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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임당한 것 같은 어린 양(2012년11월11일, 성령강림후스물네번째주일)

하늘기차 | 2012.11.11 13:25 | 조회 2479


죽임당한 것 같은 어린 양
2012년11월11일(성령강림후스물네번째주일) 계6:5-10

누가복음 19:42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그 도성을 보고 우시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너도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터인데! 그
러나 지금 너는 그 일을 보지 못하는구나”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과 전혀 다른 일에 메여있는 것을 봅니다. 오병이어 기적 후에 예수님을 찿아 온 사람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의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평화에 이르게 하는 일을 일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평화에대한 일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19:16에도 보면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
까?” 하고 묻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무어라 하셨나요? 그러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라 하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일과 사람들이 말씀하시는 일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그 많은 양을 잡아 피를 뿌려 제사를 드리며 율법을 연구하고 지성소가 있는 성전 안에서 기도하여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화에대한 일을 모릅니다. 헌신, 봉사, 찬양, 기도, 전도, 세미나, 성경공부, 제자 훈련에대한 일만 알지, 그 안에 있는 정말로 소중한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교유여러분! 여러분은 평화에대해, 아니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평화에 이르는 일, 평화를 가져오는 일, 평화를 만드는 일을 알고 계십니까? 만약 모른다면 예수님은 또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수요일 저녁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거라사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귀신들린 사람과 대면하여, 그 귀신들이 돼지 때에게 들어가 비탈을 내리달아 호수에 모두 빠져 죽게 됩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 귀신에게 이름을 물어 보는데, 이름이 군대라고 합니다. 헬라어 성경은 레기온(Legion)이라 하는데, '레기온은 6000명으로 구성된 로마의 사단 병력을 뜻합니다. 왜 이름이 군대였을까요? 그리고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어떻게 그곳에 그렇게 많은 돼지들이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 지방이 바로 로마 군의 병참기지가 있는 곳이어서 로마군인들의 식량을 위해 대규모의 돼지 사육을 하였던 것입니다. 상당수의 로마군이 그곳에 상주하면서 잔혹한 행위를 일삼고 세금을 갈취하고 부녀자를 농락하는 일은 그 지역 주민들이 경험해야하는 일상사였읍니다. 이러한 거칠고 모진 환경에서 미쳐 버린 이 사람은 그 시대의 아픔과 질곡을 대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극단적인 우울증과 몸을 자해하는 그는 산 사람들과 같이 살 수 없어서 죽은 사람들이 묻힌 무덤가에서 살 수밖에 없어,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채 무덤 사이에서 광인으로 살아가던 그를 어느 날 예수님이 만난 것이다.

오늘 이 시대에도 폭력이 난무합니다. 여전히 거대한 미국이라는 제국의 힘 때문에 세상의 많은 나라들이 대리 전쟁과 미군의 주둔지를 내어줍니다. 제주도 역시 지금 바로 그러한 군사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종교인들, 평화 운동가들,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두 이 싸움에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그 군대귀신을 구럼비 바위 앞 바다로 몰아 넣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을 통해 평화를 깨뜨리고 군비를 증강시켜 전쟁의 폭력으로 평화를 깨뜨려 이득을 보는자가 누구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그 많은 돼지를 키우는 주인이 누구인지 예수님은 경제적 이득에 아랑곳 하지 않고 군대귀신을 로마군인의 식량인 돼지에게 들여 보내 몰살을 시켰습니다. 구제역 당시의 살처분과는 전혀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살처분, 구제역 이야기가 나와서 말합니다. 오늘 인간, 특히 도시문명의 혜택을 보는 우리들이 어떤 폭력을 자행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난 10월 19일과 20일에 금강 부여 보에서 물고기가 5만 마리 이상이 폐사하였습니다. 폐사 원인으로는 죽은 물고기들이 대부분이 입을 벌리고 있고, 아가미가 선홍빛을 띄고 있으며 소량의 산소에도 견디는 잉어와 붕어의 사체는 보이지 않고 있어 산소부족으로 인한 폐사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신문에 보니까, 강이 직강이 아니고, 구불구불, 깊고 얕고, 가파르고 완만하면 산소가 부족한 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피하여 갈 수가 있는데, 일정한 깊이로 직각으로 흐르는 강에서는 물고기가 산소가 있는 곳으로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2010년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최초 발생해 이듬해 봄인 2011년 4월 21일 종료될 때까지 전국 11개 시도 75개 시·군을 덮친 구제역은 국내 축산농가 기반을 초토화시킨 국가적 재난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같은 기간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발생하며, 그 결과 소 15만 마리, 돼지 330만 마리, 가금류 647만 마리 등 모두 10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살처분됐다. 금전피해도 막대해 추정된 재정소요액만도 2조 1000억원을 넘었다.

