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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집짓기(2011년 5월22일, 부활절다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05.22 15:51 | 조회 2790


노아의 집짓기

2011년 5월22일(부활절다섯번째주일) 눅17:26-33
창6:8을 보면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하는데 6:12에는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고 합니다. 표현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9절 말씀에 노아는 당대에 의롭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았나 봅니다. 마24:37에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
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 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홍수가 나서 그
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합니다.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것 만 알았지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릴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하늘을 바라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은혜를 따라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미친 짓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산 꼭대기에서 그 긴 세월을 방주를 짓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적지않은 사업을 하려면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해내기가 쉽지않은 사업이었을텐데, 어떻게 온 가족이 합심하여 모든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산 위에서의 배 만들기를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은혜를 입은 노아입니다. 노아가 은혜를 입으니 가족들이 그 은혜를 따릅니다.

은혜라는 말에는 선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선물은 값없이 조건없이 받습니다. 값없이 받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저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거저 받은 것을 생각하니 먼저 생명, 가족, 교회. . .나라. . 산과 들. . .자연... 나의 모든 것이 거저 받은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진정 깨닫는데 참 오래 걸립니다. 말씀드렸지만 마24:39에도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깨닫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구상에 돈주고 사고 파는 것은 덜 귀한 것들입니다. 그 다음이 주고 받는 것입니다. GIVE & TAKE이지요. 그리고 가장 귀한 것들은 그냥 주고 받습니다. 물, 공기가 그렇지요. 사람들 사이에도 그렇지요 가까운 사람끼리는 주고 받거나, 더욱이 사고 팔고 하지 않지요 그냥 주고, 그냥 받지요,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냥 가지고 가면 싸움이 일어나지요. 은혜란 그냥 받은 것입니다.

가정 안에 이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 넘쳐야 합니다. 가정이, 성도들의 가정에 이 은혜가 있어야 주고 받고, 사고 파는 세상에서, 주고 받고, 사고 팔 수 없는 평화, 사랑, 기쁨, 용서, 관용이 흘러 나올 수 있습니다. 모두 이 은혜의 샘을 파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에서 솟아나와야 할 삶의 귀한 열매들입니다. 나오는 삶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데라의 아들들입니다. 바로 나홀과 하란입니다. 그런데 창11장 31에 보면 아버지 데라가 아들 아브라함과 며느리 사래, 그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난 손자 롯을 데리고 바빌로니아의 우르 지방을 떠나 하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하란에 머물렀다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바벨론 땅을 떠나게된 이유가 하나님에게서부터 라는 것에대한 인식이 확실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은 하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순례의 여행은 바벨론에서부터 였습니다. 동생 나홀은 그 하나님의 손 길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전설에 보면 아버지 데라가 우상이 싫어서 그 지역의 우상을 부수고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떠남이 하나님의 손 길인 것을 아직 아브라함도 아버지 데라도 미쳐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조카 롯도 함께 데리고 갑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물질적 풍요를 허락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풍요로워지니 조카 롯의 재산도 불어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아브라함과 롯이 함께 공존할 수 없을 정도로 가축들이 불어납니다. 그래서 결국 살림을 나눌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릅니다.

그 때 나눔의 기준은 아주 간단합니다. 네가 동 하면 내가 서 하고, 네가 서 하면 내가 동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선권을 조카 롯에게 줍니다. 아브라함이 그 기득권을 당연히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롯은 창13:10에 보면
“멀리 바라보니, 요단 온 들판이, 소알에 이르기까지, 물이 넉넉한 것이 마치 주님의 동산
과도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고 한 동쪽 땅을 택합니다. 12에 보면 이렇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롯은 평지의 여러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살다가, 소돔 가
까이에 이르러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택한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롯이 택한 것은 주고 받고, 사고 파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12에 보면 소돔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13에 보면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으며, 주님을 거슬러서, 온갖 죄를 짓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8절에 아브라함의 모습을 보면
“아브람은 장막을 거두어서, 헤브론의 마므레, 곧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거
기에서 살았다. 거기에서도 그는 주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쳤다”고 합니다. 이 차이입니다.

