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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잔치(힘 버리기,2011년 5월15 :스승의 날)

하늘기차 | 2011.05.15 14:09 | 조회 2478


생명의 잔치(힘 버리기)

2011년 5월15(스승의 날) 시128:1-6

얼마 전에 1984년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그 소설에서 국가조직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오브라이언이 주인공 윈스턴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자네는 당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지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왜 권력을 원하는지 너는 모른다고 하면서 이유는 한 가지 권력 그 자체를, 순수권력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권력의 성직자’라고 까지합니다. 윈스턴은 나중에 전기 고문, 뇌를 손상시키는 고문등을 통해 ‘하나님은 권력’이라고 고백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마지막에 오세아니아라는 상상의 국가와 당의 우상이요 상징인 ‘빅 부라더’를 찬양하며 죽습니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금방 창세기의 에덴동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은 권력’이라는 말은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거짓말쟁이인 뱀이 등장하여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 이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처럼 된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추방된 인류는 뱀의 유혹에 걸려 넘어간 그대로 하나님 처럼 되기위해 권력과 힘을 추구합니다. 결국 그 힘이 아우를 살해하는 폭력적인 힘이 되었습니다.

인류는 거듭 죄를 낳고, 무수히 많은 가지를 쳐 물질과 과학문명의 등에 올라 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힘은 그대로 국가 간의 전쟁으로 소모되고 급기야 1,2차 세계대전 등 현대에 이르러서는 월남전, 이라크 전 같은 힘에 거짓을 보태는 전쟁 까지 치르고 있고 전쟁이 전쟁을 낳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끝 모르는 욕망의 결과물인 기후 재앙, 생태계 재앙이라는 스스로의 힘에 스스로 자멸하는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창4에 보면 가인이 동생 아우를 죽이고 떠돌아 다니게 되는데, 그 때 카인이 “저를 만나는 사람 마다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찍어 가인을 보호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에덴 동산에서는 힘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능력이며 힘이신, 사랑이신 하나님과 하나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힘을 갖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폭력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폭력과 힘에 익숙해 있습니다. 미래에대한 불안 때문에라도 힘을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1등을 해야하고, 1등을 하지 않으면 그 힘에서 소외된 것에대해 두려워하고, 이것이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얼마전 카이스트 젊은이들의 잇단 죽음에 우리 모두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자살율이 OECD 평균의 2배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10대에서 40대의 연령층에서의 사망률 1위가 사고나 질병이 아니라 자살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 사회가 젊은이들을 무척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또 얼마전 t.v에 방영된 쌍룡자동차 무급휴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보면서 쌍룡자동차 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을 진압할 때의 국가 조직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바로 좀비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십습니다. 좀비는 바로 폭력만 남은 인간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나중에 이렇게 되지 않겠나 십습니다 .

이제는 전 지구적인 단위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전에는 전쟁이 나도 저 먼 나라의 이야기 이겠거니 하지만, 기후 이변이나 질병과 병충해도 모두 전 지구적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출발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교회의 존재의 당위성이 이 있다면 이러한 좀비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 참 가치, 참 삶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십습니다.

얼마전 교회홈피를 수정할 일이 있어 마침 예전 함께 부목사로 봉사하던 목사님께서 기독교 웹호스팅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 회사에 홈피 개정을 의뢰한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목사님과 통화하려고 했더니 미국 하와이로 사업차 출장을 떠낫다고 해서, 무슨 일로 출장을 갔느냐고 했더니 미국에 기독교 어학연수 센타를 만들기 위해 갔다구 하더라구요. 그 때 씁쓸했습니다. 이렇게 장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공교육이 무너지고 사교육으로 온 국민이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는 상황에 이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총회 사회부에서 주관한 환경정책 세미나에 참석하고자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대구의 어느 큰 교회에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그 교회 로비에 가서 보니 문화 강좌가 개설되었는데, 무려 그 가지 수가 몇 십개는 되더라구요. 무슨 언어, 스포츠, 음악에서, 없는 것 없고, 있는 건 다 있는 그런 문화센타였습니다. 가수 조용남의 노랫 말이지요. 노래 제목이 뭐지요. 예 ‘화개 장터’지요. 장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요. 장사지요. 교회가 장사를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회비 걷어서 강사료 뽑고 잘 하면 이윤도 창출하고 물론 그 이익으로 교회가 다른 데 쓸 일 은 없겠지만, 하여간 그 날 저는 녹색교회 선정된 사례 발표를 위해 그 세미나에 참석을 했는데, 발표를 하고나서 몇 분 목사님이 찿아와 저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경우는 제가 발표한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면서 자기도 그렇게 교회가 무슨 전도폭발이다, 철야 기도다, 세미나다 하는 것 정말 그만두고, 잘 놀아야 한다는데 공감한다고 하면서 악수를 청하드라구요. 그러면서 내일 고기교회에 놀러 오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교회 자랑 좀 했거든요. 두 분 목사님이 저에게 명함을 주고 갔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겠다는 목사님은 태능에 있는 교회에서 근 20년 목회를 하신 목사님이셨습니다.

