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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2011년6월19일, 성령강림절후첫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6.26 15:01 | 조회 2233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2011년6월19일(성령강림절후첫번째주일) 삼상16:6-13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집에 찿아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을 뽑아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찿아가서 하나님께 성결의 제사를 드립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다 모였습니다. 사무엘이 첫 번째 아들을 보니 ‘아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뽑으라는 거구나’하면서 첫 째 아들 엘리압의 준수한 외모를 좋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아차!”싶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첫 번째 왕 사울을 뽑을 때에도 사람 머리 하나가 더 큰 준수한 사울의 외모에 그만 마음이 사울에게로 넘어갔는데, 이 번에도 또 이 새의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흡족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겉 모습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로 합니다. 그래서 둘째인 아비나답, 셋째 삼마 그리고 일곱 아들 모두를 사무엘이 보지만 이들 중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아들이 더 없느냐고 했을 때, 막내가 하나 있지만 지금 양을 치러 나가고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그를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막내 아들 다윗이 사무엘 앞에 섭니다. 그 때 사무엘은 다윗을 보고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라고 합니다. 다윗을 보고 눈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어떤 생각, 어떤 마음, 어떤 감정을 품느냐에 따라 그 눈이 바라보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사무엘은 가지고 온 기름이 담기 뿔병을 들어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은 무엇일까요? 속 사람이란 무엇일까요? 어느 회사에서 직원을 뽑는다면 어떤 사람을 뽑을까요? 사람들을 보면 참 성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친화력이 있는 사람, 또 순발력과 재치가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렇게 성실하고, 창의력이 있고, 친화력이 있는 사람을 뽑을까요? 그런데 성실하다는 것도 어찌보면 하는 일이 자기 맘에 들고, 자기 뜻에 합하면 성실함이 발동을 하고, 창의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판단은 이런 정도의 기준이 아닐까 싶은데,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본다는 것도 이러한 인간의 됨됨이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16:13은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찿아 와 감동을 주실 때, 그 감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예를들어! 이제 그만 술을 끊어야지 하거나, 아니면 이제 주일 예배에는 지각을 하지 말아야지, 예배에 결석하지 말아야지 하는 감동이 오는데, 그 다음 날이 되면 술친구들이 꼭 찿아 오거나, 술 먹을 일이 생깁니다. 또 주일 예배에 지각할 만한 이유가 생기고, 예배에 빠질 이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보면 그 일이라는 것이 아주 타당성이 있어요. 주일 예배에 빠질만한 이유가 되고, 술 마실 이유가 됩니다. 모두가 공감을 할 수 있지요. 옳다, 그르다 이기 보다는, 이것은 그렇게 이야기 하면 안되구요. 그러면 판단하고, 평가하는 결과가 되잖아요. 성령의 감동,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은 그렇게 평가하고 판단하는것이 아닙니다.

그것 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이 감동 주시는 쪽으로 생각과 감정, 그리고 삶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옮기어갑니다. 성경의 신앙의 사람들, 아브라함, 모세, 사울, 베드로등, 그리고 이 시대의 믿음의 선배들이 그렇게 무게 중심이 조금씩 옮겨진 것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하나님과 밀었다 댕겼다 하면서 점차 하나님 안에 머무는 평화, 감사, 생명의 삶, 은혜의 삶의 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2년, 3년 10년이 되어도 여전히 이전과 별 차이 없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에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와도 미쳐 깨닫지를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져있으면 뒤에서 뭐라해도 듣지를 못합니다. 들리지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일에 집착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자유롭고, 인격적이며, 교감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악한영은 폭력적이고, 상대방의 인격과 상관없이 그 사람을 사로잡습니다. 사탄은, 악한 영은 비열하고, 음해하고, 야비하여 특히 약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싸움과 미움과 원망과 불평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구러나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기다리십니다. 서로 인격적으로 교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감동시키십니다.

지난 11일에 5차 EM흙공던지기 행사가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부모님들과 아이들 합해서 20여명이 모였습니다. 신갈쪽에서 오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 일의 본질은 하천 맑게하기 입니다. 한 5년 전에 동막천 살리기를 저수지 골프연습장 반대와 더불어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이우학교가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여간 지금 하천 맑게하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어떻게 이어질지는, 어떤 결실을 얻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길이 열리는 대로,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는 만큼 일은 점차 깊어지고 넓어지겠지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무리하지 않고 감동이 오는대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용인 환경 정의 두분 간사 분과 한 분 회원님과 함께 상류부터 고기초등학교 있는 곳 까지를 돌아 보았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는 본격적으로 하천 생태 오염 검사를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심하게 오염된 곳은 그 악취가 대단하여 토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곽선진 간사님은 그래도 모래가 아직은 그렇게 심각하게 썩지는 않았다고 하면서 하천 회복의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산사랑의 주인이 EM배양액을 받으러 와서 한 12말을 받아 갔어요. 그러면서 자기네 가게는 이미 작년부터 하수가 너무 냄새가 나서 쌀뜬물에 EM원액을 넣어 배양액을 만들어 뿌렸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협력자들이 있는 반면에, 오염이 심각한 음식점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환경정의 간사님이 바로 고발조치 하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조금 기다리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지 말고 가서 이야기 하고 설득하여 함께 하천 맑게 하기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인도하자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감동을 느끼게 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동력을 마련해 주는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비록 늦지만 그것이 하천 맑게 하는 일에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 보존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동을 통해 일하십니다. 여러 사람이 아니라 우선 한 사람의 감동을 통해 일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기 위해 모세를 부단히 설득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아브라함에게 찿아오셔서 거듭 언약을 갱신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와 그리고 아브라함과 영적인 감흥을 통해 인격적인 교감을 나누었습니다.

