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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첫 번째 말씀(2011년11월20일, 성령강림절후스물세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11.20 15:03 | 조회 2631


주님의 첫 번째 말씀
2011년11월20일(성령강림절후스물네번째주일) 막1:15

아주 어렸을 때에 지금과 달리 볼 거리가 없을 때, 동네에 써커스단이 들어오면, 출연진들이, 그러니까 광대들이지요, 그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어커디온을 키며,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며 동네를 한 바퀴 돌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써커스단이 동네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일 손을 놓고, 또 집 안에 있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문 밖으로 뛰어나옵니다. 그리고서는 그들의 지나가는 모습을 한 참 바라보며 즐거워하였고, 아이들은 신이나서 그들을 뒤 쫓아가던 일이 생각이납니다.

오늘 읽은 말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는 마치 서커스를 알리는 광대의 행진과 같습니다. 광대들이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어른이고 아이들 할 것 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우리도 우선 주님의 이 말씀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여야 합니다.
“때가 찿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세례 요한이 예수님 보다 먼저 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3:2에 보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합니다. 마3:17에서 보면 세례 요한이 체포당하자 예수님께서 그 때부터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에는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마11:18-19에 보면 그 차이가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그들이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
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 한 일로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기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떨어져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광야가 아니라 사람들이 뫃여사는 동네에서 다니셨습니다. 요한의 분위기를 장례식장에서 장송곡을 부르는 것과 같다면 예수님의 분위기는 결혼식에서의 무도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외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그 주권을 행사하면 그 동안 거짓, 위선, 부정, 부패했던 세력들은 모두 죽게될 것이니 그러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그 주권을 행사하니 그동안 굶주리고 소외당하고 병들었던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되었던 죄의 짐을 지고 가던 사람들은 모두 와서 이 하나님께서 베푸는 잔치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금식, 금욕을 강조하지만 예수님은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입니다. 실제로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먹는 이야기에대해서 여러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보리떡과 물고기로 5,000명, 4,000명을 먹이는 기적도 베풀었습니다. 요한의 때는 통곡의 때 이지만 예수의 때는 환호하며, 기뻐하는 때입니다. 요한의 회개는 금식과 고행이 따르지만, 예수의 회개는 축복의 잔치입니다. 기쁨과 감격의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은 마치 값진 진주를 밭에서 발견하고 집에 돌아와 모든 것을 팔아 밭을 사는 농부와 같은 기쁨의 회개입니다. 그 동안 그 농부가 가장 귀하게 여겼던 것 다 팔아 없애버리고 돌이켜 진정 소중한 것을 사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하여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그러한 회개입니다. 오직 깨달은 자 만이, 진주를 발견한 자 만이 알 수 있는 그러한 회개입니다. 성경은 그러한 차이를 때가 찿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국 잔치에 초대되어 음식을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누는 바로 그러한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의 대표적인 이야기를 잃은 것 다시 찿는 3가지 비유에서 볼수가 있습니다. 잃은 양 한 마리 비유, 동전 한 드라크마,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3 이야기 모두 돌아온 것에대한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거칠게 이야기 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다가올 징벌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 밑둥에 닿아있다는 것입니다. 여차하면 찍어서 불 속에 던질 것이라합니다. 키질을 하여 쭉정이와 알곡을 가릴 것이라합니다. 군인들에대하여, 세리들에대하여, 일반 사람대하여도 구체적으로 이러저러하게 행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 만나고 회개할 때, 여리고성의 삭게오가 예수님 만날 때,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 등, 예수님을 통해 회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잔치요, 축제입니다. 바로 그 잔치, 축제의 때가 되었다고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11:16, 17에서 그러한 때에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까? 마치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서,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
는 것과 같다. '우리가 너희에게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을 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해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이것은 유대인들, 그 당시의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당들의 굳어바린 종교행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혼잔치에 초대하여 피리를 불지만 정작 초대한 사람들은 오지 않고, 오히려 장터의 거렁뱅이, 병든자, 굶주린자들이 모여듭니다. 결혼잔치의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그들을 기꺼이 받아들여 잔치를 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의 때가 되었건만 기존의 유대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음을 질타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의 첫 번째 문구는 ‘때가 찿고’입니다. 이 때가 찿다는 말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가끔 말씀드리지만 말씀에 첫 마디가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 할 때, 먼저가 중요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할 때 항상, 쉬지 말고, 범사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복음인 것 같지만 아닐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 말씀 흉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때가 찾다’는 것입니다. 이 ‘때가 찿다’는 말 속에는 그 때를 아는 가, 모르는 가 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때가 찬 것을 모르면, 이어지는 뒤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면 때가 찾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시간을 보는 시각은 두가지입니다. 예를들어 첫째로 달력을 펼쳐 놓으면 계절 마다 달 마다 기념일,명절 등 여러 가지 날들이 떠오릅니다.결혼기념일,가까운 사람들의 생일,국가기념일 마치 시간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또 주마등 같다고 하든지 화살 같이 흐른다고 합니다. 초가 분이되고,분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달, 년, 세기가 됩니다. 이렇게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열하는 시간 바라보기입니다.

