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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서는 안되는 열매(2012년 3월 4일, 사순절두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2.03.04 16:54 | 조회 2616


<샤갈의 에덴동산>

먹어서는 안되는 열매
2012년 3월 4일, 사순절두번째주일 창2:15-17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위치해 있는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먹으면 죽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나무 열매는 상징과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는 결과론적인 해석이 주류를 이루어 그러므로 그 이후의 인류는 아담의 죄성을 되물림 받았다는 해석을 하지만, 실존적인 해석을 통해 지금 현재에도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여전히 보암직하고, 먹음직 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 열매는 어떤 열매일까요. 그렇습니다. 늘 날마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관계와 한계에대한 열매입니다. 먹지말라는 뜻은 한계를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고, 다시말하면 나 아닌 다른 피조물에대한 존중히 여김을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하나님에대한 경외를 포함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의 서로가 서로에대한 자존감을 지켜주며 인정하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이 한계, 이 경계는 인류의 폭력으로 무참히 무너지기가 십상이었습니다.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종교, 회사의 소유주와 노동자, 선생과 제자, , , 무수한 관계들이 시대적 흐름을 따라 지켜주고 존중히 여겨지기 보다는 하나님 떠난 연약한 인간의 본질적인, 그리고 실존적인 두려움으로 인하여 상대방에대한 존귀 보다는 쉽게 경계를 알게 모르게 폭력적으로 넘어서는 경우가 우리 인류 역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류에게 선물한 에덴 동산에서 이 관계존중은 사탄인 뱀의 유혹에 의해 깨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의 욕심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평화에서 어두움과 공허, 그리고 혼돈으로 폭력으로 바뀌었고, 그 폭력의 정도는 인류 역사의 과정 속에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스스로 자멸할 수 있을 정도의 가공할 폭력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지구상에서 3번째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인류에게 있어서 문명사적으로, 인류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인간이 쌓아온 모든 문명이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그동안의 인류의 방향성에서 돌아서야하는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년을 맞이하며 각계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제가 읽고 있는 ‘시사IN'의 한 문화 칼럼에서 <체르노빌의 목소리>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강한 자극을 받아 그 칼럼을 그대로 교우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시사 IN 문정우의 독서본능(233호)에서
책장을 덮고, 내 세계는 변했다

20년도 더 전에 일본의 반핵운동가가 보여줬던 만평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까마득히 높은 다이빙대에서 다이버가 몸을 풀고 있다. 넓은 수영장은 맨바닥을 드러낸 채다. 과학자들이 다이버에게 안심하고 뛰어내리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다이버가 떨어지는 동안 수영장에 물을 대겠다는 것이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바로 그처럼 위험 천만한 짓이란 풍자였다.

이 뛰어난 만평가의 통찰은 정확했다. 과학자와 그들의 뒤에 도사린 정치가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다이버는 결국 뛰어내렸고, 수영장 물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이 체르노빌이고 후쿠시마이다. 불운하게도 앞번호를 받았던 몇 몇 다이버가 비참한 최후를 마쳤는데도 도약대는 여전히 용감한 다이버들로 붐빈다. 그 가운데는 자랑스런 태극마크도 보인다. 도약대 위에서는 앞서 뛰어내린 다이버가 기술이 부족해 변을 당했다고 믿는 분위기이다. 덕분에 20세기를 관통해온 이 희대의 사기극은 21세기에도 진행형이다.

만평은 20세기형 사고의 한계도 보여준다. 20세기에 지구란 행성을 휩쓸었던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출구에는 그래도 희망이 보였다. 숱한 희생자의 무덤 위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밝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다. 인간의 악행에 치를 떨었어도 그들을 둘러싼 자연은 무심한 듯 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의지할 만했다. 그래서 이 만평가는 다이버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뇌수를 뿌리는 순간이 비극의 정점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서곡에 불과했다. 다이버가 숨을 거두는 순간 수영장과 수영장 밖의 모든 세상이 변했다. 과거에 우리가 의존했던 사고 방식의 고리가 끊어지고 말았다. 지구 자체가 아주 낯선 행성이 됐다.

벨라루시의 저널리스트 스페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펴냄, 2011)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전하려고 쓴 책이다. 그녀는 체르노빌의 희생자인 소방대원의 아내, 마을 주민, 군인, 해체 작업자, 사냥꾼 등의 입을 빌어 그들이 만난 매우 익숙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전과는 너무나 판이한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체르노빌은 이미 진부한 이야기, 시시한 공포물처럼 됐지만 그녀가 보기에 체르노빌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시간에 대한 관념이 무너졌다. 체르노빌 사고로 이 땅에 흩어진 방사성 핵종은 5만, 10만, 20만년, 아니 그보다도 오래 남을 것이다. 인생의 관점으로 볼 때 마법에 걸린 공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영원한 악몽에 빠진 것이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 따위의 공산당 구호가 애처로워 보일 지경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책에 ‘미래의 연대기’란 섬뜩한 부제를 붙였다. 체르노빌러츠(체르노빌 사람)가 겪은 얘기를 쓰면서 그녀는 미래를 얘기한다는 예감에 시달렸다.

