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삶(2012년 2월12일, 주현절후여섯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2.02.12 15:51 | 조회 2402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삶
2012년 2월12일(주현절후여섯번째주일) 겔37:1-10;롬8:5-11

사람이 많은 것을 소유하며 누릴 수 있지만, 가질 수 없는 것,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스스로 날짜 정하여 내가 원하여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은 사람에게 소유권, 주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주인인 생명(生命)은 글자 그대로 살라고 命 받은 것입니다. 살고 싶으면 살고, 죽고 싶으면 죽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삻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命입니다. 그런데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게 사는게 아니야! 하는 말도 들어봅니다. 모두 다 살기는 사는데 잘 살지 못하는 것에대한 말입니다.

오늘 읽은 겔37장의 말씀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환상 가운데 어느 골짜기로 데리고 갔는데, 골짜기 바닥에 마른 뼈들이 즐비하게 많이 깔려있고, 아주 말라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의 비참한 모습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환상 가운데에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에대한 소망을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그것은 살지만 사는게 아닙니다. 죽음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스라엘의 영적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골짜기에 수북히 쌓여 먼지 풀풀 날리는 마른 뼈다귀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보여줍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이 수북히 쌓여 먼지 풀풀 날리는 마른 뼈다귀로 남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무엇 보다도 이스라엘의 포로됨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된 이스라엘은 그 곳에서 무엇을 해도 포로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되고, 에스더가 왕후가 되고, 모세가 왕궁에서 왕자로서 산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노예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바벨론에서 어떤 특권과 지위, 명예와 부를 누리며 산다고 해도 그것은 이tm라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벨론을 위한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다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에스겔의 말에 따라 뼈다귀에 힘줄이 이어지고, 살이 붙고, 가죽이 씌워지지만 그러나 숨 쉬는 기척이 없습니다. 살지를 못합니다. 겉은 멀쩡한데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너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불어와서 이 살해당한 사람들에게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
여라”합니다. 그러자 생기가 그 뼈다귀에 들어가 곧 살아 일어나서 큰 군대를 이룹니다. 그렇습니다. 생기가 없으니 살지 못합니다. 영이 없으니 움직이지 못합니다. 살아있지만 산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없는 삶은 마른 뼈다귀와 같은 삶인 것입니다. 롬8:9는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
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합니다. 집사요, 장로요, 권사요, 교사요, 성가대요, 구역장이요, 권찰이요, 목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마른 뼈다귀 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그 뼈다귀 마디 마디에 힘줄이 이어지고, 그 사이 사이에 살이 붙고, 그리고 그 겉을 살 갗으로 잘 씌워도 그것은 그대로 뼈다귀인 것입니다. 영이 없으면 영적으로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불어오자 그 뼈다귀는 살아납니다.

언젠가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늦 총각으로 사진관을 경영합니다. 흔히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사진관입니다. 요즈음은 사진관이 없지만 예전에는 동네 마다 사진관이 하나씩은 있었습니다. 머네에도 사진관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초원 사진관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영화 속 사진관의 젊은 주인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의 언어 웃음, 행동, 또 총각으로서 사랑하고 싶은 사람과 만나면서 감정이나 몸짓, 언어가 지나치지 않고, 그렇게 절제되어 있는 모습, 그러나 웅크리거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지는 않고, 그렇다고 죽음에대해 자포자기하여 나사가 풀어지듯이 용수철이 그 탄력을 잃어버린 것 처럼 하지 않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비록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지만, 자기 사랑의 표현을 절제하며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대한 배려, 관심. . . 하나 하나가 마치 글자 그대로 수채화 갔았던 기억입니다. 신앙적인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 주인공의 모든 말과 행동에 욕심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아!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죽음 앞에 자유롭게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진관을 소박하게 따뜻하게 끌고가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롬8:13 말씀이 떠 올랐습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
