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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함을 입은 사람들(2011년12월25일, 성탄주일)

하늘기차 | 2011.12.25 14:53 | 조회 2421


기뻐함을 입은 사람들
2011년12월25일(성탄절) 사9:2-7;눅2:8-14

이 복된 성탄에 하늘의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과 이웃,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이 나라 이 민족에게 함께하기를 바라겠습니다. 대강절 기간 동안에 거듭 기쁨에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쁨 중에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기쁨은 회복의 기쁨이라 했습니다. 이 100배의 기쁨을 놓아두고 다른 것 쫓아간다면 그것은 어두움입니다. 오늘 말씀 2절에서 그렇게 말씀합니다.
“어둠 속에 헤메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사는 사람들에
게 빛이 비쳤다” 그리고 이어서 3절에서도
“하나님, 주님께서 그들에게 큰 기쁨을 주셨고, 그들을 행복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 기쁨이 어떠한가 하면 곡식을 거둘 때 처럼, 군인들이 전리품을 나눌 때와 같은 즐거움이라 합니다. 이 기쁨을 놓아두고 다른 기쁨을 찿는 것은 마치 집에서 엄마가 천연의 좋은 재료로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놓고 있는데,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불량식품을 사먹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주님은 바로 이 기쁨을 주기 위해 우리를 이 자리에 부르신 것입니다. 이 회복의 기쁨을 따라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런데 이 회복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 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바로 아기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말씀 눅2:14에서 하늘의 천사가 선포합니다.
“더 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합니다. 누가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하나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삶들’이라고 합니다. 한글개혁은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회복의 기쁨을 맛 본 사람들입니다. 본래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살던 사람이 이제 돌아서서 본래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요즈음 도서관 책장만드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공 기계를 만지다 보면 종종 손을 긁혀 피가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보통 아프지가 않습니다. 대패질하다가, 톱에, , , 손이 긁히면 아주 성가시게 아픕니다. 손에 상처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가 회복이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이 됩니다. 이태훈 집사님이 발을 많이 다쳤습니다. 집안에 방콕해야합니다.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마 곧 걷고 뛰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겠나 싶습니다. 회복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개인의 건강 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무수히 많은 관계들 속에 합당하고, 온전한 관계에서 돌아서 있다면 그 회복이 있어야 평화입니다. 왜 평화하지 않을까요? 하나가 아니고 둘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마음과 뜻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이 왜 평화하지 않을까요?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힘든 사회가 되었을까요? 2%와 98%가 너무 나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피부색으로 인한 갈등도 있습니다. 회복되지 못하면 어두움입니다. 그런데 이 어둠 속에 빛이 비쳤습니다. 회복의 빛이 비추었다는 것입니다. 이 빛의 기쁨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기필코, 다른 것 놓아두고, 바쁘다는 핑계되지 말고, 다른 기쁨 쫓지말고 회복의 기쁨을 향해 우리의 삶이 자리잡아야 평화요,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탄절에 하늘의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그 하늘의 평화가 그냥 모두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뻐함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합니다. 하늘의 평화는 귀합니다. 아무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주와 같습니다. 보석같습니다. 그래서 값으로 따질 수 없이 귀합니다. 그럼 이 귀한 보석같은 평화를 누가 얻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성경은 기뻐함을 입은 자,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늘 평화, 평화 외치지만 하늘의 평화는 눅2:14 말씀처럼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아! 그럼 평화는 물건너 갔다구 할 수 있고, 그럼 누가 평화를 입어 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가만히 보면 평화하지 않습니다. 평화하지 않은 세상 속에 평화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임하는 평화를 맛 보는 사람들이 그 평화를 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주와 같고, 밭에 감추인 보석 같아, 자신의 것을 다 팔아 진주와 보석을 사는 기쁨을 아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이 하늘의 평화라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나에게 오지않는 평화가 신비롭게도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평화를 맛본 사람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 사람들을 통하지 않은 것은 가짜이고, 평화인척 하는 것입니다. 그런 평화가 아니라, 세상 어느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평화가 보석같이 귀하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임하여, 그 사람들을 통해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고기교회에 임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아마 인간이 외부의 것에 반응하는 가장 원초적인 것은 소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떤 소식, 어떤 소리가 기쁨의 소리인가요? 오늘 천사들이 외칩니다.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고 합니다. 어떤 소식이길래 좋다고 하나요?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여러 아이들이 태어났을텐데, 어느 아기가 메시야일까요? 천사는 구체적으로 징표를 이야기합니다.
“한 갓난 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 볼 텐데, 그 아기가 바로 메시야라는 징표입니다.