1986년 4월26일 체르노빌 원전의 제4호 원자로가 몇 차례 폭발 후 무너졌을 때 루드밀라 이그나텐코는 24살. 젊고 씩씩한 소방대원 바실리 이그나텐코와 갓 결혼한 상태였다. 거리를 걸을 때나 상점 안에서나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그때까지 그녀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몰랐다. 방호복도 없이 출동했던 남편은 6시간만에 쓰러지고 말았다. 소비에트 당국은 기밀을 유지하려고 가족도 따돌리고 피폭된 7명의 소방관을 모스크바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녀는 모스크바까지 쫓아가 물어물어 남편의 소재를 찾아냈다. 의사와 간호사는 포옹과 키스도 불허했다. 그들은 말했다. “잊지 마세요.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방사성 물질이에요. 사람이 아니라 작은 원자로에요.” 얼굴과 몸이 파란색, 빨간색, 회갈색으로 변해가고 날계란이나 물조차 삼키지 못하며 남편이 3주를 버티는 동안 그녀는 틈만 나면 남편을 안아줬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남편이 죽은 뒤 낳은 아이는 간경화로 4시간만에 죽었다. 그녀 역시 뇌출혈로 미쳐간다. 그녀는 사랑을 지키려다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죽어가는 남편과 아들 곁을 지키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저자는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느냐며, 그들의 세상에서는 사랑도 죽음도 더러워졌다고 말한다. 그것이 체르노빌이 아우슈비츠나 굴라크(스탈린 시대의 강제 수용소)와도 구별되는 점이다.

소비에트 지도부는 체르노빌 사고 수습을 전쟁 치르듯 했다. 그들은 정확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사고가 난 9일만에야 ‘그저 불이 난 것뿐이니 안심하라’고 발표했다. 거짓말을 하는 데도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다. 소비에트 당국은 어처구니없게도 80만명 이상의 중무장한 병력을 투입했다. 그들은 모두 기관총을 들고 있었는데 ‘도대체 그들은 뭘 쏠려고 했던 걸까요. 물리?’라고 저자는 기막혀 한다. 군인들은 집단 자살하듯 일을 했다. 독일제 크레인과 사람 닮은 일제 로봇, 과학자 루카초프가 화성탐험을 위해 만든 로봇들이 방사성 물질에 내부가 타버려 작동을 멈췄는데도 녹색로봇(군인)은 꿋꿋이 일했다. 그들은 원자로 지붕을 닦아냈고, 양탄자 말 듯 지표를 깎아냈다. 흙에 흙을 묻었다. 삽으로 핵을 퍼냈다. 그들이 없었다면 원자로가 폭발해 유럽은 폐허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이상한 전쟁이었다. 아프카니스탄에서도 지옥을 경험했지만 빠져나오면 끝이었으나 체르노빌에서의 전쟁은 집에 돌아가서부터 시작이었다. 수많은 군인이 삶이 아니라 정상적인 죽음이라도 맞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만큼 죽음의 양태가 다양하게 처참했다. 이미 체르노빌에 투입된 군인 수만 명이 사망했고, 그들 중 40% 가깝게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에 죽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아직 많은 일들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체르노빌에서 인간은 자신만 구하고 모두 배반했다. 짐승의 털뭉치가 방사성 물질의 온상이라며 군인들이 강요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아끼던 개와 고양이를 모두 버렸다. 군인과 사냥꾼이 그들을 도살했다. 살아남은 개와 고양이는 달걀을 훔쳐 먹다 나중에는 닭을 잡아먹었다. 닭이 사라지자 개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 굶주림에 지친 고양이는 화분에서 베고니아 잎을 갉아 먹었다. 살아 있는 모든 동물의 눈에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인간들은 풍뎅이와 거미, 이름 모를 유충까지 특수 제작된 시멘트 벙커에 묻어버리는 의미 없는 짓을 저질렀다.

체르노빌의 산하는 변함없이 아름답지만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인간의 적으로 돌변했다. 땅에서 돋아난 풀 한 포기, 낚아 올린 물고기 한 마리, 이름 없는 들새가 사람을 죽였다. 유순하고 친절했던 주변 세상이 온통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노인들은 당장 마을을 떠나라고 재촉하는 군인들에게 “해도 떴고, 연기도 안 보이고, 가스 냄새도 안 나는데, 왜 피난을 가라는 거야”라고 소리쳤다.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체르노빌을 직접 겪지도 않은 아이들이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이 마치 유리에 물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쉽게 지친다. 놀다가 공이 풀숲에 들어가면 누구도 들어가서 꺼내올 생각을 못한다. 자연은 더 이상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7명의 대머리 소녀가 한 병실에 모여 있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아이들은 삶보다 죽음에 훨씬 익숙하다. 아이들은 친구가 섭섭하게 하면 “너는 방사선 같은 놈이야”라고 외친다. 전쟁통에도 난민캠프에서도 천진하게 빛났던 아이들의 눈빛이 체르노빌에는 없다.

<책장을 덮으면 당신의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다. 내 세계는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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