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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기쁨(2012년 9월 9일, 성령강림후열다섯번째주)

하늘기차 | 2012.09.09 15:55 | 조회 2112


시험의 기쁨
2012년 9월 9일(성령강림후열다섯번째주) 막9:17-29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받는다, 또는 은사, 선물 등, 물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듯이, 비가 내려 땅을 적시듯이 그렇게 은혜를 입습니다. 야고보서 중에 저는 1:17절 말씀이 제일 좋습니다. 야고보서의 행하라, 시험에 들지 말라 하는 것은 다 이러한 은혜를 입으라는 뜻입니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아버지께는 이러저러한 변함이나 회전
하는 그림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마치 벼가 잘 익어가는데, 그 벼가 벼 이삭으로부터 싹을 내고 꽃을 피우고, 이삭이 패어 영글어 가는 과정을 보면, 아! 위로부터 오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햇볕, 비, 바람, 이렇게 벼가 잘 영글어 가다가도, 물이 부족하고, 볕이 모자라면, 쭉정이 밖에 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고, 애를 쓰는데,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결국 벼가 쭉정이만 남듯이, 우리의 삶이 속 빈 강정이기 십상인 것입니다. 내가 그동안 무엇하고 살았나 십을 때가 속히 오는 것입니다.

인생을 덫 없이 낭비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쉽습니까? 한 번 밖에 없는 인생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일회적입니다. 그래서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이 인생을 우리는 복되게 살아야 합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한다고 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복이 하늘로부터, 위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오니 아래에 있는 우리들의 생각이나, 경험이나, 뜻과는 전혀 다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선언하신 8 개의 축복을 보면 땅의 생각과 가치, 그리고 경험들로는 받아들이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거꾸로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되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이르면 시험을 견디어 내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바라는 복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거부감 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위로부터 오는 복의 중심에 누가 계신가 하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보면 시험을 받을 때에 기뻐하라고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남이 모르는 고통, 아픔 속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환난과 핍박, 억울함 속에서 기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받아들이나 하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오늘 말씀의 경우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해 쓴 편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참 어려웠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이제는 유대교에서 축출당한 상황이어서 당시 사회의 어떠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었고, 또한 경제활동도 극히 제한 받아 극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업친데 덥친격으로 당시 극심한 가믐이 들어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때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대해 사도 바울은 서신 곳곳에서 그리고 사도행전에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에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16:1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에 대해서는 내가 갈라디
아의 여러 교회에 지시한 것과 같이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을 봅니다. 야고보 사도도 서신 곳 곳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에대해 비교하면서 부를 자랑말라 하며 가난함에대한 위로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여간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교회에 사도 야고보는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기쁨은 영적인 기쁨입니다. 영적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기쁨이라는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이 시험의 기쁨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2은
“당신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이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 같고,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 같아 그들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고 합니다.
너무 잘 아는 말씀 하박국3:17-19은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
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
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주 하나님은 나
의 힘이시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게 하셔서, 산등성이를 마
구 치닫게 하신다”고 합니다. 내용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니 시험을 기뻐하라는 말씀도 그러한 하나님 중심에서 온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뭔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시험, 고통, 어려움, 감당하기 힘든 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400년을 살게 하십니다. 노예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 출발은 요셉의 꿈으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요셉은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지금 온갖 고난을 통해 이렇게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은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주고,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는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징표가 있기도 한데, 하여간 이스라엘은 요셉의 꿈으로 인해 모두 이집트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400년을 노예로 살아갑니다. 아무 죄 없는, 열심히 잘 사는 이스라엘을 택하여 노예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가 되어 히브리 민족은 모세를 통해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향합니다. 이 출애굽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당시 중동의 잡다한 신, 엘 샤다이, 엘 샴마, 엘로이, 엘 엘리온 등 능력의 하나님, 감찰하시는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등으로 함께 두리뭉실 불리우던 이름을 야웨 하나님으로 드러내셔서, 인류 구원의 출발을 여신 것입니다. 그 과정의 고통을 이스라엘은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 속에 뜻 안에 이스라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우리나라의 고난이 하나님의 뜻 안에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탁월한 하나님 역사관을 세운 것입니다.

