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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으로부터 시작이다(2012년 4월 1일, 종려주일)

하늘기차 | 2012.04.01 16:49 | 조회 2184


어린 양으로부터 시작이다
2012년 4월 1일(종려주일) 사53:7-12;요2:13-16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한 종려주일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 오거나, 왕이 행차할 때에 종려 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고, 길에 깔고 하며 환영할 때 사용하는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사람들이 바로 그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한 것입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는 유월절이었는데, 이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바로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널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일으킨 10가지 기적 중에 마지막인 장자의 죽음 속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들이 사는 집 문에다가 흠없는 1년된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를 바름으로 하나님의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 문을 넘어가 바로의 아들을 포함한 태어난 모든 첫 번째 것을 죽게 한 그 재앙에서 이스라엘이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해방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이 때만 되면 예루살렘은 해방의 열기로 가득 차 누가 불씨만 당기면 당장이라도 해방의 불꽃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갈릴리 외곽 동네에서 만 활동하던 예수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온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예루살렘의 지도층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억압 속에 살아가던 백성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 예수를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날 온 예루살렘이 예수를 맞이하였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나를 구원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 하면서 승리의 축제를 펼쳤습니다. 주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여 성전 앞 이방인의 뜰의 장사치들을 채찍으로 몰아낼 때에 아마도 승리의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을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드디어 우리의 바램이 이루어진다고, 모두들 좋아했습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 경비대나 로마의 수비대가 이러한 폭력을 목격하고 예수를 체포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백성들의 예수에대한 호응과 지지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루살렘에 모여든 모든 유대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예수의 예루살렘 탈환에대한 소망이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몇 일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고 얼마 후 예수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자조와 탄식으로 예수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빌라도의 법정에 예수가 섰고, 그 때에 유월절에 빌라도 총독 임의로 한 사람의 죄수를 풀어줄 권한이 있어, 빌라도 입장에서는 예수에게서 로마를 음해 할 그리고 백성들을 정치적으로 선동할 아무런 단서도 찿지 못하자, 빌라도는 예수를 풀어주려고 하지만 오히려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러면서 군중들은 또 외칩니다.
“바라바를 놓아주라! 바라바를 놓아주라”합니다. 눅23:19에 보면 바라바는 ‘성 안에서 일어난 폭동과 살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라바는 일반 흉악범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해 로마에 저항하여 싸운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친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깨끗게 하실 때만해도 예루살렘 유월절 축제에 모여든 사람들은 드디어 로마로부터 자유를 누릴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한 껏 예수에 취했지만, 결과는 실망이요, 좌절이었습니다. 그러한 무기력한 예수를 군중들은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입성 때의 “호산나!”는 이미 식어버리고, 바라바를 찿습니다. 이스라엘 해방을 위해 싸운 바라바를 놓아주라고 외칩니다.
“바라바! 바라바!”로마의 힘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예수를 이스라엘은 원치 않았습니다. 로마를 능히 물리칠 수 있는 보다 큰 힘을 원했습니다. 예수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 큰 힘을 보았는데, 로마의 힘 앞에 스스로 무릎 꿇는 예수를 이스라엘은 외면해 버렸습니다. 바라바를 외치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오늘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바라바!’를 외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총선정국으로 들어섰습니다. 여야가 국회의원을 보다 많이 세우려고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지금 나오는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신하고, 신선한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최근 안철수씨가 조심스럽게 정치적 발언을 하며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에도 온 백성들이 이러한 꿈을 꾸고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온데, 입에서 입으로 소문에서 소문으로 퍼져나갑니다. 드디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가 나타났다. ‘호산나!’, ‘호산나!’ 합니다. 늑대같은 로마의 빌라도! 여우같은 헤롯! 종교적 틀에 안주하여 기득권을 행사하는 가야바 제사장 같은 종교인들! 이제 모두 몰아내겠지! 소리높여 외치며 예수를 환호하며 왕으로 추대하려 했습니다. 적어도 제자들의 분위기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늑대나, 여우, 쥐새끼 같은 기존의 기득권자에대해 예수는 사자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53:7에서 처럼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
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서 무언가 신선한 정치를 하기를 학수 고대합니다. 그런데 국민들의 의식 수준의 가치가 여전히 물질 중심의 가치, 그것도 소위 천민 자본주의의 틀에 매여있다면 어느 지도자가 와도 여전히 똑같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이 남북이 분단된 정황 속에서는 더 힘이듭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강정의 구럼바위가 폭파되고, 4대강이 그 강의 모습을 잃고,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고 수출하려는,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공격, 정부 최고의 권력이 관여한 민간인 사찰, FTA 협약, 의료보험, 철도 등의 민영화, 재벌의 골목상권 장악. . . 이러한 정황들 속에서 좌절하며, 낙심하며 희망을 잃어가는 이 때에 우리가 정말 희망하며 살 길은 정치판을, 경제판을 갈아 엎는 것에서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요2장에서 처럼 성전의 장사치들을 갈아 엎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전정화 사건은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시작이 되는 것인지를 상징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두 가지를 염두에 두시고 성전을 깨끗게 하신 것입니다. 첫 째는 에스겔서의 앞 부분을 보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죄가 하도 깊어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겔9:6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할텐데, 그 시작이 성전에서부터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은자 까지도 다 멸하겠다고 하면서 이 땅을 버렸다고 하십니다. 겔10:4에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에 성전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도륙당합니다.

