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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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냥 . . 감사( 2011년11월 6일, 성령강림절후스물한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11.06 15:37 | 조회 2149


그 냥 . . 감사
2011년11월 6일(성령강림절후스물한번째주일) 합3:17-19;빌4:4-7

감사라는 말을 사전에서 찿아 보니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마움’을 또 찿아 보았더니 ‘고맙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고맙다’를 찿아 보니까, 더 이상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여기서 이 ‘감’이라는 한자의 뜻이 ‘느낀다’입니다. 그래서 감사란 ‘느낌을 표하는 것인데’, 그래서 고마움을 나타내는 인사라고 한다면, 조심스러운 것은 고마움의 예는 있는데, 그러나 ‘감’, 즉 느낌이 없다면, 그러니까 감동이 없다면 겉으로는 감사이지만 사실은 껍데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간에도 우리가 마음이나 또는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이것이 형식적인 나눔인지, 정말 자기의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인지를 순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감사는 느낌입니다. 그러니 하물며 하나님께서야 감사할 때 ‘사’, 즉 예절만 있고, 감은 없는 감사를 어찌 받을 수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감동이구요, 감동하여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람의 감사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사람에게 감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아 당시 사람들이 어떠했는가 하면 무법천지에, 땅이 썩었고,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시대를 바라보면서 너무 힘들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세상은 항상 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세상에대해 하나님이 힘들어하시는 것입니다. 창6:7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 다 있나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홍수이야기는 글자 그대로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후회한다고’, 야! 그거 바라, 하나님 이거 엉터리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세상이 이렇게 불완전하니 하나님 믿을 것 없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후회한다는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홍수 이야기는 이야기입니다.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오늘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은유와 상징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실망이 정말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는 단지 인류에대한 하나님의 심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홍수의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멀리에서 도인처럼 정갈하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들의 악한 생각, 더러움, 강포와 패역을 안타까워 하십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후회하셨습니다. 마음 아파하시며 탄식하십니다. 하나님이 어찌할 줄을 모르십니다. 바로 이 인간에대한 사랑의 갈등이 이 홍수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이 하나님의 괴로움과 아픔 그리고 사랑의 갈등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바로 노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찿았습니다. 노아는 은혜를 입은자입니다. 공동번역은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이름의 뜻은 “위로하다”입니다. 누구를 위로하였을까요? 그렇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위로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인간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위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받았습니다. 무엇을 받았을까요?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받았으니 감사할 따름인 것입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노아에게 감사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지요. 받은 것입니다.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동이 없으면 감사가 아닙니다. 개그콘서트에 ‘감사합니다’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감동은 아니구요, 즐거움을 줍니다. 그런데 감사에 진정 감동이 없다면 개그 만 못한 것이지요. 하나님이 노아에게 감동을 먹었다고 하는데, 역으로 따지면 노아도 하나님께 감동을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창6:22, 그리고 7:5에 보면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다 했다’, ‘주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냥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감동이 없이는 그대로 다 할 수가 없지요. 마음이 하나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창6:7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한 마음, 한 뜻입니다. 하나님과 노아가 서로 주고 받고 합니다.

노아는 산 꼭데기에 배를 지으라고 할 때, 산 중턱이나, 해변가에 지은 것이 아니라, 산 정상에, 비구름, 먹구름이 아니라 햇볕 내리찌는 해 맑은 하늘 아래에서 배를 지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며, 비웃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감동을 먹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실 때 사람들에게 그렇게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에게 감동을 먹은 것입니다. 아들 예수님이 감사한 것이지요. 이렇게 감사는 하나됨, 일치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의 내용입니다.

교회 논 위 습지에 벚 나무 하나가 있어요, 몇 년 전에 갖다가 심은 것입니다. 그 옆에 산수유일 것 같은데, 산수유도 한 그루 있구요. 그런데 어제 보니까 특히 벚나무가 그렇게 보기좋게 당당하게 서 있더라구요. 근데 기억이 희미한데, 심은 것이 아니라, 나무가 보기 흉하게 자라 위에 아예 줄기를 쳐 버렸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하여간, 줄기를 완전히 잘라버렸는지, 아니면 어디서 얻어다 심었는지 확실치는 않은데, 처음에는 심을 때 그 벚나무가 보기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비스듬한 것이 좀 흉물스럽기 까지 했어요. 그런데 어제 보니 모양이 나드라구요, 그리고 옆의 다른 나무들 보다 우뚝 서 있는 모습에 새삼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대 나무도 작년에 심었는데, 모두 죽고 한 그루가 뿌리가 살아 순이 올랐는데, 처음에는 웃 자라 대가 서 있지도 못했어요. 지난 우기 때는 더 그랬구요. 그래서 처음에는 교회와 팬션 연두색 울타리에다가 끈으로 묶어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그냥 놓아두었지요. 그런데 어제 보니까, 그 대나무도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늘 보는 것 가지고 근심 걱정을 한다는 것입니다. 대나무도 그렇고, 벚나무도 그렇고 처음 볼 때 저게 살까, 아니면 저 몰골이 흉해서 했는데, 그 당당함과 홀로서서 바람에 한들 거리며 서 있는 모습에, 내 생각이 부끄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일은 보이는 곳에서, 아니면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니 볼 수 없는, 지각할 수 없는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며, 만지는 것들은 정말로 아주 작은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물을, 세상을, 이웃을, 가까운 사람을 바라볼 때,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를 키울 때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 들어와서 있는 것만 보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자기 중심적인 생각으로 자녀를 바라보면 정말 소중한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역사와 경륜을 놓치는 것이지요.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지혜가 아닙니다. 그래서 지혜는 영적인 것이 맞습니다. 지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이 지혜입니다.