이면, 살 것입니다”자신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육신적인 것들을 다 죽인 삶의 모습은 종말론적인 삶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죽지만 죽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죽음이 그 삶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어있으면 죽음이 그 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코믹드라마에서 보았던 이야기입니다. 사위가 장인, 장모님 댁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루는 장인 장모께서 인도로 패키지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당분간 사위가 집안의 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장인 장모님이 집을 비우자 마자 바로 집 안에 변화가 생깁니다. 거실에 놓여있던 대형 T.V를 2층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방으로 옮기고, 자기 방에 있던 작은 TV를 거실에 내려 놓습니다. 또 안방에 어른들이 주무실 때 상용하던 이부자리 침구를 다 가지고 올라가 사용을 하고, 장인 어른이 아끼던 음식을 서슴 없이 먹어제낍니다. 생활이 뒤줃박죽 난장입니다. 그러면서 신나게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맙니다. 여행을 떠났던 어른들이 하루 일찍 여행을 마치고 돌아 온 것입니다. 집의 문을 연 장인의 역정을 내는 모습과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피하는 사위의 모습을 코믹하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드라마에서도 또 하나의 종말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어른들이 여행에서 돌아오자 허겁지겁 모든 것을 원대 복귀 시키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삶, 아름다운 삶을 살라고 생명을 주었는데, 그것을 마치 나의 것 인양 나의 주관과 의지, 내 뜻과 감정대로 살아가지만 결론은 엉망진창, 뒤죽박죽, 그런데 생명의 주인이 찿아와 보니 이전의 질서, 아름다움, 선함, 자유함은 없어지고, 결국 자기의 생명을 죄와 죽음에게 빼앗기어 죄와 죽음의 종노릇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처럼 마른 뼈다귀 밖에 남은 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 마른 뼈가 의미하는 가장 깊은 뜻은 회복의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의 이스라엘의 삶이 어떤 사람은 총리대신이 되어 잘 살고, 아니면 어떤 사람은 가난한 품을 파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그 모두는 바벨론의 포로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스라엘로의 돌아감, 예루살렘의 회복에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죄와 죽음의 법에 붙잡힌 사람의 삶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삶의 특징은 소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맡기신 살라고 명한 삶을 잘 누릴 수 없었던 것이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것들에 착념하여, 죄와 사망에 붙들리어 결국은 뼈다귀만 남아, 소망없는 삶, 부활을 믿지 않는 삶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 롬8:14,15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
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
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부른다고 합니다. 무서워하
는 종의 영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종은 주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들
은 아버지와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거침이 없습니다. 마치 바람이 불고 싶은데로 부는 것 처럼 성령을 받은삶도 이렇게 자연스러우며, 자유롭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따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오시려면, 바벨론의 포로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는 자로의 전환이 있으려면 그동안 내 안에서 왕 노릇 했던 죄와 죽음이 쫓겨 가고 하나님의 영께서 주인되어 주셔야 합니다. 출애굽기의 하나님의 사람 모세와 이집트 제국의 왕 바로의 대결은 이러한 영적 정황을 잘 보여줍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을 보내라고 합니다. 바로는 이스라엘을 결코 광야로 내어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바로는 처음에 모세에게 네가 말하는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냐고 코웃음 치며, 보낼 수 없다고 합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광야로 가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있도록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너희들의 종교에 우리는 상관하지 않겠다며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피의 표징, 개구리 소동, 이들, 파리가 온 세상에 들끓자 바로가 승복을 합니다. 가서 너희 신에게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광야로 나가지 말고 이집트 땅 안에서 드리라고 협상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메뚜기 떼를 보냅니다. 그러자 또 바로가 굴복을 합니다. 광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조건을 답니다. 어린이와 노인, 가축들은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앙이 계속 이어지고, 우박이 내려 모든 농작물이 파괴되는데 여전히 바로의 마음은 바뀌지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온 이집트를 메뚜기로 뒤 덮어 그나마 우박의 피해에서 벗어난 식물의 새순, 새로 팬 이삭들 마저 모두 갉아먹을 것이라 예언을 합니다. 그러자 이 번에는 바로의 편에 섰던 신하들이 마음을 돌이킵니다.이러다간 이집트가 망하겠으니 이들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가서 예배드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바로도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서 예배드리라고 하는데, 누가 예배를 드리러 가냐고 새삼 묻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모두 다 어린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가축들 까지도 다 가야한다고 하니 바로가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어림도 없다고 합니다. 출10:10-11입니다.