아브라함이 있는 곳이라고 악이 없고 천국이겠습니까? 문제는 얼마나 악에 접근해 있고, 익숙해 있으며, 그러니가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하면서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은혜를 따라 사느냐, 아니면 GIVE & TAKE, 그리고 사고, 팔고를 따라 사느냐 라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GIVE & TAKE나, 사고 팔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전념한다는 것입니다. 마24:38,39은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
집가며 지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
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휩쓸어 갈 때 까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 그 때 아직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종 아비멜렉에게, 그리고 하갈에게서 난 이스마엘를 자기 상속자로 세우겠다고 한 바탕 하나님과 싱겡이를 벌이며 시끄럽게 한 이후입니다. 하나님은 3 천사를 아브라함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해에 상속자를 낳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듣습니다. 그리고는 3 천사가 아브라함을 떠나려 하는데, 창18:17에 보면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라고 하면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 하는데,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깨우쳐 주십니다. 요14:26을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살면서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삽니다. 도시 문명에 익숙해 있는 그러니까 GIVE & TAKE, 그리고 사고, 팔고에 몰두해 있는 롯의 모습입니다. 앞에서 제가 그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어떻게 노아는 산 꼭데기위에 집을 짓는 일을 온 가족과 함께 지을 수 있었는가 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가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권위주의를 배척은 해야 하겠지만 권위가 없다면, 어떻게 가르쳐 질 수가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노아의 영적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영적 권위가 어떻게 세워질 수 잇는가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집, 가정 안에 영적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바로 은혜인 것입니다. 집, 가정안에 어던 신앙적인 은혜의 흐름이 흘러 넘치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 처럼 사고, 팔고에 익숙해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나마 좀 나은 것이GIVE & TAKE이구요. 여러분 가정에는 어떤 영적 은혜가 자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들렀던 3천사 중에 두 천사가 롯에게 찿아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롯은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 소돔과 고모라가 곧 멸망할 것이니 곧 빠져 나가야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사위들은 그 이야기를 농담으로 받아들입니다. 아침이 밝아 오자, 두 천사가 다급하여 롯에게 곧 멸망할 것이니 빠져나가야 한다고 하지만, 롯 스스로도 망설이며 꾸물꾸물댑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롯과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끌어 성 바깥으로 안전하게 대피시켰습니다. 창19:16은 주님께서 롯의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셨다고 합니다. 은혜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은혜로 받지 못합니다. 롯의 아내가 결국은 뒤를 돌아 보아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위들은 불순종하고, 아내는 욕망에 못 이겨 뒤를 돌아 봅니다. 그 뿐 아니라 두 딸은 나중에 결혼할 남자가 없다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술을 대접하고 동침한 후에 아이를 낳습니다. 자손을 잇는다고 하지만 이런 인륜을 무너뜨리는 일을 서슴이 합니다. 결국 두 딸에게서 태어난 자손들이 암몬과 모압 족속이 되어 지금까지도 이스라엘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아브라함의 배 다른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들 역시 에돔이라는 부족으로 이스라엘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롯은 아마도 열심히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열심이었을까요? 창19:31에 보면 롯의 두 딸이 아버지 롯과 동침하려 할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아무리 보아도 이 땅에는 세상 풍속대로 우리가 결혼할 남자가 없다”고 합니다. 두 딸이 세상 풍속에대해 이야기합니다. 롯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상의 풍속을 따라, 그 세상의 가치 기준에 익숙해 하며 살았습니다. 물론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노후대책도 완벽히 준비해 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주고 받으면서 명함도 주고 받고, 저 사람이 밥 한 끼 사면 나도 밥 한끼 사면서, 그리고 최대의 이윤 창출을 위해 근면하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오직 세상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은혜입니다. 롯의 딸들이 그렇게 멸망 가운데서 건짐을 받았지만,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았습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롯이 은혜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위, 아내, 딸 모두가 세상의 논리로 살아갑니다. 받은 은혜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6:8 말씀 처럼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영적 권위는 바로 이 은혜를 입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은혜인가요? 모든 것이 하늘에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 나의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나에게 주신 것들이 어느 하나 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도 존귀화고, 자녀도 존귀하고, 함께하는 사람들, 이 세상 모든 것이 존귀합니다. 이 존귀함이 어디서부터 오는가라는 것입니다. 창6:22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하였다. 꼭 그대로 하였다” 영적 권위가 바로 여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삶의 철학, 지혜를 아이들 에게 주입, 강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의 부모의 영적 권위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순종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하는 것을 자녀들이 봅니다. 구태여 소리치고, 요란스럽게 하지 말고, 잔소리나, 욱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지를,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을 고백하는지가 자연스럽게 가족 하나 한에 스며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총회 환경정책 협의회에 참석했을 때, 횡성 영락교회의 한경호 목사님께서 생명목회에대한 말씀을 전하면서 최근 구제역, 조류독감을 보며 특히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면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하셨는데 참 공감이 갔습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모든 동물들이 함께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면 당연히 동물들 자리는 빼고 방주를 짓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왜냐햐면 롯의 딸들처럼 세상 풍속이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에대하여 6:5,12을 보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하다고 하시며, 사람 지은 것을 후회하십니다. 또
“하나님이 땅을 보시니, 썩어 있었다.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지금도 여전히 그 수준에 있어서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파워나 속도에 있어서, 그리고 전 지구적이라는 것에 있어서, 홍수 때나, 소돔과 고모라 때 보다 더 위기에 처해있지 않나 십습니다.

교우여러분, 특히 부모되시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대 속에 세상의 풍속대로 따르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단지 GIVE & TAKE, 사고 팔고 하는 삶에 빠져들지 않으려 한다면 은혜를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 주신 것 썩히지 말고 한 껏 드러내며 사는 생명의 잔치 벌이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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