나이가 들면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에대한 것도 생각해 보아야하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것이 아니겠나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적이다’라고 하면 뭐 특별하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계획과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마치 어린 아이가 아빠가 일하실 때 그 곁에서 쪼물락 거리는 모습 속에 참 평화가 있듯이, 그렇게 주님 안에서 쪼물락 거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러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지요. 그게 맞습니다. 상식적으로도 보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 보다는, 그 반대의 영역이 더 크고, 깊고, 넓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3:19에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
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홍해 바다에 가로막혔을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
는지 지켜 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바로 모세에게
“너는 왜 부르짖느냐?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여라.”고 합니다. 거침이 없습니다. 은혜입니다. 무릎꿇어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무릎을 꿇는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눅17에 보면 10명의 문등병 환자가 예수님을 만나 문등병을 고친 긷적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10중에 감사하러 예수님을 다시 찿은 사람은 1 사람 밖에 없습니다. 10에 1입니다. 무릎을 꿇는 감사는 오늘도 이렇게 10 중에 1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사마리아인이 주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모습이요, 마음입니다. 무릎을 꿇는 것 말입니다. 은혜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무릎을 꿇지않는 감사는 영적 감사라 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감사는 무릎을 꿇는 감사입니다. 온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사이지요. 여기서 이 문등병을 고침받은 사마리아인은 기적에서 감사로 넘어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감사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ㄴ는 것 사이에 무릎을 꿇는 감사가 있습니다. 주권자에대한 나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동행하시고 함께하시는 것에대한 감사입니다.

그냥. .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그냥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찿아 보았습니다. 이 번에 생긴 ‘그냥.. 가게’ 이름에 나쁜 의미가 있지나 않을까 해서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참 좋더라구요. 그냥이라는 말은 지금 그대로, 있는 글대로 라는 의미가 있고, 또 하나는 지속적이라는 말의 뜻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그대로가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 춥든지, 덥든지, 비가오던지, 비바람이 몰아치든지, 몸이 매우 안 좋던지, 계획하고 추구하며, 몰두했던 일이 안 좋더라더. . . 그냥 지금 감사한 것입니다.

왜 감사할까요.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좋은데 어떻게 좋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현실이고, 사실이며, 실제인데 말입니다. 당장 전세값이 띠어 올라, 집을 구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감사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대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 머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 넘어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감사합니다. 무엇을 감사할까요?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보혜사(원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곁에' '부르다'라는 뜻인데, 법원에서 피고인을 변호하도록 부름받은 "친구"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뜻은 ‘우리 옆에 와 계시는 분’이지요.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약속하시기를 마28:20에서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고 바로 내 곁에 오셔서 내 손을 꼬옥 붙잡고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외면(外面)하고 살때에 우리는 절망하고 불안해 하며 살아갑니다. 눈에 나타나는 일에 늘 일희일비하는 대책없는 삶에 붙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귀등에 닭 한마리와 천막 그리고 등불을 싣고 길을 가고있었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려면 한참은 더 가야 할텐데 이미 날이어두워 길가에서 유숙해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민가는 한참 떨어진 것 같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커다란 나무 밑에 천막을 치고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성경을 읽고자 등불을 켰는데, 얼마 후 갑자기바람이 불어와 등잔불을 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덮고 기도를 하고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천막 사이로 비쳐드는 햇빛에 눈이 부셔 잠을 깬 랍비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날마다 꼬끼오 소리로 나를 깨워 주던 닭이 어찌 오늘은?'정신을차리고 밖으로 나간 랍비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나무에 묶어 두었던닭과 나귀는 맹수에 찢겨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행중이라 지치고 피곤한 자신에게 왜 이런 변고가 생겼는지, 은근히 하나님이 원망스럽기까지했습니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가 생각하니 이젠 화가 났습니다.
그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닭과 나귀가 참혹하게 찢겨 죽은 그 때에 자신은 곤히 잠을 잤으며,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는 털썩 주저 앉았습니다.
“내가 살아 있구나 내가 살아 있어 하나님은 내게서 닭과 나귀를 앗아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 살려주신 것이었구나! 하마터면 난 감사해야할 하나님께 원망을 늘어놓고 불평을 할 뻔했구나. 난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거야.” 했다고 합니다.

그냥 . . 감사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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