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지혜로운 마음이란?(2012년 9월30일, 성령강림후열여덟번째주)

하늘기차 | 2012.09.30 11:05 | 조회 2308


지혜로운 마음이란?
2012년 9월30일(성령강림후열여덟번째주) 왕상3:5-15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가르치고 산에서 내려오셔서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들어가실 때 놀랍게도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자기의 하인이 중풍으로 죽게되었으니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내가 가서 고쳐주마’하니 백부장이
‘주님, 나는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일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마디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입니다.’하면서 군대의 상명하복의 관계에대해 이야기 합니다.
‘나도 상관을 모시는 사람이고, 내 밑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고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고 하면 옵니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합니다.’ 이 이야기를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 중에 서도 이 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이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 예수님을 부를 때 예수님을 무어라 부르는가 하면 ‘주여!’했습니다. 로마인에게 하물며 로마군의 장교에게 ‘주’는 로마 황제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으며 ‘주님!’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을 부르는 이 고백이 진정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생명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논의 벼 메뚜기에대해 이야기하면서 벼 메뚜기가 사람이 다가오면 피하는데 벼 잎 뒤로 살짝 숨는다고 했습니다. 메뚜기의 지혜입니다. 실기위해서입니다. 메뚜기는 두려워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귀는 피하거나 숨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교만하여 어리석습니다. 지혜는 이렇게 생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이라고 한다면, 생명을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하는 분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것이 지혜이며, 그래서 잠언에서는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이 로마의 백부장은 자신의 삶의 정황을 뛰어 넘습니다. 메뚜기 처럼 말입니다.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예수님께 넙죽 무릎을 꿇는 모습이야말로 지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솔로몬이 바로 그러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7절에 보면
“주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는,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나의 아
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서, 주님의 종인 나를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직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처신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라고 하면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10절 말씀에
“주님께서는 솔로몬이 이렇게 청한 것이 마음에 드셨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9절 말씀에서 지혜로운 마음을 구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아버지 다윗이 한 것과 같이, 네가 나의 길을 걸으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네가 오래 살도록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지혜로운 마음이란 바로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지켜 행하려고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사실 솔로몬의 간구는 이미 선 왕 다윗의 바램이기도 하였습니다. 왕상2장에 보면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여 마지막 유언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에도 어린 왕자에게 많은 조언을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윗은 한 가지를 어린 왕자 솔로몬에게 유언합니다. 왕상2:3입니다.
“그리고 너는 주 너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모세의 율법에 기록
된 대로, 주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을 걷고, 주님의 법률과 계명, 주
님의 율례와 증거의 말씀을 지켜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모든 일이 형통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자 마음에 맞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선 왕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하나님이 모두 같은 마음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뿐 아니라 ,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지혜로운 마음은 이미 모세에게서부터 그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불러놓고 마지막으로 들려준 말씀이 바로 신명기서의 말씀인데, 신4:5,6에 보면
“보십시오, 내가, 주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신 대로, 당신들에게
규례와 법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신들이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당신들이 그대로 지키도록 하려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당신들은
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십시오. 그러면 여러 민족이, 당신들이 지혜
롭고 슬기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 모든 규례에
관해서 듣고, 이스라엘은 정말 위대한 백성이요 지혜롭고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말로 지키면 안됩니다. 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않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 합니다. 제가 처음에 로마의 백부장에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 때가 어느 때인가 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말씀하시고 산 아래로 내려 오자 마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그 산상수훈의 마지막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아십니까? 마7:24 이하에 보면 반석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역시 지혜에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로 그 반석이 하나님 말씀이라 하시면서 26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씀하고 산에서 내려와 처음 만난 사람이 바로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는 지혜가 당시의 바리새인, 레위 지파, 사두개 사람들에게 있지 않고 이방인,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로마인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지혜의 첫 실마리는 잠언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옵니다. 그렇다면 어리석음의 시작은 어디서 부터일까요?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무사히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많은 장치를 해 놓았습니다. 구름 기둥, 불기 둥, 바위에서 터져나오는 샘, 그리고 무엇 보다 매일 아침에 주시는 만나를 통해 말씀으로 살 것을 눈으로 보여주셨고, 특히 이스라엘이 행진할 때는 하나님의 율법 궤가 맨 앞에 서서 나아가고, 행진이 멈출 때에는 진 중앙에 위치해 이스라엘이 어느 곳에서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과 함께한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장치를 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 장치를 무너뜨린 것은 이스라엘의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조금만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고, 고기 생각이 나면 옛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그래도 생활이 보장된 일들을 생각하고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돌아가려는 마음이 어리석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나안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웠습니다. 마치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이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중심없이 이리 저리 흔들린 것은 가나안에대한 소망, 꿈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꿈과 비죤은 말씀에서부터 흘러나오는데 원망과 불평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려는 마음이 없어지니 말씀으로부터 비죤과 소망이 솟아나는 것을 막아버린 격이 되었습니다.