또 하나의 사건은 B.C.175년에 그리이스의 황제인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유대의 종교의식, 제도, 성전규례, 율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성전을 세속화 시킵니다. 돼지를 성전의 제물로 바친다던가, 제우스 신의 화상을 그린 깃발을 성전에 놓고 희생제물을 드린다던가, 성전의 많은 방들을 창녀들의 방으로 만들어 음행을 독려한다던가 하며 이스라엘을 치욕과 굴욕에 빠뜨립니다. 이 때 등장한 지도자가 바로 마카베오입니다. 마카베오가 나타나 안티오크스를 물리치고 성전을 정화시키고, 잠깐동안 평화를 누립니다. 그 때의 그 사건을 이스라엘은 지금도 기념하고 있는데, 안네의 일기 중에 안네의 가족이 다락방에서 문 꼭꼭 잠그고 머리에 고깔을 쓰고 촛불을 키며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그 잔치가 하누크라고 하는 수전절(修殿節, Feast of the Dedication) 잔치입니다. ‘빛의 잔치’라고 하는 하나님께 성전을 정화시켜 하나님께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잔치였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안티오크스 에피파네스의 그리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했듯이 나치의 치하에서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간절함으로 절기를 조심스럽게 지키는 장면입니다. 요10:20에도 보면 예수님이 바로 이 봉헌절을 지키는 장면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 봉헌절이 되었는데, 때는 겨울이었다. 예수께서는 성전 경내에 있는 솔
로몬 주랑을 거닐고 계셨다”

그런데 이 성전정화 사건 이후 사람들은 다음의 단계를 기다렸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의 해방을 위한 행동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주님은 사53:7의 말씀 처럼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
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않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거역하여 원망하고 시비할 때 불뱀에 물려 모두 죽게 되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구리뱀을 보는자는 살 것이라는 말씀을 따라 구리뱀을 보고 살아난 것과 같습니다. 교우여러분! 아마 이 시대에 우리는 불뱀보다 더 독한 뱀에 모두들 물린 것 같습니다. 그 독이 얼마나 독한지 좀처럼 우리를 회생시키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상 죄를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사53:2,3은 이 어린양의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
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
기지 않았다”고 합니다.5절에서는 그가 찔렸다고 합니다.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우여러분 이것은 누구의 모습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나의 모습이고, 우리 이웃의 모습입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되는 근현대의 지난한 세월 동안 괴물과 같은 권력의 힘과, 물질 맘몬, 개발, 안보에 상처받은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 사람의 모습 만이겠습니까? 인류 문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우리가 입은 상처, 우리의 죄로 얼룩진 모습이 아닌가요? 주님이 우리의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주님이 이렇게 찔리고, 상처입고, 고난을 당하여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사53:7에 보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 입을 열지 못했다고 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맘몬, 물질, 권력의 폭력, 풍요의 신에의해 받은 상처, 물든 죄에대해 백마를 타고 칼을 빼어들어 단칼에 베어버린 것이 아니라, 묵묵히 그 아픔을 끌어 안으셨습니다. 가난을 가난 그대로, 육신의 질고를 그대로, 교육받지 못한 모습 그대로, 집이 없어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사글세로 옮겨다니는 그 모습 그대로, 육신의 질병으로 힘겨웁게 병마와 싸우는 모습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강정 구럼바위를 끌어 안고 눈물짓는 모습 그대로, 아니 지금 수만년 유유히 지내 오다가 거대한 권력의, 군사적 폭력 앞에 갈기갈기 찢겨지는 구럼 바위 그대로. . . 아무 힘 없이 말씀 그대로 늑대 같은 빌라도 앞에, 여우 같은 헤롯 앞에, 쥐새끼 같은 자 앞에 서 계십니다.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사53:10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인간의 죄된 고통, 아픔, 상처를 위해 아들 예수를 그 아픔 그대로 겪게 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그 고통, 아픔, 질고를 격지 않아도 되지만 내가, 우리가, 아니 인류가 겪는 아픔을 그대로 감당케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풀어보면 이 상함, 질고가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이야말로 우리 민족을, 아니 인류를 구할 유일한 희망입니다. 어린양 같은 삶을 사는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님이십니다. 권선생님하면 떠 오르는 것이 병치례입니다. 폐결핵, 신장결핵, 방광결핵 등 . . . 벌레 한 마리 못 잡는 선생님의 어머니가 잡아오는 개구리 때문인지 조금은 좋아진 몸이었지만 어머니 돌아가시고, 집안이 더 어려워 아버지의 권유 따라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기도원에서 등록비 50원이 없어 서성이든 목발잡이 문둥병자와 함께했던 날들. 그리고 거지생활, 오히려 그 3개월 생활이 예수님의 광야40일 이었으며, 굶주림과 무관심 속에서 성경을 읽어 구약의 예언자들이 살아있는 것 처럼 다가왔다는 기간이었습다. 돌아가실 때 까지 가난을 살아내신 분이십니다. 우린 지금 죄송하지만 너무 풍요로운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동남아, 중동, 남미, 그리고 우리 북한. . . 어딘가 이러한 가난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살고 있습니다.

