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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2011년10월2일, 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1.10.02 16:44 | 조회 2528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

2011년10월2일(성령강림절후열여섯번째주일) 겔47:1-12

로마에 법이 있고, 그리이스에 철학이 있다면, 이스라엘에는 예언서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의 예언자 활동은 독특합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그 시대 마다 개성있는 활동을 폈습니다. 예언자들은 자신의 철학, 이념, 사상을 전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학문이나, 계급 등 인간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 시대 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라 합니다. 렘9:1에 보면
“살해된 나의 백성, 나의 딸을 생각하면서, 내가 낮이나 밤이나 울 수 있도록, 누가 나의
머리를 물로 채워 주고, 나의 두 눈을 눈물 샘이 되게 하여 주면 좋으련만!” 하고 민족에대한 애끓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요시야가 마지막 종교개혁의 불꽃을 사르지만 나라의 기운이 이미 기울어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아야 했던 예언자입니다. 토기장이 비유, 거짓예언자 하나냐와의 싸움, 토기장이의 비유 등 렘1:13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
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다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남북 관계 속에서 종종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모스는 정의의 예언자라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 말씀은 5:24인데, 신학교 다닐 때 ‘오이사려!’하면서 장절을 외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또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사랑의 예언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고멜이 음욕에 빠져 거리의 여자로 전락하는데, 이 모습은 이스라엘의 부패, 도덕적 해이, 우상숭배를 그대로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창녀가 되어버린 아내를 3 번씩이나 다시 데리고 와서 함께 살라고 말씀하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변함없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인간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에스겔은 환상의 예언자입니다. 에스겔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자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 활동을 한 예언자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절망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에게 장차 되어질 이스라엘의 모습을 환상을 통해 보여주셨는데, 그 대표적인 환상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이스라엘의 회복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이스라엘에게 희망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예언자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잘된다 잘된다 할 때 오히려 그러면 망한다고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멸망을 당하여 절망하여 희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번에는 새 하늘 새 땅의 비젼을 이야기 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도 에스겔 골짜기에 버금가는 환상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다시 세우고 땅을 다시 차지하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생명의 생수가 흘러 나와 만물이 소생하며, 회복한다는 말씀입니다. 성전 동쪽을 향한 문의 문지방에서 생수가 흘러 나와 성전 바깥 쪽으로 흘러 점점 물이 불어 발목에서 무릎, 허리 까지 그리고 건너지 못할 정도로 물이 창일하여 헤엄을 쳐야 건널 수 있는 강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강가나 바닷가에서 놀던 생각이 납니다. 처음에는 파도 놀이 하다가,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 가랑이를 무릎 정강이 까지 올려 붙이고 놀다가 파도에 휩슬려 아에 옷 다 벗고 물속으로 풍덩 들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이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에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발목에 까지 올라 왔다는 것은 신앙은 신앙인데 거기 까지 신앙입니다. 아직 물 속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풍덩 하고 들어가지 못하고 물과 가까워 지려고 하는 단계입니다. 마치 우리가 강이나 바다로 물 놀이 갔을 때 단 번에 물 속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물이 차갑게 느껴지고, 날씨가 쌀쌀하면 선 듯 물 만지기가 내키지 않을 때, 파도치는 것에 맞추어 밀려 갔다, 밀려 오는 놀이를 반복하며 재미있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또 물이 무릎 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이 단계는 이제 물 속에 들어가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신앙으로 치면 은혜 속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자기 뜻 세우는 시기입니다. 성경에 마리아, 마르다, 아직 성령이 임하기 전의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집에 왔을 때, 예수님이 얼마나 귀한 손님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집 안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 마르다는 예수님을 극진히 모시기 위해 주방을 오고 가며 분주합니다. 한 창 바쁘게 움직이면서 힐끗 방 안을 드려다 보니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 앞에 앉아 열심히 말씀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부아가 났습니다. 한 창 바쁜데, 손님 접대는 안하고 예수님 앞에 앉아서 한가하게 말씀듣는 마리아가 못 마땅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마디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마리아좀 밖으로 내 보내 달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예수님께서 오히려 동생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좋은 것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은 바로 그 때 부터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그 어두움이 참 빛으로 나아가는 출구인 것입니다. 마르다가 다시 부엌으로 들어 갔을 때 부엌은 정말 어두 컴컴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마르다는 부엌 한 쪽에 쪼그리구 앉아 펑펑 울며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엌의 그 어두움이야말로 마르다에게 영적으로는 오히려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자기 생각에 바뻤던 것이지요. 자기 생각에 이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 일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늘 잇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깊어질 수록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주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해아리기 시작합니다. 성숙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과정입니다.

