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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손만 보는 다윗(2011년8월14일, 성령강림절후아홉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8.14 15:06 | 조회 2584


사울의 손만 보는 다윗

2011년8월14일(성령강림절후아홉번째주일) 삼상27:1-4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자 사울은 불안해 합니다. 사울이 불안한 것은 다윗의 전승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사울은 다윗 뿐만아니라 다윗을 옹호하는 아들 요나단도 창에 꿸려고 하였습니다. 이쯤되면 제정신이 아닙니다. 인륜을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오늘 이 시대를 돌아보아도 인륜이 무너집니다. 불특정인을 아무 이유없이 해하는 일이 여기 저기서 생깁니다. 얼마전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연쇄살인도 그렇습니다. 일본의 쓰나미를 통해서 본 자연 재해, 그리고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등 인류에게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마치 방어벽이 무너진 것 처럼 거대한 공포로 다가옵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벗어나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처럼 인류 역시 하나님을 너무 멀리 떠나 있는 것 같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피생활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추적해 온 사울을 아주 근거리에서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두 번이나 살려주기도 합니다. 사울은 다시는 다윗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하였지만 여전히 다윗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렇게 사울을 근거리에서 살려준 직후입니다. 다윗은 이러다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생명의 위협이 극심해지자 비록 이미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다윗은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 땅으로 망명을 합니다. 블레셋 땅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 갔다고 합니다. 가드는 블레셋의 5개 도시 중의 하나로서 예루살렘 서남 쪽에 위치해 있는데, 여호수아 11장에 보면 아낙 자손이 여전히 살아 있는 지역이라 합니다. 바로 거인 골리앗의 출신지역이기도 한 곳입니다. 바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이 골리앗의 고향으로 간 것입니다.

다윗이 일시적인 안전을 위해 조국 이스라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피신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21:10에 보면 다윗이 먹을 것이 없어 아히멜렉 제사장의 집에 찿아가 은신하여 먹을 것과 무기를 구한 직후 이미 가드왕 아기스에게 찿아간 경험이 있습니다. 이미 마음이 그 쪽으로 향하여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다윗이 아기스 왕을 만날 때 미친척을 했다고 합니다. ‘성문 문짝 위에 아무렇게나 글자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려 보기기도 하지만 블레셋은 다윗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곳에서 나와 모압 땅으로 갑니다. 모압은 형제의 나라이긴 해도 그렇게 관계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 땅에서 나와 모압의 아둘람 굴로 피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족들 뿐만아니라 압제에 시달려 도망나온 사람들, 억울한 일을 당하여 찿아온 사람들 등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다윗에게 찿아와 다윗은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400여명과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다윗은 모압 왕에게 간청하여 부모가 모압왕과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다윗은 다시 산성으로 돌아갑니다. 어떻게 보면 산적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그 후 다윗은 계속 광야와 산성을 찿아다니며 살게 되었고, 사울은 끈질기게 다윗을 쫓지만 23:14에 보면
‘사울은 날마다 다윗을 찾았지만,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 다윗이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준 것입니다. 그렇게 힘겹게 살다보니 이전에 찿아갔던 가드성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드로 넘어가자 사울은 더 이상 다윗을 쫓지 않았지만 다윗은 원수의 손 아귀에서 종노릇하며 생명을 부지합니다.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임금님과 궁에서 함께 살기에는 너무 송구스러우니 붙여먹을 땅이나 하나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자 왕은 다윗에게 선뜻 시글락 땅에 머물 것을 허락합니다. 이 곳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경계지역인데, 다윗은 이 곳에서 살면서 그술, 아말렉, 기르스와 싸워 전리품을 얻으면 아기스 왕에게 이스라엘과 싸워 이겨 전리품을 가지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블레셋 왕을 흡족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 거짓말이 들통날까봐 싸움을 치르면 적을 완전히 진멸하였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1년 4개월 동안을 적의 나라인 블레셋에 봉사하며 생명을 부지하였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경계에 서서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구걸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왜 원수의 편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사울을 살려주고 나서 26:25에 보면 다윗과 사울이 각자 자기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27:1에 보면 ‘혼자서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 ‘일어나서’ 자기를 따르는 부하 600명을 거느리고 ‘넘어갔다’고 합니다. 합당하고 마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자기 경계를 모르고 사람들은 남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일 수입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넘어가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을텐데 하나님께 구하였다는 말이 없습니다. 블레셋으로 향한 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었습니다. 사울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자기 생각대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이 파탄이 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아내 사라와 협의하여 자기 생각대로 사라의 몸종 라헬의 몸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나서 부터입니다.

