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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평화, 교회(2012년 1월22일, 주현절후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2.01.22 13:22 | 조회 2382


회복, 평화, 교회
2012년 1월22일(주현절후세번째주일) 사35:3-10;행3:4-10;엡1:22,23

작년 말에 참 기쁨, 100배의 기쁨에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 때 참 기쁨이란 회복의 기쁨이라 하였습니다. 이 기쁨 놓아두고 다른 즐거움 찿아다니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하였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 다시 찿은 은전 한 닢, 한 마리 잃은 양 찿는 목자의 이야기가 다 회복에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끝에 보면 모두 마을 사람들과 다시 찿은 기쁨에 잔치를 벌입니다. 축제요, 잔치입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놓아두고 다른 것 쫓아다닌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인사할 때 빨리 회복되기를 바란다는 인사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회복이란 다시 본래의 모습, 이전의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다시말하면 하나님 나라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영적 회복이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뜻으로 다시 돌아 선다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기업의 노사, 학생과 교수, 국가 간에, 민족 간에, 남북, 흑과 백, , , 이 모두 회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 후 변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늘 숨어다니던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에 나아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합니다. 한 번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당혹해 하며 놀랍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행3:21에서 예수 그리스도에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 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가의 다락 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 베드로는 어떻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40일 동안 함께 지내실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 찿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에대해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금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 미문 앞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선포하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체험을 받기 이전의 베드로가 바라보는 이스라엘의 회복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회복 할 때가 지금입니까?"라고 하는 질문은 아직도 베드로에게 이 전의 소망, 생각, , , 등이 그대로임을 봅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 스스로의 생각, 뜻, 삶의 목표가 모두 근원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에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만유의 회복’에대해 관심합니다.

이스라엘 회복이라는 자기 중심적인 변화, 유대민족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변방의 나라를 무너뜨려야하는 그래서 이웃 나라와 끝 없이 분쟁하는 오늘날과 같은 이스라엘의 소망이 아니라 모든 만물, 온 세상 피조물의 회복을 위한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만유의 회복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모든 피조물, 다시말해서 모든 창조된 것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 아래 다시 놓여질 수 있을까요?

사6에 보면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느 때 까지인가 하면 이스라엘이 완전히 패망할 때 까지 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패망하여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가 두 눈이 뽑히고, 두 손이 쇄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또한 이스라엘의 왕족, 귀족들, 관료, 지식인, 각종의 전문적 장인들이 바벨론으로 잡혀 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불순종은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간 후에 이스라엘 본토에 마지막 남은 자들이 있었는데, 그 남은 자들도 예레미야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이들이 살아보려고 이집트로 피신하려고 하는 것에대해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믿지 말라고 하지만 끝 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본토에 남은 자들이 이집트로 떠납니다. 렘43에 보면 그 때에 예레미야가 이집트로 함께 떠나는 장면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1/10이 이스라엘에 남아 있었는데, 그들 마저도 상수리 나무, 참 나무가 찍혀 넘어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참람하게 폐망해 버립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사35장 말씀은 이러한 폐망해버린 이스라엘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처럼 피어 즐거워할 것이다. 사막은 꽃이
무성하게 피어,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소리칠 것이다.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영화가, 사막에서 꽃피며,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며, 우리 하나님의 영화를 볼 것
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
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
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연못이 되고, 메마른 땅은 물이 쏟아져
나오는 샘이 될 것이다. 승냥이 떼가 뒹굴며 살던 곳에는, 풀 대신에 갈대와 왕골이 날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 이러한 회복은 꿈에도 그리는, 아니 꿈에서도 이루어질 수 없는 그러한 변화, 회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일이 바로 사도행전에서 언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으로 기도하러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성전의 미문이라는 문 옆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일으키는 사건 속에 드러납니다.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를 바라보며 말씀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그대에게 주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 하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사35에 있는 말씀그대로 이렇게 저는 자가 사슴같이 겅중 겅중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진정 여호와의 영광이 그 곳에서 드러난 것입니다.