다음 단계는 물이 허리 까지 차 올랐다고 합니다. 이 경우는 하나님의 뜻과 자기의 뜻이 뒤섞여 있는 단계입니다. 베드로가 에수님께 칭찬을 듣다가도, 사탄의 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며 아래로 추락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물이 건너지 못할 정도로 차 오르면서 이제 건너려는 것이 아니라, 수영을 하면서 그 몰아치는 파도를 타는, 즐기는 파도 위를 유영하는 것입니다. 온 몸을 다 물에 적시는 단계입니다. 물과 자기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수영 선수들이 가끔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열심히 수영을 하다 보면 물이 자신을 등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 아니 밀어준다는 것입니다. 즐기는 것이지요. 바로 그러한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 파도에 떠 밀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파도를 타는 것이지요. 교우여러분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요?

물은 우리 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물로 되어 있습니다. 물이 나쁘면 속도 버리고, 피부도 거칠어지고, 더욱이 병균, 병충, 박테리아에 오염된 물을 마시면 몸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은 몸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데, 그럴 경우 물을 끓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우리 고기교회 물은 참 좋은 물입니다. 물이 맛이 있습니다. 정수된 물이나, 수퍼에서 파는 물보다 훨씬 맛이 있습니다. 늘 새벽 기도를 마치면 물 한 통 받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보면 물이 좋지 못해 먹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영적 권능을 물려 받고 여리고로 향할 때입니다. 왕하2:19에 보면
"보십시오, 선생님께서도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좋지만, 물
이 좋지 않아서, 이 땅에서는 사람들이 아이를 유산"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그 샘의 근원을 찿아가 소금을 뿌려 물을 정화시켜 먹을 수 있게 합니다.

또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자 마자 물이 없어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마라’라는 곳에 이르러 샘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그 물이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물이 있어도 오염되어 먹지 못하자 사람들이 원망과 불평을 쏟아 붓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물에 던져 물을 달게하여 먹을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깊은 맛이 나는 시원한 물을 마시지 못하면 사람들은 힘들어합니다. 견딜 수 없어합니다.

몇 일 전에 미금쪽으로 내려가는 도로를 타고 차를 몰고 내려가다가 동천 초교 쪽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서는데, 마침 그 길에 좌회전 신호 받으려는 차가 정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진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조금씩 다가가면 차를 빼주어 길을 열어줄 줄 알았는데, 길을 열어주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수 신호로 조금만 길을 열어달라고 하는데 무응답입니다.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좀 더 다가가 창 문을 열고 차를 빼 달라고 하니 위험해서 차를 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쪽으로 충분이 붙일 수 있는데 왜 못 하느냐’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도 무어라 하면서 길을 마지못해 열어줍니다. 그래서 인상을 쓰며 길을 빠져나왔습니다. 한참을 지나오면서 좀 미안했습니다. 내가 그리 바쁘지도 않은 상황이었고, 그 사람 차 안에는 아이들도 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가 그만 짜증을 내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려도 서로 웃을 수 있고, 편안했을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면 매 사가 그렇습니다. 소위 종교인인 나도 그렇게 무언가 급해서 상대방에대한 배려를 하지 못하는데,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오늘 동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이렇지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대한 배려, 이해, 그리고 기다림, 여유. . . 이러한 마음의 샘물이 솟아나야 하는데, 내 샘도 여전히 막혀있나 봅니다.

