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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명 (2012년 11월 25일, 성령강림후 스물여섯번째주일)

홍정원 | 2012.11.25 17:54 | 조회 2320


그림자 소명 (에 4:1-17)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그림자 소명입니다. 제목이 조금 생소하지요? 소명은 익숙하지만 그림자 소명은 조금 낯설게 들리실 것 같습니다. 소명이란 단어는 사명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이기도 하는데 그 뜻이 어떤 일이나 임무를 하도록 부르는 명령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반드시 이뤄야 할 소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소명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각자가 가진 목적과 받은 은사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사람은 그림자 소명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소명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찾지 못하면 우리는 곧 다른 목적을 찾게 되고, 곧 본래의 사명이 아닌 그림자 소명이라는 것에 매여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인생을 살게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희 남편이 며칠전 그럽니다. “로또를 사볼까?...” 가끔씩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지거나 막막하게 느껴질 때면 그런 말을 하곤합니다. 돈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좇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곤 합니다. 저도 아주 가끔은 내가 돈을 좀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돈걱정 없이 잘먹고 잘사는 것, 내 자식 잘 되고 성공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림자 소명이 붙들려 살아갑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점점 나의 진짜 소명이 흐릿해지고 점점 세상과 타협하며 하나님께서 따라가지 말라고 경고하신 이 세대를 본받는 자들이 되어갑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 저녁, 유신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욕망과 야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또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분명 그 영화의 주인공에게도 민족을 위한 시대적 사명이라는 것, 또 자신이 그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소명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소명이 변질되어 그림자 소명이 되었을 때 너무나 무서운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성경 곳곳에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왕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백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게 된 다윗을 시기 질투하여 그를 죽이는 데에만 온 힘을 쏟았던 사울왕이 있었구요. 모세가 태어나던 시기 이스라엘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히브리 여인이 낳은 아기 중에 남자 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했던 이집트의 왕도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헤롯이 베들레헴과 그 가까운 온 지역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행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림자 소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요.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에도 대표적인 그림자 소명이 등장을 합니다. 더 큰 창고를 짓고, 미래를 대비해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원하시는 삶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저 편하게 먹고 마시고, 즐겁게 사는 것만이 목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림자 소명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림자 소명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소명을 찾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 소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서는 진정한 소명과 그림자 소명의 문제, 그리고 이것들이 하나님의 더 큰 계획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에스더서 1장은 아하수에로 왕이 180일간 잔치를 벌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127개의 지방을 다스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으로서 할 일도 많았을텐데 일년에 절반을 상다리가 부러지게 잔치를 벌이고 그렇게 자신의 소유와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자랑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왕은 온 백성과 신하들에게 자신의 아내인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까지 이르렀습니다. 권력, 재물, 명예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아내이겠지요. 그런데 왕후가 이러한 왕의 부름을 거절한 있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어떻게 했을까요?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던 아하수에로 왕은 왕후 와스디에게 화가 났고, 마음 속에서 불같은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왕후가 미쳤나? 왕후가 어떻게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왕후 와스디는 왕으로서의 본분을 멀리한 채 온 나라 앞에서 뽐내기를 좋아하는 아하수에로 왕의 허망한 욕심을 공격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왕후를 법대로 처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법은 공정한 판결이 아닌, 자신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 것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왕의 고문들은 와스디가 다시는 왕 앞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칙령을 반포하도록 조언했고, 그리고 새 여왕을 뽑자고 제안하게 됩니다. 오늘의 주인공 에스더는 이러한 배경을 통해 “왕을 기쁘게 할 여인”이 되는 왕후의 후보에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더를 포함한 왕후의 후보들은 왕에게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최소 12개월동안 외모를 가꾸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이러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새로운 여왕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일찍 부모를 잃고 사촌오빠 모르드개에게 입양되어 키워졌던 유대인 에스더가 당대 최고 권력자의 왕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보기에 에스더의 소명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스더는 여인으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에스더서에는 이러한 왕을 모시고 있었던 또다른 권력에 중독된 하만이라는 왕의 신하가 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이 하만이 에스더의 보호자였던 모르드개에게 치명적인 모욕을 당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왕 다음으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하만에게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숙였지만 모르드개만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르게 하만에게 절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의 이러한 반항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왕국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복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만은 영문도 모르는 왕을 이용하여 온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도록 조서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하만의 이러한 계획이 모르드개의 귀에까지 들렸을 때, 그는 왕국 안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달라고 왕에게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사람, 에스더 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에스더라는 아름다운 왕비의 손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왕에게 말씀드려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왕에게 있어서 에스더는 그저 왕을 기쁘게 할 아름다운 왕비였을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한달 동안이나 왕이 에스더를 부르지 않았고, 부르지도 않을 때에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곧 죽음과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에스더라면 어떠한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내가 에스더가 아니라서 정말 천만다행이라고 여기시겠습니까? 에스더는 가만히 있는 편이 훨씬 유리했습니다. 잘못하다가는 민족을 구하기는 커녕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더에게 더 이상 어떠한 액션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3-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르드개는 그들을 시켜서 에스더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라고 하였다. 왕후께서는 궁궐에 계시다고 하여, 모든 유다 사람이 겪는 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때에 왕후께서 입을 다물고 계시면 유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라도 도움을 얻어서 마침내는 구원을 받고 살아날 것이지만 왕후와 왕후의 집안은 멸망할 것입니다. 왕후께서 이처럼 왕후의 자리에 오르신 것이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를 누가 압니까?”