꿈과 비죤이라 했는데, 성경에는 꿈쟁이들이 있습니다. 고대의 박사들을 지혜자라, 또는 현자라 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꿈을 잘 해몽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꿈은 지혜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의 족장시대의 당대의 꿈쟁이는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어려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그가 꾼 꿈을 어떻게 잃지 않고 이루어질 때 까지 계속 간직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사고, 애굽으로 팔려가 보디발 장군의 종으로 있을 때에, 억울하게 감옥에 갖혀 있을 때에도, 바로에게 불리워 갔을 때에도 형들과의 극적인 대면 장면 중에서도 늘 요셉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바로의 앞에 섰을 때에도 요셉은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
님이 해주실 것입니다’고 합니다. 창45장에서도 요셉은 자책하는 형들에게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
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창41:25에서는
‘임금님께서 두 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하는데, 그 말씀이 바로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바로가 하나님을 향한 요셉의 삶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과 요셉이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들었다고 하였으며, 또 선 왕 다윗은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말씀을 지켜 행하라 할 때에 그 마음이 또한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다윗과 솔로몬이 모두가 한 마음입니다. 여기서 지혜의 샘이 터지고, 그 맑은 시원한 삶의 지혜, 신앙의 지혜와 소망이 생겨지고,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이 자기의 앞을 가로막는 무수한 어려움, 시험 속에서 원망과 불평, 자기 연민에 빠질 수 있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를 택하였습니다.

원망과 시비는 우리에게 삶의 소망을 빼앗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아가라고 정해진 삶의 길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이럴 때 어리석은 길로 빠져드는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민21장 4절 말씀에 보면 길 때문에 조급하여, 5절에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물 때문에, 양식이 없어서, 그리고 고기가 먹고 싶어서 불평을 하였는데, 이렇게 길 때문에도 원망을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 길을 가는 동안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팔자려니 하며 운명이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의 삶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다윗은 시16:6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이 줄로 재어준 나의 그 땅이라 하며 그 땅이 기름지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삶을 대하는 마땅한 삶의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길 때문에 시험에 든 것입니다. 왜 시험에 들었는가 하면 민2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에돔 땅을 빙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은 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에 싸우지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통과해도 힘든 길인데 돌아가라 하니 불평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5절에 보니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 구름 기둥으로 햇볕을 가려주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해 주었는데, 그리고 만나와 바위에서 샘을 내어주셨는데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은 5절 끝절에 무어라고 이스라엘이 떠드는가 하면 그 음식이 이제는 진저리가 났다는 것입니다. 한글 개역에는 ‘이 하찮은 음식’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고, 진저리 나는 것으로 바라 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 인생의 모습을 봅니다. 희망과 비죤을 잃어버리면 우리 삶이 하찮아 보이는 것입니다. 나 뿐 아니라, 가족, 엄마, 아빠, 자녀들이, 가족과 이웃과 교회 까지도 우습게 보이고, 이제는 실증이 나는 것입니다. 아니 진저리가 났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했겠습니까? 6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어떠하시리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보통은 하나님이 어떻해서 어떻게 하셨다고 하는데 민21:6에는 아무 말 없고 불뱀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냥 하나님이 불뱀으로 이스라엘의 정신을 깨우신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라엘이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를 제대로 보고 있습니다. ‘주님과 어른을 원망함으로 죄를지었다’고 하면서 이 뱀들을 물리쳐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광야의 삶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이렇게 불평 불만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높이 메달라 하고,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장대에 메달은 구리 뱀을 본 사람들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니고데모와 다시 사는 삶에대해 이야기 하는 중에 자신이 스스로 이 구리뱀처럼 십자가에 높이 메달릴 것이라 하셨습니다. 