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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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안디옥, 고기 교회(2012년10월 7일, 성령강림후열아홉번째주)

하늘기차 | 2012.10.07 16:52 | 조회 2406


예루살렘, 안디옥, 고기 교회
2012년10월 7일(성령강림후열아홉번째주) 행2:43-47;13:1-3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 이 후의 40일,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지상에 남은 제자들이 모여 기도하였고, 그리고 유월절이 지나 오순절 때에 예수님이 거듭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을 이 땅에 부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께서는 이미 구약의 요엘서를 통해 언급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임재를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 혀 같이 갈라지는 듯한 불꽃같다 하였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각각 방언으로 말하자, 세계 각국에서 온 유대인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의 말을 그 곳에서 듣고 놀랍니다. 행2:9 이하에 보면 그 나라들에대해 이야기 하는데 모두 지중해 권의 민족들입니다. 당시는 그 것이 세계였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더러는 조롱하며 술 취했다고도 하지만 베드로가 바로 일어나 변론을 합니다. 첫 설교이기도 합니다. 당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셔서 주님이요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2:40에서 그 시대를 ‘비뚤어진 세대’라고 하며 구원을 받으라고 합니다. 지난 번 빌2:15에서도 사도 바울은 ‘구불어지고 뒤틀린 세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뚤어진, 구부러진 ‘사람’이라 하지 않고 세대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시대적 흐름, 문화, 당시의 가치 체계를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의 흐름을 우리 개인은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라고 합니다. 그러면 별 같이 빛 날 것이라 합니다. 언젠가 게그 코너에서 1등만이 살아남는 세상 이라 하면서 술에 쩔어 ‘별 볼일 없는 세상’이라 절규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인류가 별을 보지 못한 것은 도시 문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것도 현대의 전기 문명으로 온 도시가 불야성이 된 후부터입니다. 이 전기 때문에 핵원전이라는 인류를 재앙에 빠뜨릴 심각한 자리에 까지 왔습니다. 우리 나라도 심각하지만, 참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유럽의 최고의 지성 국가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원전 의존도가 80%라는 소식을 듣고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지금 프랑스도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원전을 줄이자고 국민 합의를 끌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기 때문에 인류가, 아니 도시가 별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여간 그 게그멘의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자조적인 외침은 오늘 이 시대의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실제 별을 볼 수 없는데, 밤 하늘에서별을 볼 수 없는 그대로 오늘 이 시대 속에서도 우리는 별을 볼 수가 없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 반짝이는 것은 싸이 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천박함, 말초적인 쾌락, 2류를 내세우는 자조적인 것이 별이 된 것입니다. 본인은 미국의 유명 대학에 음악 유학을 다녀온 결코 2류가 아닌 1류입니다. 지금 시대의 흐름을 코드로 잡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저도 그래서 싸이의 노래를 들으면 흥이 납니다. 그저 그 정도이면 좋을 것 같은데, 전 세계가 열광을 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보여줍니다. 전 세계가 한 가지의 흐름에 붙들려 있습니다.

2000년 전에도 세계가 그렇게 한 가지 흐름 속에 모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바로 로마의 세계 지배였습니다. 세계라고 하지만 물론 지중해권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도 역시 그 시대의 흐름에 묶여 살았습니다. 아니 인류의 문명의 역사는 그렇게 거대한 힘의 지배하에 흘러 왔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이 힘들었던 것은 그 속에 또 다른 지배 구조가 있었는데 바로 율법과 제사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주의였습니다. 특히 그 율법은 대부분의 이스라엘을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입니다. 로마의 세계 지배와 유대주의의 체제는 당시의 이스라엘 일반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 몰았습니다. 그런데 로마와 유대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을 젊은 예수가 건드린 것입니다. 결국 당시의 로마 제국과 유대 기득권은 힘을 합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메 단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처럼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는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쟁을 지중해의 나라들이 겪어야 했던 때입니다. 전쟁의 폭력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던 때에 이스라엘 갈릴리 작은 마을에서 평화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전 세계가 전쟁이 아닌 물질 숭배의 폭력으로 고통스러워 하소 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2,000년전에 타오른 평화의 작은 발 걸음을 옮겨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듭니다.