권선생님은 작은 움막을 짓고 살면서 군에서 쌀을 배급받으며 살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과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겨울에 쥐들이 추우면 선생님의 발치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오고, 소나기로 찢어진 여름 창호로 개구리들이 뛰어 들어오는 삶이었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새마을 운동한답시고 마을 어귀의 참나무를 베려고 할 때 부등켜 안고 눈물을 흘리시던 분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렁게 머물러 있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이라는 선생님의 글모음 머릿글에 보면
“어디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일제 식민지 생활, 분단, 전쟁과 굶주림 속에서 과연 어떻게 인간답게 살것인가 하며 당신의 뜻을 강아지똥, 초가집이 있는 마을, 몽실이 언니, 하나님의 눈물, 오소리네 집 꽃밭, 한티재 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등 주옥같은 동화들을 통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태기네 할아버지, 샛들아주머니, 빨갱이의 자식으로 태어나 범죄자가 되 버린 목이, 첫날밤도 못 치른 채 신랑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시부모를 봉양해온 할머니가 효부상을 거부한 사연, 승현이 아빠, 탑골어르신. . . 모두 상처받고, 병들고, 찢기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은 가난과 질병에 찌든 것이 아니라 이웃의, 아니 인류의 가난과 질병을 품고 오히려 물질과 문명과 권력의 힘을 몰아내셨습니다. 힘이들어 하루에 10장 이상의 원고를 쓰지 못하는 연약한 몸으로 가난을 질병을 품고 아름답게, 인간답게 살아가셨습니다.

그 분은 교회에대한 메시지도 남기어 놓으셨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판순이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아기를낳고 쌀이 없어 굶고 있다니까 자기 집 용단지의 쌀을 퍼가지고 가서 산모에게 밥을 지어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용단지의 쌀은 단순히 용신을 섬기는 단지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비상식량 역할도 했던 것이다. 성주단지의 곡식도 마찬가지다. 흉년이 들면 그 곡식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아름다운 관습이 참으로 많다. 가족 중에 누군가 먼길을 떠나면 그날부터 끼니마다 밥을 한 그릇씩 떠놓는다. 그 떠놓은 밥을 우연히 집에 찾아오는 나그네가 있으면 기꺼이 대접한다. 아무리 가난한 집에도 일단 집에 찾아온 손님은 박대하지 않고 먹이고 재워준다. 좀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아예 사랑채를 비워놓고 나그네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들판에서 점심을 먹다가도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으면 큰 소리로 불러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렇듯 나누는 일은 철저했다. 조상에게 제사지낸 음식마저도 절대 혼자 먹지 않고 이웃끼리 나누어먹는다. ‘고수레’로 들판에 던진 음식은 벌레도 먹고 새도 먹는다. 가을 감나무 꼭대기의 까치밥과 까마귀밥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과의 사랑이다.

“한국의 모든 교회는 이런 것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 서구인들이 마음대로 변질시켜 놓은 예수의 참된 복음을 깨닫는다면, 창조 이래 이 땅에서 역사하신 하느님의 숨결을 금방 찾아낼 것이다. 나는 지금 20여년 전에 내가 구상하고 꿈꿨던 교회는 벌써 전에 잊었다. 교회는 새삼스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나는 떳떳하게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살고 싶을 뿐이다. 하느님은 그것을 원하셨기에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 서로 섬기는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준 사랑이며 그것을 위해 피흘려 희생하신 것이다. 이 땅위의 진짜 우상과 마귀는 제국주의와 전쟁과 핵무기와 분단과 독재와 폭력이다.”
오늘 말씀 사53:10에 보면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
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합니다. 바로 지금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의 씨앗이 이렇게 퍼져나갑니다. 우리 교회에도 이 씨 한 알 심기워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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