생태 기후 학자들은 인류가 이렇게 자연에게 한 폭력적인 일들을 그대로 되 돌려 받을 것이라고 경종을 울리지만 메아리만 돌아옵니다. 지금 우리나라 전 국토에서 평화가 아니라 죽음의 일이 만연합니다. 폭력이 밥상에 까지 올라 와 있습니다. 아이들의 공교육, 입시 문제 역시 폭력이지요.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이래 인류의 역사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폭력으로 말미암은 죽음이지요. 최근에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 두 사람이 철 탑위에 매 달려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입법과 사법과 행정에서 이야기하는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요구 하지만 들어주지 않습니다. 폭력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폭력입니다. 공지영씨가 쌍룡자동차에대한 글을 ‘의자 놀이’라는 책에서 썼습니다. 폭력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도가니도 그렇구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며 눈물을 흘리시면서 평화에 이르는 일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을 꼭 잊지 말아야 합니다. 폭력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평화에 이르는 일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의 가장 무서운 폭력은 원자력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합니다. 폭력입니다. 8월10일(금)일자 한겨레 신문 ‘논쟁’에 ‘고리1호기 재가동, 타당한가’라는 제목으로 찬성과 반대의 글이 실렸었습니다. 찬성하는 분의 생각은 어떤가 궁굼해서 읽어 보았는데, 카이스트의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다. 그런데 그 분의 글 마지막에 이런 글이 실려있습니다.
“...원전 안전에 대한 신뢰의 토대가 붕괴되면 국가 에너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한수원은 말 그대로 신뢰 회복을 위해 뼈를 깍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뼈를 깍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뼈를 깍으면 안전한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플로토늄의 반감기가 0이 되기 까지 24만년이 걸린다는데, 다시말해 방사능을 뿜어내는 것이 멈추는 것이 24만년 인데, 한 시대의 개인, 아니 집단이 뼈를 깍는다고 신뢰가 회복이 되고 안전할까요? 그리고 뼈를 깍는다고 플로토늄이 방사능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것인가요? 뼈를 깍는다는 것은 방사능 위험을 감추기 위한 노력에 혼신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거짓을 감추기 위해 24만년 동안 뼈를 깍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이 분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동해안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을 34기의 원자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방사능이 사라질 때 까지 뼈를 깍아야 한답니다. 우리 후손에게 뼈를 깍는 고통을, 그 고통을 감내한다고 해서 안전을 보장 못하는 일을 위해 뼈를 깍으라고 주문합니다. 스스로 얼마나 폭력적인지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이 핵 안전에관한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체르노빌, 쓰리마일의 사고로 인류가 감당키 어려운 고통을 보았으면서도 뼈를 깍으라고 합니다. 원전사고로 땅과 피조물과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원자력 방사선에 노출되는 것을 피폭당했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생명이 폭력에 노출되어 죽어갑니다. 이 폭력에대해 성경은 주님의 죽음을 통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계시록5:6-10 말씀ms 제가 4대강 기도회 때 묵상한 말씀입니다.
팔당 기도처에서

최근 수요일 예배에 계시록을 읽고 있습니다.
계5장에 보면 하늘 교회의 비죤이 기록되어있는데
그 곳에 어린양 한 마리가 보입니다. 그런데
그냥 어린양이 아니라 6절에 보면 ‘죽임을 당한
것 같‘다고 합니다. 하늘 보좌에 함께 있는
어린 양에 대한 비젼인데, 그냥 어린양이 아니라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입니다.
왜 하늘 영광, 존귀, 찬양, 권세의 자리에 ‘죽임을
당한 것 같은’ 비젼이 보일까요?