근데 그 다음날 교인들과 함께 오셨어요. 교회를 둘러보고 담소를 나누었는데, 그 날도 역시 자기는 교인들과 잘 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잘 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논다는 것 속에 ‘쉼’, ‘평화’, ‘잔치’, ‘축제’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을 통해 보여주신 공생애 첫 번째 기적인 결혼 잔치에서 베푼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변화와 생명의 잔치를 위한 기적을 쉽게 표현하여 자주 쓰는 말인데, 어쨌든 자기도 그렇게 잘 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생태교실, 어린이 도서관, 가야금, 요가, 텃밭가꾸기, 최근 기타 교실에 이르기 까지 여러 가지 놀면서 지낸다고 했습니다. 음악회, 시낭송회, 강령탈춤, 목공, 인형극 등 얼마 전에는 글짓기 대회도 하려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 교회를 인터넷을 통해 찿아 보니까 문화센타를 개설하여 성장한 교회 더라구요. 여기서 또 씁슬했지요. 더구나 그 날 어느 성도님께서 우리 교회 뒷 습지를 보면서 왜 이 땅을 놀리고 있느냐는 식에 말을 하면서 여기 생태체험 하면 회비도 걷고 하면 돈이 되겠다고 하더라구요. 장사를 하라는 것이지요. 교회의 문화센타는 성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장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가 커지면서 힘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바로 그 힘을 키우다가,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여 지금 전 지구적 재앙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교회 역시 힘이 커지면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초근에 교회에서 나는 잡음들과 추태는 바로 주체할 수 없는 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실 오늘 저는 시 128편을 통해 가정에대한 말씀을 전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1절 말씀인 "주님을 경외하며 . . ."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경외'가 무엇인가? 오늘 이 시대에 경외, 즉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목요일 하루종일 이 문구 앞에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말씀을 준비하면서 가정과 상관이 없는 아니 어찌 보면 상관이 있기도한 흐름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런 면에서 경건은 우리의 힘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신앙의 고백이
아닌가 십습니다. 하나님 두려움인데, 사람이 힘을 갖기 시작하면서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폭력적으로 나아갑니다. 두려움이 그 힘을 가지면서
찿아왔으니 그 두려움을 이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것이 경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다가갈 즈음 제자들의 힘겨루기를 안타까워하시며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 질문도 역시 모르면서 ‘마실 수 있다’고 답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하는 소위 노는 것은 문화센타가 아닌가요? 하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 대답을 지금 우리가 놀고 있는 것 말고 진행중인 놀이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최근 임기도 전도사님과 김영순 장로님, 그리고 이긍환 집사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EM활동입니다. 지난 달부터 모임을 가졌는데, 흙공을 만들기도 하고, 2차에 걸쳐 저수지 위쪽에 구간별로 흙공 2,000개를 던졌고 어제도 역시 흙공던지기를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작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성남시와 용인시 하천과에서 관심을 갖고 적극 인력과 재정 설비 지원 까지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는 고기리 상우회에 가서 EM흙공던지기에대한 설명회를 가졌고, 음식점 사람들도 함께 개천 맑게 하는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는 성남시와 성남의 시민단체와의 연석회의를 가졌고, 금요일 오전에는 동천동 사무소의 실제적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장을 만나 보았습니다. 적극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고기리뿐만 아니라 동천리 관할 전체의 부녀회, 체육회 등의 모임들과 연계, 소위 민, 관, 종교 전체가 하나되는 사업으로 외연이 넓혀졌습니다. 교회가 이웃과 함께하면서 이런 적이 없었습니다. 관이나 주민모임하고는 그동안 만날 이유도 없었었는데, 임기도 전도사님 말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예정해 놓은’일이 되었습니다. 외연이 너무 커져서 우리같은 작은 교회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마도 하나님께서 창조 질서 보전이라는 일(하천을 맑게하기)을 쓰시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마을에서 하시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최소한 3년은 걸리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시는 것이 눈에 확연히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문이 열리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도서관이 세워질 때에도 정말 교회에산 한 푼 없이 시작을 했고, 지금도 교회는 교회 건물이니까 관리비, 사실 그 관리비도 전기세다, 월동비다 만만치 않지요 만은 정말 예산 편성 없이 지금까지 온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임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교회 안이던 밖이든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또 하나의 일은 초록가계, 녹색가계입니다. 작년부터 조금식 이야기 되고 있는데, 한 마디로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이 것 역시 EM흙공던지기처럼 돈 되는 일이 아니지요. 그러나 재활용은 지속 가능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고갈되는 자원의 한계를 극복하며 있는 것 서로 나누어 쓰는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공정무역을 통해 제3세계 커피생산 원주민의 커피를 사들여 원주민들의 삶을 살리는 원두커피 나누기, 그리고 이 시대가 가장 문제 삼는 것 중의 하나인 음식, 반찬을 위한 좋은 부엌 운동을 펴서 패스트 푸드가 아니라 슬로우 푸드를 함께 만들어 나누는 일 말입니다. 어딘가 마포의 성미산학교에서 좋은부엌운동을 하는데 보니까 반찬가계이더라구요, 가계 말고 부엌을 쾌적하게 만들어 원하는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함께 먹거리를 만들고 나누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문화센타가 아니지요. 나눔이지요. 그리고 이 나눔의 가장 끝은 생명 나눔입니다. 그러나 문화센타는 나눔이 아니라 힘을 키우고 지역에서 교회의 역량을 과시하고 교회 성장을 일구어내는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부억 녹색가계, 목공방, 도서관 등, 최근에 열린 기타교실은 나눔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눔의 긍극은 생명나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생명이지요, 그 생명을 나누는 것에 까지 나아가면 교회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입니다.

