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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보내 달라하니, 보살펴 주심(2011년8월 7일, 성령강림절후여덟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8.07 13:40 | 조회 2182


저를 보내 달라하니, 보살펴 주심

2011년8월 7일(성령강림절후여덟번째주일) 느2:1-8

바벨론 포로생활, 그리고 그 이후의 역사가 구약성서에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를 통해 기록되어있습니다. 물론 예언서를 통해서도 그 시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니엘서 역시 바벨론 포로기 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늘 헷갈리게하는 것은 구약의 성경이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로 되어있어서 이 순서가 역사적인 순서로 종종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벨론이 페르시아에 멸망을 하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모든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정책을 폅니다. 이에따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고래서 왕은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축 할 것을 명령하면서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 줄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바벨론이 이스라엘에서 가지고 온 모든 기물들을 다 돌려주라고 명령합니다. 에스라서는 이 상황을 1:1에서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합니다. 이 것이 바로 신앙인 것입니다. 나에게, 민족에게, 교회와 이웃, 또는 여느 공동체에게, 인류와 자연 환경에서 되어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 신앙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전부 다’입니다. 아니면 아닙니다. ‘전부다’라고 하니 중동 사람들 처럼 모든게 다 알라의 뜻, 섭리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종교에 함몰되면 안됩니다. 그러니 ‘전부다’라는 신앙에는 용수철 같은 긴장감이 있어야 합니다. 끌고 댕기는 힘이 느껴져야 합니다. ‘전부 다’신앙을 문자적으로, 말초적으로, 개인적으로 보면 엉뚱한 일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신앙의 언어에는 무수한, 깊은, 넓은 은유와 상징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의해서 명령이 떨어지자 이스라엘은 3차에걸쳐 이스라엘로 귀환합니다. 그 첫 번째 귀환을 주도한 사람은 스룹바벨입니다. 스룹바벨은 B.C 538~515 기간에 활동을 하면서 하나님의 재단을 먼저 쌓고 예배를 드렸으며, 성전을 건축하고, 이스라엘의 신앙적 절기를 다시 회복시킵니다. 성전을 건축하면서는 사마리아인들의 방해와 모함으로 한 때 건축이 중단되기도 하였으나, 함께 이스라엘로 돌아온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에 힘입어 성전 건축을 완성합니다. 그 후에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귀환이 이루어지는데, 에스라는 성전 건축 이후에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에서 돌아서게 하는 영적 대각성을 일으킵니다. 에스라의 귀환이 B.C. 457년 경이니까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과의 공백이 60여년 정도 있는데, 바로 그 공백기에 일어난 사건이 에스더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이스라엘로 귀환하지 않은 백성들이 멸절 당할 뻔 했던 사건입니다. 사실 당시의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혀와 살고 있던 이스라엘의 인구는 200~300만 정도의 숫자였다고 하는데, 그런 반면에 이스라엘로 귀환한 백성은 스2:64,65에 보면 고작 종을 포함해서 49,897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 이미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바벨론 사회에서 꽤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고, 실제 예레미야 예언자도 거짓예언자들과 달리 곧 돌아가지 못할 것이니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결혼하여 가족을 일구라는 명령을 하기도 하여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잘 정착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신앙은 사라졌겠지요.

그런 즈음에 1,400Km 떨어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사람들의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들려오는 소리는 예루살렘 성곽은 다 파괴되었고, 성전도 다시 건축해야 한다는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6:13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루터기’는 바로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스라엘에대한 심판이 끝나고 남은 자들은 바로 돌아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재건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성전건축과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다음에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의 성곽을 재건합니다. 느헤미야서는 바로 그 마지막 완결편인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 있어서도 먼저 해야할 일과 나중 해야할 일, 소중한 것과 덜 소중한 것, 마땅히 해야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이 있는데, 지혜로운 사람은, 즉 기도하는 사람은 이러한 것을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제일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나님께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절기를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합니다. 그 다음에 백성들을 위해 성곽을 재건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새로워지려면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아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가 라는 것은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세 번째 귀환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아직도 이스라엘의 성곽은 파괴되고 성문은 불탄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으며, 그 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라는 소식을 직접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제국의 술을 맡은 고위직 관리로서 부귀 영화를 누리며 여타 이스라엘 백성들 처럼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성벽 재건의 소식을 기다리다가 성곽은 파괴되고 성문은 불탄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에 울컥 울음을 쏟아내며 슬픔에 잠겨 며칠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면서 6절에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도 죄를 지었다고 회개를 합니다. 8,9는 죄로부터의 회복에대한 성경의 정형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종 모세를 시키시어 하신 말씀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주님
께서 우리를 여러 나라에 흩어 버리겠지만,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와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실천하면, 쫓겨난 우리가 하늘 끝에 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거기에서 우리를
한데 모아서, 주님의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으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하신 그 말씀을, 이
제 기억하여 주십시오” 이 기도는 이미 모세오경 레26:27-45 그리고 신29:14-30:10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흩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돌아오게 하십니다. 회복입니다. 이 과정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정형입니다.

