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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보는 행복(2011년10월23일, 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10.25 19:00 | 조회 2119


하나님을 보는 행복
2011년10월23일(성령강림절후열아홉번째주일) 창33:10;고후4:6;마5:8

성경을 읽다 보면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계속 바뀌기 마련입니다. 2,3년 전 만 해도 저는 빌3:12말씀이 참 좋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며, 이미 목표점에 다다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
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자꾸 목적지향적인 것들이 세상과 교회에 회자가 되니까 그게 매우 싫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늘 좋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평화가, 그러니까 감사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평화가 내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준다는 것입니다. 늘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말씀을 좋아하는지요? 지금은, 최근들어서는 바로 오늘 본문 말씀이 참 좋습니다. 고후4:6 말씀입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좀 복잡한데, 본문을 찬찬히 살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 하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우리에게도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 7절에서 이러한 은혜를 보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금 그러한 영광을 알 수 없을까요? 하나님 영광의 존귀함을 잊어버린지 이미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공생애를 살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언젠가 고전 15장의 부활의 영광에대해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이 다르고, 땅의 영광이 다르고, 해와 달과 별, 온갖 피조물들의 영광이 각기 다 다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하늘의 영광 뿐 아니라 온갖 피조물의 영광이란 다름아니라 자기 정체성, 자기 존귀함이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자기 존귀함,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땅에 버리워 밟힌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은 소금의 자기 존재감을 잃어버린 것에대한 말씀입니다. 지금 인류가 그 존재감, 존귀함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의 아름다운 것을 맛 보며,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오염되고, 썩은, 그래서 방부재 잔뜩 첨가한 음식물을 먹고 사는 모습 그대로 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 고후4:7절에서 이러한 은혜를 보물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도 주셨다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알면 어떻게 될까요?

토마스 머튼이라고 하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어찌 보면 신학생일 때 신앙의 갈급함을 채워주셨던 분입니다. 그 분의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미디어들, T.V, 인터넷, 핸드폰, 잡지, 신문, 라디오 . . . 등 모든 매체들이 세상을 찬양한다고 합니다. 저도 그것에 대해 공감을 합니다. 예전에 수원 고등교회와 연합으로 감사 예배를 드렸을 때, 고등교회 사모님께서 처음자리 뒷 길에서 맨발로 걷기를 인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논에서 흐르는 물소리, 특히 물소리, 새 소리, 들 꽃, 돌부리 하나, 하나,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온 몸으로 느끼며 천천히 한 걸음 씩 걸어나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밤 가시가 많아서 따가워 죽는 줄 알았는데, 그 때 지금은 옆에 팬션 업체의 집 두 체가 들어선 자리인데, 논을 돌아서 참나숲으로 들어가 걸어 내려오는 중에 저는 그 참나무들이 가지를 마음 껏 하늘로 쫙 펴서 그리고 그 나무의 굴피들 하나 하나가 그 골을 따라 하늘을 향하여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 찬양을 그 나무 모습 그대로로 돌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광을 알면 영광을 돌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너무 어둡고, 더럽혀진 것 같습니다. 특히 돈으로 많은 사람들이 끝 없는 욕심과 그에 따라 반대로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1%대 99%의 시위가 전세계를 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의도 금융가에서 같은 연대로 시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위하고 하는 것뿐 아니라, 돈에게 무릎 꿇고 돈에게 돌아간 영광을 다시 하나님께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사람들은 사탄 마귀에대해 이야기를 하면 싫어하기도 하고, 딴 세상 이야기 처럼 듣고,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두움의 힘, 죽음의 힘 정도로 그러나 사탄 마귀는 인격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 가운데 와서 우리와 함께 머물며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합니다. 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어느 여류 문학작가와 함께 한적이 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때 그 분 이야기가돈에 인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치 이야기 하듯이, 역시 소설가다 라는 생각이 든 기억이 나는데, 돈은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웃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지게 하고, 싸우고, 거짓말하게 하고, 폭력적이게도 합니다. 인격입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무섭다고 했는데, 정말 무서운 분이 누구입니까? 생명을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 영광은 저 멀리 창고 깊숙이에 가두어 놓고는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짝퉁이지요. 인류는 지금 짝퉁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참 인생의 삶, 참 기쁨의 삶, 참 평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생명 아닌 슬픔,미움, 원수맺기, , ,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볼 수 있고, 그 빛을 따라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8,9에 보면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
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
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
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느냐?”고 합니다. 마음이 너무 많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청결하다는 것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공동번역은 마음이 깨끗하다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깨끗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을 보는 것이 행복할까요? 여러가지 행복이 있지만 성경은 지금 하나님 보는 행복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 보는 행복일까요? 말에 어패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본다고 합니다. 그것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T.V에서 어느 네델란드에 입양되었던 여인이 한국에 와서 엄마를 찿는 사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42살된 여인인데 그 보다 훨신 나이가 들어보이는 것은 그가 암 말기 환자인데, 전이가 빨리되는 것을 막기위해 이빨을 모두 뽑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더 나이가 들어보였던 것 같습니다. 몸도 많이 불편하여 걷는 것도 편치 않은데,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자기는 이렇게 입양되어 네델란드에서 살았지만, 나는 그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엄마가 왜 나를 입양하게 됐는지 나는 충분히 엄마의 입장을 받아들여 엄마를 이해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후 다시 인터뷰를 하는데, 방금 전의 모습과는 달리, 정말 엄마가 보고 십다고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의연하게 엄마를 이해하고, 그리고 행복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내 마음 한 곳에 엄마에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가 없다며 안타까운 모습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수소문하여 어릴적 살 던 곳을 찿아가 자신의 엄마를 아는 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신 엄마가 이 건물 옆의 유흥업소에서 일하였고, 도저희 아이를 감당할 수 없어 옆집 사람에게 맡기워 키워지다가 네델란들로 입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었다는 분도 생모가 아니고 자기를 받아 키워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아들도 만났는데, 어렸을 때 자기를 그 아드님이 보살펴 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하면서, 그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생모는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건강도 좋지 않고 하여 자신을 길러준 엄마의 무덤에 꽃 한 다발을 드리고는 네델란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명의 연이라는 것이 참 끊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본능적으로 나의 태생을 찿는 모습이 마치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처절하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엄마를 찿아 말기암 환자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모국을 찿아 온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보고싶어 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인 그리움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그리움을 다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진정한 간구, 찿음이 아닌 짝퉁 하나님을 찿고 그 가짜 하나님을 모시며 헛된 즐거움에 빠져있지나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을 찿고, 만나는 방법을 아예 잃어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눅11:9은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
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종종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셔서 언제든지 우리에게 찿아오려 하십니다. 그리고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일에 몰입하여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예배당에 나아가, 예배드리며, 찬양을 들으며, 기도하며, 성도의 교제를 통해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을 보고, 들을 수가 있습니다.