결국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블레셋과 첫 전투에 임할 때 였습니다. 사무엘이 일주일 후에 자기가 오면 그 때 번제와 화목제물을 하나님께 드릴터이니 그 때 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가오자 사울도 군사를 모아 블레셋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오지를 않고, 블레셋의 숫자는 점점 늘어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흔들리며 군사들이 초조해 하며 불안해 합니다. 군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슬슬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다급한 마음에 사울이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 막 번제를 드리자 그 때 사무엘이 전쟁터에 왔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왜 제사를 드렸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러자 사울이
“백성은 나에게서 떠나 흩어지고, 제사장께서는 약속한 날짜에 흩어지고, 제사장께서
는 약속한 날짜에 오시지도 않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여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주님께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레셋 사람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서 할 수 없이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생각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기도하지 않자 그의 생각이 그를 지배합니다. 결국 넘어가고 맙니다. 블레셋 국경을 넘었다고 합니다. 사울의 손만 보인다고 합니다.

28장에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한 판 승부를 건 전쟁체비를 합니다. 그 때 아기스가 다윗에게
“귀관이 나와 함께 출정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줄 아오. 귀관은 부하들을 거느리
고 직접 출정하시오”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임금님이 아시게 될 것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아기스가 다윗에게
“좋소! 귀관을 나의 종신 경호대장으로 삼겠소”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전쟁에서 적장의 경호대장이 됩니다. 믿음의 다윗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이스르엘과 아벡에 각각 집결하여 일전을 불사하려고 할 때입니다. 다윗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전전긍긍합니다. 다윗은 진 뒤에서 부하들과 함께 아기스왕을 경호하며 따라갑니다. 다른 블레셋 장수들은 각기 수천 명 씩 그들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앞서 이스라엘을 향해 나아갑니다. 일촉즉발입니다. 그 때 다행히 블레셋의 장수들이 다윗이 이전에 어떻게 블레셋을 물리쳤는지를 이야기하며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아기스 왕은 마지못해 다윗에게 블레셋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 때 사울은 블레셋과의 일전을 앞 두고 신접한 여자를 만나 사무엘과 대화하는지경 까지 망가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 전투에서 사울과 아들 요나단은 마지막 최후를 맞이합니다.

왜 다윗이 그렇게 자기 생각에 머물렀을 까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도의 능력, 기도의 응답에대한 바램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하루 하루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욕구, 열망, 소망, 힘, 계획, , , 만남, , , 일, 그 어느 것도 찬찬히 살펴보면 결국 기도입니다. 기도라는 말의 뜻을 보면 빌기(祈) 빌도(禱)입니다. 무엇인가를 무엇에게 바라는 행위입니다. 만일 우리가 참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다른 것에 기도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의 처음에는 자기 연민 속에서 자기의 필요한 것을 구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지면, 찬찬히 살펴 보면 무엇을 받기 보다는 하나님을 바라게 됩니다. 시16:5에서 다윗은
“주님이야말로 내가 받을 유산의 몫”이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의 궁극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데 무엇하러 기도하는가?’라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의 본질은 하나님께 무엇 달라고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기도는 은혜에대한 감사요, 여호와 하나님께대한 사랑의 응답인 것입니다. 아이들이 생일날 ‘생신축하합니다’ 하고 작은 선물 내 놓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좋다’는 말 외에 더도 덜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아마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기도하는 우리를 그렇게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려고 막 힘쓰지 말기 바랍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면 빌4:6말씀처럼 사람의 헤아림, 생각, 판단, 가치, 이성, 인간에게서부터 오는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 평화, 세상이 줄 수 없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십자가에서부터 흘러 넘치는 절대적 평화가 우리를 감쌀 것입니다. 그 때 까지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이든지, 그 종착점은 평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으로부터 오는 평화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의 은혜에 머물고 싶으면, 그러니까 내가 필요한 것을 나에게 바라는 그러한 식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롬8:26,27에서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
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
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신다고 합니다.

다윗은 순간적으로 하나님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놓았습니다. 그렇게 깊은 신앙의 사람인데도 놓칩니다. 그러니 사울의 손만 보입니다. 아브라함도 어려움이 극심할 때 하나님의 손을 놓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손만 보입니다. 그 사람의 손이 자기를 붙잡아 주고 이끌어 줄 것만 같지만 결국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이스마엘에 붙들리고, 엘리에셀에게 붙들립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27:1에 보면 다윗이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그래서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면 사울이 이스라엘에서 자기를 찿다 지쳐 포기를 하면 그 때에 사울의 “손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 사울의 손만 보았습니다. 블레셋 골리앗을 물리칠 때의 그 호쾌한 신앙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
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하면서 거인 골리앗 앞에 방패도, 칼도 없이 조약돌 5개만 들고 나아갔던 다윗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1절에서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붙잡혀 죽을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3:14에서 보면
“ 하나님이 다윗을 사울의 손에 넘겨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출동할 때 마다, 벌써 다윗이 그것을 알고 피하였다고 합니다.

살고 죽는 것이 모두 하나님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쫓겨다니는 것에 지쳐 그만 패배의식이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으로 망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 거친 풍랑을 보며 빠져가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보면서 갈 때는 바다 위를 걸었지만, 풍랑을 보자 겁이 덜컹 나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주님께서 빠져가는 베드로의 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셨습니다.

나를 도우시는 분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천자를 지으신 여호와의 도움만을 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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