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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2011년12월18일, 대강절 네 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12.18 14:30 | 조회 3089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
2011년12월18일(대강절 네 번째주일) 사7:10-14

지금은 대강절 4번째 주간입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렸는데, 기쁨 중에 제일 중요한 본질적인 기쁨은 회복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모르고 다른 기쁨과 행복을 바라본다면 어두움입니다. 이 기쁨은 2배가 아니라 100배입니다. 성서가 이야기 하는 기쁨이 바로 이 100배의 기쁨 회복의 기쁨, 희년의 선포입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 돌리는 기쁨입니다. 병든 사람은 건강을 회복하고, 마음이 상한 자는 싸매임을 받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르고,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르며, 눈 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며,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리는 회복의 기쁨입니다. 병든 땅, 오염된 공기, 물질가치에 찌든 사람들이 생명의 가치로 전환하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귀한 기쁨은 무엇일까요? 가장 귀한 회복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말씀의 회복입니다. 다윗왕이 오벳에돔에서 율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돌이키듯이, 그래서 너무 기뻐 하체가 드러나는 것도 모르고 춤을 추었듯이,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며 성전에서 찿은 말씀을 온 교인과 함께 읽으며 회개의 눈물 뿐 아니라 기쁨의 잔치를 벌였듯이, 우리도 우리 안에 말씀의 회복,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는 회복, 2011년 성탄에 이 기쁨을 맛 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성경은 단지 박물관이나 골동품점에 진열되어있는 전시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진열장에서 꺼내어 손질하여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성경은 2,3천년 전에 기록되었지만, 마치 이집트의 미이라와 함께 묻혀있던 밀알이 세상에 나와 심기어 싹을 틔우듯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기워져 싹을 틔워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은 30, 60, 100배가 됩니다. 기쁨, 평화, 사랑, 관용, 용서, 기다림, 희망, 감사. . .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아 역사하는 말씀이 될까요?

세계의 모든 식물의 종자를 미국의 메이저 곡물회사가 다 장악했다고 합니다. 거의 65만종의 종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미국의 토종 종자는 딸기, 뚱딴지(일명 돼지감자) 등 몇몇 종류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밀, 쌀, 콩, 토마토, 채소류, 과일 등 거의 모든 재배 작물의 종자는 외부 도입종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개국 초기부터 끊임없이 외국의 식물종자원을 정부차원에서 자국으로 끌어들여왔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콩의 경우 4,451 품종을 미국이 확보하고 있는데, 그 중 3,500여종을 한반도에서 수집해 갔다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에는 콩의 종자가 다양하고 풍성했는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는 현재 콩의 90%를 수입하고 있고, 그 중 60%를 미국에서 수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농무부 대두 유전센타에 가면 우리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콩 종자를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식물의 종은 국가의 힘이될 것이라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종에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정말 성경말씀은 생명 씨앗의 은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식물 종자기업 중 1위 기업이 몬산토라고 하는데 1년 매출이 13조억이라고 합니다. 13조원이라 합니다. 엄청나지요. 그런데 이 기업은 센과 치히로의 먹는주술에 걸린 사람들 처럼 끊임없이 세계의 식물종자를 먹어치웁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담겨있는 생명 씨앗은 어느 누구든지 모두에게 개방되어있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구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가져다가 심고 싹을 틔워 자라 열매 맺어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앙인들 조차도 이 열매가 맛이 없는지, 아니면 아마도 재배 방법을 몰라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러나 요15장 포도나무 비유에 보면 주님께서 어떻게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지 잘 나와 있는데도 그대로 말씀 따라 농사를 짓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열매가 없고, 열매가 없으니 삶의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자고로 농사는 농사 법에 따라 농사를 지어야 하는 것 처럼 말씀 농사도 그 때에 맞추어 그 말씀 따라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자기 맘대로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니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한 10년 되었나요, 교회가 한창 난초 재배를 할 때입니다. 안산의 경기노회 소속 목사님께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 교회 교인 중 난 재배를 시작한 분이 있는데 거의 3,000평 규모의 대단위 난 사업을 시작했는데, 초자여서 난을 잘 못키우는 것 같으니 와서 좀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몇 분들하고 함께, 안산의 난 농장을 찿아 간 기억이 나는데, 이 분 난을 키우는데, 자기 생각대로 키우는 것에 황당하였고, 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설은 돈이 있어서 최고의 시설로 비닐 하우스를 지었는데도 자기 생각대로 키우니 난이 자라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무어라 도움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안하무인으로 자기 생각대로 ‘T'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하면 안됩니다. 말씀대로, 성령의 감동이 오는대로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 씨앗의 보고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각자 필요한 종자를 받아 마음 밭에 잘 뿌려 좋은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할텐데 어떻게 하면 말씀을 잘 받아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오늘 이 시대 속에 살아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나아와서 세례를 받는 예수에대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모두들 사자와 같이 용맹스러운 힘이센 강한 왕, 메시야를 사모하며 기다리던 그 당시에 요한은 사자가 아니라 양, 그것도 어린 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 스스로가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구약의 이사야 53:7에 있는 고난받는 종의 노래에 기록되어있는 말씀을 예수님에게로 돌린 것입니다.