에스더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왕을 기쁘게하는 왕비로만 남아 그 자리가 누릴 수 있는 권력과 사치만을 누리는 것은 바로 그림자 소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진정한 소명은 용기와 지혜를 사용하여 동족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더를 그 자리에 있게 하신 것은 에스더에게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더의 삶의 목적은 화려한 옷과 값비싼 보석을 소유하고, 왕국에서 가장 선망받는 여인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진짜 소명은 세상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가 있는 자리는 결코 우연히 서게 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깊은 고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림자 소명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 사이에서 갈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회답하고 있습니다. 15-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더는 다시 그들을 시켜서, 모르드개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하였다. 어서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시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게 하십시오. 사흘 동안은 밤낮 먹지도 마시지도 말게 하십시오, 나와 내 시녀들도 그렇게 금식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내가 임금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가기 위해 3일간 금식을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족 유다인들에게도 자신을 위하여 함께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에스더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왕에게 나아가겠다는 겸심을 하게됩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죽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소명을 위해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했고, 왕의 마음을 얻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에스더는 왕후가 되기 위해 준비했던 것보다 더 절실하게, 그리고 더 치밀하게 준비하고 계획하며 지혜와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은 잔치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베푼 잔치는 왕의 마음을 만족시켰고, 특별 초청을 받은 하만에게도 만족스러운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만에게는 여전히 불평이 남아있었습니다. 유다사람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은 것을 보는 동안에는 모든 일에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만의 그림자 소명은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재산, 더 많은 권력, 더 많은 인정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그림자로는 영원히 채워질 수 없고, 항상 부족함과 갈증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의 아내와 친구들은 이러한 하만의 욕망을 더욱 부채질하였습니다. 그들은 나무장대를 준비해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왕에게 구하라고 말하였고, 하만은 그 말을 좋게 여겨 모르드개를 매달 나무를 세우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왕은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을 불러 잠이 올 때까지 왕실의 역대일기를 가져다가 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읽혀진 이야기가 바로 왕의 생명을 구했던 사람, 모르드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궁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일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문을 지키던 왕의 신하 중 두 사람이 왕에게 원한을 품고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을 알고 이 일을 에스더에게 알렸고,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이 일을 왕에게 아뢰어 왕의 목숨을 살렸던 것입니다. 왕은 모르드개가 이 일로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를 물었고, 종은 아무것도 베풀어주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르드개가 이 일을 계기로 어떤 보상을 바랬다면 그 일은 모르드개의 진정한 소명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했고, 그 소명을 행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보상과 칭찬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잠이 오지 않는 밤, 왕으로 하여금 그를 칭찬하고 높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왕은 하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크게 높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지를 물었습니다.

