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View Article

우리 일은 ?(사순절세번째주일.2023년3월12일)

하늘기차 | 2023.03.12 12:40 | 조회 238

                              우리 일은 ?

사순절세번째주일(2023312)                                                             22:47-53;5:1-9

   예수의 죽음은 정치적 죽음이요, 희생이었습니다. 세상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세상 권력인 빌라도와 헤롯은 소요가 일어나면 정치 생명이 끊어질 두려움에, 종교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성전과 율법과 제사가 흔들려 그동안 적당히 유지해 오던 위선적인 종교의 거짓 권세가 다 무너질까 두려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과 떨림과는 근원적으로 다릅니다. 자기의 것을 놓치 않으려는, 가진 것을 내려놓지 않으려는 두려움입니다. 여기에는 평화가 없고, 쉽게 폭력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빌라도와 헤롯은 그동안 사이가 안 좋았음에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밖는 일에 공조하였고, 근본이 다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역시 서로 야합하고, 율법학자들, 제사장들, 공회원들, 그리고 군중들 까지 모두 하나가 된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악함을 잘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논리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서 인간을 죽음으로 내 모는 악을 높이 들어 올려 선과 악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죽음의 무력함을, 죽음의 죽음을 온 세상에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난에대해 세 번이나 이야기 하였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또한 체포 직전에 제자 하나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자, 예수님은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 하면서 내가 나의 아버지께, 당장에 열두 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시기를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며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세상의 권력, 종교 기득권을 이용하여 행하는 어두움의 일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류구원을 위한 계획을 진행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해방될 때에도 하나님은 바로가 강퍅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자 그대로 버려두어 결국 10가지 재앙의 종지부를 죽음으로 마무리 짓습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사탄의 무기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뜻에대한 절대 순종으로 그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죽음의 힘으로 세상에서 사람들을 현혹하며 활동하지만 하나님의 부름받은 백성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으로 능히 세상을 이깁니다.

   가룟 유다는 감람산에서 날이 새도록 기도한 예수님에게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찿아갑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어디서 언제 기도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금요일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전 아직 어두울 때에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체포됩니다. 예수님은 요11:10에서 밤에 걸어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으므로, 걸려서 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유다와 예수를 잡으려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보낸 무리들은 어둑 컴컴한 새벽에 등불과 횃불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빛은 참 빛이 아닙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 앞에 인공적인 거짓된 빛을 들이댓습니다. 유다는 어두움의 힘에 묻혔습니다. 사탄이 유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자 꼼짜없이 붙들려 사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제자공동체에서 회계를 맡았는데, 어느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모습을 보며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고 합니다. 요한 복음은 이에대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가는 자라고 명시합니다. 실제 유월절 만찬직전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은 30에 넘겨주고 만찬에 참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나눌 때 예수님이 가룟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13:27)라고 말씀하시자, 유다는 예수님이 나누시는 거룩한 빵을 받고 밖으로 나가 자기 일을 합니다. 체포당하기 직전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너희는 누구를 찿느냐?”고 물으시는데, 공생애 처음 시작할 즈음에 요1:38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따라 오자 돌아서서 물으신 너희는 무엇을 찿고 있느냐?”와 같은데, 질문은 같지만 질문을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반대입니다, 예수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한 질문에대한 답은 죽음이고, 예수를 보러 온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에대한 답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악에 속해있는지, 아니면 선에 속하여있는지에 따라 같은 질문에대해 다른 답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보잘 것 없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자 모두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5:6 이하에서 사도 바울은 빛의 자녀, 어두움에서 벗어난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말씀합니다. 이 세상을 살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를 분별하며 살라고 합니다. 영적 식별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지혜롭지 못하며, 어리석기 까지 합니다. 또 옮지 않은 일을 접할 때 뿌리칠 용기도 부족합니다. 합당하지 못 한 것에 쉽게 붙들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인데, 어떻게 이러한 원치않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6:7은 그런 사람들과 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인가 하면 6절에 헛된말로 바람잡는, 공허한 이야기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교묘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넘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약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가 그나마 위로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냥 먹고 마시는, 세상 이야기 나누는 교제 말구요. 그것은 세상에서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까? 나를 새롭게 하며 변화시키며, 조금 씩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며 위로를 주고, 평화를 나누는 교제, 말씀을 같이 읽고, 기도의 제목을 나눌 수 있는 교제말입니다. 저는 상상을 해 봅니다. 유다 곁의 다른 제자들이 유다의 손 버릇을 알아차렸다면, 돈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에대해 직언을 해 줄 수 있는 동료였다면, 십자가의 죽음의 도구로 굳이 예수님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그 역할을 감당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악을 드러내며, 죽음의 권세를 멸하는 십자가의 과정에서 유다 말고도 얼마든지 체포의 과정이 다르게 진행될 수 있지 않았겠나 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가룟 유다에대해 안타까워 하기 보다는 누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경쟁의 상대로만 보였을 것입니다. 결국 어두움의 힘이 예수님의 코 앞에 까지 치구 올라 온 것입니다. 사탄은 세상 나라의 방법으로 예수를 넘어 뜨리려 하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고난에대해 이야기를 하자 예수님에게 대들며 안된다고 강력하게 꾸짖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가룟 유다는 사탄에 붙들려 죽음의 도구로 전락하여 회개 없이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어두움은 어두움의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유다에게 너의 일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돌아 설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 모든 기회를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탄의 정체성입니다. 미움, 분열, 싸움, 폭력. . . 못하게 한다고 해서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영에 사로잡혀 선한 일을 해야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선한 영이 살아 역사하면 선한 일들이 샘 솟듯 솟아납니다. 그러면 그동안의 어두운, 죽음의 일들은 약해져서 나중에 사그러듭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용기를 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름받은 백성은 그렇게 이긴 싸움을 합니다.

