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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열매(2012년 8월12일, 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

하늘기차 | 2012.08.26 15:50 | 조회 2291


기도의 열매
2012년 8월12일(성령강림후열두번째주) 막11:20-2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다가 시장하셔서 근처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다가 가서 열매를 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에는 열매가 맺혀있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무화과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하십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무심히 그 이야기를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신 후 성전을 나오다가 제자들은 그 무화과나무가 완전히 말라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합니다. 무화과 나무는 포도나무, 올리브나무와 함께 이스라엘을 상징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은 무화과 나무가 말라있는 것을 보았을 때, 예루살렘의 열매 없음을 절절히 느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23절에서
“누구든지 이 산더러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고
말한 대로 될 것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구 말씀하셨습니다. 가슴 벅찬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기도로 초청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서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산아! 번쩍 들려서 바다에 빠져라’하는데 왜 안될까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걸까요? 아니 했다면 왜 안될까요? 의심해서 그런가요? 그런데 24절을 자세히 읽어 보면 23절과 같은 의미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한 마디로 ‘받은 줄로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말씀은 비유입니다. 비유는 그 뜻을 풀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상징적 의미를 이 시대 정황 속에서 보물을 찿듯이 찿아내야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사11:6-8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죤을 열면서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
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먹는 아
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
을 넣는다. "라고 말씀하는데,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상징과 비유로 받아 그 뜻, 의미를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신뢰, 하나됨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산을 바다에 빠뜨리는 이야기를 할 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한 것은 ‘의심치 말라’는 것이요, ‘ 받은 줄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는 것이 믿는 것일까요? 자기 신념, 아니면 자기 확신 일까요? 열정적으로 부르짖는 ‘믿습니다’일까요? 기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치 않는 ‘절대 긍정’, 이것이 믿음일까요? 주님이 ‘하나님을 믿으라!’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당근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믿느냐라는 것에 이르면 고개가 갸우뚱해 집니다. 적지 않게 자기 신념을 하나님 신앙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분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엘리에셀이 바로 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몸종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아들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아들은 아들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둘 다 자기의 신념 체계에서 온 것이지 하나님 신앙은 아닌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알라딘 램프의 요정이거나, 도깨비 방망이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예를들어 우산 장수와 아이스크림 장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 까요? 영국과 독일이 축구 결승전을 치릅니다.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종종 프로 축구 경기에서, 아니면 메달을 따는 선수들이 그 결과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장면을 종종 봅니다. 이제 그거 않했으면 좋겠습니다. 연말 연예프로 시상에서도 이제 하나님 찿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값이 싼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도가 아니라 돈을 믿는 기도, 욕심과 신념 체계에서 비롯된 기도, 자기 정성의 기도 그거 아닙니다. 그 순전함이야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한 수 떠다 놓고 두손 모으는 정성.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와 싸웠던 450의 바알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기도 모습입니다. 몸을 자해하여 피를 흘리고, 소리를 버럭 버럭 내 지르며, 집단으로 난리 굿을 하는 모습은 과관입니다.