언젠가 생태교실 하면서 회비를 제대로 받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다른 생태학교와 형평성도 있고해서 말이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한 아이라도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면 안되고, 또 있는 것 나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생태교실인데 더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지금도 학원비가 없어 학원에 못가고, 몇 백만원씩 내며 학원에 다니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를 가르는 이러한 사회인데, 모든 것이 돈으로 통하는 사회이고 그 돈의 힘 때문에 인간이 재앙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어딘가 돈이 아닌 샘이 흘러나오는 곳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재작년에 청소년들과 간이역여행을 떠났을 때 청량산에 있는 청량사에 갔을 때입니다. 그 절이 지역에서 참 귀한 일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게시판을 얼핏 보아도 여러 가지 귀한 나눔의 일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작은 정자 비슷한 건물에 가 보니 거기에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더라구요. 거기서 또 씁쓸했습니다. 거기서 이윤이 창출되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무인으로, 그리고 없는 사람은 그냥 가지고 가고, 있는 사람이 우너하는 만큼 내고 가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어느 곳에선가 돈 아닌 생명 나눔의 샘물이 작은 물줄기를 흘려 보내야 숨이 좀 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져 파장이 될 뻔한 결혼잔치에 주님이 찿아 오셨습니다. 주님은 그 잔치에 필요한 포도주를 물을 통해 만드셨습니다. 돈으로 사서 가져다 준 포도주가 아니라 물로 만드신 포도주입니다. 예수님은 보리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이심으로 갈릴리 바닷가에서의 잔치를 멋지게 마무리지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이 사람들을 먹일 만한 돈이 없다고 하셨지만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주라 하셨습니다. 돈으로는 할 수 없는 잔치를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에도 영적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결례를 위해 놓여져 있던 물항아리를 이용하셨습니다.

주님은 하인들에게 항아리에 물을 갖다 부으라 하셨습니다. 또 그리고 연회장에 가져다 주라 하셨습니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전에 맛 보지 못한 참 포도주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결혼 잔치에서 베푸신 포도주는 돈이 아니라 물로 만드신 포도주입니다. 어떻게 보면 색도, 맛도, 향도 없는 밋밋한 재료이지만 주께서 그 물을 통해 색과 향과 맛이 나는 포도주를 만드셔서 잔치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주님이 원하시는 잔치(놀이)는 돈으로 벌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것 활용하는 잔치요, 놀이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다 성전 미문에서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 앉은뱅이는 사도들에게 한 푼을 원했습니다. 구러나 사도들은 한 푼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
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는 즉시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어서, 벌떡 일어나서 걸었다. 그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그
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거꾸로 되었습니다. 은과 금은 있는데, 예수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을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 라는 문폐를 걸고 목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 문폐를 떼어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이름으로 그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오늘 자본의 힘 앞에 사람들이 자존감을 잃고 모두 앉은뱅이가 되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예수라 쓰여진 문폐 떼어 내고, 거리로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서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사람들의 손목을 힘껏 붙잡아 일으켜 세워 멋진 춤판 한 번 벌이는 교회요 성도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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