“바로가 그들에게 호통쳤다. "그래, 어디 다 데리고 가 봐라! 너희와 함께 있는 너희의 주
가 나를 감동시켜서 너희와 너희 아이들을 함께 보내게 할 것 같으냐? 어림도 없다! 너희
가 지금 속으로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는 안 된다! 가려면 너
희 장정들이나 가서, 너희의 주에게 예배를 드려라. 너희가 처음부터 바란 것이 그것이
아니더냐?"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바로 앞에서 쫓겨났다” 결국 메뚜기가 온 이집트를 덮쳐 푸성귀 하나도 남지않는 끔직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9번째 어두움의 재앙이 내리고, 이 어두움은 이집트의 최고의 신인 태양신을 무너뜨리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식구들 모두 나가서 예배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축은 안된다고 끝까지 발목을 잡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영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기 까지 그 과정이 얼마나 녹녹치 않은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우상을 내 보내고 참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있기 까지 참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처음 말했던 것 처럼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까지 내 안의 바로가 얼마나 끈질기게 나를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는지 말입니다. 처음에는 나는 너의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니가 관심 갖는 하나님에대해 내 안의 바로는 나와 상관 없는 일이니 나는 나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박의 재앙을 보며 바로가 그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야 내 잘못을 깨달았다. 야웨 하나님이 옳으시고 나의 백성이 나뻤다고 하면서 야웨께 기도하여 천둥과 번개를 멈추게 해달라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메뚜기 재앙 때는 내가 잘못했으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이 죽음을 물리쳐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듭 모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는 이스라엘을 내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이집트 제국의 경제를 지탱해 주는 노동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설사 바로가 마음을 돌이켜도 바로의 주변의 기득권 세력이 바로를 그냥 놓아두지 않을 것은 바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안에도 그동안 나를 지탱 해 온 기득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 포기하지 않고는 이집트를 벗어나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몸은 가지만 내 신령과 진정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바로는 가장 소중한 생명과 같은 자기 분신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모든 것을 놓습니다. 내 안에 파라오는 누구인가요?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께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나요. 나의 근심, 습관, 이기심, 인간관계, 일용할 양식을 위한 일, 아니면 나의 미움, 게으름, 원수 맺는 일, , , 사실 처음 모세가 바로에게 갔을 때에는 징조나 징표 정도를 바로에게 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듭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 표징들이 언젠가부터 재앙이 되기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거듭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안 받아들이자 재앙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이집트에 재앙을 내렸다기 보다는 재앙은 하나님의 말씀에대한 끊임없는 거부, 부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내적으로 하나되지 못하는 불균형이 계속됩니다. 우리 안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 아닌 것이 늘 활개를 친다면 우리는 내적 불균형으로 말미암아 우울함, 무력감, 회복에대한 소망없는 모습으로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한 삶에 붙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는 나중에는 도저희 모세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릅니자.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문을 잠그어 버린 것입니다. 그 모습은 마치 에스겔 골짜기에 쌓여있는 마른 뼈와 같은 무기력함, 죽음의 모습일 것입니다.

교우여러분 이세상의 것들이 물론 좋습니다. 우리의 삶인 문화, 정치, 경제를 즐기며 누리며 풍족한 삶을 살며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이 세상의 것을 누구보다 한 껏 누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포로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께서 감동 주실 때 ‘아멘’하며 그 감동을 따라 나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31/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533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93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62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51 2005.09.02 16:30
375 [일반] 죽은 척 하지 않기(2012년 7월 8일, 성령강림후여섯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1 2012.07.08 16:58
374 [일반] 제자가 되는 길(2012년 7월 1일, 성령강림후다섯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3 2012.07.01 14:42
373 [일반] 은혜입은 자(2012년 6월24일, 성령강림후네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23 2012.06.24 15:18
372 [일반]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2012년 6월17일, 성령강림후세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7 2012.06.17 13:47
371 [일반]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2012년 6월1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17 2012.06.10 14:30
370 [일반] 가라! 핵 너머 생명의 세상으로(2012년 6월 3일, 환경 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1903 2012.06.03 16:44
369 [일반]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2012년 5월13일, 스승의 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56 2012.05.20 14:27
368 [일반] 저 넘어의, 끝 없는 . . .(2012년 5월13일, 어버이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244 2012.05.13 15:45
367 [일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2012년 5월 6일, 어린이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4037 2012.05.06 14:23
366 [일반] 우리를 품어주시는 평화의 부활(2012년 4월209일, 부활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05 2012.04.29 15:04
365 [일반] 그는 여기 계시지 않소(2012년 4월22일, 부활절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80 2012.04.22 15:30
364 [일반] 믿는 사람들의 부활(2012년 4월15일, 부활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223 2012.04.15 16:21
363 [일반] 어린 양으로부터 시작이다(2012년 4월 1일, 종려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4 2012.04.01 16:49
362 [일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Ⅱ(2012년 3월25일, 사순절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545 2012.03.25 17:08
361 [일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2012년 3월18일, 사순절네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56 2012.03.18 16:31
360 [일반] 핵 없는 세상을 위한 고기교회 예배순서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85 2012.03.11 16:46
359 [일반] 먹어서는 안되는 열매(2012년 3월 4일, 사순절두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616 2012.03.04 16:54
358 [일반] 조화로운 하나됨의 통일(2012년 2월26일, 사순절첫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34 2012.02.28 09:42
357 [일반]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2012년 2월19일, 산상변모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97 2012.02.19 16:20
>> [일반] 성령이 주시는 생명의 삶(2012년 2월12일, 주현절후여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03 2012.02.12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