하만은 왕이 크게 높여주고 싶은 사람은 자신밖에는 없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높여주고 싶은 사람에게 왕이 입으시는 옷을 입히고, 왕이 타는 말을 태워 왕의 신하들이 이끌게 하고, 머리에 왕관을 씌워주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에 의해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기 위해 세워놓았던 장대에 스스로 달리게 되었고, 하만이 받고자 했던 영광을 모르드개가 받게되었을 뿐만 아니라 모르드개가 하만의 집을 주관하게 된 것입니다. 그림자 소명을 따라 살아갔던 하만은 결국 비참한 파멸에 이르게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살았던 모르드개와 에스더에 의해 죽음을 눈앞에 두었던 유다인들이 구원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에스더서의 이야기는 우리의 소명과 그림자 소명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주고 있습니까? 먼저 이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우연이란 없음을 알려줍니다. 저 자신도 지금 이순간에 이 자리에서 설교를 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제가 신학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 큰 교회에서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을 받으며 교육전도사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휴학을 하고 일년간 단기선교를 가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엄마도 선교지에도 몇 번 다녀오시고 그렇게 만나게 된 선교사님을 매우 존경하시면서 꾸준히 후원하고 계셨지만 선교지로 딸을 보내고 싶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사람 마음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힘들지만 의미있는 일을 남이 하면 대단하게 여기지만 내 자식이 하겠다면 말리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그저 학교에 입학했으니 졸업할 때까지 순탄하게 잘 다녔으면 하고 바라셨고, 지금 사역하는 교회에서 장학금이며 모든 것을 풍족하게 공급해주는데, 굳이 그걸 마다하고 왜 선교를 가려고 하나, 다녀오면 또 새로운 사역지를 구해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제가 지금보다 믿음이 더 좋아서 그런 것들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때 제가 선교지에 가지 않았다면 지금의 남편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남편이 아니었다면 고기리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지도 또 여러분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수많은 우연같은 인도하심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이 왕비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비가 되었을 때, 에스더는 안락과 부와 권세를 좇는 그림자 소명과 동족을 구하라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반대로 하만은 자신의 권력을 공의를 세우는 자리로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자기를 우상화 시키는 일에 사용하였고, 부와 명예를 위해 잔인한 그림자 소명이나 채우러 다녔습니다.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백성들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신하가 아닌, 유치한 쾌락이나 좇는 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제가 첫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손과 발을 만지며 이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하나님, 이 손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손이 되게 해주시고, 이 발이 이웃을 위해 달려가는 발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해놓고 보니 내가 지금 기도를 잘 한건가? 기도대로라면 이러다가 앞으로 얘가 너무 피곤한 인생을 살게 되는거 아니야? 하는 걱정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그 기도를 할때가 지금보다 더 믿음이 좋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늘 남보기에 그럴듯한 인생을 꿈꿉니다. 돈도 좀 있고, 권력도 좀 있고, 지식도 있고,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할만큼 권위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저의 진정한 소명일까요? 비록 지금 돈도 없고, 명예도 없지만 하나님이 지금 있게 하시는 그 자리에서 맡겨주신 사명을 겸손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감당하는 것이 바로 진짜 소명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소명의 특징은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조건의 유리함만을 사용하시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에스더처럼 왕후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으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지 않으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약점까지도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자기 약점만 보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중요한 소명을 맡을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로 하나님은 상처 하나도 낭비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을 가장 강력한 존재로 만드는 요인 중에는 자기 씨름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경험이 있는 사람보다 더 효과적으로 알코올 중독자를 도울 사람은 없고, 깊은 상실감을 경험해 본 사람보다 더 효과적으로 고통받는 이를 위로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만 소명을 다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어떻게든 소유하는 그림자 소명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게 있는 것을 가지고, 그리고 내가 겪은 아픔과 고통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귀하게 쓰임받는 귀한 소명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오늘 본문은 에스더에게 모르드개처럼 우리의 소명을 일깨워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모르드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 남은 인생 이대로만 살면 더 바랄 게 없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모르드개처럼 여러분의 소명을 일깨워줄 사람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에스더에게 모르드개가 없었더라면 에스더는 자기의 소명을 제대로 찾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도전이 없었더라면 소명을 감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에스더의 소명은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모르드개는 누구입니까? 내가 머뭇거리며 뒤로 빠지고 싶을 때 나를 일깨워줄 만큼 마음을 써주는 친구는 누구입니까? 여러분도 여러분의 진짜 소명이 무엇인지 찾으셨습니까?

예수님에게도 그림자 소명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는 없으셨지만 우리처럼 모든 면에서 유혹을 받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어떤 그림자 소명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그림자 소명은 고통을 받지 않고 메시아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방에서 계속되는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다가올 고난과 죽음을 보다 덜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감당하라는 유혹과 굶주림과 고통과 반대 없이도 소명을 이룰 수 있다고 유혹하는 사단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에도 베드로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예수님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단에 내 뒤로 썩 물러가라.”고 그 유혹을 물리치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신과의 씨름을 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조차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으셨지만, 결국 예수님은 순종을 통해 자신의 소명을 완성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바로 자신의 그림자 소명을 극복한 승리였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메시아가 될 수 있다는 유혹으로부터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오래전 광수생각이라는 만화로 유명했던 만화가 박광수씨가 쓴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쁜 친구는 그림자와 같아서 맑은 날에는 항상 내 옆에 붙어있지만, 흐린 날에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림자는 해가 빛나는 맑은 날에만 볼 수 있을 뿐, 비가 오고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자 소명도 이와 같습니다. 그림자 소명은 우리 인생에 해가 비치는 날에는 언제나 곁에 있습니다. 그때는 마치 내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게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 위기가 닥치고 우리 인생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순간에는 그림자 소명 또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서 그림자 소명은 나쁜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은 오히려 흐린 날,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스더의 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영원히 바뀌지 않는 원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도 잃고, 성전도 없고, 조국도 없던 포로생활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은 항상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만약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소명을 놓치게 되면, 평생동안 우리는 엉뚱한 자리에서 잘못된 목적을 향해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에스더에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 적은 없었지만, 그분의 의도는 에스더의 삶 속에서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에스더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분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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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일반] 침 묵(2012년 8월12일, 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78 2012.08.19 16:38
380 [일반] 허상을 넘어(2012년 8월12일, 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20 2012.08.12 15:18
379 [일반] 엘 샤다이(2012년 8월 5일, 성령강림후열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47 2012.08.05 14:02
378 [일반] 나의 엉덩이 뼈(2012년 7월29일, 성령강림후아홉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48 2012.07.29 13:56
377 [일반] 약속 과 깨어 기다림(2012년 7월22일, 성령강림후여덟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201 2012.07.23 10:21
376 [일반] 사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2012년 7월15일, 성령강림후일곱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7 2012.07.15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