하여간 오늘 이 시대가 영적 샘이 거의 막혀있지 않은가 싶고, 또 영적샘이 심히 오염되었습니다. 아니 영적으로 라고 할 것도 없이 우리 주변의 하천, 샘, 우물들 같은 먹는 물이 점점 오염되어 갑니다. 하여간 문화적으로, 여러 정보 매체, 영상 매체 또는 집단들에 의해 안 좋은 가치, 욕망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좋은 물을 가려 마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좋은 물을 마시기 위해 가게에 가서 물을 사서 마시는데, 렘2:17,18에 보면
“주 너의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여 주는데도, 네가 주를 버리고 떠났으니, 너 스스로 이런
재앙을 자청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이제 네가 시홀 강 물을 마시려고 이집트로 달려
가니, 그것이 무슨 일이며, 유프라테스 강 물을 마시려고 앗시리아로 달려가니, 이 또
한 무슨 일이냐?”고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만을 의지하지 않고 이집트와 앗수르의 힘을 믿는 이스라엘에대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끝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멸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주의 백성들이 세상 풍조의 나쁜 물에 젖어들기 시작하면 결국 온 몸이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할 때 말씀 아닌 것, 믿음 아닌 것, 성령의 감동이 없는 것으로 하려고 합니다. 사랑으로 하지 않고, 원망과 시비로 합니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 그리고 얽혀있는 관계로 하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예루살렘으로부터 흐르는 물이 흘러 가는 곳 마다 만물이 살아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강가의 나무와 생물들이 살아나고, 강과 바다 속의 물고기들이 살고 나무들이 때에 따라 과실을 맺습니다.

물이 끊어지면 물이 없으면 모든 것이 죽습니다. 사막은 생명있는 것이 살기에 아주 열악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환경에 견디려고 식물은 선인장 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기위해 잎이 가시로 바뀌었습니다. 영적으로도 목이 마르면 그렇게 마음에 가시가 돋힙니다. 사람을 찌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찌릅니다. 영적 물이 끊어지고 오염된 물을 마시면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어지고, 물이 나쁘고 가물었으니 열매가 맺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늘 좋은 영적 샘물을 마셔야 합니다. 생명의 생수, 생명의 양식, 말씀의 양식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 고기교회의 영적 샘물은 늘 변함없이 일정하게 목말라 찿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실 물을 줄 수 있는 제단이 되어야 합니다. 홍수가 나든(홍수가 나서 물이 많아도 오하려 먹을 물은 귀해집니다)아니면 가믐이 와도 변함이 없이 생수가 흘러 넘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이 귀한 샘터를 잘 다듬고, 고치고, 세워야 합니다. 마치 이삭이 우물을 파듯이 말입니다. 창26:18에 보면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팠다’고 합니다. 이웃에 살고 있는 블레셋 사람들이 메워버린 것입니다. 이삭이 이끄는 부족이 번성하는 것을 보고 이삭이 사용하는 우물을 모두 메꾸어 버린 것입니다. 이삭은 게의치 않고 아버지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다시 팠는데, 팔 때 마다 물이 솟아 나왔습니다. 사막에서 우물은 생명입니다. 이삭은 그렇게 살기위해 막힌 샘을 다시 팠는데, 문제는 다시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샘이 자기내 것이라 우기며 시비를 겁니다. 참 놀라운 것은 이삭은 그들이 시비를 걸어올 때, 맞 대응하지 않고, 그 판 우물을 순순이 내 주고 자리를 옮겨 또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기를 여러번 하고나서 블레셋의 멜기세덱이 더 이상 싸우지 말자고 하면서 평화협상을 제시합니다. 그 이후 두 부족 사이에 싸움은 그치고 평화가 찿아옵니다. 참 놀라운 것은 얼마 후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 처럼 우물을 팠는데 그들이 판 우물에서도 샘이 솟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 우물을 ‘브엘 세바’, 즉 맹세의 우물이라 명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이 영적 샘, 평화, 사랑, 관용, 용서, 나눔의 우물을 파, 생명을 살리는 것을 보고 따라서 그들도 같은 샘을 파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 교회가 영적샘을 오히려 막고 있지는 않은지, 오염된 샘에 익숙해 져 있지는 않은지? 교우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영적 샘이 막혀있다면 이제 이삭 처럼 이전의 샘을 기억하여 영적 샘을 파서 우리의 생명의 물을 끌어 올립시다. 그래서 서로에게 나누어, 풍성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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