   예수님은 체포 당하기 직전 고뇌하며 하나님께 세 번이나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하며 생명에대한 연민을 드러셨습니다. 그럼에도 기도를 마치고 체포자들이 들이 닥쳤을 때에 이미 죽음의 권세에 승리한 모습으로 담대하게 세상의 폭력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도 사탄이 하는 일을 그대로 보고 계시지만, 죽음의 권세인 사탄 역시 예수님을 시험은 할 수 있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완전한 인간으로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성정을 가지고 계셨기에 자신이 겪을 수난 앞에서 번민하고 괴로워하였으나, 기도 중에 스스로 이 땅에 온 목적이 무엇이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인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죽음의 권세인 사탄을 드러내 보였으며, 또한 그 십자가를 통해 악을 선으로 바꾸어 아버지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 까지 악은 악의 일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깨어있어, 분별력있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종종 제자 베드로와 비교가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서 죽기로 주님과 함께 갈 각오가 되어있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하였지만, 결국 가야바의 집 뜰에서 서성이며 모닥불을 쬐던 중, 당신도 한패라는 말을 듣고, 갈릴리 사람이라고 하자 거듭 부인하였고,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고 끝내 세 번을 부인하자 닭이 웁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베드로는 보여줍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집 밖으로 나가 비통하게 울었습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신이 받은 은 30냥을 다시 돌려 주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방법으로 끝을 맺습니다. 회개하지 못하는 가룟유다의 모습을 우리는 구약의 사울왕에게서 이미 보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사울은 처음 왕이 될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예언자들에 속하여 함께 춤추며 예언하던 그 성령의 감동을 잃어버리고 인간의 생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데마라고 하는 바울의 제자는 바울 서신 중에 누가와 함께하는 신실한 동역자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딤후 4:10에 보면 안타깝게도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성령님의 역사에 온전히 감화되지 못하면 결국은 자기 생각 그대로인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도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이고, 하나님 말씀도 내가 믿는 하나님 말씀이고, 하나님의 뜻도 내가 바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 나를 거치고 나 중심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내 관점, 시선을 가지고 성경을 바라보는 한, 변화도, 감동도 없으며 자기 연민에 붙들려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에 머물 수 없습니다. 교회 텃 밭 퇴비를 만들 때 완전 발효하지 않으면 유해한 가스가 발생하여 농사를 망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도 성령의 내적 감동을 통해 예배, 말씀, 기도, 교제, 봉사에 온전히 성숙해야 합니다. 이 사순절에 자기 연민, , 생각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우리서로같이 교회이기를 기도합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979개(3/49페이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2016년9월4일) 사진 첨부파일 관리자 14495 2016.09.09 08:30
공지 나는 주의 사람이니(가야금, 대금 동영상) 첨부파일 하늘기차 25866 2007.10.16 12:24
공지 망대에 오르라(창립40주년 기념 예배 설교,유경재 목사) 고기교회 26221 2006.05.31 22:16
공지 교회와 세상을 향하여 하늘기차 24813 2005.09.02 16:30
935 하나님의 스캔들(부활둘째주일, 2023년4월1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68 2023.04.16 12:54
934 죽음은 거짓, 부활이 팩트(부활주일, 2023년4월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9 2023.04.09 10:37
933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자(종려주일.2023년4월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11 2023.04.02 14:14
932 고난을 당하심 ? (사순절다섯번째주일.2023년3월26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8 2023.03.26 13:29
931 어느날, 문득....(평신도 강단: 전영희 집사, 3월 19일 저녁예배 첨부파일 김현식 276 2023.03.19 23:41
930 성령이 친히 간구하는 기도(사순절네번째주일.2023년3월1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07 2023.03.19 13:53
>> 우리 일은 ?(사순절세번째주일.2023년3월12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39 2023.03.12 12:40
928 악을 선으로 전환하시는 하나님(사순절두번째주일, 2023년3월5일 )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4 2023.03.05 13:47
927 잿더미 위에 앉은 욥(사순절첫번째주일, 2023년2월26일 )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0 2023.02.26 14:27
926 하늘에 속한 형상:십자가 (주현절후마지막주일, 2023년2월19일 )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42 2023.02.19 11:20
925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님(주현절후다섯째주일, 2023년2월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0 2023.02.05 14:52
924 떠나감에 대해(주현절후네째주일, 2023년1월29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95 2023.01.29 13:36
923 생각, 새 마음(주현절후세째주일, 2023년1월22일 첨부파일 하늘기차 529 2023.01.22 11:16
922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주현절후두째주일, 2023년1월15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37 2023.01.15 13:07
921 세례 · 십자가 · 기쁨(주현절후첫째주일, 2023년1월8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9 2023.01.08 11:15
920 오늘은 선포의 날(성탄절후첫째주일, 2023년1월1일)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358 2023.01.01 14:48
919 이름을 부르는 성탄(성탄절, 2022년12월25) 사진 첨부파일 하늘기차 280 2022.12.25 15:45
918 기쁨으로 기다립니다(대강절 넷째주, 2022년12월18) 첨부파일 만지다 366 2022.12.19 17:10
917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대강절 셋째주, 2022년12월11일) 첨부파일 김현식 344 2022.12.12 16:55
916 성육신에 담긴 마음(대강절둘째주, 2022년12월4일) 사진 첨부파일 stephensh 283 2022.12.04 18:50