롬8:8,9은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
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
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살아있다는 것은 영적 감동을 통해 인격적인 교감이 오고 갑니다. 그러면 오랜 기다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바뀌어지기 시작합니다. 조금씩 자리 이동을 한다구 했는데 어디로 이동을 할까요. 비우고 낮아지는 자리로 이동을 합니다. 궁극에 십자가의 자리까지 라고 하기에는 넘 그렇고, 그 쪽으로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십자가를 바라보는 형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로부터 오는 참 자유, 참 평화를 맛 보는 삶을 누립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평화, 자유입니다.

삶의 생각은, 이성은 가치 중립적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합리성을 도출해 냅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 블레셋과 첫 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사울에게 먼저 전쟁터로 가라 하면서 일주일 후에 자신이 와서 하나님께 먼저 제사를 드리고 나아가 싸울 터이니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전쟁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전 이스라엘에서 병력을 소집하여 길갈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그 소식을 듣고 역시 병력을 소집하여 나아가는데 병거가 3만이요, 기병이 6천, 보병은 모래알 같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 소식에 이스라엘은 겁에 질려 숲과 바위, 그리고 굴 속에 숨기 시작합니다. 일주일이 다 되엇는데 사무엘은 오지 않고, 군사들은 점점 두려워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부하들에게 시켜 번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립니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자 마자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어떻게 이렇게 제사를 드렸냐고 꾸짖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대답합니다. 백성들은 흩어지고, 제사장님은 약속한 날짜에 오시지도 않고 블레셋은 쳐들어 오고 이러다가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도 전에 ‘블래셋 사람이 길갈로 내려와서 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할 수 없이 번제를’드렸다고 합니다. 사울이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기 생각이 떠오른 것입니다. 생각이 아니라 말씀이 떠 올랐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무엘과 한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말씀에 앞 서 갔습니다.

앞에서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주님의 영이 그 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다윗은 늘 그 감동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데 삼상 10:6에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나서 사울에게도 주님의 영이 강하게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울 역시도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평생에 그 감동을 따른 반면에 사울은 첫 명령부터 하나님과 어긋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생각이 성령의 감동을 앞지르고 말았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거짓 예언자들과 1대 450의 싸움에서 승리하자마자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기로 작정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도망하여 호렙산으로 피신을 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동굴에서 다음과같이 하나님께 아룁니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
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
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내용을 보면 역시 생각입니다. 생각의 어두움, 생각에 집착해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생각에 붙들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엘리야 곁을 지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은 엘리야와 대면하는가 하면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토네이도 가 아니라, 지진과 불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다 지나가고 서야 부드러운 소리로 엘리야에게 나타 나십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묻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을 하는데 왕상19:14에 보면 처음의 말과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과 대면하는데도 여전히 자기 생각, 자기 연민에 붙들려 있습니다.
그러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18에서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
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사울과 다윗이 하나님의 영을 받는 모습을 보면 차이가 납니다. 사울은 기름 부음을 받은 후 예언자 구릅을 만나 그들과 함께하여 춤추고 소리를 지르며 예언을 하는데 전혀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고 주님의 영이 그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고 하는데, 그 이후 다윗에게서 어떤 특별한 행동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두통으로 고통스러워 할 때 찿아가서 수금을 키며 찬양을 하여 사울의 고통을 씻어줍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영적 감동을 받은 사람의 삶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사울은 성령을 받을 때 난리 굿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사울에게 두통이 생긴 것도 결국 자기 생각, 자기 연민에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다윗을 여러차례 죽이려고 까지 하고, 끝내 악령에 붙들려 무당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이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목숨을 끟는 안타까운 지경에 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지막 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에베소서6:17에 보면 영적 싸움을 위한 무장에대해 이야기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 이야기 하며 성령과 말씀을 같다고 봅니다. 그렇습니다. 언약, 즉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은 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야 인간이 자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고, 생각, 합리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죽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하고 하나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헤브론에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대로 합니다. 그 와중에 아브넬이 이스라엘 지파들과 힘을 합하여 장애인인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으로 모십니다. 성경은 두 해 동안 다스렸다고 합니다. 결국 므비보셋을 앞세웠던 아브넬은 다윗의 장수인 요압에게 살해를 당하고, 다윗은 7년 6개월동안의 헤브론에서의 생활을 접고 예루살렘에 올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추대를 받습니다. 다윗은 시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에도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않고, 오히려 사울 왕을 살해할 수도 있었지만 두 번이나 살려주기 까지합니다. 다윗은 평생 자기 생각, 자기 연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감동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중심에서 영의 감동을 따르는 사람을 즐거워 하십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을 나무 가지로 비유해 보면 언제나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 고통, 괴로움등이, 원치 않는 일들이 마치 파도 처럼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이럴때 생각의 안개를 거두어야 합니다. 안개는 해가 뜨면 사라집니다. 마찬가지로 수 많은 생각들이 나를 덮칠 때 그 생각들을 가라앉히고, 살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검,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밝혀주는 감동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것은 진정 훈련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합니다. 거듭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감동을 따르는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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