요즈음도 이 불뱀이 더 무서운 독성을 뿜고 온 세상을 휘저으며 세상 사람들을 물며 돌아다닙니다. 이 독한 뱀에 사람들이 모두 나 뒹굴어지고 있습니다. 온갖 어두움, 죽음, 두려움, 공허와 무질서로 사람들이 힘들어합니다. 이 불뱀은 정보, 가치체계, 인터넷과 대중매체를 타고 우리들의 삶 속에 파고들어와 사람들을 물어 죽어가게 합니다. 이 때 이 불ㅂㅁ의 독을 멈추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유일한 처방은 바로 구리 뱀처럼 높이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부터 오는 하나님의 사랑을 먹어야 그 불뱀의 독을 치료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고전2:7-8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영세 전에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통치자들 가운데는, 이 지혜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6절 말씀에 보면 ‘그런데 이 지혜는, 이 세상의 지혜나 멸망하여 버릴 자들인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이 지혜 십자가로부터 흘러넘치는 지혜를 하찮게 여깁니다. 마치 광야에서 불뱀을 끌어들인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한찮게 여기니 세상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로마의 주인인 황제를 뒤로 하고 ‘주님!’하였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지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로 드러났습니다. 감추어져 있었는데,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서 보여준 세상과 다른 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30/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516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85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48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35 2005.09.02 16:30
395 [일반] 그림자 소명 (2012년 11월 25일, 성령강림후 스물여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홍정원 2320 2012.11.25 17:54
394 [일반] 온유한 마음(2012년11월18일, 성령강림후스물다섯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19 2012.11.18 13:30
393 [일반] 죽임당한 것 같은 어린 양(2012년11월11일, 성령강림후스물네번째주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2480 2012.11.11 13:25
392 [일반] 깨끗한 마음(2012년11월4일, 성령강림후스물세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80 2012.11.04 16:51
391 [일반] 공중에 나는 새(2012년10월28일, 추수감사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749 2012.10.28 17:28
390 [일반] 가난한 사람들의 나라(2012년10월21일, 성령강림후스물한번째주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5 2012.10.21 13:08
389 [일반] '함께 세우는 고기교회 공동체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33 2012.10.19 14:44
388 [일반] 예루살렘, 안디옥, 고기 교회(2012년10월 7일, 성령강림후열아홉번째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06 2012.10.07 16:52
>> [일반] 지혜로운 마음이란?(2012년 9월30일, 성령강림후열여덟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09 2012.09.30 11:05
386 [일반] 구원을 이루라(2012년 9월23일, 성령강림후열일곱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75 2012.09.23 14:39
385 [일반] 죄인아닌 죄인(2012년 9월16일, 성령강림후열여섯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022 2012.09.16 15:35
384 [일반] 시험의 기쁨(2012년 9월 9일, 성령강림후열다섯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13 2012.09.09 15:55
383 [일반] 이런 부류는 어떤 부류(2012년 9월 2일, 성령강림후열네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52 2012.09.02 15:50
382 [일반] 기도의 열매(2012년 8월12일, 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291 2012.08.26 15:50
381 [일반] 침 묵(2012년 8월12일, 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77 2012.08.19 16:38
380 [일반] 허상을 넘어(2012년 8월12일, 성령강림후열한번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019 2012.08.12 15:18
379 [일반] 엘 샤다이(2012년 8월 5일, 성령강림후열번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446 2012.08.05 14:02
378 [일반] 나의 엉덩이 뼈(2012년 7월29일, 성령강림후아홉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346 2012.07.29 13:56
377 [일반] 약속 과 깨어 기다림(2012년 7월22일, 성령강림후여덟째주) 첨부파일 하늘기차 2201 2012.07.23 10:21
376 [일반] 사기를 잃어서는 안됩니다(2012년 7월15일, 성령강림후일곱째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187 2012.07.15 15: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