십자가와 부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은 모이기 시작했고, 행11:26에서는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따르는 삶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교회는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유대교로부터 출교를 당하여 어떤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경제 활동도 제한되어 꽤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바울 서신 곳곳에서 유럽과 소아시아의 교회에 우리가 빚진 예루살렘교회의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주자고 헌금하는 내용의 말씀이 실려있을 정도입니다. 또 로마와 유대교의 핍박을 견디기 위해 숨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또한 자체적으로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어서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어 그 다음 토요일 저녁에 끝나는 안식일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끝 난 다음 날 아침 주일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또 모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두 번이나 기념을 해야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안식을, 그리고 또 하나는 부활을 지켰습니다. 그러한 갈등의 내용이 복음서 곳곳에 안식일 논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처음 예수를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한 작은 공동체에서는 유대교의 안식일 보다는 예수 부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부활을 기념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유대교는 율법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였습니다. 아주 소수의 기득권자와 율법을 연구하는 바리세인들, 종교인들 만이 율법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공동체는 달랐습니다. 모든 사람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마리아인, 이방인, 노예, 남녀 노소, 부유하든 가난하든 할 것 없이 그 안에서 새로운 가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서로 함께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느 힘과 권력과 음모로도 무너지지 않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가 태어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며,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였습니다. 성전에 모이는 것은 유대교나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중에 교회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이 히브리말을 쓰는 유대인에게 불만을 토로합니다. 자기네 과부들이 구호 음식을 받는데 소외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도들이 교회의 일꾼을 뽑자고 제의하여 일곱 집사를 뽑아 교회의 일들을 맏게 합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빌립 집사와 순교를 당한 스테반 집사도 이 때 뽑힌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점점 성장하는데, 교회는 예루살렘을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이방인과의 관계를 꺼려하는 유대인들의 관행으로 교회는 늘 한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 교회의 관행을 깨뜨린 것이 바로 스테반 집사의 순교였습니다. 스테반 집사의 죽음은 교회를 흩어지게 하였고,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안디옥에도 교회가 세워집니다.

지난 번에 교회에대한 우선적 개념은 ‘마지막 때’라는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세속의 모든 가치를 0으로 돌려 놓습니다. 그것은 구약을 통해 특히 요엘서2:28 이하를 통해 나오는데, ‘그런 다음에’, ‘그 때가 되면’, ‘또 그 날에’라고 하면서 ‘나의 영을 부어주겠다’고 하면서 32절에 ‘주님의 이름을 불러 구원을 호소하는 사람은 다 구원을 받을 것 이라’합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임재로 혼란스러워하는 유대인들에게 이 요엘서의 말씀을 행 2:17에 인용하면서 ‘그 때가 되면’의 그 때가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때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날에’라고 표현합니다. ‘말세’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엘서의 ‘그 때가 되면’은 베드로 사도에게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시간이기도합니다.

요엘서의 말씀처럼 이렇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겠다고 한 대로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이 영은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만나면서 환상 가운데 유대인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으라 하는 계시를 통해서, 또 사마리아로 복음이 들어가면서 이방전도의 역사를 하기 시작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전도의 큰 일을 위해 새로운 얼굴을 준비합니다. 그가 누구인가 하면 사도 바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독교인을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울을 거꾸러뜨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눈을 뜨고, 그 곳의 예수 믿는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얼마 후에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가이사랴를 들러 그의 고향인 다소에 머물게 됩니다.