이 소식은 참 기가막히는 소식입니다. 아이가 냄새나는 마굿간 말의 여물통에 뉘여집니다. 이것이 징표라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깨끗하지 못한 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구세주로 태어날 아이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대에도 이렇게 어렵게, 아니 비참하게 태어나는 아이들에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느 청소부 아저씨가 쓰레기를 치우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처음에는 고양이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소리가 좀 이상하여 쓰레기통을 뒤져보니까, 비닐봉지 속에 겹겹이 아이를 쌓아서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 통 속에 아이를 버린 것입니다. 이 아이를 끌어안은 분은 바로 최근에 ‘베이비 박스’라는 신생아를 두는 공간을 난곡동 주사랑 공동체에 마련한 이종락 목사님입니다. 오늘 메시야 탄생이야기 속에 이런 아픔이 담겨있지 않은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세주 아기 예수를 이렇게 비천한 마굿간에서 쳐녀의 몸에서 탄생케 하심은 마치 오늘 이 시대, 아니 역사 고금을 통해 이렇게 버려지는 생명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탄생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 이 시대에 어느 쳐녀에게서 그것도 어느 쓰레기장에서 아는 이 없이 아이가 태어낳는데, 그 아이를 메시야 라고 할 때 믿고 따를 자가 있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스캔들, 즉 남자를 모르는 쳐녀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복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늘 누가 이 기가막힌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는 예수님 당시 가장 천민에 속하는 영문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 찿아와 주지도,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아서, 사람들의 소리에 굶주려있는 사람들인데, 반대로 말하면 오히려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차단되어진 공간이기도 한데, 아기 예수 탄생의 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이들은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천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과 귀, 그리고 입을 통해 기쁨의 소식, 하늘의 평화가 전파됩니다. 신비요, 능력입니다.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에 매산교회가 있습니다. 저와 함께 오랫동안 경기노회에 속해있는데, 그 근처에 전원주택을 짓고 두 남매와 함께 사는 내외분이 계시는데, 큰 아이의 이름은 다윗인데 다리를 저는 장애아이고, 둘째는 딸 인데 이름이 에스더이며, 건강한 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분들이 아이들의 친 부모가 아니고 입양을 한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출생의 비밀을 숨겨왔는데, 커서 늦게 그 사실을 알면 상처를 받을까 바, 재 작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성탄절에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충격을 받지 않고 자신들을 부모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노성철 목사님도 함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해 성탄절날 다윗과 에스더의 부모는 자녀의 출생의 비밀을 설명하기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 처럼,
하나님께서 너희 두 사람을, 사랑하는 다윗과 에스더를 엄마, 아빠인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이란다”

하고 알려 주었을 때, 두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거의 동시에

“예수님처럼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출생의 비밀을 은혜롭게 잘 말해주었고, 그 이후 아읻르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참 놀라운 지혜의 힘입니다.

계속 회복의 기쁨에대해 이야기하였는데, 회복하려면 능력이 필요합니다. 회복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서는 힘이 어디에서부터 올까요. 이태훈 집사님이 발 등뼈를 다치셨는데,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일은 그 부러진 곳을 기술적으로 잘 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러진 것을 잇는 것은 그 자체의 생명력입니다. 생명의 힘인 것입니다. 이렇게 회복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눈먼자, 병든자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씀하셨나요? 불쌍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회복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처럼 그래서 회복의 기쁨을 맛보라고 외 아들을 보내신 것 처럼 주님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주님의 성품 중 가장 귀한 성품은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주님을 십자가로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죄로 인해 고통당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매산교회의 한 가정이 그렇게 혈연이 아닌 다른 형태의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사랑의 힘인 것입니다. 회복의 기쁨을 맛 보게 하는 힘은 사랑입니다. 긍휼이요, 자비입니다. 성탄의 계절의 긍휼의 은혜로부터 오는 회복의 기쁨, 하늘의 평화가 여러분과 가정, 그리고 이웃에게 넘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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