고후3:13-18 말씀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그
얼굴에 너울을 썼지만, 그와 같은 일은 우리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각은 완고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옛 언약의 책을 읽
을때에, 바로 그 너울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제거되기 때
문입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그 마음에 너울이 덮여 있습니
다.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
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
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
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도 “우리가 만일 죄 없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다윗은 내가 태어날 때 이미 죄 가운데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창세기에서우리는 첫 사람 아담이 뱀의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죄를 범하여 죽을 수 밖에 없게 됨을 봅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낳는다고 합니다. 죄의 히브리원어는 ‘하말티아’인데, 그 말의 뜻은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왜곡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잘 보지를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숨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니, 사람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이 세상,자연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베푸시는데, 우리에게 주신 좋은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문정용님과 지금 세례공부를 계속하고 있는데, 믿음에대한 공부를 하면서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하니까 고개를 갸우뚱 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믿음을 가져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는자가 복이있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믿음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믿음을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나안 땅을 다니시면서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면서 믿음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혀에 암이 생겨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생겼습니다. 수술이 잘 되면 모르지만, 잘 못되면 말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했을 때, 이 환자는 마지막으로 한 말은 ‘하나님 감사합니다’였다고 합니다.

찬양의 은혜요, 감사의 은혜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울 때, 블레셋에서 거인 장수 골리앗이 나와 싸움을 돋우면, 이스라엘은 두려워 하여 몸을 숨기며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다윗은 삼상17:45-47에서
“너는 칼을 차고 창을 메고 투창을 들고 나에게로 나왔으나,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
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너에게로 나왔다. 주님께서 너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실 터이니, 내가 오늘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사람의 주검
을 모조리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밥으로 주어서, 온 세상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을 알게 하겠다. 또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쓰셔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을, 여기에 모인 이 온 무리가 알게 하겠다.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주님께 달린 것
이다. 주님께서 너희를 모조리 우리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고 하면서 조금도 굴하지 않
습니다. 믿음의 용기가 다윗에게 있습니다. 마치 여호수아 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눈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 속에서 5,000명을 먹이고 12 광주리를 남길 수 있다는 풍요를 봅니다. 믿음의 조상 요셉은 그 모진 풍랑 속에서 ‘하나님이 먼저 나를 보내셨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좋은 믿음의 일들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은혜를 인생길에서 잃어버렸습니다. 마치 주민등록증을 분실한 것 처럼, 왜 잃어버렸을까요? 세상 일에 빠지니까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길 가는 여정에 필요한 이 귀한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아니 곳 곳에 놓아두셨는데, 그 곳을 피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아가자 마자 사흘 만에 물이 없어 고통스러워합니다.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물이 써서 마실 수가없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불평을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그 나뭇 가지를 꺽어 물에 던지니, 쓴물이 단 물로 변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나 안가서 엘림이라는 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에 12샘이 있고, 종려 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 좋은 것을 보지 못하니 쓴 물 만을 봅니다. 늘 마라에 머물러 쓴물 부여잡고 살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엘림이 바로 곁에 있는데 말입니다.

감사, 기쁨, 소망, 용기, 믿음, 풍요. . . ‘이 모두 귀한 보석’같습니다.그런데 이귀한 보석을 팥 죽 한 그릇에 마음이 쏠려 바꾸어 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후4:7-12은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
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
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
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살
아 있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늘 몸을 죽음에 내어 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

창33:10에 보면 야곱이 원수가 된 형님을 향하여“아닙니다, 형님, 형님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형님께서 저를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 주시니,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합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아마도 이 행복을 우리는 지금 모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화해, 평화, 관용, 용서. . .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삶를 맛 보며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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