땅에서 이루어진 일이 하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의 오른 손에 들려있는
두루마리의 일곱 봉인을 떼고 그리고 그 내용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분은 바로 어린양인데 성경은 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그 두루마리를 떼고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이 땅에서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죽임당한 것이 어떠한 것인가요?
이 지구 상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억울한 죽음, 이해할 수 없는 죽음,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고통, 아픔. . . . 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의 4대강이 그 죽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강의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서 또 다른 많은 감추어진 죽음과
아픔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계5:9는이 죽음, 이 아픔이야말로 이 세상 섭리와
경륜, 하나님의 계획, 창조 질서의 비밀과
이치를 열 수 있고,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궁극에 하늘 영광, 존귀 찬양의
자리에 주님과 함께 설 수 있는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2010년4월20일 팔당 기도처에서

인류의 문제는 죽음의 뭄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풀립니다. 왜냐하면 지구가 시작된 이래 너무나 많은 죽음이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에 네 몰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계시록은 죽임당한 것 같은 어린 양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내전, 이란 파키스탄에서 억울하게 죽은 죽음들, 이런 죽음들 속에서 예수님도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정치와 종교와, 경제적 기득권자들이, 그리고 아주 소수를 제외한, 그것도 여인들 외에는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모두 그 죽음을 외면하였습니다. 영웅적인 죽음에대한 숭고함이나, 연민이나, 애통함이 아니라, 다들 싫어화고, 혐오하는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과 마찬가지로 온갖 죽음들 속에는 부활이 들어있습니다. 종종 기독교가 생태적인 것에 약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타 종교에 비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요15장 부활장에 보면 해, 달, 피조물, 무생물, 물고기, 각 종 피조물의 영광이 다 있습니다. 달의 영광이 있고, 물고기의 영광이 있고, 들꽃들의 영광, 덩물들, 미생물의 영광이 있습니다. 이 것은 모든 각 종의 피조물의 정체성, 존재 가치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부활이 별건가요 자기 자리에서 자기 꽃 피우는 것 아니겠습니다.

이 피조물들이 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저희 교회 처음자리 작은 습지에는 생태계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봄에 큰 새들이 날아와서는 올챙이가 커서 개구리가 될 즈음이면, 청둥오리, 왜가리, 황새. . . 아예 진을 칩니다. 왜가리가 도도하게 한 곳을 응시합니다. 멋있어 보이고, 아름답기 까지한데, 사실은 올챙이, 개구리 잡아 먹으려 하는 것입니다. 생태계를 돌아보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식물부터 고등 동물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자기 생명 내어놓고, 그리고 다른 생명 받고 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연 피조의 세계의 원리이고 이치입니다. 이런 생태계의 가장 최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렇게 인간이 이성을 갖고, 자유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이 순환하는 생태계를 잘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돌보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욕망으로 자연 생태계를 다 파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을까요? 인간들이 자기 생명은 내어놓지 않고, 자연을 넙죽 넙죽 집어 삼키기만 하는 괴물로 변했기 때문에, 인간은 그렇게 살면 안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의 본래의 모습이다 라고 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피조물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죽음으로 사는 것이지요. 죽어야 사는데, 인간은 죽지 않으려고 합니다. 욕망에 찬 인간의 모습에대해 하나님은 지금도 경종을 울리십니다.

성경 하박국1:2에 보면 “폭력이다!”하고 외쳐도 구해주지 않으시니 언제까지 모른체 하실 것인가 하며 탄식하는 모습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러한 경우인가 봅니다. 원전폭력은 보이지도, 맛 볼 수도, 냄새도,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느껴지지 않는 폭력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리1호기는 원자력의 마지막을 문명세계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대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폐쇄를 위해 들어가는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태입니다. 바로 인간의 욕망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죄스러운 모습입니다. 스스로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 말입니다. 구원 받아야할 죄된 모습입니다. 원자력은 스스로 자충수를 든 문명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로 가다가 홍해를 만나 멈추어 섰을 때 바로 뒤에서 이집트의 군대가 들이닥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입니다. 바울이 롬7:19에서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한다고 하면서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라고 하면서 탄식을 하는 모습,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바로 핵 앞에 마주한 인류의 모습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 “핵은 바로 인간의 물질 과학 문명이 어떻게 전개될지에대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주여!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사도 바울과 같이 구원을 요청하며, 성령을 요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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