어린 아이와 아빠가 있는데, 아빠가 아이에게 말합니다. ‘아가! 이 아빠를 믿어라!’합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 할 때 아버지는 아이에게 무엇을 믿으라는 것일까요? 아이가 원하는것을 그대로 다 들어준다는 뜻일까요? 아니지요 아버지의 지혜, 능력, 사랑을 믿어 달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오늘 본문 에서 ‘하나님을 믿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나의 계획, 나의 소원이 아니라,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더 좋은 뜻이 있고, 더 좋은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 나의 생각과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산인들 안 뽑히고, 바다인들 안 메꾸어 지겠는 가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기 욕심, 자기 계획, 자기 신념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경륜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23, 24의 이루어 진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은 반듯이 이루어 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산이 뽑혀 바다에 빠지라’ 는 것은 비유입니다.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산이 가로 막고, 바다가 넘실될지라도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시면 산을 뽑고, 바다에 길을 내실 것입니다. 약4:3은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 앞에 있는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의 무화과는 잎만 무성하였습니다. 잎은 푸르고 보기에 참 좋은데, 정작 열매가 없습니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의 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자기 잎 만 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고‘, 또는 ‘받은 줄로 믿고’라고 말씀하는 내용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은 신뢰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의 포도나무 이야기는 잘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요15장은 잘 아시듯이 포도 나무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포도 나무 이야기 속에서 열매를 맺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포도 나무 이야기는 머니 머니 해도 가지가 포도 나무에 잘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15장에서 끊임없이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무려 11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그렇게 아버지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포도 나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11절에 무어라 말씀을 하는가 하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넘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무슨 기쁨일까요? 열매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 이야기의 끝 부분인 16절에 보면 놓칠 수 없는 구절이 나오는데,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게 하
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 구하라는 것입니다.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냥 고스톱이나 치며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구하며, 즉 기도하며 머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구하여 얻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또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열매는 없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기쁨도 없습니다.

추운 겨울 지나고 잎이 파랗게 솟아 오르는 것을 보며 감탄을 합니다. 그동안의 추위를 물리치며 마른 나뭇가지에서 초록, 생명의 색이 솟아 오르면 이제 눈보라 치며 삭풍에 움츠리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꽃이 핍니다. 식물의 아름다움은 꽃입니다. 아마도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식물의 80%는 거의 봄에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식물의 존재감은 바로 이 꽃에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각양 각 색의 크고 작은 꽃들이 서로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저는 종종 부활이 별건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 꽃 피우는 것’이 부활이라고 자주 이야기 했습니다. 그만큼 식물에 있어서 꽃의 존재감은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쁨을 주는 것은 결국 열매입니다. 씨앗을 남기는 것입니다. 마지막 결과물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식물이 겨울이 지나 파릇 파릇 초록을 틔우고, 그리고 벌과 나비를 부르는 꽃을 피워 온 세상을 초록과 형형 색색으로 향연을 벌이는데, 만약 열매, 즉 씨앗이 없다면 어찌될까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초록도, 꽃도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열매가 맺히므로 우리는 그 다음을 희망하며, 감사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매가 없다면, 행함이 없다면 그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그냥 쪼그라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쪼그라들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닙니다. 온갖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따라 자기 자리에서 자기 꽃 피우며 한 껏 자기 꽃을 피우며, 기쁨의 열매를 맺는데, 우리 성도들도 신앙에 걸 맞는 열매를 맺는 것은 얼마나 합당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구하라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해야 하는가 하면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기쁨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 ‘낸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기부’가 아니라 내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것 그냥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은 그냥인데 열매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없으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무에 열매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 차이입니다. 예배당 옆 밤나무에 어김없이 밤송이가 맺혔습니다. 그런데 올 해에는 포도나무에는 포도 송이가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차이가 나는가요? 이제 밤송이는 곧 벌어져 토실토실한 밤 알을 낼 것입니다. 그렇게 내면 우리는 주어서 먹지요. 밤알이 벌어지며 떨어지는 모습은 충만에 충만인 것입니다. 충만, 그러니까 이렇게 차고 넘쳐야 낼 수가 있는데, 어떻게 충만한가요? 오늘 말씀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전 13장을 사랑 장이라 합니다. 이 사랑에대한 말씀이 어떻게 비롯되었는가 하면 고전 12장에 보면 9가지 은사에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은사란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선물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고전12장은 이 선물을 성령의 은사라고 합니다. 믿음, 병고침, 기적을 행하는 능력, 예언의 은사, 영을 분별하는 은사, 방언, 방언을 통역하는 선물, , , 등 11절에 보면 성령께서 원하시는대로 당신의 뜻과 계획과 경륜에 따라 선물을 나누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31절에 보면 더 큰 은사를 열심히 구하라고 합니다. 바로 사랑의 은사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차원이 틀려집니다. 은사는 은사인데, 12장의 은사, 즉 선물과는 차원이 틀립니다.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의 은사는 구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13장을 소위 사랑 장이라 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읽고 듣기는 참 좋은데, 그것을 행하려 할 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까 하는 위압감 같은 것을 느낌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데, 그냥 12장에서 주시는 9 가지 은사와는 조금 다릅니다. 더 열심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은사, 즉 선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 자체가 우리에게 없거든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맞기는 맞는데, 그런데, 이 은사는 좀 다른 것이 기도를 통해서 선물로 온다는 것입니다. 열매의은사인 것입니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잎이 나는 것과 열매가 맺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13장의 그 순결하고 아름다운 선함의 사랑 열매가 그냥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열매로 맺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제 대부도에 잘 다녀왔습니다. 제 얼굴이 좀 까맣지요. 건강해 보이지 않습니까? 썬 크림 바르지 않아 쿠사리 먹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뻘에 우리 김쥬리 청년이 중고등 부 때, 강화도 갯벌에 간 이후 오랜만에 갔습니다. 그런데 뻘에 잘 안들어 갑니다. 뻘에 온 몸이 범벅이 되는 것이 귀찮아서지요. 나이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이이들은 뻘에 들어가 목욕을 합니다. 비싼 돈 들여 머드 팩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기회에 전신머드팩을 한 것입니다. 중고등부 아이들 피부가 반짝반짝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어슬렁, 어슬렁 거리다가 점심 먹고 작심을 했습니다. 조개를 캐야겠다는 필이 머리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호미들고, 비닐 봉지 옆에 차고 저 멀리 까지 나갔습니다. 은수 아빠가 먼저 가셨고, 정흠 아빠는 무슨 ‘함’이라는 몸에 좋다는 식물과 효소를 만들겠다고 씀바귀 같은 식물을 땁니다.