또 집사 빌립이 예루살렘에서 가사라는 곳으로향하다가 이디오피아에서 온 경제 장관 내시를 만났을 때 읽은 바로 그 성경 말씀이 바로 사53:7인데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말씀이 누구를 가리키는 말씀이냐고 물었을 때 집사 빌립은 주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가 성령을 받자 방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는 술에 취했다고 합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일어서서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하면서 욜2:28-29의 말씀이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
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드디어 이루어 진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지만 요한이 예수가 정말 기다리던 메시야인지 믿기가 어려워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정말 메시야인지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눈먼 사람이 다시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은 사람이
듣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님 스스로의 말씀이 아니라 사35:5,6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스스로의 말씀도 선포하셨습니다. 적지 않게 구약의 말씀을 계속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도 예수는 세 번 모두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그렇고, 집사 빌립도,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 까지도 모두 구약의 말씀을 끌어내어 지금 동 시대에 자신 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비추어 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사7장의 말씀도 역시 마1:18-25에서 마리아의 수태고지의 이야기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말씀의 싹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말씀이 동 시대에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요? 말씀이 다시 살아나는 자리를 보면 성경은 그 시대, 동 시대에 가난하고, 고통받고, 아파하는, 눈물의 자리에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시대를 보면 용산, 평택, 4대강, 부산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 , , 강정 등 아픔과 눈물, 벼랑 끝의 자리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라는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에게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보온이 잘되고 쾌적한 집이 아니라 어느 여관 마굿간에 선포되었습니다. 가난하고, 고통받고, 힘들어 삶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선포되어 위로와 평화를 주었습니다.

사7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당시 남 왕국 유다의 왕이던 아하스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쳐들어 온다는 소식에 무서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남쪽 유다를 반드시 지켜 주시겠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어 유다를 치려할 때 7:2에 보면
“. . . 왕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마치 거센 바람 앞에서 요동하는 수풀처럼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4절에 보면
“시리아의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크게 분노한다 하여도,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합니다. 아람왕과 북 이스라엘 왕은 지금 유다왕 아하스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아브낼이라는 사람의 아들을 왕으로 세워 꼭두각시로 부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7절 말씀은
“이 계략은 성공하지 못한다.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8절도 보면
“에브라임은 육십오 년 안에 망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다시는 한 민족이 되지 못할것
이다”라고 하면서 9절 말씀에서는 결론적으로
“너희가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한다면, 너희는 절대로 굳게 서지 못한다!” 고 합니다.

유다로서는 큰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마치 바람에 수풀이 움직이듯이 유다 왕 아하스와 유다백성들은 그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65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에 야웨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두 나라는 ‘타다가 만 두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으니, 두려워하거나 겁내지 말라’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역사적 정황 속에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아하스 왕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그것은 ‘징조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11절에 보면
“너는 주 너의 하나님에게 징조를 보여 달라고 부탁하여라. 저 깊은 곳 스올에 있는 것이
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무엇이든지 보여 달라고 하여라”고 합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면, 아하스 왕이
“아닙니다. 저는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하스 왕의 신앙이 돈독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동맹을 맺고 남 유다를 침공하려고 할 때 아하스 왕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이 두려워 떨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믿을 것을 강조했지만, 아하스 왕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하스왕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앗수르를 의지합니다. 왕하16장 이하에 볼 것 같으면 아하스 왕이 앗수르왕 디글랏빌레셋을 만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갑니다. 그는 거기에서 앗수르 신전의 제단의 그 화려함과 웅장함을 보고 예루살렘의 우리야 제사장에게 편지를 통해 다마스커스의 우상제단의 양식과 구조를 그대로 모방하여 우상제단을 쌓게합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새로 쌓은 우상 제단 앞에 예물을 바치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립니다. 아하스왕이 “징조를 구하지도 않고,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다고 한 배경에는 이러한 사실이 있습니다. 신앙이 아니라 불신앙입니다.

이러한 아하스 왕에게 역으로 하나님은 하나의 징조를 보이십니다. 바로 마태복음 1장의 요셉에게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의 선언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 이름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함이라’는 뜻입니다.
B.C 740~680년경에 이사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6,7백년 후 아기 예수 탄생의 때에 요셉에게서 다시 살아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역사상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에 그 힘든 시대를 살아내는 순박한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살아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에 그대로 다시 살아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하스왕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다고 하였지만 우상숭배로 찌들은 아하스왕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 앗수르제국의 디글랏빌레셋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상숭배에 마음이 빼앗긴 아하스 오아에게 오히려 역으로 징조를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시대, 즉 B.C 700년경에 선포된 이 말씀이, 아기 예수 탄생의 시대에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 목자들, 동방박사들에게 다시 선포되었고, 지금도 이 말씀은 단지 아하스왕에게만이 아니라, 아하스왕 처럼 수 많은 우상에 포로되어 참 기쁨, 참 평화의 삶을 살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 헤메는 인류를 향하여 지금도 살아서 생생하게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고 쳐들어 올 때 아하스왕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치 우리의 마음이 바람에 흔들리는 숲과 같은 때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 믿음을 회복하고, 하나님 믿음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혹 여러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며,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은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 하듯이 나에게 말씀합니다. 그 두려워하는 것, 나를 염려와 근심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 타다가 만 부지깽이에서 나오는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하스 왕에게 보여준 한 징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장인 28장의 마지막 절인 20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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