시험과 고난 속에는 꼭 하나님의 뜻이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우연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은 그저 자기 연민에 빠진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의 넉두리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오늘 말씀 속에서 어려움이 다가 올 때 인내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인내, 그 기다림이 4절 말씀을 풀어보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게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약5:7-11은 그 기다림이 무한정의 기다림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에는 그 기간이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그 기다림을 농부의 기다림으로 비유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달리 10월에서 11월 말에 씨를 뿌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비가 와야 합니다. 우리가 봄철 모내기 할 때 비가오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추수 때가 4~5월인데 이 때 늦은비가 온다고 합니다. 익은 곡식이 잘 여물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농부는 땅을 갈아업고, 씨를 뿌리고, 거름주고, 북돋우고, 피를 뽑아주면서 비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농부가 할 일을 다 해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햇볕이 내리 쫴지 않으면 결실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비와 햇볕과 바람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애 쓰고 수고하며 기다리면 열매가 맺히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전에도 이야기 하지만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을 행복으로 보면 좀 곤란합니다. 성경은 행복이 아니라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기쁨일까요? 행복과 기쁨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기쁨은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옵니다. 그러니까 산모가 아이를 복 중에 잉태하여 10개월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 후에 아이를 낳는데, 그 고통을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한 생명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고통 가운데 찿아오는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그러한 고난 속에서의 기쁨을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빌4:4은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라고 간곡히 권면합니다. 근데 어떻게 그냥.. 기뻐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영적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시편 4:7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이 마음에 심어주신 당신의 기쁨, 곡식이다, 포도주다, 풍년에 흥겨
운 저들의 기쁨보다 크옵니다.” 하나님과 맺어진 관계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요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
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비교가 되는 두 여인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인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입니다. 두 여인의 공통점은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대에 아이가 없다는 것은 종족보존의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 때였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그 고통을 타개하려고 몸종 하갈의 몸을 빌어 상속자를 잉태하였는데,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결국 가족 불화와 가족 파탄을 일으키고 맙니다. 그러나 한나의 경우는 브닌나에게 멸시 받으며 힘들어 하는 중에 성전에 나아가 그 고통을 하나님께 아뢰며 그 아픔을 감당합니다. 한참 기도를하는데, 당시의 제사장이었던 엘리가 한나가 입술만 움직이며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는 술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울컥 화를 내며 엘리와 한 바탕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엘리에게 술을 마신것이 아니라 “다만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저의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았을 뿐”이라고 하면서, “너무나도 원통하고 괴로워서, 이처럼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차분히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엘리 제사장이 “그렇다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대가 간구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축복해 줍니다. 한나는 그 날부터 바로 음식을 먹고 그리고 다시는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지 않았다고 합니다. 엘리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시험 중에 기뻐하라는 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그대로 가지고 나와 아뢰었습니다. 고통을 승화시켜 하나님의 언어로, 하나님 안으로 끌고 들어간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에게로 끌고 가 하나님의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기 문제가 자기 안에 그대로 있지만, 기도하면 그 문제는 그 때부터 하나님의 문제가 됩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상황이 벌어지면, 그대로 집으로 달려 와서 엄마에게 그 되어진 일을 이야기하면 그 때부터 그 문제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엄마의 문제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어린아이처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한나의 기도는 아이의 탄생 뿐 아니라,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의 기초를 삼으신 것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혹을 하나 더 붙이는 격이 되어 가정의 심각한 파탄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지막 까지 받아들이지 못해 하나님의 천사 3사람이 찿아 와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는데도, 그 약속을 받아들이지 못해 피식! 하고 웃고 마는데, 그 웃는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에게 들키고 마는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야웨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그 아픔을 은혜로 열매로 승화시켜 결국 이스라엘의 건국의 기초를 놓은 사무엘을 낳습니다.

시험 받을 때 기뻐하라는 것은 영적 기쁨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 안에서 맛 볼 수 있는 기쁨입니다.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고통과, 아픔, 시험과 환난이 변하여 기쁨의 열매를 맺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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