둘째로 그러나 이 시간을 느끼는 각 자의 마음은 차이가 납니다. 예를들어 이제 조금 있으면 대학입시가 곧 있을텐데 입시생과 그 부모들이 그 시험을 바라 보는 것과 그 입시와 무관한 사람들이 입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릅니다. 입시생과 그 부모는 하루 하루가 새롭습니다. 모든 것들은 그 시험 때를 향하여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다른 모든 것들은 정지되어있습니다. 놀러간다든지, 소설을 읽는다든지, 여행을 떠난다든지 이런 일들은 시험 보고 나서 하자고 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는 것을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봄이 지나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고 하는 순서적인 시간,그러니까 다가오는 시간, 아니 흐르는 시간에 아무런 의미 부여하지 않는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합니다.

그러나 뒤에서 말했듯이 입시생처럼 어느 정한 기점을 기다리며 그 시간에 의미 부여를 하는 시간 개념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입시와 관련이 없는 사람은 그 때가 그저 한 겨울 중에 한 시간입니다. 그 때 날씨가 춥던, 눈이 오던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입시생에게 있어서 시험보는 날 눈이 온다거나, 급격히 한파가 몰아친다면 입시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서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두 번째 시간의 개념인 카이로스의 시간에대해 이야기 합니다.양적인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질적인 시간에 의미부여를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님께서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면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인데 “때가 찿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도 때가 찿다는 같은 말씀을 선포하였는데, 여기서 “때가 찿다”는 말은 시간의 질적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농부들에게 있어서 벼가 고개를 숙이면 추수할 때가 된 것입니다.가을에 농부에게“때가 찿다”는 말은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내용이 있는 시간,어떠한 일이 벌어질, 사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추수할 때 파종을 하면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이 어디 있는 지를 분명히 해 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긍극적인 이유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인데, 지금 가나의 결혼 잔치 집에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의 고난과 연관 시킬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축제의 판이 깨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오는 인류 구원의 그 기쁨, 그 풍요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자주 결혼 잔치로 비유하셨는데, 바로 주님의 때에 주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가 그 은혜를 입는 그 때야 말로 이 죄된 인간 세상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요, 가장 귀한 때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그 때에 모든 시간은 정지되고,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온 우주 공간과 온 시간에 퍼져 나갑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죽음의 시간이 지금 이 시간에 나에게 카이로스의 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또한 이제 구원의 예수님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셨는데, 그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마지막 심판이요, 회복을 바라보는, 그 앞으로 있을 그 종말의 때가 지금 현재 이 시간에 나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건의 그 시간이 지금 이 순간에, 또한 앞으로 주님 다시 올 그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쉽게 이야기 하자면 지금 한창 입시철인데, 입시생은 지금의 하루 하루가 모두 그 입시를 향해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 모든 것들이 유보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잠, 친구 만나 수다 떨기, 영화보기, 소설 읽기, 여행, 음악 듣기 등...그 모든 것이 입시날이라는 시간에 맞추어 정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을 보지 않는 학생에게 있어서, 그 입시를 기다리는 모습은 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시험날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냥 미래의 지나갈 어느 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보다 먼저 광야로 나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자, 마가복음에 보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셰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나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그 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습니다.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전부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요한의 말씀을 받아들여 회개의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카이로스는 바로 하나님의 카이로스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한 점, 한 시점에 찿아들어 오신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이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 시간에 그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역을 의미 없다고 하면서 팔짱 끼고 바라본 것이 아니라, 아 지금이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할 때로구나 하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교회 텃밭에 한 창 채소 과일이 잘 자랄 때, 고추, 가지, 토마토, 오이...그런데 토마토 같은 경우는 햇살을 잘 받아 발갛게 잘 익었는데, 제 때에 따지 않으니, 벌레먹고, 깨지고, 땅에 떨어져 썩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때에 따지 않으니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때가 있습니다. 이 때다 싶을 때 선택하며 결단하지 않으면 결국 깨지고, 썩고, 벌레먹은 토마토 같은 삶을 누릴 수 밖에 없지 않는 가 십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어 돌아서서 자신을 바라볼 때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의 삶이 잘 맞추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이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역사가 장차 그 때에 이루어 질텐데 그 때는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실 심판의 때입니다. 온 인류가, 온 우주 만물이 바로 그 시간, 단 한 번의 변화, 주님의 영광을 함께 나눌 그 시간을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는 구속의 질서가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그 때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앞으로 있을 사건이 지금 나의 삶 속에 들어와 나의 삶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입시생의 하루 하루가 앞으로 있을 입시에 근거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입시생에게는 많은 해야할 일이 있지만 시험을 위해 그 날을 준비하며, 친구만나고, 여행하며, 충분히 잠자고 하는 모든 것을 유보시키고, 중단합니다. 모든 것들이 정지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바로 다시 오실 주님의 그 때 ,하나님의 회복과 완성과 영광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치 벼가 무르익으면 농부가 낫을 갈아 추수를 준비하듯이 준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언 뜻,언 뜻 다릅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비죤이 틀리며, 구하는 것이 틀립니다. 그런데 이 의미, 이 하나님의 때를 잃어버리면 세속의 가치에 묻혀, 마치 베드로가 예수님 체포 당하실 때 모닥불 쬐며 사람들 속에 묻혀있듯이 세상에 묻혀버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새 하늘 새 땅 초청 공연이 있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는데, 여러분들은 어떻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여러 곡들 중에 ‘이미 시작된 나라’라는 곡이 참 좋았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노력하고 땀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는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시작된 나라로 부름 받은 백성들로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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