사35의 말씀이 지금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꿈에도 그리운 이 변화, 이 새로움, 이 회복, 이 아름다움에 모두 놀랐습니다. 고침 받은 자가 가지 않고 솔로몬 행각에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서서 왔다 갔다 하며 함께 있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하늘 주목하여 몰려듭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이 말합니다.
“왜 이 사람을 보고 놀랍니까? 왜 우리를 유심히 처다 봅니까?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거나, 경건해서 이 사람을 걷게 해준 줄로 생각합니까?”하면서 이런 일을 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사35장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육적인 회복 뿐만이 아니라, 광야에서 샘이 나고, 사막에 물이 흐르는 영적 회복, 즉 단순히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 만유의 회복, 인류의 영적 회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마지막으로 멸망하여 폐허가 되는데, 그 때의 남은자들에대해 왕상24:13,14는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주님의 성전 안에 있는 보물과 왕궁 안에 있는 보물들을 모두 탈
취하여 갔고,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만든 주님의 성전의 금그릇들을 모두 산산조각 내
어서 깨뜨려 버렸다. 이것은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된 일이다. 더욱이 그는 예루
살렘의 모든 주민과, 관리와 용사 만 명 뿐만 아니라,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
아 갔다. 그래서 그 땅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 말고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디아스포라, 이스라엘이 공중분해 되는 상황 속에 결국 본토를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주로 어디 딱히 갈 수 없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 잃을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 남아있는 자들도 상수리나무와 밤나무가 찍혀 쓰러지듯이 다 쓰러지는데, 거기에 찍혀 넘어간 그 나무의 밑둥인 그루터기가 있는데, 그저 흔적일 수 밖에 없는, 이것이 진정 남아있는 것이라고 하며, 그 남아있는 그루터기를 ‘거룩한 씨’라고 합니다. 누구입니까? 앞으로 이 땅에 오실, 그래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거룩한 씨가 남아있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 씨가 있어 어떤 패륜, 타락, 폭력, 전쟁, 고통, 거짓, 억압, 절망, 슬픔, 어두움과 혼돈 속에서도 소망하며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수요일에 에베소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엡2:14에 보면 ‘그리스도가 평화’라고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또 평화를 위한 무수히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이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 분이 계시기 때문에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에대한 수 많은 학문, 철학, 문학, 예술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내가 곧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길이시며, 생명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길, 생명의 그루터기, ‘거룩한 씨’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이스라엘 본토가 폐허가 되어 모두 뿔뿔히 흩어져 공중 분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본토에 ‘아주 가난한 삶들’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렘42:19에 보면 예언자 예레미야가 유다에 살아 남은자들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그런데 43:5 이하에 보면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군지휘관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다가 다시 유다 땅에 살려고 들어 온 사람들과 유다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그리고 예언자 예레미야도 함께 데리고 이집트 땅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이집트 역시 해와 같이 떠오르는 신흥 제국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그 때 이집트로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도 함께 멸망하고 맙니다.

남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남은 사람도 다 사라지고 남은 밑둥이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것을 그루터기 라고 합니다. 즉 거룩한 씨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데 왜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한 씨인가 하면 바로 고전15장 부활 때문입니다. 고전15:42-44에서 사도 바울은 부활에대하여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
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
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회복할 수 있을까요? 고전15:36,37은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대
가 뿌리는 것은 장차 생겨날 몸 그 자체가 아닙니다. 밀이든지 그 밖에 어떤 곡식이든
지, 다만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씨앗을 뿌리는데 어떤 씨앗일까요? 바로 사6:13의 거룩한 씨를 뿌립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 믿음의 씨앗이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변화이며, 이 얼마나 신령한 회복입니까? 사 35의 회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능력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그러니까 사35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지만, 사35장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생명의 말씀이 됩니다. 성경은 끝 까지 남은 사람들 마저도 모두 블랙홀 같은 이집트, 즉 세상의 힘, 어두움의 힘에 빨려들어가고 맙니다. 그러나 진정 남아있는 씨앗이 있는데, 성경은 그 씨앗을 예수 그리스도라 합니다. 이 씨앗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속에, 모세가 말하는 한 선지자에 이르기 까지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생명과 회복의 씨앗입니다. 그런데 이 감추어진 생명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엡1:9,10은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
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
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또 다른 비죤을 이야기합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회복과 통일의 몸이라고 합니다. 엡1:22,23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
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고기 교회, 목양 교회 하는 개 교회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초대교회가 교회를 보는 비죤은 초 시간적이고 우주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역사가 되면서 교회가 눈에 보이는 건물의 교회로 주저 앉고 말았는데, 교회는 모든 피조물의 충만함을 품고 있고,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백과사전식의 충만함은 명백히 아닙니다. 다이소라는 가계에 가면 값 싸고 좋은 물건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있는데, 이 충만은 단지 잡다한 인간들의 구하는 것들의 잡화점이 아니라 구원, 다시말해 회복, 그러니까 풀어서 말하면 통일, 이 통일도 획일적인 하나가 아니라 조화, 즉 오케스트라의 하모니 처럼, 온 피조물의 조화, 그러니까 평화인데 사도 바울은 엡2:3에서 그리스도가 평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진리이며, 생명이며, 유일한 길이요, 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충만함을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품고 있다 라고 비죤을 선포합니다. 그러니 교회에대하여 경거망동하는 어리석은 눈으로, 인간의 지혜로 교회를 바라보지 말고, 지금같이 교회가 구설수에 오르는 이 때에 참 교회의 꿈, 비죤, 그 충만함을 바라볼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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