하지도 않는 하나님이 나를 먼저 이 곳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의 길에서 자신을 인도하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모습들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성령의 감동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좋은 은혜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이 잃어버렸습니다.

몇 일전 텃 밭을 둘러 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은 것 같은데, 사진을 찍으면서 안경을 벗고 찍었는데, 그만 안경을 밭 어디다 놓고는 사진을 찍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날 공방에서 작업테이블 만드느라고 작업하던 기억, 그리고 제 방에서 작업하던 기억만 나지 밭에 들렀던 기억은 전혀 나지가 않는 것입니다. 한 3일 찿았는데, 지난 주에 김은기 집사님이 생태교실 시작하려고 교회도 둘러 보고, 집사님이 가꾸는 텃 밭도 보다가 제 안경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는 안경을 잃어버렸는데,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잃어버린지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이 하나님을 잃어버렸는데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아니 잃어버린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어떤 일에 빠져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길 가는 여정에 없어서는 안되는 꼭 필요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곳곳에 놓아 두셨는데 우리는 그 곳을 아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감사, 기쁨, 평화, 용기, 믿음, 풍요. . . 이 좋은 보석 같은 것은 피해가면서 염려, 분노, 미움, 싸움, , , 만을 골라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귀한 보석을 에서와 같이 팥죽 한 그릇에 바꾸어 먹지는 않았는지요?

주님은 하나님 잃어버리고,(하나님을 잃어버리니 평화, 사랑, 나눔, 감사기다림, 관용, , ,다 잃어버렸습니다)세상의 일로 근심, 걱정하는 세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고 역정을 내십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공중의 나는 새와 들의 백합에게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언젠가도 이야기 하였지만 현대인들이 불안해 하고, 염려하는 이유는 미래에대한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대가 하도 빨리 변하여 스스로 계획하고, 예측하여 행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핸드폰 교체 주기가 정말 2년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산 멀정한 핸드폰이 2년 쯤 되면 여지없이 낡은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빨리 변하니 예측 불허입니다. 농경사회 때에는 진정 아버님이 하던 대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하던 대로 특별히 계획하고, 예측할 필요없이 농사를 지으면 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얻은 정보가 얼마 지나면 또 새로운 정보에 밀려납니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교육의 목적을 보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모든 것이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대학도 취직을 위한 사설학원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안타까워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아니 공공연하게 이야기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면서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칠지 진정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먼저 해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심어주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 방법, 목적은 결국 사망으로 향하지 않나 싶습니다. 요일5:4는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근심과 걱정의 구조로 되어져 있는 세상에서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았는데, 우리가 다시 그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마치 부자 청년 바리새인이 근심하며 돌아가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가르칠 까요? 자녀들의 신앙을 방관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일 수 있고, 지혜롭지 못한 모습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왕을 이어 왕으로 추대될 대에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외의 다른 것도 더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다윗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마지막으로 인간의 수를 다하여 죽음을 맞이할 때, 다윗이 아들 솔로몬을 앞에 놓고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이 2:2-3에 나옵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간다. 너는 굳세고 장부다워야 한다. 그리고 너
는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걷고, 주님의 법률 과 계명, 주님의 율례와 증거의 말씀을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다”고 합니다.

먼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 헤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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