저는 은수 아빠 있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귀동냥 한 대로 조개를 캤습니다. 그 날 캔 조개를 집 사람에게 보이니 한 7,000원 어치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꽤 잡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남선교회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매 년 이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끝도없이 조개를 캐는데 여전히 조개가 나온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느낀 것은 하나님의 무한함을 이렇게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 먹을 것이 무한한데, 그래서 그 날 조개를 캐는 곳에 한 10분 정도가 있었는데, 서로 싸우며 자리 뺏어가며 조개를 캔 것이 아니라, 거기 있는 것 내 가질 만큼 편하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인류의 반 정도가 굶주림의 삶을 산다고 하는데, 또 현재 전 세계의 생산되는 식량의 양은, 현재 지구의 인구수의 2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즉 현재의 지구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먹을 식량은 아직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욕망의 씨스템, 경제 체제, 좀 더 편리하고자 하는 마음 등. . . 이 결국 굶주림에 내 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그렇게 대부도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식량을 마음껏 캐었는데, 은혜지요. 그런데 가만히 있으면 은혜가 은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갯벌 속에 그 조개 껍질의 날카로움에 발을 비어가면서, 따가운 볕 아래 쪼그리고 앉아 땀을 흘리니 조개 한 줌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뻐요. 그래서 막 자랑을 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그 주신 선물을 맛보고 누리고자 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13장 사랑 장은 그냥 은사가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사입니다. 사랑의 은사가 오기는 오는데, 그런데 참 신비로운 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열매 맺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은사와 다릅니다. 선물로 주신 것 분명한데 기도 없이는 열매가 나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갯벌에는 하나님이 주신 무한 것들이 기득한데, 가만히 있으면 그 갯벌 안의 무수히 많은 것들이 나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호미들고, 비닐 차고 갯벌로 나가서 캐야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인생의 여정에, 수 많은 관계 속에 사랑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도 성도들에게 말입니다. 지옥이 다른 게 아닙니다. 사랑 없는 신앙의 반복. 지옥이지요. 열매 없는 신앙의 삶.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힘써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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