느헤미야는 1:1에 기슬월, 즉 양력으로 치면 11월경에,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2장에 보면 니산월, 즉 3,4월 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소식을 듣고 4,5개월이 지났을 때에 하루는 왕에게 술을 따라드리는데, 아닥사스다왕이 안색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당시 제국의 왕 앞에 신하가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왕의 심사를 불편케하거나 어두운 모습으로 왕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왕의 ‘안색이 좋지 않구나’라는 이 한 마디에 느헤미야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말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나름대로 얼굴 관리를 하였겠지만 예루살렘에대한 근심이 겉으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공적으로는 표정 관리를 해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있는 그대로, 내 모습 그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안좋으면 안좋은 모습 그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공적으로, 아니면 힘 앞에 무대에 서는 사람처럼 인위적인 표정을 지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항상 진실된 모습,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데 오늘 말씀에 아닥사스다 왕이 자애로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기록에 보면 아닥사스다 왕은 나약하고, 오점을 수 없이 남겼다고 합니다. 매우 무기력하고, 신경질적이며 괴팍스러운 인물이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약점이 있는 사람에게 느헤미야가 민족 재건 사업을 간청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입니다.

느헤미야는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왕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왕이 또 묻습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죽음의 자리일 수도 있는데, 구원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마치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던 경우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다니엘이 하나님에게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환관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할 때와 같습니다.

4절 말씀에 느헤미야는 먼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왕에게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이후 일정을 통해 느헤미야가 보여준 용기, 지혜, 결단, 설득 등의 모습은 빼어난 지도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유능하고, 지혜롭기 이전에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죠지 뮬러와 같은,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느헤미야와 같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소원을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왕에게 이야기 합니다.
“임금님께서 좋으시면, 임금님께서 소신을 좋게 여기시면, 소신의 조상이 묻혀 있는 유
다의 그 성읍으로 저를 보내 주셔서, 그 성읍을 다시 세우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6절에 보니 왕후도 옆에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니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마도 사적인 편안한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왕후가 있었다는 것을 보면 왕후가 느헤미야의 귀환을 적극 도와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기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고 묻는데, 아마도 그렇게 오랜 기간을 요청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녹을 먹는 신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5:14에 보면 12년 동안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지냈다는 것을 보면 기간 연장이 있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참 놀랍고 인간의 지혜가 미치지 못합니다.

7,8절에 느헤미야는 거듭 실제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왕에게 요구합니다. 마치 자기 것을 사용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고향 땅 유다로 가려면 서쪽을 관통해야 하는데, 각 지방의 총독들에게 통과의례가 만만치 않을 터라, 왕에게 친서를 그것도 몇 통을 내려달라고 합니다. 또 왕실 숲을 사용할 수 있는 허가서를 내려주셔서 성문짝, 성채, 그리고 집을 지을 때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합니다. 왕이 한 마디로 거절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고백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선하신 손 길로 나를 잘 보살펴 주셔서 왕이 나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9절에 보면 왕은 군 장교와 기병을 딸려 보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곽을 재건축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체워주시는 모습입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재능, 커넥션, 재물, 인재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하십니다. 그렇게 기뻐하십니다.

12절 말씀에 보니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루살렘에서 일하도록 하신 것을, 나는 그 때까지 어
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16절에도 보니
“그 때에 내가 유다 사람들이나,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이나, 관리들이나, 그 밖에 직책을
가진 어느 누구에게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관리들은,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
지, 무엇을 하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것은 느헤미야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여 있고 누구에게만 도움을 받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성도에게 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시121:1,2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본다. 내 도움이 어디에서 오는가?
내 도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온다” 느헤미야는 다니엘 처럼, 에스더, 모르드개 처럼, 죠지 뮬러 처럼, 장기려 박사님 처럼 도움이 어디서 오는 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침묵한 것입니다. 종종 그러한 침묵을 성경의 인물들 중에 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에게도, 부인과 함께하는 종들에게, 가족과 이웃들에게제물로 드려질 이삭에게 조차도 끝까지 말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이 것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문제인 것입니다. 약속이요, 관계요, 신앙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빌라도 법정에 섰을 때 빌라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모습 그대로이니 얼마나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성곽을 다시 새울 때 필요로 했던 사람은 사람 앞에 침묵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느2:5에서 느헤미야는 ‘저를 보내’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왕궁에서의 안락한 부귀영화, 기득권을 다 버린 마음의 모습입니다. 마치 마음을 정한 다니엘의 모습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에스더의 모습입니다. ‘저를 보내’달라는 말 속에 이미 그는 하나님께 마음을 정하였고, 그래서 왕 앞에서 흔들림이 없이 소신있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러한 당당한 모습은 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하나님께만 도움과 지혜와 능력을 구허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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