그 때 예루살렘 교회는 스테반이 순교를 당한 이후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행11:19에 보면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이 안디옥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헬라인이요, 북 아프리카 사람들입니다. 복음이 어떻게 급속도로 퍼져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가 행11:23에 보면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고 합니다. 이 바나바가 바로 사울이 다소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소 까지 찿아가 사울을 안디옥교회로 모셔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언급된 말씀입니다. 안디옥 교회에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옵니다. 거의 이방 사람들입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입니다. 아프리카 북부의 도시입니다. 시므온은 니게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흑인입니다. 안디옥에 복음을 전한 루기오는 구레네 사람입니다, 또 헤롯과 어릴 때 함께 자랐다고 하는 것을 보면 상류층의 사람인 마나엔, 그리고 다소 출신의 사울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안디옥 교회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중심 인물들의 됨됨이를 보면 신분, 지업, 학문, 인종에 구분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행전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바로 사울과 바나바를 전도자로 파송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모습으로 서기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고는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도우심, 함께하심이 없다면 결국 아무 열매 없이 끝 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신약 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 이후 지금도 성령은 아주 강하게 일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주로 사사, 예언자, 왕과 같은 지도자들에게 임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스리스도의 시대를 넘어 오늘에 이르기 까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은 각 시대에 각 지역에 맞게 교회와 사람을 세워 일을 하십니다. 지금도 교회를 통하여 일을 하시는데, 고기 교회를 통해서도 일을 하십니다. 최근 교회의 사람들이 다소 늘어 예배 장소가 비좁아 아랫방에 T.V를 설치하여 주로 애기 엄마, 아빠를 중심으로 영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그냥 서로서로 얘기하고 마음모아 하면 되었던 일들이, 이제는 전체적인 의논과 의견을 수렴하
는 과정이 필요해 졌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정체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공유나 교회일에 성도와 교회가 겉도는 일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볼려고 합니다.

교회의 정체성이라 했습니다. 정체성은 예루살렘 교회를 보면 금방 와 닿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에, 그리고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되자 제자들을 신속히 보내어 그 복음이 주님의 복음인지, 복음을 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사도 바울이 일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에도 이방인들에게 불필요한 율법적인 규례들, 예를들어 할례, 음식물과 관련된 사항들을 과감하게 파하고, 이방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에대한 것들을 지키라 합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에 힘을 받아 혼신을 하여 2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 만으로는 안됩니다. 머물러, 정체되면 고여 썩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머물러 있는 교회에 역동적인 생명력을 불어준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소아시아와 유럽 전도여행의 전진기지 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은 항상 안디옥 교회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금식으로 기도하며 전도의 사명을 불태운 교회였습니다. 우리 고기 교회도 이 두 가지 교회의 모습을 본받아 오고 가는 시대에 교회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잡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 교회는 정체성과 방향성에대한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크고 작은 문제 거리로 종종 언론 매체의 종교면, 아니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어 부끄럽기도 합니다. 정말 교회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다음 주, 그 다음 주 2주에 걸쳐 야단법석 떠들며 교회에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고 편하게 이야기 하여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은 시의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배, 신앙, 교회의 살림살이,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도서관, 생태교실, 목공방, 가게, 동아리 활동, 그리고 핵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교 운동 같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홰손하는 4대강 사업 등, , ,하나님의 정의, 평화 창조 질서 보전의 하나님 나라 운동 등에대한 것들을 중고등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 까지 한 번은 구역, 교육부서 별로, 또 한 번은 주제 별로 뫃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여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떤 교회가 참 교회, 좋은 교회일까요, 이 좋다 할 때 누가 좋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진주 주님의 교회 장로로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로 사회 속에 하나님 나라 운동을 헌신적으로 해 오고 있는, 경상대 국제정치학 교수로 제직 중인 백종국 장로의 교회에대한 소박한 글을 읽겠습니다.

내가 꿈꾸는 교회
나는,
우리 교회는,
이 땅위에서
복의 근원이고 싶다.

무엇보다 인애의 마음으로...
잔인과 냉혹이 기세를 떨치는 사막 같은 세상에서
여기에서 만큼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보살핌이 상식인
오아시스와 같은 교회가 되고 싶다.

잘못을 교정하더라도
애처로운 마음을 먼저 품는
예수를 닮고 싶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않고
상대가 어떠하든 나는 나의 도리를 다하는
인애의 마음을...

이미 주인에게 10억 원의 빚을 용서받았기 때문에
내게 10원 빚진 자를
너털 웃음으로 보내줄 줄 아는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교회를 가득 채우고 싶다.

아주 부족한 저 형제가 있기 때문에
부족한 내가 그나마도 선택되었음을 아는

그래서
주제 파악을 잘한다고 소문나는
그런 교회를 가지고 싶다.

가장 효율적인 체제를 추구하지만
형제의 부족함을 안타까이 여겨
인내로 도울 줄 아는
그런 교회를 만들고 싶다.

모두의 종으로 오셨기 때문에
결국 만물의 주인이 되신
그 분을 따르고 싶다.

정말, 간절히...

나는,
우리 교회는,
이 박복한 한국 땅에서
살아 숨쉬는 복의 근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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